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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막상 이사를 결정하자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많다.
먼저 집부터 구하자.
발품을 팔아야 한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근처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가서,
“최소 15평짜리라고요?”
“네.”
“잘 오셨어요. 전세와 월세 상한선은 얼마 정도?”
“매매로요, 신축이면 더 좋구요.”
“아! 잠시만요.”
노트북을 꺼내 매물을 보여주는 중개인.
“여기 가산동에서 제일 괜찮은 오피스텔입니다. 지은 지 1년도 채 안 됐고요. 매매가는 5억 8천, 천만 원 정도는 깎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로 입주 가능한가요?”
“당연하죠. 비어있는데···, 중도금만 주시면 바로 내일이라도 입주 가능합니다.”
“당장 계약하죠. 중도금 필요 없이 전액 입금할 테니까 최대한 빨리 처리해주세요. 중개료도 섭섭지 않게 드릴게요. ”
“아이고, 시원시원한 분 오셨네. 감사합니다.”
그냥 결정해버렸다.
더 둘러보면 좋겠지만 아직 장애를 달고 다니는 처지라 여의치 않다.
의외로 할 일이 많았다.
기존에 살던 원룸의 주인에게도 연락해서 방을 빼겠다고 알려줬고, 보증금은 천천히 줘도 된다고 했다. 전월세야 금방 나가니.
다음은 이사업체, 청소업체에 연락하고, 또 듀플렉스 스페이스 홈페이지에서 최고급 캡슐형 접속 장치 구매, 기존 의자형은 보상판매로 넘기니 가격이 약간 싸졌다.
사실 이사랄 게 있나?
짐도 많지 않아서 1톤 트럭 부르면 끝, 오히려 버리느라 힘들지.
그간 사용하던 가전제품, 허름한 옷가지, 낡은 가구, 생활용품···, 웬만하면 모두 버리고 새로 살 예정, 그래서 가까운 가전제품 대리점으로 가서 물건도 보고.
이렇게 새로운 환경을 준비하느라 이틀 동안 게임을 하지 못했다.
캡슐 설치팀에 전화해 기존 의자형 접속 장치를 수거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바꿔야 할 물건이니까.
그리고 마침내 이사 날, 가구가 들어오고 가전제품이 들어오고, 인터넷 명의 변경에, 캡슐형 접속 장치만 들어오면 된다.
이젠 얼추 집 정리도 끝났고···, 오후에 캡슐이 배송된다고 하니 기다리면 될 것 같다.
찬웅은 9층에 있는 새집 전망창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시가지를 감상했다.
매끄러운 타일 바닥,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가전, 코를 찌르는 새집 냄새.
자그마치 5억 8천만 원짜리 신축 오피스텔을 현찰로 지르다니.
‘···꿈은 아니겠지?’
불과 며칠 만에 두 가지 불운, 장애와 가난이 말끔하게 해소됐다.
새로운 보금자리, 통장에 남은 잔액 5억여 원, 그리고 하반신 마비를 치료할 수 있는 수단.
그동안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
남들은 잘만 걸어가던 그 꽃길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걷고 있다.
또 두 다리로 직접 걸을 날도 멀지 않았다.
꼬르륵,
‘돌아서면 배가 고프네.’
‘진(眞) 하급 치유 물약’을 먹은 후로 더 그렇다.
전엔 입이 짧아 많이 못 먹었는데, 건강해지고 있다는 신호겠지.
‘간단한 간식 정도는 사두는 게 좋겠어.’
배달 어플을 이용하면 금방이지만 새로 이사 온 곳이 어떤 곳인지 익혀둘 겸 찬웅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회사원들이 많은 동네라 그런지 편의점,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전에 살던 곳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아.’
공기질이 최악인데도 기분만은 상쾌하다.
편의점에서 핫바와 과자, 빵, 탄산음료, 캔커피, 맥주 등을 사서 집으로 가는데···,
그때!
“저어 혹시···,”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
“네? 누구···?”
“아! 아닙니다. 제가 착각을 했네요. 그럼 이만.”
잘못 봤나 보다.
그런데 낯이 익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서 봤더라.
‘공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인가?’
···아닌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10년 동안 하반신 장애로 지내 사적인 만남을 극도로 자제해서,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때마침,
지이잉,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진동음.
“네, 여보세요. 아! 맞습니다. 배송 오셨다고요? 근처에 있습니다, 바로 갈게요.”
드디어 최고급 캡슐형 접속 장치가 새집으로 왔단다.
그런데 새 기계에서 접속해도 고통은 계속될까?
‘아파도 해야지.’
얻어지는 열매에 비하면 그런 고통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으니까.
서둘러 오피스텔 건물로 가서 자신의 집 통로에 도착하자 다수의 박스를 쌓아 올린 채 자신을 기다리는 설치 기사.
크기가 너무 커서 부품을 별도로 가지고 와 집안에서 조립하는 식, 기사들이 박스를 집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몸이 이래서 그냥 구경만 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히죽히죽 웃으며 몰래 지켜보는 한 남자도 있었다,
※ ※ ※
김한출과 박동구는 자칭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다.
둘 다 32살의 나이에도 하는 것 없이 어울려 다니는 꼴이, 유유상종이란 말이 딱 어울렸다.
“D코인 시세가 왜 이래? 0.6달러가 뭐냐? 2달러 간다는 말 듣고 0.8에서 샀는데, 씨발, 2백만 원으로 2000개 넘게 사서 손실이 40만 원 넘는다.”
김한출의 푸념에 박동구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악재 터졌잖아.”
“그놈의 악재, 악재! 이번엔 뭔데?”
“몰라? 세화 길드 카쟌 침식지 레이드 포기 선언.”
“후우,”
침식지 보스 레이드는 일종의 이벤트 같은 것, 동화율 높은 용병들을 코인으로 고용해야 하고 소모품도 다량으로 구매해야 하며, 장비 업그레이드, 스킬 구입, 이런 것들이 동시에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당연히 D코인의 수요가 상승하고 시세도 같아 따라서 올라가는 것, 하지만 레이드가 중단되니 코인 시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악재라면 악재인데,
사실 고작 그 정도로 코인 가격이 움직일까? 그걸 핑계 삼아 세력들이 코인 가격을 내리눌러서 그런 거지.
“세화 새끼들, 졸라 쫄보네. 마음을 먹었으면 무라도 베어야지. 그나저나 돈이 말랐다. 어디 껀수 하나 없나?”
껀수라는 말에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박동구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출아!”
“응?”
“내가 오늘 누구 봤는지 알아?”
“누구? 아는 사람이야?”
“강찬웅 기억나?”
“엉? 그게 누군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김한출.
“그 왜 있잖아,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 보육원 출신, 자존심만 세서 뻣뻣하던 놈, 졸업하고 나서 교통사고로 병신 됐다고.”
“아하, 강찬웅, ···근데 그놈은 왜?”
“가산 꿈그린 오피스텔에 살던데, 거기 전세가 얼마더라. 한 2억 넘지 않나?”
“그 거지 새끼가?”
“게다가 캡슐도 샀더라.”
캡슐을 샀다는 박동구의 말에 눈빛을 빛내며 바싹 다가와 앉는 김한출.
“최고급 접속 캡슐? 3억짜리? 저, 정말?”
“DS 게임회사 설치 기사들을 봤어. 그놈 집에 설치하는 모습을.”
“우와!”
둘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그놈 고아였지? 누구 하나 연락할 데 없는.”
“게다가 병신이고.”
“우리가 도와줘야지.”
“그렇지, 얼마나 외롭겠냐? 고교 동창으로서 도리가 있는데,”
“스마트폰만 빼앗으면 뭐···, 신고도 못 할 거니까.”
“돌아가면서 감시하면 돼.”
“흐흐흐, 당장 하자.”
“작전 짜고, 일단 그 집에 먼저 들어가야 죽을 하든 밥을 하든 하지.”
무척 쉬운 일이다.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고,
일반인도 막상 당하면 저항 못 하는데, 하물며 장애인이라면?
그들은 이미 전적이 있었다.
‘친구’ 한 명 정해서 집에 ‘놀러’간다.
그런 다음 꼼짝 못 하게 만들어 돌아가면서 감시하고, 기생충처럼 벗겨 먹는다.
그 집에서 먹고 자고, 카드를 빌려 물건을 산다든지, 휴대폰으로 결제를 한다든가, 심지어 대출까지 받게 해서 돈을 챙긴다.
과거 그 일로 경찰 수사까지 받았지만 어쩌라고?
친구인데, 친구가 허락해준 건데, 친구 집에서 며칠 동안 같이 논 게 무슨 잘못인데?
그 친구도 보복이 두려워서 아무런 증언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조사는 흐지부지되어 끝이 났고, 이후에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박동구와 김한출은 친구에게 잘해주는 편이다.
물론 친구비를 꼬박꼬박 내면 말이다.
※ ※ ※
처음 게임에 접속했을 때 받은 끔찍한 고통, 찬웅은 그것이 기기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기계에 문제가 없었던 건 확실하다.
왜냐하면 접속하려고 들어가 누운 캡슐 안에서도 그와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 어마무시한 고통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윽!”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뇌에는 통각이 없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던데 그거 다 거짓말, 뇌가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크큭, ···으그그그극! 으으으으···,
역시 문제는 자신에게 있었다.
그러나 참는다.
언젠간 익숙해지겠지. 반드시 그렇게 되겠지. 꼭 되어야만 하고,
잠시 후,
눈앞을 가득 채운 찬란한 빛.
[어서 오세요. 고객님!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세상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후우,”
살았다.
최소한 죽지는 않는 모양.
바로 상태창부터 열었다.
‘동화율이 올랐나?’
현재 찬웅이 이용하고 있는 접속 장치는 동화율을 확정적으로 10% 올려준다는 기기, 그렇다면 113%에서 123%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화율 : 113%]
‘···뭐지?’
그대로네?
3억짜리인데, 설마 불량품?
혹시 대기실 안이라 그런가?
일단 나가보자.
대기실에 달린 게이트는 두 개, 하나는 아직 장소를 정하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카쟌.
찬웅은 카쟌으로 통하는 게이트의 손잡이를 잡았다.
화악!
시내 광장에 나타난 아바타 케이.
‘응?’
뭔가 이상하다.
한적했던 광장이 플레이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왜···, 아하!’
알 것 같다.
어느새 카쟌 침식지 보스 레이드 실패 시점으로부터 3일이 지났다. 접속 제한 페널티가 풀려 플레이어들이 카쟌 시내에 나타난 것.
지나치면서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후우, 3일 만이네. 미치는 줄 알았다.”
“나, 이대로는 못 참아.”
“그럼 어떻게 하려고?”
“젠장, 변호사라도 선임해서 소송으로 가야지. 죽어서 영웅 등급 무기를 떨궜다고! 그게 몇 코인짜리인 줄 알아?”
“나도 그래, 이거 어떻게 복구하나.”
“현질해야지. 코인값도 싸던데,”
그 밖에도 세화 길드를 향한 비난, 책임자가 누구냐니, 보상을 받아야 한다느니, 게임 안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단체 행동을 해야 한다느니.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찬웅은 카쟌 성문 밖을 나섰다.
그리고 상자를 까면서 얻은 탈것, 정령수 갈색곰을 소환해 올라타고,
‘침식지로.’
덜렁덜렁,
곰 특유의 움직임으로 승차감은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뛰어가는 것보다 훨씬 빠르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동화율이 오른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또!
‘아! 이런 식이구나.’
최고급 캡슐 접속 장치.
한 번에 확 오르는 게 아니라 이렇게 천천히 올려주는가 보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잘 오르네.’
3억짜리인데 당연히 이래야지.
찬웅은 침식지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이렇게 동화율이 10% 올라가면 최종적으로 123%, 그럼 오염된 사막 전갈 2마리 정도는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 터.
가는 도중에도 동화율은 계속 올랐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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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계속 오르더니.
[동화율 : 123%]
‘성능 확실하군.’
10% 다 올랐다.
지금이야 10% 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만 갈수록 힘든 것이 동화율 올리기, 그런데 별다른 수고도 없이 이렇게 쉽게 올릴 수 있다니.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어?”
또 올라?
10% 다 오르지 않았나?
아니면···, 오류?
[동화율 : 124%]
‘정말 올랐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탈것만 타고 갔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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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얼마까지 오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