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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왜 이래?
찬웅은 거래를 마치고 대기실로 귀환했다.
‘일단 게이트를 하나 더 달고.’
[게이트 설치에 드는 비용은 1,000D코인입니다. 추가하시겠습니까?]
“추가!”
그러자 벽면에 스르륵 나타나는 또 하나의 강철문.
[게이트와 연결된 장소가 없습니다.]
[시작 도시를 설정해 주세요.]
‘그건 나중에.’
300만 D코인.
랜덤 D박스를 10,000개나 깔 수 있는 코인이 생겼다.
하지만 이걸 랜덤 박스에 다 사용하나?
절대 그럴 순 없지.
‘딱 반만 쓰자.’
150만 코인은 현금으로 거래소에 올려서 환전.
1D코인이 0.7달러에서 0.8사이를 왔다 갔다 하니까.
잠시 후, 띠링!
[D코인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D코인 계좌에 한화 1,437,63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거래 수수료에 환전 수수료까지 제한 금액, 14억 3천!
‘먹고 사는 걱정은 없겠군.’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게임을 하면서 자신에게 닥친 불운 두 가지가 지워지게 생겼다.
가난, 그리고 장애.
이제 현금으로 환전하고 남은 150만 코인, 무려 5,000개의 랜덤 D박스를 깔 수 있다.
거기서 기존 확률대로만 진(眞) 아이템이 나온다면?
‘당장 오늘 끝낼 수도 있어.’
랜덤 박스를 산다.
한꺼번에 깐다.
그리고 걷는다.
“3,000D코인으로 D박스 10개 구매!’
[D박스 10개를 구입하셨습니다.]
“오픈!”
가슴이 두근거린다.
게임에서 14억을 현질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은 상상도 못 해본 일.
게임 초기엔 랜덤 박스를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현금으로 지른다 해도 D박스 하나당 많아 봐야 3천 원 정도.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차라리 거래소에 팔지, 돈이 썩어나는 사람 말고는 랜덤 D박스를 까는 플레이어는 별로 없다.
‘원 없이 질러보겠군.’
생활비 걱정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계좌에 14억 꽂아두고 현질하는 놈이 되었다.
‘사냥할 이유가 없어졌네. ···게임도 접고.’
게임을 굳이 뭐하러?
아직도 접속 시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랜덤 D박스, 개당 가격 300D코인.
처음엔 10개로 가볍게 시작했다.
그러나 죄다 꽝.
괜찮다.
어디 첫술에 배부르겠나?
가볍게 10개 더!
꽝꽝꽝···,
“으흠,”
너무 소심했다.
코인도 많은데.
그럼 100개.
“30,000D코인, D박스 100개 구매!”
[D박스 100개를 구입하셨습니다.]
“오픈!”
꽝! 꽝꽝, 꽝꽝꽝꽝!!!
100개 까는 데 약 5분여, 30,000D코인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
뭐, 이럴 수도 있지.
[D박스 100개를 구입하셨습니다.]
모두 꽝!
“어?”
[D박스 100개를 구입하셨습니다.]
역시 모조리 꽝!
“왜?”
[D박스 100개를 구입하셨습니다.]
여지없이 꽝!
.
.
.
‘뭐이래? 가, 갑자기?’
원래 랜덤 박스, 혹은 가챠는 도박과 다를 게 없다. 특히 이미 손맛을 본 터라 더더욱 헤어나오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아니다.
돈이 중요했으면 당장 그만뒀지.
‘계속! 나올 때까지.’
100개도 부족하면 200개 까면 나올 거야.
200개도 안 나오면?
300개 한꺼번에!!!
이젠 나와야지.
그래, 그래야지.
그러나.
“···90,000D코인, D박스 300개 구매!”
[코인 잔액이 부족합니다.]
‘응?’
“3,000D코인으로 D박스 10개 구매!”
[코인 잔액이 부족합니다.]
“뭐···.”
150만 코인이 다 사라졌어?
14억을 한 번에 날렸다고?
너무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150만 D코인을 쓸 때까지 진(眞) 아이템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대체 왜?
전엔 4개 깔 때도 그중 3개나 나왔지 않나!
이럴 순 없다.
‘그래, 아직 남았잖아. 환전한 돈을 다시 코인으로 바꿔···,’
순간!
찬웅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것도 다 꽝이면?
‘정신 차려! 다른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어.’
생각해보자.
천천히 마음을 다스리고.
왜 잘 나오던 진(眞) 아이템이 5,000개를 깔 동안 하나도 안 나오는 걸까?
‘애초에 잘 나오던 게 이상한 거였지.’
화정 그룹 정회장도 말했다.
까도 까도 안 나와서 축복이나 받아볼 참으로 침식지 레이드를 계획했던 거고, 워낙 극악한 확률이라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게 정상이었어.’
잘 나오는 것이 비정상.
처음부터 자신은 남들과 달랐다.
그건 확실하다.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 글 몇 개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 초보 용병입니다. 동화율을 어떻게 올려야 하죠?
└ 최하급 몬스터 잡아라. 처음부터 코인 벌 생각 말고.
└ 맞음. 최하급 잡아야 나오지도 않음.
└ 코볼트나 지렁이, 딱정벌레 잡으면서 전투 기술도 익히고, 스킬 숙련도 하고,
└ 코인 채굴은 하급부터, 중급부터는 파티 필수입니다.
코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딱정벌레에서 꼬박꼬박 2, 3D코인씩 나왔고, 일주일도 안 되어 동화율 110%를 달성했고.
- 랜덤 D박스 확률 어떰?
└ 구림!
└ 깔 생각도 하지 마.
└ 코인은 그냥 거래소에 팔아.
└ 초기 아바타 생성 축하로 받은 D박스에서도 물약만 나오더라.
└ 나도 레어 방패 하나밖에···,
└ 기만자 새끼네. 레어면 잘 나왔지.
더구나 D박스에서 나온 진(眞) 아이템, 아는 사람만 아는 그 아이템, 지극히 보기 힘들다는 그걸 대체 몇 개나 얻었나?
‘분명해. 절대 우연이 아니야.’
처음부터 게임엔 큰 관심이 없었다.
진(眞) 아이템 때문에 뛰어들었을 뿐.
이건 독점적인 혜택.
만약 자신이 다른 플레이어와 다르다면?
특이한 뭔가를 가지고 있다면?
이를테면 남다른 재능 같은 거···,
‘진(眞) 아이템은 일종의 대가겠지.’
게임을 계속하라는 시스템의 메시지.
그런데 이 경우는 왜···?
5,000개를 까도 하나도 안 나오는 이유는?
‘알뜰하게 코인 모아 네다섯 개 깔 때는 잘만 나왔잖아.’
그때와 지금은 뭐가 다르지?
거래로 코인을 획득해서 시스템 상점에서 랜덤 박스 사서···,
‘···가만!’
아니다.
같은 게 아니다.
거래로 획득한 코인, 그리고 침식지 몬스터를 사냥해서 번 돈, 같을 리 없다.
‘이런 방식으로는 하지 말라는 건가?’
간단히 말해 자신은 용병 플레이어다.
가장 힘든, 그러나 극복하기만 하면 엄청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직업.
게임 직업 역할에서 거래로 돈을 버는 건 상인, 재능있는 용병의 할 일은···,
‘침식지 정화.’
듀플렉스 스페이스 세계관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혹시?’
이게 메시지라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게임에 충실하라는,
한마디로,
‘재능을 낭비하지 마라, 직접 사냥해서 상자를 까라는···.’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확인해보면 돼.’
직접 코인을 모아서 까보자.
일단,
“상태창!”
[이름 : 케이]
[직업 : 용병(일반)]
[포스 : 1,000]
[액티브 스킬 : 없음]
[패시브 스킬 : 방출(2단계)]
[동화율 : 110%]
동화율을 110% 달성함으로써 직업 항목에 초보 딱지가 떼졌다.
스킬 레벨도 올랐고.
그리고 랜덤 박스에서 나온 아이템들,
‘죄다 소모품이네.’
하급, 중급, 상급 치유 물약부터, 자원 재생 물약, 각종 비약과 영약, 그 와중에 탈것 소환 구슬도 하나 나왔다.
레어 등급의 소환수 정령 갈색곰.
인벤토리가 모자라 대기실 바닥에서 작은 아이템 동산이 생길 정도로 많이 나왔지만 스킬 구슬이나 장비는 단 하나도 없다.
‘나가자. 침식지로.’
※ ※ ※
카쟌 침식지의 경우, 용병 플레이어들이 딱정벌레를 잡아 레벨을 올리고 난 후, 본격적인 코인 채굴을 위해 마주하는 몬스터는 사막 전갈.
혼자선 어렵다.
최소 2인에서 3인 파티가 대부분, 상당히 효율적이다.
1시간만 하면 인당 100D코인 이상은 벌어가니까.
찬웅은 이번에도 솔플을 하기로 결정했다.
쿠쿵, 쿠쿵,
육중하게 몸을 움직이는 갈색곰을 타고 침식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끄리릭, 끄리리릭!
징그러운 다리와 집게발, 그리고 꼬리 독침으로 무장한 거대 침식지 오염 사막 전갈이 나타났다.
딱정벌레와는 사뭇 다른 위압감.
그러나 치유 물약도 충분하고, 해독 물약도 있고,
띠링!
[퀘스트가 발동됐습니다.]
- 침식지 정화의 길(초입)
- 오염된 사막 전갈 처치(0/50)
- 보상 : 300D코인
찬웅은 아바타 케이의 포스를 끌어올렸다.
지이잉,
쌍도끼에 덧씌워진 푸른빛 포스.
‘딱정벌레보다 딱 2배 크네.’
살짝 떨린다.
그래도 동화율 110%, 초보 딱지는 뗐다.
뿐인가?
딱정벌레를 잡으면서 어느새 녹아든 전투 능력, 거기에 언제나 믿음직한 쌍도끼.
양손에 조막만 한 도끼를 든 찬웅의 아바타 케이가 서슴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찔러오듯 앞으로 뻗쳐오는 놈의 집게발,
빠각!
쩌억!
딱딱한 갑각질에 오른팔 전체가 진동했다. 그럼 왼팔도,
빠각! 빠가가각! 빡! 빡!
딱정벌레는 퍽퍽 소리가 났는데, 이놈은 빠각, 그만큼 단단하다는 소리겠지.
느려지는 전갈의 몸놀림, 멍해짐의 효과.
쌍수 스킬을 배우지 않아도 현란한 도끼질이 놈의 집게발을 으스러뜨린다.
순간!
오싹!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살기.
찬웅은 반사적으로 모랫바닥을 굴렀다.
따끔!
푹!
찬웅이 있던 자리를 파고 들어간 놈의 꼬리 독침, 아마 저곳에 계속 있었다면 아바타의 머리통이 으깨졌겠지.
하지만 약간 스친 모양.
금세 몸놀림이 부자연스러워졌다.
‘독인가?’
[아바타 케이가 전갈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맞네.
상관없다.
인벤토리엔 해독 물약이 차고 넘치니까.
찬웅은 머리 위에서 연달아 찔러오는 놈의 꼬리 독침을 피하며 해독 물약을 꺼내 마셨다.
꿀꺽!
[해독되었습니다. 1분간 독에 저항합니다.]
다시 빨라지는 몸.
찬웅은 그대로 뛰어올라 전갈의 몸통에 올라탔다.
그리고 혼신의 힘으로 몸통과 꼬리가 연결된 관절 부분을 향해.
빡!
뿌드득!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놈의 꼬리.
이젠 걱정할 것 없다.
휘리릭! 휙휙!
빠각! 빡! ···퍽퍽! 퍼퍽!
어느새 놈의 단단한 등껍질이 부서지고 연한 속살에 도끼가 박히기 시작했다.
오염된 사막 전갈은 점차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11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코인을 뱉어내고 죽어버렸다.
딱정벌레는 고작해야 3, 4D코인이었지만 이놈은 10D코인 초반대.
‘해볼 만해.’
중간중간 위기가 있었지만 감당 못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또 한 마리의 전갈이 눈앞에 보였다.
빠각! 빠각!
퍽! 퍼벅!
[10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줄어든 체력바는 치유 물약으로 회복.
무리로 여러 마리 함께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니까 패스, 혼자 돌아다니는 놈만 골라서,
빠각! 퍽퍽!
[12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레벨업!
올랐다.
111%, 동화율이 오르면 더 빨라지고 강해진다.
도끼가 춤을 춘다.
그리고 사막 전갈은 더 빨리 쓰러졌다.
[10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13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11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
.
.
[아바타 케이가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 오염된 사막전갈 처치(50/50)
[보상으로 300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후우,’
재미있다.
이래서 게임인가?
하긴 여기서 죽어봐야 현실에서 죽는 것도 아니고, 고작 3일 접속 제한 페널티가 전부니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다.
퀘스트 완료했지만 찬웅은 멈추지 않았다.
한 50마리 더 잡고 나서야.
‘D코인 얼마나 모았지?’
2시간 정도 했는데 벌써 1524D코인, 박스 5개는 충분히 산다.
이제 가설이 맞는지 확인해볼 차례.
시스템 상점에서 랜덤 D박스를 구입해,
“오픈!”
오로지 사냥으로만 벌었다.
침식지 오염 몬스터를 사냥하고, 퀘스트를 해결해 번 코인.
가설이 맞을지 확인하는 순간.
첫 번째.
[D박스에서 ‘중급 화염 저항의 비약’ 한 병을 획득하셨습니다.]
꽝.
[D박스에서 ‘눅눅한 치즈 한 덩어리’를 획득하셨습니다.]
[D박스에서 ‘하급 마정석’ 한 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연달아 꽝.
하급 마정석은 마탑에 팔면 코인으로 교환해주는데 그래봐야 100D코인.
‘내 생각이 틀렸나?’
그럼 결국 그 행운들이 우연이었다는 말?
그런데 네 번째에 와서,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아!”
[D박스에서 ‘진(眞) 하급 치유 물약’을 획득하셨습니다.]
‘떴구나.’
가설이 맞았다.
가야 할 방향을 찾았고.
더불어 그렇게도 원했던 아이템도 얻었다.
비록 그 대가가 현금 14억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