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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성실친절정직].
이 아바타의 플레이어는 한국의 화정 그룹 정규광 회장.
국내 100개 기업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던 무역회사를 60개 이상의 계열사를 거느린 10대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것도 바로 그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느닷없이 생긴 질병, 병명은 폐암, 건강검진을 꼬박꼬박하는 데도 그랬다.
다행히 비교적 초기에 발견해 수술도 잘 받았고, 지금은 항암치료를 받는 중인데 어찌 된 일인지 기력이 떨어져 시름시름 앓는 중, 깜빡깜빡 잠도 많이 오고 하루에 깨어있는 날이 몇 시간 안 될 정도.
암 치료는 끝났다.
근데 왜 이러지?
의사들도 원인을 모른단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명의들이 말이다.
이러다가 잠든 채 쥐도 새도 모르게 이승을 떠날지도 모른다.
두려웠다.
아직 청춘 아닌가?
100세 시대가 왔다고 매스컴에서 떠들썩한데 겨우 70에 죽어?
백방으로 방법을 찾았다.
좋다는 산삼도 구해다 먹어보고, 미국 최고 병원의 의사를 한국으로 초청해 진단도 받아보고, 굿도 해보고···, 하지만 다 소용없었다.
1년을 자택에서 칩거 생활 중, 비밀리에 한 번씩 의료진을 집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 전부.
그가 이 게임을 시작한 것도 바로 병 때문,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게임에 접속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야지.
그러다가 알아낸 정보.
자신이 하는 가상현실 게임 듀플렉스 스페이스, 그것과 관련된 믿지 못할 이야기.
게임을 하다 보면 신비로운 물건들을 얻을 기회가 온다는 것, 물론 그 확률이 극악할 정도라지만,
탈모약의 발명이 이 게임과 관련이 있다더라, 미 상원의원이 게임에서와 똑같은 체력강화의 비약을 마시고 거의 회춘했다더라, 중국의 부동산 재벌은 냉기 저항 영약을 마시고 한겨울에도 반팔 차림으로 다닌다더라, 또 치유 물약이 불치병을 치료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아이템들은 게임 안에서의 성능보다 현실에서 체감하는 효과가 더더욱 크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출처가 출처인지라 신빙성이 있었다.
은밀하게 한국 국정원에 문의한 결과 그들도 부정하지 않았다.
도시 괴담 같은 이야기.
신의 축복일까? 아니면 악마의 장난일까?
이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획득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 게임 안에서 랜덤 D박스를 구매해 열다 보면 메시지가 떠오른단다.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그러면 곧 현실의 아이템이 되어서 배달되고.
그래서 [성실친절정직], 화정 그룹 정규광 회장은 코인을 구매해 랜덤 D박스를 까기 시작했다.
1억이 넘어가고, 2억이 넘어가고···, 10억을 쏟아부었는데도 나온 건 수식어가 붙지 않은 일반 게임 속 아이템.
이래선 안 된다.
자신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비서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나온 결론.
축복!
핵심은 축복이다.
축복을 받아야 한다.
누가?
축복은 주신이 내린다.
듀플렉스 스페이스 세상을 다스리는 가상의 신(神) 말이다.
어디서?
대륙 중앙에 위치한 국가 중 하나, 헤스티아 성국 대신전에서 성황의 축복을 받으면 된다.
성황은 신의 대리인이니까.
그럼 어떻게?
축복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내려주나?
공적을 쌓아야 한다.
예를 들어 ‘침식지 정화’ 같은 위업 말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플레이어 집단이라는 세화 길드에 의뢰했다.
착수금 5억, 성공보수 15억, 공략의 주체는 화정 그룹 정규광 회장의 아바타 [성실친절정직],
하지만 결과는 실패.
그래도 정규광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재도전을 결정하고 마음을 다스리려 카쟌에서 장사나 해볼까 했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일어났다.
고작 초보 용병 플레이어가 그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던 것, 당연히 싸게 사고자 하는 장사꾼의 본능이 발동했고, 그 결과 이 사단이 났다.
솔직히 아직 한 가닥 의심이 있었다.
비싸게 샀다가 아무런 효과가 없으면 돈 낭비 아닌가?
하지만 곧 후회했다.
이 플레이어도 진(眞) 아이템의 정체를 안다.
정규광 회장은 [케이]라는 플레이어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애걸복걸 사정했다.
“그, 그렇게 매몰차게 가지 말고 워, 원하는 가격을 불러보게.”
“안 팔겠다고 했을 텐데요. 이거 놓으시죠.”
“제, 제발 내게 바로잡을 기회를 주게나.”
“뭘 바로 잡겠다고요?”
“그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결정할 기회 말일세.”
“···,”
들어는 볼까?
그냥 가려고 했던 것은 진심이었다.
활력의 영약, 현실에서 먹어도 좋다,
하지만 그가 급한 건 코인이 아니다. 진(眞) 아이템이지.
물론 코인이 있으면 치유 물약을 획득할 기회가 많아지긴 하지만.
“내 밑천을 다 털어서라도 사겠네.”
“글쎄요. 아바타 네임이 [성실친절정직]이신데 성실은 몰라도 정직하지는···,”
“내, 내가 잘못했네. 욕심에 누, 눈이 멀었던 모양이야.”
가치를 알면서도 후려치려고 했던 플레이어지만···, 하긴, 장사꾼이 다 그렇지.
“먼저 대화나 나눠보죠.”
“···대화?”
“이 아이템의 정체가 뭔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 아이템이 필요한지,”
“어려울 것이 있겠나? 내 다 말하지.”
다급했던 모양인지 [성실친절정직]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주절주절 꺼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된 걸세.”
“아, 네.”
말을 많이 늘어놓았지만 그도 별로 아는 것은 없었다.
단지 진(眞) 아이템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꽤 많고, 그들이 코인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랜덤 D박스의 주요 구매자라는 것.
주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메시지가 나오면 진(眞), 영어로 리얼(real)이라는 수식어가 달린 아이템이 나오는데, 로그 아웃을 하면 어느새 문 앞에 와있다는 것.
거래도 가능하다.
아이템을 취득한 사람이 로그 아웃만 하지 않고 넘겨주면 된다.
‘아는 사람이 꽤 있었네. 그럴 줄 알았어.’
로렉탈의 발모제도 사실은 게임 아이템을 기반으로 만든 거라니.
하지만 극악한 확률, 그래서 수십억을 밀어 넣어도 구경도 못 하는 것이 진(眞) 아이템이란다.
그건 그렇고,
“정부 기관들도 알고 있다는 거죠?”
“아마 전 세계 정부가 다 알걸세.”
“DS 게임 회사 대표는요? 그 사람의 입장은?”
“게리 스탁턴 말인가? 당연히 조사를 받았겠지. 하지만 외부에 공개된 건 하나도 없었다네.”
“그래요?”
게임을 만든 사람도 모른다니,
그나저나, [성실친절정직] 아바타의 플레이어가 화정 그룹 정규광 회장, 카쟌 침식지 보스 레이드도 이 사람이 기획했다.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필사적이구나.’
부끄러움도 모르고 매달릴 만하다.
기력이 떨어져 매일 침상에 누워 투병 중, 아무리 돈 많은 재벌이라도 병 앞에는 도리가 없었다.
“내, 내가 아는 건 다 말했네만···,”
간절한 눈빛으로 찬웅을 바라보는 정규광.
“그럼 이 물건의 가치를 판단해보세요.”
정규광은 이미 생각해뒀다.
여기서 50만 코인을 부른다?
수락할까? 아니다. 거절당할 확률이 높다.
이 케이라는 플레이어는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다.
그럼 얼마를 부를까?
“200만 코인이면 어떤가?”
“···네?”
200만?
한화로 17억에서 18억 사이.
“레이드를 기획했을 때, 예산이 200만 코인일세. 하지만 실패했으니···, 그 돈을 자네에게 주겠네.”
그러면서 슬쩍 케이의 눈치를 보는 정규광.
죽어가는 처지에도 상인은 상인.
너무 후려쳐도 안 되고, 또한 너무 과한 것도 문제, 궁지에 몰렸지만 활력의 영약이 효과가 있는지도, 아니 실재하는지도 확실치 않은데,
만약 이 영약이 효과가 없다면?
손해를 봐도 그 정도쯤이야 하며 잊어버릴 수 있는 돈.
자신도, 그리고 케이도 둘 다 만족하는 적정선의 금액, 200만 코인.
찬웅도 고민했다.
돈과 활력.
아무리 건강이 최고의 가치라고는 하나, 돈도 무시하진 못하지.
다만 200만 코인이 적정한 금액인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거금이지만···, 상인 플레이어가 200을 질렀다는 건 최소 그보다는 가치가 있다는 뜻.
그래서,
“300만 D코인. 그 돈이면 거래하죠.”
“허어,”
찬웅의 말에 난색을 표하는 정규광 회장.
그러나 목마른 사람은 자신,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주겠네.
“좋습니다. 거래 거세요.”
“자, 잠시만.”
정규광은 잠시 우뚝 서서 뭔가에 몰두했다.
“됐네. 코인을 매수하느라···, 내가 거래를 걸지.”
띠링,
[아바타 성실친절정직이 개인 거래를 요청해왔습니다.]
거래창에 진(眞) 상급 활력의 영약을 올려준 다음.
“수락!”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계좌에 찍힌 300만 코인.
얼떨떨하다.
비록 숫자로 찍혔지만 이렇게 큰돈은 처음.
“그런데···,”
“네?”
넌지시 물어보는 정규광.
“혹시 자네 국적이 어디인가?”
국적을 왜 물어봐.
알려줄 거라 생각했나?
“···말씀드려야 하나요?”
“아무리 아바타 동시통역 시스템으로 국적을 알 수 없다지만 왠지 자넨 한국인 같아서 말일세.”
“아닙니다. ···그냥 케이라고만 알아두세요.”
“그럼 친구 추가를 해도 되나?”
“뭐, 마음대로 하시고.”
재벌 회장과 친구도 먹었다.
비록 아바타끼리지만, 참 세상 알 수 없다.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나?
※ ※ ※
찬웅과의 거래를 마치고 [성실친절정직], 화정 그룹 정규광 회장은 최고급 접속 캡슐에서 눈을 떴다.
“수고하셨습니다.”
미리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김철진 비서가 정회장을 부축하며 일으켜주었다.
“별일 없었지?”
“세화 길드, 길드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동화율 높은 용병 플레이어들을 섭외하는 중이니, 늦어도 일주일 안에 2차 레이드를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취소시켜.”
“···네?”
“필요 없으니까 취소하라고, 머저리 같은 놈들, 그렇게 큰소리 떵떵 치더니, 쿨럭쿨럭.”
마른기침을 내뱉는 정규광.
캡슐에서 나오는 일도 이젠 힘들다.
“의료진 호출하겠습니다.”
“됐어. 그보다···, 집 현관 앞에 상자 하나가 놓여 있을지 모르니까, 있으면 가져오게.”
“어···, 서, 설마?”
“그래, 구했네.”
김철진 비서는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갔다.
정규광도 말로만 들었지,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이제 확인해볼 참.
과연 왔을까?
솔직히 지금도 100% 확신하진 않았다.
한국 국정원도, 미국 정부도, 그리고 자신의 지인도 확실하다고는 하고 있지만 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회, 회장님!!!”
“왔나?”
“네, 왔습니다.”
“누가 가지고 왔던가?”
“그, 그게···, 제가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 눈 깜짝할 새 문 앞에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절로 나타났단 말이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그거 이리 주게.”
다급하게 상자를 열어보는 정규광,
있었다.
그 영약이다.
상급 활력의 영약.
정규광은 잠시 고민하더니 곧 결심을 굳힌 듯, 고풍스러운 유리병의 밀랍 마개를 벗기고 보라색 액체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쭉 들이켰다.
꿀꺽!
과연 효과가 있을까?
잠시 후,
“음?”
온몸에서 퍼져나오는 따스함, 스멀스멀 피어나는 활력, 생명의 기운이었다.
“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하하하하!”
부끄러움도 잊고 속옷 차림으로 집 밖 마당으로 뛰쳐나가는 정규광.
이렇게 극적인 효능이라니.
현대 의학으로도 고치기 어려웠던 원인 모를 질환이 활력 영약 한 병에 씻겨 내려갔다.
‘기가 막히는군.’
병을 고쳤다는 기쁨은 한순간, 그다음에 닥친 생각은 욕망.
‘이걸로는 모자라,’
더 먹고 싶다.
그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남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 테고,
[케이]라는 아바타.
진(眞) 아이템이 뭔지 알고 있었다.
그럼 처음이 아니라는 말.
처음이었다면 5만 코인 부를 때 얼씨구나 하고 넘겨줬겠지.
‘더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
진 아이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적다.
그러나 그걸 득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다.
‘케이라···,’
일단 친구 추가는 해뒀다.
‘먼저 국적이 어디인지 알아내야겠군.’
아무래도 한국인 같은데···, 만약 한국이라면?
보물은 먼저 가지는 놈이 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