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5화 (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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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찬웅은 장애인 전용 콜택시를 불러 회사로 출근했다.

정부에서 보조를 받아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중소 장애인 상생 기업, 찬웅은 그곳에서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작은 기판을 조립하는 비교적 단순한 일을 했었다.

“그만둔다고?”

“네, 요즘 몸이 조금 안 좋아져서.”

“저런! 일이 힘들어서 그래? 포장 부서로 옮겨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알아서 내린 판단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쉬다가 몸이 괜찮아지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강찬웅씨 자리는 항상 비워둘 테니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뭘! 우리가 더 고맙지.”

하던 일도 기술이 크게 필요하지 않는 단순 작업.

그래서 인수인계 과정도 없다.

사장과의 면담을 마친 후, 안면이 있던 사람들을 찾아가 인사를 나눴다.

죄다 찬웅과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들.

“아이고, 그간 정들었는데, 종종 놀러 와.”

“그럴게요.”

“혹시 DS 가상 게임 해? 안 하면 쉬면서 틈틈이 해봐. 신세계더라고.”

“네, 그것도 해보려고요.”

퇴직금은 알아서 정산되어 나올 것이다.

찬웅은 다시 콜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 접속기 의자 위에 앉기 전에···.

탁자 위에 반쯤 남은 호두 파이를 마저 베어 물었다.

‘맛있네.’

그도 호두 파이를 가끔 먹어본 적 있지만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그뿐만이 아니다.

까닥까닥,

발목을 움직여보는 찬웅.

‘이젠 확실해졌어.’

또 한병의 진(眞) 치유 물약.

발가락에 이어 발목까지 움직인다.

몇 병 더 먹으면 휠체어에서 일어나 제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을 터.

병원에 가볼 생각은 없다

말한다고 해서 믿어줄 리도 만무하고, 이건 의학적인 영역이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포스 운용법.

이것도 구슬 형태로 왔다.

게임처럼 바로 먹었고.

아바타가 아닌 현실의 몸에 포스가 있을 리 없지만···,

“애매하네.”

뭔가 깨알보다 작은, 잘 느껴지지 않는 미세한 기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집중해보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있을 리 없지.’

기분 탓?

맞다. 플라시보, 뭐 그런 것일 것이다.

인간의 감각은 너무나 허술하고 부정확한 것, 있다면 확실하게 느껴졌겠지.

그나저나 미국 본사에 있다는 듀플렉스 스페이스 게임 본사는 과연 어떤 곳일까 궁금하다.

노트북을 열어 검색해봤다.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동화율 100%의 가상 현실 게임 듀플렉스 스페이스, 이 회사의 설립자이자 CEO는 게리 스탁턴, 40대 초반의 금발 미남자이다.

세계 부호 순위 1위에 랭크 되었지만 의외로 외부 활동을 꺼린다고 한다. 공식 행사에도 거의 나서지 않고, 미국 대통령보다 더 만나기 힘들다는 인물,

그래서 혹시 외계인이 아니냐는 소문이 생길 정도다.

뭐, 그런 음모론이야 아주 옛날부터 있었지만, 예를 들어 세계를 주름잡는 권력자들이 실상은 파충류의 모습을 한 렙틸리언이라든가.

‘이런 걸 알고 있기나 할까?’

어쨌거나 최소한 진(眞) 아이템은 진짜, 당분간 걸어서 움직일 때까진 무조건 게임이다.

식비에 월세, 통신 요금, 전세 대출이자···, 버는 돈 없이 줄줄이 통장에서 빠져나가겠지만 퇴직금과 그동안 번 돈이 있어 최소 5개월은 버틸 만하다.

‘여차하면 코인을 거래소에 팔아도 돼.’

최하급 몬스터를 잡아도 하루 D박스 10개 깔 정도의 코인을 번다.

갑작스럽게 닥친 행운.

‘이래도 되나?’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짓눌렀던 지독한 불운들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느낌.

그때 적금을 깨고 접속 기계를 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현실 도피라고, 마약일 거라고, 계속 게임을 하지 않고 애써 무시했다면 어땠을까? 무심코 충동적으로 질러버렸던 그때가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다시 마우스를 움직여 게임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알아본 후에 접속 의자에 앉아,

지이잉.

“윽!”

세 번째 접속에서도 고통은 여전했지만 참을만하다.

아니, 이 고통도 쾌락이다.

‘···변태 같네.’

아닌 게 아니라 조금 아픔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어서 오세요. 고객님!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세상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대기실에 묵묵히 서 있는 자신의 아바타.

그리고 합일, 다시 맛보는 자유.

아바타 케이가 된 찬웅은 대기실 벽면에 부착된 강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상태창!”

[이름 : 케이]

[직업 : 용병(초보)]

[포스 : 300]

[액티브 스킬 : 없음]

[패시브 스킬 : 방출(1단계)]

[동화율 : 103%]

동화율이 3% 올라 지금은 포스량도 300, 방출 스킬도 배워 무기에 포스를 실을 수 있다.

동화율 110% 돌파까지 이곳 사막 도시 카쟌 침식지에서 빡빡 굴러야지.

구른다는 표현을 쓰면 안 되겠구나.

하반신 장애의 찬웅에겐 그마저 즐거움이었다.

※ ※ ※

듀플렉스 스페이스 대륙엔 국가마다 한두 개씩의 침식지들이 있다.

숫자는 정해져 있다.

처음 시작은 256개, 현재는 255개.

침식지 한 군데가 정화되어서 줄었다.

그럼 어떻게 정화하나?

침식 지역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보스만 처리하면 오염은 사라지고 평범한 장소로 되돌아가는 식.

원래 침식지 파티 사냥의 인원은 주로 4명에서 5명, 하지만 대규모 정화 작전엔 최소 100, 많게는 300명의 용병 플레이어들이 참가하기도 한다.

용병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4인 파티가 탈것을 탄 채로 카쟌 침식지를 지나고 있었다.

“그래서 레이드 목적이 뭐래?”

“뭐, 공적 쌓기지.”

“공적? 그···, 이번 주최 길드 이름이 뭐더라?”

“세화 길드. 한국 대기업이 후원하는,”

“길드장이 작위라도 얻어보겠대?”

NPC뿐 아니라 플레이어도 귀족 작위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판타지 배경의 가상현실에서 귀족이 가지는 혜택은 엄청나게 많다.

“작위 목적은 아닌 것 같아.”

“음? 그게 아니면 뭐···,”

“소문으론 공적을 쌓아 헤스티아 성국 대신전에서 성황의 축복을 받고자 한다던데···,”

“성황의 축복? 작위 받는 것도 아니고, 고작 축복받으려고 지금 이 난리를 친단 말이야? 역시 돈 많은 나라 한국이야. 아주 펑펑 써대는구나.”

“우리에겐 좋은 일이지.”

“그래서 요즘 코인 가격도 아주 좋아. 얼마 전엔 바닥을 뚫고 들어가더니만.”

“개당 0.8달러지?”

침식지 정화는 오직 용병 플레이어만이 할 수 있는 위업, 정화에 가장 공이 많은 플레이어, 혹은 길드에게 엄청난 양의 코인도 주어진다.

또는 위업을 인정받아 인접 국가에서 작위를 내리기도 하고.

요즘 변방 사막 도시 카쟌엔 수많은 플레이어가 몰려들고 있었다.

한국 대기업이 후원하는 한 플레이어 길드가 ‘카쟌 침식지 정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용병들을 모집하고 있기 때문.

이번 캬잔 침식지 보스 레이드에 동원된 인원만 300여 명, 레이드 참가 자격 최소 동화율은 125%, 보상으로 각종 아이템과 코인을 준단다.

그래서 이들 용병 파티도 카쟌 침식지 레이드 집결지로 가는 중.

“카쟌은 처음이야.”

“난 와봤어. 친구하고 둘이서 초보자 존에서 죽자고 딱정벌레만 잡았지.”

“쯧쯧, 그거 최하급 아니야? D코인도 안주는 몹, 그걸 왜 잡아?”

“주로 동화율 돌파해서 파티 가입하는 게 목적이었지. 거기서 5% 정도 올리고, 파티 짜서 전갈 사냥하면서 5%, 다음은 방울뱀···, 오! 저기 뉴빈가보네.”

재미난 걸 발견했는지 용병 하나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어디···, 아하, 저기 코인도 안 주는 딱정벌레만 잡는 플레이어?”

“처음엔 다 저렇게 하는 거야. 뉴비가 코인은 무슨,”

“근데 아무리 딱정벌레라도 솔플이 가능해?”

“응, 돼! 봐, 무기가 꽤 좋아 보이지? 최소 영웅급이다. 저거면 딱정벌레 정도는 걍 녹지. 초기 투자 제대로 했네. 한 천만 원 들였나? 저렇게 한 달 정도 하다 보면 110% 정도는 충분히 올려.”

미친 듯이 쌍도끼를 휘둘러대는 플레이어 한 명.

멀리서도 도끼가 좋아 보이긴 했다.

“그런데 솔플 위험하지 않나?”

“그래봐야 딱정벌레잖아.”

“몬스터 말고 플레이어, PK 말이야.”

“그야 뭐 알아서 하겠지.”

“아무튼 늦겠다. 오늘 보스 잡는다던데, 빨리 집결지로 가자.”

용병 파티는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침식지 안쪽으로 속도를 높였다.

찬웅도 그들을 봤다.

‘무슨 이벤트라도 열렸나?’

사실 그들만이 아니었다.

멀리서 봐도 번쩍번쩍 빛나는 아이템을 걸친 플레이어 파티들이 저쪽으로 많이 지나갔다.

보통 이런 경우 대규모 레이드라던데, 대상은 당연히 보스고···,

‘···레이드? 공격대 조직 중이구나.’

작은 사막도시 카쟌에 플레이어들이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이럴 줄 알았다면 시작 도시를 신중하게 고를 걸 그랬군.’

엎질러진 물이다.

공격대가 보스 공략에 성공하기라도 하면.

‘여긴 정화되겠지.’

찬웅은 인상을 찌푸렸다.

‘흐음···,’

카쟌 침식지가 정화되면 사냥은 어디서 하나?

한참 꿀을 빨고 있었는데.

‘빨리 게이트를 더 달아야겠어.’

다른 곳으로 가야지.

대기실의 도시 이동장치, 게이트를 달려면 그것도 코인이 있어야 하는데, 본격적으로 뛰어드니 코인 들어가는 곳이 많다.

아껴야 한다.

‘코인을 모으는 족족 상자를 까버리면···,’

멀리 봐야지.

그래야 동화율을 높이고 높은 단계로 쭉쭉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코인도 지금보다 훨씬 더 벌고, 당연히 상자도 많이 깔 수 있을 것이고.

‘할 것이 많네.’

게이트 뿐만 아니라 이동의 편의를 위해 탈것도 사야 하고.

‘침식지가 정화되기 전에 한 마리라도 더 잡자.’

이곳 카쟌은 꿀 사냥터다.

사실 딱정벌레는 D코인을 주지 않는 몬스터.

플레이어들의 동화율 돌파를 위해 약하게 만들어 놓은 경험치 몹.

그런데 버그인지 몰라도 경험치뿐만 아니라 코인도 마구마구 떨어진다.

더구나 지금 딱정벌레를 잡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찬웅 혼자뿐.

눈앞에 보이는 서너 마리의 딱정벌레 무리들.

휘리릿!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가는 도끼가 딱정벌레의 머리통을 부쉈다.

그러고 나서 마치 천둥신의 망치처럼 다시 돌아와,

퍼퍽! 퍼버벅! 퍽! 퍽!

[2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3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

.

.

코인 모으면 장비나 탈 것부터 사고, 상자는 나중에 모아서 까고.

※ ※ ※

다음 날.

찬웅은 침대에서 잠을 깼다.

5시간 했다가 1시간 쉬고, 다시 5시간 접속 후 쉬려고 잠시 누웠는데···,

‘그대로 잠들었군.’

아무리 가수면 상태의 접속이라도 정상적인 휴식은 반드시 취해야 한다.

수면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침에 회사 가지 않아도 되니까 여유가 있네.’

밤새도록 게임을 해서 코인을 벌었고, 동화율은 107%까지 올렸다.

110%까지는 무조건 딱정벌레만 잡을 계획이었지만, 카쟌 침식지 보스 레이드가 성공하면···,

‘어디로 옮길까?’

이럴 땐 커뮤니티 사이트를 찾아보는 것이 최고.

찬웅은 침대에서 일어나 조심조심 휠체어로 옮겨탔다.

게임과 현실은 극과 극, 현실에서도 자신의 아바타 케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발목이 움직이니 훨씬 편하다.

드르륵,

휠체어를 밀어 책상 앞으로 다가가,

노트북을 열고 검색창에 듀플렉스 스페이스 키워드를 치자, 제일 먼저 뉴스가 나온다.

“음?”

눈에 확 들어오는 기사들.

<속보! 세화 플레이어 길드, 카쟌 침식지 공략 실패>

<침식지 보스, 타락한 맹독 선인장의 가시 폭우 공격에 300인 공격대 인원 모조리 전멸>

<준비 부족으로 인한 예견된 실패>

<레이드 참가한 용병들, 세화 길드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 사망으로 동화율 하락과 접속 제한 페널티에 대한 보상 요구>

고작 게임의 보스 레이드 실패가 무슨 속보씩이나 되냐고 하겠지만 듀플렉스 스페이스에 쏠린 사람들의 관심을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없다.

어쨌든,

“···실패했어?”

보스 레이드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정예들을 300명씩이나 모아서 갔는데.

“아무튼 딱정벌레 더 잡아도 되겠네.”

3일 후 다시 도전할지는 미지수지만 당장 카쟌을 떠나지 않아도 될듯하다.

꼬르륵.

배가 고프다.

일단 밥 먼저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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