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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眞), 리얼(real).
D박스 4개, D코인 1200개짜리, 현금 약 100만 원이다.
‘정부 지원 장애인 상생 업체’ 공장을 다니면서 월급 받아 어렵게 생활하는 처지에 게임에 100만 원을 태워?
DS 가상현실 게임의 용병 플레이어들은 이런 미친 짓을 하지 않는다.
코인을 거래소에 올리면 바로 팔리는데, 거래소에 팔아버리지, 랜덤 박스는 무슨!
그러나 지금은 해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진(眞) 치유 물약 하나만 더.’
홀로그램 영상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D박스에서 ‘중급 치유 물약’ 한 병을 획득하셨습니다.]
‘···중급 치유 물약?’
하지만 꽝!
진(眞)이라는 수식어도 없다.
중급에다가 진(眞) 접두사만 붙었어도.
보통 최하급 치유 물약을 도시 잡화점에서 구매한다면 1코인, 중급은 5코인이면 충분한데, 300코인으로 산 상자 하나에서 5코인짜리 치유 물약이라.
정석대로라면 코인 차근차근 모아 도시 대장간, 혹은 잡화점에서 장비나 소모품을 구매하는 것이 현명할 터.
‘이거 100만 원 그냥 날리나?’
잘못된 선택인가?
차라리 팔걸.
그런데 바로 그때!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음?”
떴나?
[D박스에서 ‘진(眞) 고소한 호두 파이’를 획득하셨습니다.]
“···뭐야?”
저런 것도 진(眞)?
이제 마지막 하나.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이번엔?
[D박스에서 ‘진(眞) 최하급 치유 물약’을 획득하셨습니다.]
“오!”
찬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원했던 아이템이 나올 때 느끼는 짜릿한 기분.
최하급이면 어떠냐, 접두사가 붙었다는 게 중요하지.
이래서 랜덤 박스를 뽑는 걸까?
그런데,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또?’
두근거리는 심장박동.
[D박스에서 ‘진(眞) 스킬 구슬 : 방출’을 획득하셨습니다.]
“아!”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처음부터 꽝이 나올 때 솔직히 후회했다.
무르고 싶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4개 중 3개씩이나 터져?
마침 스킬 구슬도 나왔다.
그것도 진(眞)으로.
[진(眞) 스킬 구슬 : 방출]
[종류 : 포스 운용법]
[발동 : 포스를 신체 일부분이나 장비로 발산합니다.]
포스 운용법, 기본 중의 기본.
“괜찮네.”
스킬 구슬을 얻는 방법은 세 가지.
첫 번째는 도시 스킬 상점에서 코인으로 구매하는 방법, 가장 평범한 경로.
두 번째는 드랍, 상급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데 아직은 쪼렙이니 한참 멀었고.
세 번째는 역시 D박스.
그러나 아무도 스킬 구슬을 구하기 위해 랜덤 D박스를 사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왜 스킬, 포스 운용법이 진(眞)으로 나오지? 실재 세상에선 포스가 없어 운용이 안 되니 쓸모가 없다. 도끼라면 장작이라도 패지.
하긴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게임 안에서 진(眞) 아이템을 득하고 그것이 현실로 배달되고,
우연은 아니다.
분명 원인이 있다.
원인을 알기에는 모든 것이 희미하다.
이 게임의 시나리오도 잘 모르는 판국에,
해왔던 대로만 계속 가보자.
그때!
[잠시 후면 적정 플레이 시간을 초과합니다.]
[게임을 잠시 쉬고 휴식을 취할 것을 권고드립니다.]
적정 플레이 시간.
5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저 알림음이 나온다.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데 그게 귀찮아서라도 게임을 쉬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아무튼 게임에 몰두하기엔 시간이 한참 모자란다.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생계는 코인을 팔아 충당하면 될 듯, 만약 이 수준으로 코인이 계속 드랍된다면.
‘쌀먹하는 거지.
그래, 권고를 받아들이자.
로그 아웃 하기 전에.
꿀꺽,
찬웅은 스킬 구슬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아바타 케이가 스킬 : 방출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떠오르는 방법대로 포스를 움직였다.
‘이런 느낌이군.’
게임 안에서 먼저 소비하면 현실에선 어떨까?
제대로 배달이 될까?
만약 된다면 현실에서 포스를 운용하는 느낌은?
“귀환!”
[대기실로 귀환합니다. 귀환 쿨타임은 2시간입니다.]
그리고 로그 아웃.
[로그 아웃 합니다.]
가수면 상태에서 깨어나 힘겹게 휠체어에 옮겨 탄 찬웅, 서둘러 바퀴를 움직여 현관문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기다려보자.
어떤 식으로 배달이 되나?
상자를 누가 가지고 오지?
문고리를 잡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순간!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벌컥!
울리자마자 문을 열어보니.
“···.”
아무도 없다.
그저 자신이 이름이 크게 쓰인 상자 하나뿐.
귀신이 곡할 노릇.
상자가 저 혼자 날아왔단 말?
그럼 초인종은?
어쨌든 또 배달이 왔다.
3개 다 있을까?
“다 있군.”
상자 안에 든 3가지 아이템.
아직 식지도 않은 따끈따끈한 호두 파이와 치유 물약, 그리고 손톱만 한 크기의 스킬 구슬이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박스를 까면 진(眞) 아이템이 나온다.
현실에서도 적용이 되는 그런 물건.
정리해보자.
코인을 번다.
상자를 산다.
그곳에서 진(眞) 치유 물약을 얻는다.
그리고 하반신 마비 장애를 치료한다.
그러려면?
게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 ※ ※
유전적 탈모 치료.
인류가 화성을 테라포밍해서 식민지를 건설해도 탈모 해결만은 불가능할 거란 말이 있었다.
탈모는 불치병이다. 모두 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기적의 신약이 발명되었다.
신속한 임상을 마치고 돌풍을 일으키며 올해 전 세계로 판매, 현재는 없어서 못 팔 지경.
그 약을 만들어낸 회사가 바로 미국 제약회사 로렉탈.
최고 경영자 마크 베일리는 자신의 집 거실에 설치된 최고급 접속 캡슐에서 나와 욕실로 들어갔다.
“후우, 샤워하고 커피라도 한잔해야겠네.”
가상현실 플레이는 다른 게임보다 정신력의 소모가 심하다. 그래도 직접 뛰어들어 무조건 D코인을 대량으로 확보해야 한다.
샤워를 마친 마크는 가운 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D코인 시세가···,’
거래소는 게임 안에서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D코인/달러(USD)
- 고가 : $0.88
- 저가 : $0.59
- 현재가 : $0.73
- 전일 종가 : $0.67
“···좋지 않군.”
어제 0.6달러대에 머물던 D코인 시세가 순식간에 0.7달러대로 치솟았다.
“1달러 넘어가겠군. 떨어트려야겠어.”
마크 베일리는 추적 불가능한 선불폰을 들었다.
“나요, 마크. 코인 가격이 심상치 않아요. 아아, 확인했다고요, 그럼? 네네, 좋습니다. 우리도 풀죠.”
조절해야 한다.
가격이 오르면 매도, 내리면 적절한 선에서 조금씩 매수, 매집한다.
마크 베일리는 대여섯 번 전화를 더 걸었다.
용건은 똑같다.
코인 가격을 억눌러야 한다는 것.
현재 코인 거래소를 운영하는 주체는 디멕스 코인 거래소, 듀플렉스 스페이스 게임회사와의 협약을 통해 게임 안팎에서 코인 거래를 대행하고 있는 곳이다.
디멕스나 듀플렉스 스페이스나 코인 거래에 대해선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의 큰 손들이 코인 거래를 주도하고 있는 형국, 마크 베일리도 그중 하나, 발모제 신약으로 번 수익을 모조리 코인에 쏟아부었다.
코인이 너무 올라가면 매집하기 힘들고, 너무 내려가면 공급이 딸린다. 오히려 코인 가격을 하락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좋다.
“적당히 눌러야지.”
그게 더 장기적으로 보면 좋다.
용병들이 비교적 싼 가격에 코인 상점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고, 그럼 전력 상승으로 이어져 획득하는 코인의 양이 늘어날 테니까.
아마 곧 있으면 코인 거래소에 엄청난 매물이 쏟아질 것이다.
자신도 팔고, 확 떨어지면 조금씩 사고, 그러다 보면 지금 가진 코인보다 더 늘어나 있겠지.
코인이 오르면 안 된다.
적어도 D박스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최소한 아직은 아니야.’
그렇게 되면 D코인의 시세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아 오를 터, 물론 영원한 비밀은 없지만 되도록 오래 유지 되어야 한다.
큰 손들은 개당 코인 300개로 살 수 있는 D박스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필사적으로 코인을 매집하고 있었고.
‘좀 더 많은 코인을 확보해야 해.’
코인이 많으면 D박스도 많이 산다.
그럼 리얼(real) 아이템이 나올 확률도 높아지고.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다.
마크의 가상현실 속 직업은 음유시인, 노래도 부르고, 여행도 하고, 공연을 통해 D코인도 벌고,
예술 직업을 가지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아우라 스탯, 그게 달린 아이템을 얻기 위해 틈틈이 D박스를 사서 까보기도 하고.
확률형 아이템 D박스, 대부분 금화나 아이템 같은 쓰레기, 그래도 소소한 취미 생활이었다.
그러다 이상한 아이템이 하나 나왔다.
<리얼(real) 발모 물약>
게임 안에서 발모제가 있는 것도 희한하지만 앞에 리얼(real)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은 처음 봤다.
‘쓰레기인 줄 알았어.’
마크는 현실에서 유전적 탈모로 고생하는 대머리.
그래서 게임 아바타만큼은 탐스럽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미남자로 커스터마이징 했다.
게임 안에선 쓸 일이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인벤토리에 보관은 해뒀다.
기막힌 일은 로그아웃을 하고 나서 생겼다.
언제인지 집안 방문 앞에 놓인 작은 상자, 그 위에는 자신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있었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폭발물일지도 모르니까.
경찰이 와서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상자를 연 마크 베일리, 그 안에는 정말 상상도 못 한 물건이 들어있었다.
‘발모제라니.’
그것도 게임에서 획득한 <리얼(real) 발모 물약>
한동안 고민하다 조금 찍어 발라봤다.
결과는?
‘미치는 줄 알았지.’
발모제를 바른 자리에 무성하게 솟아나는 머리머리, 마크는 바로 연구원들을 소집해 성분 분석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현재 팔고 있는 로렉탈의 발모제.
대체 왜 게임 속 아이템이 현실에서 나올까?
게임회사와 관련 있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듀플렉스 스페이스 본사에 CEO 면담을 요청했지만 바로 거절당했다.
뭐, 만나지 않겠다면 굳이 매달릴 필요는 없다.
들리는 이야기론 미국 정부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데···, 거기 엮이면 골치 아파진다.
백악관에서도 알고 있는 이유.
‘상원 의원 중 한 명이라지?’
나이가 80이 넘은 상원 의원, 그럼 몇 사람 없다. 누군지도 안다.
그가 손자에게서 ‘리얼(real) 하급 체력의 영약’이라는 실물을 받았다는 정보가 있다.
상원 의원의 손자도 게임 안에서 랜덤 상자를 까다가 획득했고.
역시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받은 리얼(real) 하급 체력의 영약, 근데 그 영감이 며칠을 고민하다 저 혼자 꿀꺽 마셔버렸단다.
“멍청하기는!”
그걸 왜 마시나?
연구해서 대량 생산할 생각을 했어야지.
‘쯧, 40살 연하 새 애인을 사귀었다던데···, 아깝군, 아까워.’
그 영감도 주요 큰손 중에 하나.
어쨌든 D박스는 진짜다.
지금도 마크 베일리는 틈틈이 게임을 하고 있다.
게임상에서 아바타를 만들고, 게임 접속용 최고급 캡슐의 힘을 빌려 현재 그의 동화율은 121%.
다만 용병이 되는 건 포기했다.
전직 시험을 치러봤는데 이건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자신의 재능은 음유시인에 제일 적합하다.
‘뭐, 코인이야 거래소에서 모으면 되니까.’
리얼(real) 아이템.
그때 말고 지금까지 한 번도 얻지 못했다.
돈으로 지르다 보면 언젠간 나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