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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여기서 나와?
찬웅이 게임 안에서 획득한, 진(眞)이란 수식어를 붙은 아이템은 치유 물약뿐이 아니었다.
그는 또 하나의 택배 상자 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작은 손도끼 한 쌍.
시험을 통과하고 받은 진(眞)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 치유 물약처럼 상자 안에 넣어져 문 앞에 놓여 있었고.
“이게 왜···.”
진(眞)이란 의미가 이거였나?
진짜 치유 물약, 진짜 전설 등급 무기 아이템.
찬웅은 쌍도끼 두 개를 양손에 들고 휘둘러봤다.
휙휙!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 날도 시퍼렇게 서 있고.
그냥 일반 도끼와는 다르다.
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할 정도의 기운.
구태여 표현하자면 살기(殺氣) 정도로 말하면 되겠다.
확실히 모형은 아니다. 진(眞) 치유 물약도 그렇고.
꼼지락, 꼼지락.
여전히 발가락은 움직이고 있었다.
‘확실히 나아졌어.’
최하급 물약인데도 말이다.
그럼 이 쌍도끼도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후우,’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게임에서 획득한 아이템이 현실에서 볼 수 있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최하급 치유 물약 한 병으로 발가락이 움직였다.
혹시 몇 병 더 먹으면 어떻게 되나?
‘완전히 나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찬웅은 휠체어를 끌고 가서 책상 앞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의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로 접속해서 팁게시판과 자유게시판을 찬찬히 읽어봤는데···.
‘없어.’
진(眞)이란 수식어가 붙은 건 상점에서 팔지 않는다.
상자에서도, 드랍도 아니고, 처음부터 존재 자체가 없는 아이템.
‘직접 물어볼까?’
제목을 ‘진(眞) 아이템 현실에서 획득했습니다’로 정하고 내용을 써서 엔터를 누르려던 순간!
멈칫!
‘···아니야.’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누가 믿어줄 것 같지도 않고.
진(眞) 최하급 치유 물약, 진(眞)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
이것들이 정말 진짜라고 가정해보자.
그럼 보물을 손에 넣은 거다.
현실에는 없는, 돈으로도 못 사는 그런 보물 말이다.
보물을 지키려면 힘을 가져야 하지만 자신은 가난하고 약한 장애인, 그래서 빼앗길 수도 있다.
치유 물약은 먹어버렸지만 하나 더 획득한다면?
‘일단은 비밀로.’
만약 이것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벌써 알려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간 밝혀질 테고.
그럼 지금 자신이 할 일은?
‘···게임을 계속해야겠군.’
바로 시작하자.
오늘은 토요일, 내일까지 시간이 있다.
‘그나저나 이 도끼는 어떡하지?’
쓸 일이 있겠나.
장작을 팰 것도 아니고.
‘숨겨두자.’
옷장 깊은 곳에 쌍도끼를 숨겨두고, 출출하니 즉석밥도 데워서 대충 김치와 함께 때우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찬웅은 다시 한번 게임 접속기에 앉았다.
두 번째 접속, 설마···,
또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헬멧 착용, 그리고 버튼을 쿡!
지이잉.
“크윽!!!”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머리가 부서질 것 같다.
눈동자엔 빨간 핏발이 섰고.
“제, 젠장!”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명분이 생겼다.
이까짓 고통!
무조건 참는다.
이윽고.
[어서 오세요. 고객님!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세상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휴,”
대기실, 그 중앙에 우뚝 서 있는 자신의 아바타 케이, 아바타를 선택하니.
핏!
어느새 변해버린 시점, 아바타와의 합일.
‘됐군.’
접속 과정에서 고통만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계 교환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찬웅의 아바타 케이는 정면 벽에 부착된 강철문을 향해 걸어갔다.
<동부지역 사막 도시 카쟌>
나중에 코인을 벌어서 문을 하나 더 달면 갈 수 있는 곳이 한군데 더 생기지만 지금은 그런데 코인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코인을 벌어서 D박스를 사서 깐다.
이것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목표.
강철문을 열었다.
화아악!
카쟌의 광장 한가운데 선 찬웅.
작은 도시임에도 수많은 플레이어들, 전투계열도 보이고 상인인듯한 플레이어도 있다.
사냥터로 나가보자.
그전에···,
“상태창!”
[이름 : 케이]
[직업 : 용병(초보)]
[포스 : 100]
[액티브 스킬 : 없음]
[패시브 스킬 : 없음]
[동화율 : 100%]
변한 항목이 보인다.
직업이 용병, 그리고 포스라는 스탯도 생겼고.
스킬은 따로 구해야 한다.
몬스터를 사냥해서 드랍 아이템으로 스킬 구슬을 얻거나 아니면 D박스를 까거나.
다음으로 인벤토리.
자원 재생 물약, 식빵, 스태미너 물약, 최하급 치유 물약···,
‘음?’
치유 물약 앞에 진(眞)이라는 수식어가 보이지 않는다.
‘설마···, 쌍도끼도,’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
[등급 : 전설]
[무기 종류 : 쌍수도끼]
[귀속 여부 : 습득 시 귀속]
[무기 기술 : 투척 후 회수 가능/ 대상의 머리 타격 시 1초간 멍해짐 효과]
이것도 마찬가지.
진(眞) 글자가 사라졌다.
‘이거···,’
현실로 배달(?)되어 왔기 때문일까?
코인 계좌에는 D코인 53개가 들어있었다.
최초 가입 축하로 받은 50코인에 D박스에서 나온 거 3개를 합친 것.
이제 남은 건 사냥.
D코인을 모아서 상자를 깐다.
※ ※ ※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공간적 배경은 중세풍의 판타지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열차와 자동차, 비행선도 있고, 그걸 가동하는 전기 비슷한 에너지도 있는 상상의 공간.
거대한 하나의 대륙에 수많은 나라가 존재한다.
찬웅이 최초 시작 지점으로 설정한 카쟌은 대륙 동부 외곽 사막, 파로드 왕국에 속한 변방 도시, 그렇게 크지 않다.
그래도 용병 플레이어들이 여길 오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 ‘침식지’가 있기 때문.
침식지.
힐링과 행복이 넘쳐나는 이 가상현실 세계에서 가장 부정적인 장소를 꼽으라면 대표적인 곳이 침식지다.
침식이란 깎여 나간다는 의미, 그래서 그 지역은 황폐해지고 음습하며 불길하다.
게임 시나리오상으로는 수백 년 전 동부 사막에서 제일 먼저 건설된 오아시스 무역 도시가 있었는데 원인 모를 기운이 닥쳐와 샘은 오염되었고, 풀과 나무 등 생명체들은 말라 죽었다.
그곳에 살던 거주민들이 피난을 가서 세운 도시가 바로 카쟌, 카쟌 주민들은 자신들이 떠나온 태초의 도시를 정화하고 복구하는 것이 숙원, 뭐 그런 평범한 시나리오다.
카쟌 뿐 아니다.
듀플렉스 스페이스 세계의 각 대도시 부근엔 반드시 침식지가 존재한다,
그 침식지에도 마을은 있다.
‘저기군.’
저 멀리 아른아른 보이는 마을.
<오염된 오아시스 전초기지>
여기까지 오느라고 꽤 고생했다.
코인을 투자하면 재빠른 사막 낙타 같은 탈것을 살 수 있지만, 그런데다 코인을 낭비할 순 없다.
오로지 D박스, 까다 보면 탈것도 나오겠지.
찬웅은 전초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NPC들도 몇몇 보이지만 대부분 용병 플레이어들, 엄청 많다.
“공격대 결성 전 몸풀기로 오염된 사막 방울뱀 파티원 모집합니다. 동화율 120% 이상, 스킬, 장비 레어 이상 되는 분 오세요.”
“오아시스 주변부 탐색 퀘스트 갑니다. 동화율, 스킬 공개해주시고 파티 요청해주세요.”
“안 쓰는 장비 구매합니다. 상점가 80% 가격으로 전량 매입요.”
시끌벅적한 시장터 분위기,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제법 사람이 많다.
‘파티 사냥이라.’
게임이 발매되고, 초기 플레이어들이 용병 자격을 갖추었을 때 솔플 사냥은 매우 어려웠다.
한눈팔다 보면 어느새 누워있고, 그러면 페널티로 접속이 제한되고.
그래서 파티를 짤 수밖에,
최대 10명까지 파티를 짜서 최하급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렇게 코인을 모아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스킬도 익혔다.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다.
초보자에게 파티 사냥은 필수, 장비가 충분치 못하면 약간의 현질도 해야 하고.
‘파티 가입이 될까?’
이름표는 항상 머리 위에 나타나지만 상태창은 공개해야 보인다.
일부, 혹은 전부.
파티에 가입하기 위해선 동화율과 스킬, 장비를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찬웅의 동화율은 100%, 게다가 스킬도 없다. 믿는 거라곤 전설 등급 장비 하나뿐.
까일 수도 있다.
‘···요청해봐?’
그러나 그때!
“왜요? 동화율 120%잖아요. 그거만 듣고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이렇게 까나?”
“하아, 배운 스킬도 몇 개 없고, 장비도 너무하잖아요. 방울뱀 잡아서 코인 얻고 싶으면 최소한의 투자는 하고 와야죠. 사람이 성의가 있어야지, 성의가!”
“씨발, 그럼 애초에 가입 조건 전부 말해주던가.”
“장비나 맞춰 오세요. 그것도 싫으면 딱정벌레나 잡으세요.”
기준이 꽤나 엄격하다.
‘안 되겠군.’
하긴, 저렇게 해야 사냥이 원활해질 터.
파티는 글렀고, 이왕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그냥 가는 것도 싫고.
‘혼자 해보자.’
솔플말고는 선택권이 없다.
위험하면 도망치고.
찬웅은 성 밖으로 다시 나갔다.
동화율 100%짜리 아바타가, 무기 하나만 달랑 들고 솔플로 사냥한다고 하면 누가 봐도 웃을 일.
그러나 천천히 단계를 밟아, 처음엔 어려울지라도 초보자 사냥이 가능한 장소에서 약한 몬스터를 잡아 조금씩 재화를 모으고 그걸 바탕으로 장비와 스킬을 업그레이드한다.
모든 게임의 기본 원리 아닌가!
마을 밖을 나서자 불길한 보라색 지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악취, 침식지 가장자리.
순간!
[퀘스트가 발동됐습니다.]
‘음?’
- 사냥의 시작
- 오염된 사막 딱정벌레 처치(0/10)
- 보상 : 30D코인
그리고 지면에서 솟아나는 거대곤충 한 마리, 오염된 사막 딱정벌레.
튜토리얼 전직 퀘스트에서 봤던 몬스터.
잡는다.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쌍도끼,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를 꺼내 들었다.
아직 포스를 사용하진 못한다.
포스 운용 스킬이 없기 때문.
그래도 저놈은 매우 약하니.
스스슥,
전투 방법은 튜토리얼 때와 다르지 않다.
물러서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가.
퍽퍽퍽퍽!
무식하게 도끼질,
놈이 깨물든 말든, 날카로운 발에 긁히든 말든,
콰직! 콱콱!
멍해짐의 무기 효과, 머리에 한 방만 때려도 놈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느려진다.
‘쉽군.’
순식간에 한 마리 처치!
놈의 공격으로 체력바가 손실되었지만 무리 없이 잡았다.
확실히 게임은 아이템 빨이 전부라더니, 두부처럼 몸통에 쑥쑥 박혀 들어간다.
[3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3D코인씩이나?’
또 한 마리 보인다.
빠르게 달려가서.
퍽퍽! 콰직!
손도끼가 놈의 갑각질에 내려 찍힌다.
다소 무식해 보일 수 있는 모습.
이렇게라도 잡으면 되지.
[2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한 마리씩 잡으면서 침식지로 점점 깊게 들어가니, 눈에 띄게 많아진 오염된 사막 딱정벌레.
퍽퍽! 콰직, 콰지직!
반이나 넘게 줄어든 체력바는 잠시 쉬면서 회복하고.
점점 수월해진다.
콱콱! 퍽퍽!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레벨업?’
아무리 초반엔 쉽다고 하지만 너무 빨리 오르는 것 같은데···.
아무튼 레벨업하자 몸이 다시 회복된다.
금방 10마리 잡고.
[아바타 케이가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 오염된 사막 딱정벌레 처치(10/10)
[보상으로 30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또?’
솔플의 장점은 경험치를 혼자 다 먹는다는 것, 그리고 코인도.
계속 잡았다.
꼼꼼하게 잡았다.
[3 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2 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4 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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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모인 D코인 300개가 넘어간다.
‘흐음.’
뭐지?
이렇게 쉬웠나?
동화율 돌파가 무려 3%, 더불어 코인도, 반나절도 안 돼 사냥으로 30만 원 번 셈.
솔플도 충분한데 왜 사람들은 굳이 파티 사냥을 하려고 할까.
‘다 사정이 있겠지.’
갑자기 결정한 터라 이 게임에 대해 사전지식이 많지 않다.
나중에 천천히 살펴봐야 할 것 같고.
어쨌거나 300코인 모았으니 어떻게 할까?
겨우 상자 하나 까는 거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다시 사냥!
찬웅은 다시 딱정벌레를 잡았다.
퍽퍽! 퍽퍽퍽퍽!
기계적인 도끼질,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공포감도 완전하게 사라졌다.
저녁을 지나 밤새도록, 조금 쉬었다가 다시 접속해서 사냥,
그래서 모은 돈이 약 1200코인.
‘이게 백만 원이야?’
미쳤다.
고작 하루 만에 백만 원 벌었다.
이렇게 쉬울 줄이야,
‘나 재능이 있나?’
그럼 더 일찍 해보는 건데 말이다.
‘코인으로 뭘 하지?’
상점에 들러 장비와 스킬을 살까?
아니다.
애초부터 게임의 목적은 D박스를 까는 것
“1200D코인으로 D박스 4개 구매!’
[D박스 4개를 구입하셨습니다.]
“모두 오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