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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카쟌은 가상 세계에서 별로 크지 않은 도시다.
시내 이곳저곳에서 플레이어들의 접속을 알리는 빛무리. 그중 하나가 강찬웅의 아바타 케이였다.
한번 하고 더는 안 할 게임.
그렇다면 이 게임에서 가장 최고이자 최악인 컨텐츠를 즐겨봐야지. 그러기 위해선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다.
NPC들뿐만 아니라 곳곳에 이름표를 단 아바타, 이 작은 도시에도 플레이어들이 북적였다.
‘플레이어들이 왜 이렇게 많아?’
죄다 용병 같은데, DS 직업 중에서 제일 숫자가 적은 직업군이 바로 전투계열 용병.
그런데 유독 많이 보인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용병의 전당이 어디···,’
이상하다.
길을 걷다 보니 낯이 뜨겁다.
용병들은 무관심이나 유독 NPC들이 자신을 힐끗힐끗 훔쳐보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군댄다.
낯이 뜨거울 정도.
초보자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커스터마이징을 대충해서 그런가?
어쨌거나 다 왔다.
‘저기군.’
<용병의 전당>
아테네 신전같이 생긴 건물에 달린 표지판.
찬웅은 건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매우 시끌벅적하다.
먼저 온 사람이 있는 모양.
한 명은 플레이어, 한 명은 성기사 NPC.
“왜요? 크, 클리어했잖아요! 그런데 불합격?”
“잡는 데 1시간 걸렸지. 다른 직업 알아보시게.”
“싫어요! 합격시켜주세요!”
전직 시험에서 불합격했나 보다.
그렇게 어렵나?
불합격한 아바타의 성별은 여자였다.
그렇다고 저 아바타의 플레이어가 여자라고 확신하진 못한다. 성별을 속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쯧쯧, 생떼를 쓰고 있구나. 기준이란 게 엄연히 있는 법인데.”
“죽이긴 죽였잖아요!”
“그렇지. 죽였지. 그런데 말이다.”
“뭐, 뭐가요?”
“초보 주제에 동화율이 그리 높은 걸 보니 기물의 힘을 빌렸고, 게다가 네 손가락과 목에 주렁주렁 달린 아티팩트에, 그리고 인벤토리에 무기까지 숨겨왔는데 무려 1시간이 걸려? 네 미천한 재능을 탓하거라.”
플레이어는 정곡을 찔린 듯 찔끔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 가지고 오지 말라는 규칙도 없었잖아요.”
“맞다. 그래서 시험을 치르게 해준 거고, 그런데도 넌 몬스터 앞에서 한참을 주저했지. 그렇지 않으냐?”
“···.”
“정진해서 재시험 치르거라.”
결국 도망치듯 전당 밖으로 나가는 플레이어.
‘상당히 까칠하네.’
짜여진 프로그램이라도 NPC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감정 표현만 봐도 그렇다. 저렇게 엄격하니···, 뭐, 불합격하면 그냥 로그 아웃 해버리면 되지.
찬웅은 성기사 시험관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
“음?”
찬웅에게 얼굴을 돌리는 NPC 성기사.
그러더니 멈칫하면서 뚫어지라 시선을 고정했다.
“전직 시험 치르러 왔습니다.”
“어···,”
“전직 시험요. 지금 볼 수 있나요?”
“으음, 오오오···,”
심지어 탄성을 지르면서,
“시, 시험 말인가?”
“네.”
“이름이···, 케이, 좋은 이름이군.”
뭐지?
왜 이렇게 부드러워?
“준비하시게. 어렵지는 않을 거네.”
“···네.”
왜 이렇게 친절해?
“다소 불편해도 이해하길, 그럼!”
그러자 순식간에 변하는 환경.
아무것도 없는 뜨거운 모래사막에 홀로 남겨진 강찬웅, 손에는 투박한 몽둥이 하나가 들려있었다.
튜토리얼 시작.
전직 시험에 관해선 미리 알아보고 왔다.
퀘스트가 주어지면 제일 약한 몬스터 한 마리 처리하면 된다.
‘몽둥이로 때려잡으란 거겠지.’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심리적인 것이 문제.
사실 현질도 필요 없다.
마음만 먹으면 통과.
‘아까 그 플레이어는 금수저겠지?’
처음인데도 동화율이 높다고 하니 아마 그럴 것이다.
평등할 것 같은 가상현실 게임에서도 개개인의 출발점은 다르다.
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접속 장치.
‘캡슐을 샀을 거야.’
안마의자 형태의 접속기 말고 캡슐 형태의 최고급 접속장치가 있다.
가격은 약 3억, 동화율을 확정적으로 10% 올려준다.
현금 3억으로 아바타를 만들자마자 동화율 110%에서 시작하는 셈.
사실 전직 시험에 그런 걸 들고 올 필요도 없다.
튜토리얼은 굳은 의지가 핵심.
‘어차피 난 그런 거 살 돈도, 살 이유도 없어.’
이번 접속이 마지막일 테니.
순간!
띠링!
- 튜토리얼 퀘스트
- 자신을 내던지세요. 그리고 공포를 이겨내세요.
- 퀘스트 : 오염된 사막 딱정벌레 처치(0/1)
- 보상 : 등급 확정 장비 랜덤 박스.
시작이다.
퍼서석,
모래 밑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커다란 대형견 만한 딱정벌레.
“후우,”
소름 끼친다.
실제 같아서 더더욱 그렇다.
이것이 바로 전투계열 직업이 인기가 없는 이유, 최악의 직업이라고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
상상해보라.
현실에서 으르렁대는 사나운 개만 마주해도 오금이 지리는데, 동화율 100%의 가상현실에서 무시무시한 괴물과 싸워?
극한의 디테일로 현실감을 부여해주기 때문에, 몬스터를 타격하거나, 베거나, 찌를 때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감촉.
공포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이 단계에서 절반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전직 시험을 포기한다.
그들도 저 괴물이 데이터로 구성된 가상의 생명체라는 걸 누가 모를까?
그러나 너무 사실 같아서, 쓸데없이 현실적이라, 막상 맞서보면 진짜 괴물을 대하는 듯한 두려움.
현실과 다름없는 가상현실의 단점이기도 하다.
이 공포를 극복하느냐?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택하느냐.
이것이 튜토리얼의 전부다.
‘···가상일 뿐이야. 현실이 아닌!’
그래.
현실은 이것보다 몇 배는 무섭고 더 고달프다.
가난과 장애, 고아, 세 개의 쓰리콤보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왔다.
하루 매 세끼를 걱정해야 했던 때도 있었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도 충분히 겪었고, 애비애미 없는 놈이란 소리도 들어봤다.
‘씨발, 부모 없으면 어쩌라고, 버려져서 얼굴도 모르는 판에.’
저까짓 데이터 쪼가리가 뭐가 무섭나? 퀘스트에 나온 말대로 자신을 던져보자.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이기기 위해!
거리를 좁혀오는 사막 딱정벌레.
찬웅은 몽둥이를 꽉 잡았다.
쉬쉿!
갑자기 날개를 펼치며 머리 높이에서 달려드는 딱정벌레.
그러나 찬웅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더 다가갔다.
“죽어!”
싸움은 선빵이 최고, 몽둥이가 놈의 양미간 사이에 작열했다.
퍼억!
방어도 필요 없다. 무조건 공격!
다가오는 놈을 발로 밀쳐내고 대가리에 또 몽둥이 한 방.
퍼억!
한 방 더,
퍽!
데이터로 된 허상에 겁먹을 이유가 있나!
퍽퍽퍽퍽!
쏟아지는 끈끈한 체액, 놈의 움직임도 점차 약해진다.
퍼억!
“끼이잉···,”
그렇게 한참을 두드리니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사막 모래 위로 툭 떨어지는 오염된 사막 딱정벌레.
그러고는 스며들 듯 모래 속으로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띠링!
- 오염된 사막 딱정벌레 처치(1/1)
끝났다.
[전직 시험에 통과하셨습니다.]
[용병(초보) 직업을 획득하셨습니다.]
[포스 스탯이 생성됩니다. 상태창을 확인해주세요.]
이렇게나 쉽다.
튜토리얼 몬스터는 겁만 잔뜩 주지, 공격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통과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두 번째 벽, 첫 사냥.
필드에서 만나는 몬스터는 플레이어를 실제로 공격한다. 제대로 대처 못 하면 사망하고.
여기서부터는 재능의 문제.
그렇다.
재능이라는 큰 벽을 또 마주해야 한다.
여기서 튜토리얼을 통과한 용병 대부분이 직업을 변경, 그래서 실제 용병 직업은 전체 비율로 따져 가장 적은 숫자.
아무튼 초보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포스를 가진 용병이 되었다.
‘보상받는 것만 남았군.’
시험에 통과하면 보상을 준다.
성적에 따라 등급이 다른 보상.
매직 등급이나 주려나?
다시 환경이 변하면서 찬웅이 처음으로 본 광경은 짙은 황금색 상자를 그에게 내미는 성기사.
“해낼 줄 알았네.”
“···.”
“심히 부족한 보상이나 이것으로 만족하시게.”
그는 보상을 받고 나가는 와중에도 손을 흔들며 친근하게 배웅했다.
‘당황스럽네.’
NPC의 친절한 태도에 당황한 건 아니다.
보상으로 받은 박스.
[장비 랜덤 박스(전설)]
‘전설?’
등급 확정 장비 랜덤 박스는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 게임 시스템이 주는 선물, 성적에 따라서 받는 등급이 다르다.
‘성적이 그렇게 좋았나? 영웅 등급을 받은 플레이어도 거의 없다던데, 전설이라니.’
바로 까보자.
오픈!
[주신(主神)의 축복이 박스에 깃듭니다.]
‘···또?’
[박스에서 ‘진(眞)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진(眞)이라, 아이템 정보는?
[진(眞)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
[등급 : 전설]
[무기 종류 : 쌍수도끼]
[귀속 여부 : 습득 시 귀속]
[무기 기술 : 투척 후 회수 가능/ 대상의 머리 타격 시 1초간 멍해짐 효과]
쌍으로 된 두 개의 작은 쌍도끼.
점퍼 주머니에도 들어갈 만한, 캠핑용 도끼가 딱 저 크기.
그러나 귀속이다.
상자를 연 이상 습득으로 판정되니까.
팔면 꽤나 돈이 될듯하지만 팔 수도 없고.
“이만하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신체의 자유를 경험하고 마음껏 날뛰어 봤다.
이제 게임은 끝이다.
“로그아웃!”
[로그아웃을 위해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 ※ ※
대기실에서 로그아웃을 하자 가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찬웅, 다시 힘겹게 의자에서 내려와 휠체어에 앉았다.
가상에선 몬스터도 잡는 몸이지만 현실은 이렇게나 고달프다.
솔직히 미련이 남는다.
현실과 다름없는 가상의 세계에서 느껴 본 신체의 자유, 10년 전 건강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 기분.
확실히 마약보다 중독성이 있다.
이러니 장애인들이 이 게임에 환장하지.
‘···환불하지 말고 계속해볼까?’
아니다.
중독성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계속하면 이 게임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
직장이고, 뭐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매달릴 가능성이 높다.
그럼 현실이 피폐해지겠고.
또한 무엇보다 접속 과정에서 당한 고통.
그걸 또 경험해야 해?
기계야 교환하면 되겠지만···,
‘빠져들기 전에 그만둬야지.’
그게 현명한 판단일터.
‘환불 신청하자.’
지금은 한밤중이라 전화를 받지 않을 테니, 내일···,
바로 그때!
딩동!
인터폰에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
‘···누구야?’
이 밤에 누가 찾아온다고.
인터폰 화면엔 아무도 없었다.
찬웅은 조심스럽게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살며시 문을 여니.
“음?”
문 앞에 놓인 작은 상자.
자신의 실명, 강찬웅이 적혀있었다.
‘뭐지? 택배? 쇼핑도 안 했는데.’
찬웅은 상자를 가지고 안으로 돌아왔다.
상자를 열어봤는데···, 나온 건 작은 붉은색 약병 하나.
‘약병?’
낯이 익다.
‘어디서 봤더라. 생긴 게 꼭···, 어? 이, 이거···,’
크게 떠진 찬웅의 두 눈,
‘무슨···.’
사실 조금 전에 봤다.
다름 아닌 게임 안에서 랜덤 D박스로 획득한 아이템.
보통 물약과 다른, 옅은 붉은색이 아닌, 새빨간 액체가 담긴 유리병.
‘진(眞) 최하급 치유 물약이었지?’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요모조모 살펴봐도 그거다.
‘진(眞)이라면 진짜? 그리고 치유라···, 혹시,’
번뜩 든 생각.
찬웅은 물약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혀를 살짝 대어 맛을 봤다.
‘맛은···,’
달다.
쓰지도 않다.
시지도 않다.
그럼 독은 아닐 것이다.
‘조금만 먹어볼까?’
한 모금 살짝.
“흐음,”
정말 미친 짓, 여기에 뭐가 들어있을 줄 알고,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상쾌한 기분.
다 먹어보자.
혹시 잘못되면?
‘뭐, 죽는 거밖에 더 하겠어?’
삶에 큰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병을 다 비우고 계속 기다려봤다.
‘···,’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치유 물약이라서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나.
피식, 웃음 짓는 찬웅.
“이게 뭐라고.”
설령 이 치유 물약이 진짜라고 치자.
그걸 먹는다고 손상된 신경이 회복되기나 할까?
사실 오랫동안 갈망해왔다.
의료기술이 발전되어 자신의 하반신 마비를 고칠 수 있게 될 날을.
얼마 전 미국의 제약회사 로렉탈에서 불치병이라 여겼던 유전적 탈모를 치료하는 발모제도 나왔다.
그렇게 기술은 발달하고 있으니까.
‘갑자기 추워지네.’
특히 발가락이 시리다.
찬웅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발가락, 꼼지락, 꼼지락···,
“어?”
움직인다.
꼼지락, 꼼지락!
“어어어어?”
발가락이 움직인다.
“왜···,”
하반신 마비인데 발가락이 움직여?
지금 꿈을 꾸나?
순간!
딩동!
또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