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화 (1/204)

시작.

20억 인구가 즐기는 가상현실 게임 듀플렉스 스페이스, ,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게임이다.

TV나 신문, 인터넷에선 DS의 아바타 직업소개, 아이템, 퀘스트, 파티, 랭킹 등등, 여러 정보가 그냥 틀면 나온다.

드르륵,

32살의 강찬웅은 휠체어 바퀴를 손으로 밀면서 방 중앙에 설치된 게임 접속용 리클라이너 의자 앞으로 다가갔다.

출시된 지 2년이 지난 동화율 100%의 가상현실 세계, 99%도 아니고 100%, 즉 현실의 감각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의미.

유전적 탈모를 극복한 기적의 발모제와 함께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뇌파 연결로 환상적인 현실감, 통각을 제외한 오감의 극대화, 그래서인지 지체장애인, 시각, 청각장애인들도 많이 즐기고 있고.

당연하다.

가상에서라도 장애를 극복한다는 건 얼마나 매혹적인가!

강찬웅도 장애의 몸, 교통사고 때문에 10년을 하반신 마비로 지냈다.

그러나 신체의 자유를 맛볼 순간이 다가왔음에도 그는 별 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다.

‘마약 같은 거야.’

맞다.

게임에서 뛰고, 날고, 싸우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결국 그대로.

‘웃기는 일이지.’

팍팍한 삶, 게임에서 지존이 된다고 한들 현실은 시궁창.

말이 좋아 가상현실이지, 사실은 데이터 쪼가리로 이루어진, 감각을 속인 거짓 현실 아닌가.

‘중독성이 너무 강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랬다.

현실과 가상의 괴리, 그로 인해 게임에 접속했다가 현실로 돌아와 느끼는 엄청난 간극, 그걸 극복하지 못하고 상실감과 우울증에 빠진 장애인들도 많다.

현실도피와 뭐가 달라?

그래서 별로 할 마음이 없었는데, 어느 날 충동적으로 질러버렸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마침 적금의 만기 기한이 다해 목돈이 들어왔고, 또 목돈이라 해봐야 집이나 자동차를 사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더불어 게임회사의 이벤트로 접속장치를 매우 싸게 살 기회도 와서.

또 퇴근 후 팍팍하고 무미건조한 일상, 살다 보면 현실도피도 필요한 법,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신체의 자유를 맛볼 욕망도 무의식에 숨어 있던 것 같다.

듀플렉스 스페이스, 에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안마의자 형태의 일반 접속장치의 가격은 500만 원, 이벤트로 20% 세일, 거기다 장애인 우대와 사회적 약자 계층 배려 정책에 의해 또 20% 중복 할인을 받아 300만 원이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

월 20만 원의 계정비도 1년 전액 결제 할인으로 200만 원, 그래서 쓴 돈이 총 500만 원, 물론 전기세나 통신비는 따로 지출되겠지만, 그냥 하루 한두 시간 정도만 해볼 생각이다.

‘빠지지만 않으면 돼.’

낮에는 생계를 위해 공장에 출근해야 하고, 퇴근하면 피곤해 오래 즐기진 못할 터.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게임은 게임이고 현실은 현실.

자신은 게임 속 NPC가 아닌 현실 속 인간이다.

결국 현실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건 그저 취미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마음대로 될까?

만약 중독되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설명서는 꼼꼼히 읽어봤으니.’

인간의 뇌파를 이용한 접속장치, 가수면 상태에서 가상현실 세계로 다이브, 게임 안에서 자신의 건강 상태 체크할 수 있는 기능도 달려있고,

‘해보자.’

찬웅은 안마의자처럼 생긴 접속기 팔걸이를 잡고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켰다.

상체의 힘만으로 의자에 앉아서 VR 고글이 달린 뇌파 감지 장치 헬멧을 머리에 쓰고 버튼을 누르니,

지이잉···, 화아아악!

눈앞에서 펼쳐지는 찬란한 빛.

솔직히 궁금하다.

그도 장애의 몸으로 10년을 지냈다.

가상 속에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니, 호기심이 안 생길 수 없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윽?”

갑자기 닥쳐오는 강렬한 통증, 바늘 같은 것이 머리를 쿡쿡 찌르는 것 같다.

“으으으···,”

왜 이러지?

접속하는 과정에서 붕 뜨는 기분을 받을 수 있어도 고통이 있을 거란 말을 듣지 못했는데.

“이, 이런!”

점점 심해진다.

뇌가 부서지는 것 같다. 안구의 모세혈관이 터졌는지 눈동자가 삽시간에 붉은색으로 변했다.

찬웅은 입에서 나오는 비명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크윽!!!”

이건 참을 수 있는 수준의 고통이 아니다.

폭발이라도 하려는 듯 미칠 듯이 펌핑하는 심장.

“제, 제기랄!”

뇌파를 감지하는 기술이라 위험한 건 하나도 없다던데.

기기 고장인가?

“개, 개자식들!”

기기 검수도 하지 않고 팔아먹었어?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흐려지는 의식, 두 손에 힘을 주어 의자의 팔걸이를 부서지라 움켜잡았다.

설마 여기서 죽나···,

‘뭐? 죽는다고?’

고작 게임에 접속하려다가?

그 와중에도 빛은 꺼지지 않았다.

접속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

“큭!”

우습다.

이런 최후를 맞으려고 아등바등 살아왔나?

그러나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구, 가난, 최악의 3종 세트를 지닌 찬웅의 삶은 언제나 투쟁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죽으라고? 어림도 없어!’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헬멧을 벗기려 했지만 팔에도 힘이 안 들어간다.

퍼드득, 퍼드득,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요동치는 상체.

부릅떠진 눈, 실핏줄이 터지고, 흐르는 코피, 머리에 작열하는 끔찍한 격통, 활처럼 휘어지는 몸.

잠시 후,

[어서 오세요. 고객님!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세상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씨발!”

※ ※ ※

눈떠보니 낯선 방이었다.

보이는 건 정육면체 형태의 작은 방이다.

‘여긴···, 죽었나?’

저승은 아니다.

자세히 보니 게임 안.

시야 한쪽에 인터페이스 메뉴가 보인다.

“내 건강 상태는?”

그러자 들려오는 시스템 음성.

[고객님은 현재 가수면 상태입니다.]

[호흡, 체온, 혈압, 맥박, 모든 바이탈이 정상입니다.]

‘살아있구나.’

찬웅은 솔직히 조금 허탈했다.

“참나.”

게임, 그것도 고작 접속을 위해 죽을뻔했다니,

‘전쟁이라도 치른 느낌이군.’

성공은 했지만 매번 이래야 하나?

게임을 하려고 목숨을 걸어?

‘하지 말아야지.’

두 번 다신 그러기 싫다.

굳이 뭐하러, 가상보다 현실이 중요한데,

이번을 마지막으로 게임 접는다.

접속 기계와 계정비는 환불받을 거고.

하지만 이왕 접속했으니 좀 더 둘러보자.

가상현실이 어떤 느낌인지 경험은 해봐야지.

‘여긴 대기실이구나.’

아직 아바타를 생성하지 않아 아무것도 없다. 방 벽면에 손잡이가 달린 강철문 말고는,

아바타를 만들어 저 문, 게이트를 열고 나가면 본격적인 가상현실의 세상이 펼쳐진다.

순간!

[가입을 위해 고객님의 개인 정보를 확인합니다.]

[고객님의 개인 정보는 듀플렉스 스페이스에 의해 철저하게 보호됩니다.]

“가입? 하지 않았나?”

접속기가 아니라 게임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미 했다.

[최초 로그인을 위한 신분 확인입니다.]

[다음부터는 로그인 과정은 필요하지 않으며 아바타를 통해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아바타를 생성하시면 게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그 아바타가 대표합니다.]

“그럼 뭐,”

찬웅은 음성 인식을 이용해 자신의 개인 정보를 입력했다.

[확인되었습니다.]

[강찬웅 고객님, 듀플렉스 스페이스 최초 접속을 축하드립니다.]

[접속축하금으로 D코인 50개를 지급합니다.]

D코인은 게임 안에서 쓰이는 재화다.

현금으로 거래될 정도, 코인 거래소까지 있으니 말 다 했지.

코인 50개면 요즘 시세로 약 4만 원.

게임을 계속한다면 모를까, 더는 하지 않을 생각이니 나중에 거래소에 팔아야지.

[아바타 생성을 시작합니다.]

아바타, 가상에서 또 다른 자신.

실제와는 전혀 다른 가상의 주체.

[아바타의 성별을 정해주십시오.]

먼저 성별 정하기.

성별을 바꿔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꽤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는 싫고.

“남자로.”

성별을 정하자 떠오르는 벌거벗은 남성 아바타, 취향에 맞게 모습을 바꾸면 되는데,

“대충, 랜덤.”

커스터마이징은 무슨!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접속이 될 터, 접속 과정에서 겪은 끔찍한 고통, 두 번 다시 하기 싫다.

[아바타의 이름을 정해주십시오.]

“이름은···, 케이.”

대충대충, 자신의 성을 딴 케이, 꽤 흔한 이름이다.

게임 안에서 중복 닉네임이 허용되니까.

우우우웅, 스르르륵!

[아바타 ‘케이’가 생성되었습니다.]

핏!

그리고 순식간에 시점이 변했다.

의식이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음?”

3인칭에서 1인칭으로.

객체에서 주체로.

관찰자에서 주인공으로.

“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고객님의 의식이 아바타 ‘케이’와 성공적으로 합일되었습니다.]

[아바타 생성 축하로 D박스 5개를 지급합니다.]

‘···기다렸다니?’

으레 하는 말인가?

아무튼,

‘이런 식이었군.’

동화율 100%라는 말답게 현실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질감 따윈 하나도 없다.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다리는?’

말할 필요가 있나?

이미 대기실 중앙에서 바닥을 딛고 우뚝 서 있는 자신의 아바타.

찬웅은 텅 빈 대기실을 두 발로 걸었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마음 가는 대로, 의식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다.

‘혹할 만해.’

불구가 된 지 10년, 걷는 법을 잊어버린 줄 알았다.

그래서 가상현실 안에서도 적응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동화율 100%가 헛소리가 아니었어.’

이래서 모두 환장하지.

‘괜찮군.’

게임을 계속해볼까?

하지만 자신처럼 지체장애인들에겐 위험한 게임이다.

몰입하면 게임이 주가 되고 현실은 뒤로 밀려난다.

마약보다 더 치명적일 터.

더구나 자신은 기기 고장 때문인지 접속도 순조롭지 않고.

주말이 끝나면 바로 환불 신청할 생각.

어쨌든 아바타 생성이 끝났으니.

“상태창!”

주르륵!

[이름 : 케이]

[직업 : 없음]

[액티브 스킬 : 없음]

[패시브 스킬 : 없음]

[동화율 : 100%]

간략한 상태창.

특이한 점이 있다면 동화율이 스탯으로 판정된다는 것.

이유는 간단하다.

동화율은 오르기 때문이다.

즉 동화율 상승이 곧 레벨업, 수천 개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하고, 성장하다 보면 동화율이 오르게 되는 식.

동화율 101%가 1레벨이나 마찬가지다.

찬웅은 전투 계열 직업을 선택할 생각이다.

가장 정교하게 만든 컨텐츠라던데, 해보기는 해야지.

‘D박스도 까볼까?’

아바타 생성 축하로 받은 D박스 5개, 시스템 상점에서 300D코인으로 하나 살 수 있는 랜덤 박스.

시스템 상점에서 살 수 있는데 이걸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미쳤다고 하나에 이십몇만 원짜릴 사나? 보상으로 받았으니 까보는 거지.

“D박스 오픈!”

그러나 전면에서 펼쳐지는 홀로그램 영상.

일단 하나,

[D박스에서 ‘자원 재생 물약’을 획득하셨습니다.]

[자원 재생 물약을 인벤토리에 보관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기대도 안 했다.

극악의 확률을 자랑하는 랜덤 박스이기에.

[D박스에서 ‘먹음직한 식빵’을 획득하셨습니다.]

[D박스에서 ‘최하급 치유 물약’을 획득하셨습니다.]

[D박스에서 ‘스테미너 물약’을 획득하셨습니다.]

모두 그냥 꽝!

마지막 하나 남았다,

그런데?

[주신(主神)의 축복이 D박스에 깃듭니다.]

‘축복?’

그럼 뭔가 좋은 게 나오나?

[D박스에서 ‘진(眞) 최하급 치유 물약’을 획득하셨습니다.]

‘···뭐지, 진(眞)?’

축복이 깃들었다며 정작 나온 건 코인으로 싸게 살 수 있는 최하급 치유 물약, 아이템 정보에 진(眞)이라는 글자가 붙긴 했다.

‘이게 보통 치유 물약하고 뭐가 다르지? 색깔이 다른 거보다 짙네. ···치유량이 크나?’

그래도 축복이라 보기엔 너무나 초라하다.

축복은 무슨 얼어 죽을,

일단 나가 보자.

본격적인 게임 속 세상으로.

찬웅은 대기실을 가로질러 벽면에 부착된 게이트 손잡이를 잡았다.

[게이트와 연결된 장소가 없습니다.]

[시작 도시를 설정해 주세요.]

[최초 게이트 설치 비용은 무료입니다.]

갈 수 있는 곳을 정해야 한다.

게이트 하나당 갈 수 있는 지점은 하나, 나중에 다시 바꾸면 된다.

코인을 벌어 방을 넓히면 몇 개라도 달 수 있지만···, 그럴 필요도 없고.

“랜덤, 아무 데나.”

[최초 시작 도시가 대륙 동부 사막 도시 카쟌으로 설정되었습니다.]

[한번 설정하면 한 달간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스르륵,

강철문 정면에 작은 간판이 붙여졌다.

<동부지역 사막 도시 카쟌>

찬웅은 강철문 손잡이를 돌려 열었다.

그리고 한 발자국,

화아아악!

빛무리가 온몸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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