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1화
* * *
두 사람의 결실, 데일과 샬롯의 아이가 울고 있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알지 못하고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데일의 아버지, 작센의 앨런이 그들 부부의 아이이자 ‘데일’을 보며 느꼈을 감정을.
그 후 데일의 비밀을 알고 나서, 그림자 속에서 홀로 숨죽여 울음을 터뜨렸을 아버지의 모습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최후까지,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했다.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비로소 데일이 그의 아이를 포옹했을 때, 아버지가 느꼈을 고통과 무게가 절절하게 실감되었다.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감당조차 할 수 없는 무게 속에서,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데일.”
바로 그때, 샬롯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무척 슬퍼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잖아.”
샬롯이 말했고, 데일이 고개를 저으며 애써 웃었다.
“슬프지 않아.”
“그럼?”
“너무 기뻐서 그래.”
데일이 대답했다. 대답하고 나서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작센의 앨런과 엘레나가 그곳에 있었다.
여느 때처럼 그의 아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데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렸다.
그렇기에 데일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말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무의미의 신(神)이 사라지고 나서, 그곳에 있는 것은 그저 처량할 정도로 나약하고 발가벗겨진 인간이었다.
* * *
얼마가 흘렀을까. 알 수 없었다.
그 누구도 황제와 혁명에 대해 떠들지 않았고, 세상의 온갖 이야기들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곳에는 제국이 있었다. 제4제국의 후신이자, 흑금의 군주가 지배하고 있는 대 마도 제국.
여전히 흑금의 옥좌는 데일을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제국의 옥좌에 앉아 있는 것은 더 이상 데일의 몫이 아니었다.
제국을 통치하고, 제국 의회를 주재하며, 때때로 그들과 맞서고자 하는 어리석은 이들이 나타날 때마다, 움직이는 것은 흑금의 군주가 아니었다.
일찍이 신의 검이라 일컬어진 작센의 샬롯,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으니까.
그녀가 전투마를 타고 출정을 나갈 때마다, 데일은 조용히 그녀를 배웅했다.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의 공포나 경외를 살 일조차 없이, 그저 그의 성에서 침묵을 지켰다.
제국의 새로운 백성들 역시, 샬롯 황비를 사랑하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잔혹하지도, 지나칠 정도로 자비롭지도 않았으나, 어쨌거나 샬롯은 늘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릴 줄 알았다.
어느 의미에서는 통치자로서 데일 이상의 적격자라 불러도 과장이 아니리라.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 시점부터 데일 자신이, 처음부터 그다지 좋은 통치자가 아니었다고.
“그렇지, 앨런.”
그렇게 말하며 데일이 미소 지었다.
그의 품에서, 그 이름에 아기가 즐거운 듯 꺄르륵거렸다.
그 누구보다 존경해 마지않는 아버지의 이름이었고, 동시에 아들의 것으로 거듭나 있는 그 이름을.
앨런 2세.
말없이 그의 아들을 바라보며, 데일이 즐거운 듯 웃었다. 이따금 철부지 아버지처럼 아이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놀래주고, 과장되기 그지없는 제스쳐도 취해 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데일이 아이처럼 웃고 있자니, 기척이 느껴졌다. 당황하며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데일.”
“……아버지.”
그의 아버지, 앨런이 있었다.
“앨런 2세라.”
그리고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손자를 보며, 앨런이 씁쓸하게 웃었다.
“어찌하여 나의 이름을 너의 아들에게 붙였느냐.”
“제 아들이, 그 무엇보다 존경하는 아버지처럼 되기를 바라는 까닭입니다.”
데일이 말했다. 앨런이 잠시 침묵했고, 침묵 끝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존중받을 자가 아니다.”
앨런이 말했다.
“내 과거 역시, 헤아릴 수 없는 죄악과 용서받을 수 없는 악업, 그리고 과오로 점철되어 있었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데일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무엇보다 당신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렇느냐.”
데일의 말에 앨런이 짐짓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답지 않게 웃고 나서, 손자이자 앨런 2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앨런 2세가 그의 할아버지를 향해 팔을 뻗고, 무어라 옹알이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운 듯 앨런이 미소 지었다. 일찍이 흑색공의 이름 아래, 모두의 경외를 받는 남자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미소였다.
그럼에도 데일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어릴 적의 그에게, 그의 앞에서 이 남자가 짓고 있는 미소를.
아니, 무엇을 남의 일처럼 말하고 있는 것일까.
당장 이곳에 있는 흑금의 군주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헤아렸다. 무의미의 신. 그러자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때때로 내가 이러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가, 되묻게 되더구나.”
앨런이 입을 열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데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저마다 행복을 누릴 자격 같은 것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부자(父子)였다. 그 점마저, 참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꼭 빼닮아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그 누구도, 그들이 행복을 누릴 자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 * *
북부의 황성, 그 성이 열리고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내딛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흑금(黑金)의 갑주를 휘감고, 나아가 밤까마귀와 장미의 표식을 휘감고 있는 여기사였다.
“어서 와, 샬롯.”
“응.”
데일이 그녀를 맞이하기 무섭게, 샬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앨런이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아이의 이름이 입에 담기자, 샬롯 역시 어머니의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웃었다.
* * *
“고생했어.”
샬롯이 갑주를 벗고 나이트가운 차림으로 데일의 앞에 섰다. 데일이 가볍게 그녀의 지쳐 있는 몸을 풀어주었고, 샬롯이 즐거운 듯 웃었다.
“앨런이 보고 있잖아, 데일.”
“딱히 부끄러울 짓은 하지 않았어.”
그저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며 데일이 웃었다. 샬롯 역시 웃었다.
이렇게나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얼마나 오래,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데일은 웃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샬롯의 어깨에 얹고 있는 데일의 손을, 그녀가 마주 잡았다.
“나, 무척이나 행복해.”
바로 그때, 두 사람의 곁에 있는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샬롯이 당황했고, 데일이 아기의 곁으로 다가가 미소 지었다.
흑금의 군주, 무의미의 신,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검은 공자’의 모습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아들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아버지이자, 인간이 그곳에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샬롯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 역시 알 수 없는, 목구멍까지 북받치고 있는 감정을 뒤로하고.
* * *
제국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나서, 세피아는 홀로 방랑길에 올랐다.
그러나 이따금 데일이 있는 작센의 황성에 찾아오고는 했다.
그때마다 세상 각지의 온갖 신비롭기 그지없는 것들을 가지고, 아무 소식조차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세피아 님.”
데일이 세피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세피아가 미소 지었다.
“앨런을 위해 가져온 것들이다.”
오색의 빛을 발하고 있는 마석부터, 화석의 형태로 굳어 있는 옛 생물의 모형까지. 그것들을 받아들며 데일이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세피아 님.”
미소 짓고 나서 데일이 물었다.
“며칠을 머물고 나서, 또 말없이 성을 떠나가시겠죠?”
“그렇겠지.”
세피아가 굳이 부정하지 않고 웃었다. 그 말에 데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데일.”
“네.”
바람처럼 나타나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방랑자 엘프. 데일이 그녀의 길을 막을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침묵할 따름이었다.
며칠 후 그녀가 모습을 감추었을 때 역시 다르지 않았다.
* * *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니, 리제.”
데일이 물었을 때, 그의 여동생 리제는 애써 태평하게 웃었다.
“저에게, 오라버니의 아이를 마주할 자격 같은 것은 없으니까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데일의 물음에 청색의 마탑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 수 없었다.
“저는 당신을 구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우리를 위해 죄를 대속하는 일을 멈추길 바랐죠.”
“그렇게 됐지.”
“그러나 그것이, 다시금 오라버니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되고 말았어요.”
리제의 말에 데일이 잠시 침묵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야.”
침묵하고 나서, 데일이 리제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청색의 마탑, 아라크네의 거미줄 속에 갇혀 있는 여동생을 바깥 세계로 이끌기 위해서.
* * *
「11. 행복하게 오래오래」
가족들이 자리에 앉았고, 비로소 황실의 궁정 화가가 그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사랑스러운 부부와 그들의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까지.
침묵 속에서 사각사각 화구(畫具) 소리가 아스라하게 울려 퍼졌다.
화가가 담고 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고 위대하며, 동시에 화목하기 그지없는 가정의 그림이었다.
* * *
희고 어두운 겨울밤 속에서, 데일의 앞에 옛 어둠의 어머니가 있었다.
흑색 산양의 뿔을 가진 소녀 역시 그곳에 있었다.
“…….”
그들 앞에서 데일은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침묵 끝에, 데일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당신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말이더냐, 인간의 아이야.”
옛 어둠의 어머니가 즐거운 듯 되물었다.
“당신 역시, 자신의 아이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어머니였음을.”
데일이 말했고, 옛 어둠의 어머니가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제가 인간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들의 헌신이 있는 까닭이었음을.”
그렇기에 데일이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덤덤히 고개를 숙이며, 그저 감사를 표할 따름이었다.
더 이상 데일의 앞에 있는 그녀들의 존재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不可解)의 공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지고의 어머니이자, 우주처럼 넓고 까마득할 정도의 자애로 가득 차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자애는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때때로 그것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혹하며, 끔찍하게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았다.
데일이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듯, 옛 어둠의 어머니 역시 그의 아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해해 주니 기쁘구나, 나의 아이야.”
“저는 여전히 인간입니다.”
“응, 오빠.”
그 말에 슈브가 즐거운 듯 키득거렸다. 드레스 자락 밑으로 꿈틀거리고 있는 촉수를 뒤로하고.
“최후의 최후까지, 오빠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
“약속할게, 슈브.”
데일이 대답했다. 그 말에 옛 어둠의 어머니가 말없이 다가와 데일을 포옹해 주었다.
어느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은 촉수덩어리의 군체가 촉수를 휘감고 있는 구역질 나는 풍경으로 비치리라.
어느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은 자애로 가득 차 있는 또 하나의 어머니가 아들을 포옹하고 있는 풍경으로 비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포옹 끝에 데일이 말했다.
“고맙습니다, 위대하신 옛 어둠의 어머니시여.”
Ia Shub-Niggur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