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91화 (291/301)

외전 24화

* * *

카앙!

샛별과 절망이 격돌했다.

일검을 맞부딪치고 나서, 데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이 세상의 마나 전체를 네 것으로 돌려도 나를 이길 수는 없다. 그 사실을 잊었나?”

여명의 갑주를 휘감고 있는 미하일이, 말없이 땅을 박차며 검을 휘둘렀다. 재차 샛별이 새벽의 빛무리에 휘감기며 데일의 ‘절망’을 향해 내리꽂혔다.

카앙!

일찍이 ‘검은 공자’였을 시절, 훗날 데일의 위협으로 자라날 가능성을 가진 자. 그것이 미하일 랭커스터였다.

그렇기에 지금의 데일에게 있어 그것은 위협도 무엇도 아니었다.

세상의 마나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자신의 거울과 세계의 여신조차 그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종말의 겨울과 인간들의 왕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무엇도 황금과 그림자, 흑금의 군주로 거듭나 있는 데일을 쓰러뜨릴 수 없다.

“그 말대로입니다.”

미하일 유리스가 덤덤히 웃었다.

“일찍이 제가 용사의 형태로 의태하며 당신과 맞섰을 때, 그녀로부터 세상의 마나 전부를 손에 쥐고도 당신을 쓰러뜨릴 수 없었지요.”

“그럼 설령 이 세상의 마나 전부를 집어삼켜도, 날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겠지.”

“그럴지도 모르지요. 아니,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럼에도 샛별을 쥐고 있는 미하일 유리스의 모습에서, 체념이나 투지의 상실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지금 내가 너와 어울리고 있는 것이, 나의 유희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겠지.”

무의미의 신(神)이 절망을 쥐고 조소했다.

그의 앞에 존재하고 있는 샛별의 희망, 복수, 미하일 유리스가 가진 일체의 것들을 허무로 되돌리기 위해서.

“저는 당신이 마나의 총량 따위로 어쩔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절망의 검이 내리꽂혔고, 검에서 흩뿌려지는 칠흑의 어둠이 샛별을 집어삼켰다.

데일의 말마따나, 그것은 그저 일방적이기 그지없는 유희에 불과했다. 옛 호적수를 다시금 마주하며, 옛 시절의 싸움 방식으로, 일찍이 ‘검은 공자’가 미하일 랭커스터와 맞섰을 때의 추억을 회상하듯.

미하일 유리스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흑금의 군주가 아니었다. 그저 그 시절의 ‘검은 공자’였다.

아주 잠시나마, 이제는 기억조차 까마득할 정도의 과거 속에 있는 추억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의 유희에 불과했다.

데일이 흥에서 깨어날 경우,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절망이 샛별과 희망을 모조리 집어삼키리라.

“그대가 ‘노아’라 일컫는 여신 시스티나가 잠에 빠지고 나서, 이 세상의 마나…… 나노머신들은 더 이상 증식하기를 멈추었습니다. 그렇기에 증식을 멈춘 마나를 우리가 사용할 때마다, 그 숫자는 더더욱 줄어갔지요.”

일검 끝에, 미하일 유리스가 말했다.

“마법이 죽어가는 시대가 아니라고 말했으나, 어느 의미에서는 그 말 역시 틀린 말이 아니지요. 정해진 마나의 총량(總量)이 정해져 있는 이상, 그 마나를 사용할 때마다 세상의 마법이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녀를 다시 잠에서 깨우고 싶지 않다.”

데일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일찍이 데일이 ‘용사의 사명’을 수행하고 나서, 제4제국의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옛 파트너를 떠올리며.

“그래서 세상에 남아 있는 마나를 독식하기 위해, 두 형제가 힘이라도 합쳤나?”

데일이 싸늘하게 되물었고, 미하일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마나를 이용해 당신을 어쩔 생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하일 유리스가 웃었다.

“저와 레이 모두, 딱히 거창하기 그지없는 계획이나 목표를 갖고 이 세상의 마나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것이 아니니까요. 말씀드렸듯, 저는 마나 같은 것으로 당신을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을 위해 세상의 마나를 집어삼키고 있지?”

“가능성.”

미하일이 샛별의 칼날을 보며 대답했다.

“매일같이 피를 토할 정도로 검을 휘두르고, 마나를 흡수하며 오러로 가공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저의 칼날을 벼리게 해줄 강자들을 찾아 검을 휘둘렀습니다.”

동시에 그의 심장에서 다시금, 그가 집어삼키고 있는 ‘세상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하일 랭커스터에게는 ‘검은 공자’를 이길 가능성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 실낱처럼 가느다란 가능성 하나를 믿고, 세상의 마나를 모두 집어삼킬 때까지 수행에 수행을 거듭했죠.”

그의 검, 샛별이 다시금 여명의 빛을 머금고 빛나기 시작했다.

“당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그럴싸한 계획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이때가 올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마나를 호흡하고 오러로 축적하며, 검을 휘두르고 휘둘렀을 따름이지요.”

“……가능성이라. 정말로 그게 다였나?”

“그게 다입니다.”

“참으로 무의미하구나.”

“그리고 깨달았지요.”

미하일이 말했다.

“무엇을 말이지?”

“당신의 말처럼, 진짜 가능성이란 빛이 아니라 어둠에 있었음을.”

그 말과 동시에, 미하일의 검 ‘샛별’이 그 빛을 잃었다. 여명의 갑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금까지 어둑새벽을 밝히고 세상의 빛을 자처하는 여명의 빛이 스러졌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칠흑의 어둠이자, 동시에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머금고 있는 어둠.

“이 모습이야말로 미하일 랭커스터가 도달했을 ‘가능성의 지평 너머’입니다.”

태고의 어둠에 휘감겨 있는 불과 빛의 사도가, 그곳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둠에 휘감겨 있는 ‘샛별’을 고쳐 잡고서.

“……슈브, 또 네 짓이었나?”

그 말에 데일이 지긋지긋하다며 입을 열었다. 어느덧 데일의 곁에서 산양의 뿔을 가진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고, 두 뺨을 뾰로통하게 부풀렸다.

─ 아니야.

칠흑의 흑기사를 앞에 두고, 어느덧 옛 어둠의 어머니가 즐거운 듯 입을 열었다.

─ 아아, 인간이 꽃피우고 있는 가능성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구나.

“저것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악마다.”

─ 그러나 저 아이를 보아라. 그대가 이 별의 인간들을 물리치고 인간의 이름을 손에 넣었듯, 저 존재가 그대를 쓰러뜨리고 인간(人間)의 이름을 참칭하는 것이 그리도 이상하더냐?

“…….”

─ 악마보다 악마에 가까운 인간이 있듯, 인간보다 인간에 가까운 악마가 있는 것이 그리도 이상하더냐?

“그럴 리가.”

옛 어둠의 어머니가 말했고, 데일이 싸늘하게 조소했다. 그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말대로다. 저 앞에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해 ‘데일의 종족’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이종(異種)이, 데일을 쓰러뜨리고 그가 가진 ‘인간의 이름’을 빼앗으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으리라.

미하일 유리스, 가능성의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는 흑기사가 쇄도했다.

카앙!

어둠에 휘감겨 있는 칠흑의 검, 샛별의 칼날이 맞부딪쳤다.

맞부딪치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태고의 어둠을 다루고 있는 자이기에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저 가능성의 집합체. 저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기 짝이 없는 가능성의 덩어리를.

오직 하나, 저 어둠에 깃들어 있는 것은 데일을 쓰러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데일이 절대영도의 얼음 속에 갇혀 있는 사이, 나아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이에도 ‘미하일 랭커스터’는 그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매일같이 그 가능성을 위해 존재의 전부를 바쳤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행하며, 세상의 마나가 고갈될 정도로 오러를 축적하고 검을 휘둘렀으며, 강자들의 존재를 집어삼켰다.

“느껴지십니까?”

“……!”

태고의 어둠을 통해, 흡사 청색 마탑의 마법사가 남의 기억을 염탐하듯 ‘미하일 유리스’의 기억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상의 세계에서 폭주하고 있는 상대의 감정이 흘러들어오듯이.

미하일 유리스를 구성하고 있는 태고의 어둠이 데일과 공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풍경이, 보였다.

어느덧 종말의 겨울과 진짜 인간들의 왕마저 쓰러뜨리고, 옛 어머니의 아이로서 자신을 자각한 흑금의 군주.

그 앞에서 자신을 쓰다듬어주는 레이디 스칼렛,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아,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이에요.’

그렇게 진화의 악마가 태어났다. 어머니의 손길과 사랑 속에서 완전무결의 생명체가.

그 후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이계의 용사에 의태하고, 시스티나와 함께 데일을 쓰러뜨리기 위해 맞섰다.

그리고 패배했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궁극의 생물’을 이해하지 못한 유리스 가(家)의 실책이었다. 진화의 악마, 궁극의 생물이란 결코 개체의 강함에 있지 않았으니까.

“생명의 존재 가치는 곧 그의 유전 물질을 잇는 것. 궁극의 생물로서, 역사 속에 절대로 끊기지 않는 정보(DNA)를 보존하고 지속하는 것.”

그렇기에 미하일 유리스가 다시금 말했다.

“다시 말해, 역설적으로 저는 ‘개체의 강함’으로서 당신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용사로 의태하고 있는 제가 당신에게 패배했을 때, 그 패배 역시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지요.”

어차피 그 정도로 진화의 악마를, 궁극의 생물을 죽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레이디 스칼렛은 그렇지 않았다.

그 상실감이, 처음으로 악마에게 괴로움을 주었다.

그럼에도 궁극의 생물로서, 그에게는 개체의 강함이 없었다. 영겁의 세월에 걸쳐 종의 정보를 보존하고 지속할 수는 있어도, 결코 ‘개체’로서 저 흑금의 군주와 맞설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제 어머니를 앗아가 버린 당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미하일 유리스가 칠흑의 샛별을 고쳐 잡고 말했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저 존재를 쓰러뜨리겠다고 결의했다.

“그야말로 허황하다 못해 불가능에 가까운 가능성이었지요.”

처음에는 너무나도 희미하고 실낱같아서, 감히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저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무엇을 말이지?”

“당신의 앞을 가로막는 온갖 절망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있는 모습을.”

역설적이게도 그 사실이 악마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렇기에 그 가능성의 끝을 탐구하며 비로소 미하일 랭커스터의 존재에 도달했다.

일찍이 ‘검은 공자’의 팔 하나를 잘랐고, 훗날 최악의 위협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머금고 있는 존재.

그가 강자를 쓰러뜨리고 그들의 검을 빼앗을 때마다, 가능성이 부풀어갔다.

그 가능성에 악마는 전부를 걸었다. 생명의 본질조차 망각하고, 복수를 위해 생명으로서의 ‘합리적 사고’조차 포기하고 ‘불합리’를 택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존재를 이기는 것.

그것은 유전자의 자기복제를 제1 목적으로 삼는 생물의 합리성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것이 인간이지요.”

미하일 유리스, 진화의 악마가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 그 결실을 증명할 때입니다.”

“…….”

미하일 유리스가 땅을 박차며 쇄도했다.

오로지 데일을 쓰러뜨리기 위한 ‘가능성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 아아, 어쩜 이리도 어리석고 사랑스러울 수가!

옛 어둠의 어머니가, 그녀의 앞에 있는 ‘인간’을 보며 광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휘둘러지는 샛별을 맞받아칠 때마다,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가능성의 발버둥을 볼 때마다, 데일의 마음속에 형용할 수 없는 형태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심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의 이름을 떠올렸다.

절망.

떠올리고 나서,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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