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8화
* * *
“저, 저게 대체 뭐야……!”
거짓 인간들의 왕이자 괴수들의 왕이 그곳에 있었다.
“괴, 괴물! 괴물이다!”
“괴물이라고?”
그 모습에 데일이 싸늘하게 조소했다. 그의 육체를 휘감고 있는 칠흑의 촉수, 그림자 밑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수백 개의 눈동자, 이미 사람이라 부를 수조차 없는 이형의 괴물이 그곳에 있었다.
“이 모습이 그토록 괴물 같고 구역질이 나나?”
육체를 휘감고 있는 칠흑의 촉수들을 뒤로하고, 그 속에서 사람의 형태가 걸음을 옮겼다.
어릴 적의 데일이 그곳에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촉수와 광기를 흩뿌리고 있는, 거짓 인간들의 왕이자 진짜 괴수들의 왕이.
“나의 형제들이여, 너희들의 모습을 돌아보아라.”
발밑에서 수백, 수천 개의 눈동자가 끔벅거리며 그들의 그림자를 엿보고 있었다. 그림자 밑으로 숨겨져 있는 그들의 악행과 잔학,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들에 대해서, 무엇 하나 빠짐없이 낱낱이.
“우리 모두 괴물이다. 무엇 하나 다를 것 없지.”
데일의 말을, 그들로서는 무엇 하나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촉수와, 그 촉수에 휘감겨져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서, 설마……! 이야기가 사실이었나!”
“제, 제4제국의 마도 황제!”
“저게 정말 흑금의 군주라고……?”
“그, 그럴 리가 없잖아!”
기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그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악신(惡神)이 인간들을 희롱하듯, 절망으로 가득 찬 유린이 시작되었다.
데일의 발밑에서, 그리고 밤하늘의 천공이 찢어지며 그 틈새로 촉수들이 스멀스멀 솟아나왔다.
광기가 역병처럼 퍼져나갔고, 기병들 몇 명이 재빨리 전투마를 몰고 돌격을 감행했다.
촤아악!
동시에 흩뿌려지는 촉수가 말을 잡아채고, 기사들을 낚아챘다. 촉수가 그들의 갑주를 우그러뜨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찌그러진 갑주 사이로 뼈와 내장이 쏟아지는 죽음조차 차라리 나았다.
저 하늘의 틈새에서, 끔벅거리며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들이 있었다.
망막이 끔벅거리며, 스멀스멀 촉수들이 기어 내려와 기병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콰직!
투구를 찢고, 두개골을 찢고 뇌에 촉수가 내리꽂혔다. 가느다랗고 여러 다발로 이어져 있는 촉수들이 뇌 속을 헤집었고, 그들의 코와 입에서 흑색의 피가 쏟아져 내렸다. 콜타르처럼 검고 점액질로 이루어져 있는 흑색의 피였다.
광기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일대를 압도하고 있는 절망을 감당하지 못하고, 의식이 무너지며 그저 웃고 있었다. 웃고, 또 웃었다.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성을 제대로 유지할 수조차 없는 압도적 절망 속에서, 데일이 덤덤히 걸음을 옮겼다.
최후의 최후까지 의식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기사들이 있었다. 사방에서 스멀스멀 내리꽂히고 있는 천상의 촉수에 맞서, 발밑의 그림자에서 솟아나고 있는 칠흑의 촉수에 맞서, 마지막까지 굴복하지 않고 검을 휘두르고 있는 자들이.
“막시밀 후작님을 지켜라! 마, 마지막까지 절대 포기하지 마라!”
“아, 아무리 놈이라 해도 이 정도 마법을 오래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버텨라, 놈의 힘이 다할 때까지 버텨라!”
어떻게 해서라도 희망의 줄기를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그 모습이 우스웠고, 그렇기에 압살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말에서 내려 방어 태세를 짜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쇄도하고 있는 촉수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보아라! 놈의 마력이 점점 고갈되고 있다!”
“싸워라! 절대로 검을 놓지 말아라!”
희망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참으로 알 수 없는 생물이었다.
그의 앞에 있는 저 인간이란 생물이, 그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겠다며 슈브와 맺은 약속을 떠올렸다. 그 결의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데일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믿는 인간의 형태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저 앞에 있는 것들, 저 인간들과 자신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악신이 인간을 내려다보듯, 사람이 벌레를 내려다보듯, 너무나도 아득하고 덧없는 존재들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데일이 물었다.
“죽음이 두렵나?”
“네놈, 네놈……!”
최후의 발악을 펼치는 기사들 사이로 망설임 없이 데일이 다가섰고, 기사 하나가 땅을 박차며 쇄도했다.
“대형을 무너뜨리지 마라!”
뒤에서 기사가 소리쳤으나, 그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콰직! 촉수들의 그의 팔다리를 하나씩 잡고 일제히 찢었고, 두 팔과 다리가 갑주째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피가 울컥울컥 흩뿌려졌다.
“이대로 나의 마력이 고갈되고 힘이 다해서, 너희에게 살아날 희망이 있을 것 같나?”
그들 앞에서 데일이 싸늘하게 조소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악신이, 인간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듯.
촤아악!
동시에 일대의 밤하늘이 찢어지고, 그 사이로 이계의 악신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촉수조차 아니었다. 밤하늘의 틈새를 찢고, 두 팔과 다리를 갖고 있는 존재들이 지상을 향하며 기어오기 시작했다.
“아, 아아……!”
“어째서 남을 상처 입히고 괴롭히지?”
데일이 이해할 수 없다며 되물었다. 이 상황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는 물음이었다.
“어째서 죽이지 말라고 애걸하는 사람들을 죽이지? 너희 역시 이 고통이 즐겁나? 즐거울 리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 대지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지?”
“제,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폐하, 황제 폐하를 모시곘습니다!”
어느덧 기사 하나가 포기하고 애걸하기 시작했다.
“제4제국, 대 마도 제국과 마도 황제 앞에서 충성을 맹세합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황제 폐하!”
하나, 둘, 그들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 남자의 마력이 고갈되고 상황이 역전되어, 기적처럼 승리하게 될 확률 같은 것은 없다. 꿈이고 망상이다.
당장 저 밤하늘의 장막을 찢고, 이형의 괴물들이 저 너머의 세계에서 기어 내려와 동료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기사의 검이나 세계의 상식 같은 것은 통용되지 않았다.
형용할 수 없는 것(The Ineffable)들.
그 앞에서 모두가 무릎을 꿇고 애걸하고 있었다.
데일이 팔을 뻗었고, 이형의 괴물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늘을 내려다보고 있는 신들의 눈동자가 감겨졌다.
촉수들 역시,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형용할 수 없는 외계의 악신들을 굴복시키며, 흑금의 군주가 고개를 들었다.
“힘과 공포로 이 세상을 지배했었다. 그때 역시, 너희와 같은 자들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지.”
“충성하겠습니다, 폐하! 이 목숨을 다할 때까지 폐하의 제국, 대 마도 제국을 위해 몸 바치겠습니다!”
“너희와 같은 자들의 충성과 신종(臣從)의 맹세를 받았었다. 그러나 나의 제국이 사라지고 나서, 아홉 차례의 제국들이 세워지고 스러지기를 거듭해도, 여전히 너희들의 행동에 달라진 것은 무엇 하나 없었다.”
데일이 말했다.
“그리고 깨달았지. 내가 힘으로 너희의 고개를 조아리게 하듯, 결국 너희 역시 힘으로 그들의 고개를 조아리려 했음을. 너희와 지금 나의 행동 역시 무엇 하나 다르지 않았음을.”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돌이키며, 나아가 그 앞에 있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돌이키며.
“그렇기에 더 이상 인간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겠다. 힘과 공포로 세상을 지배하고, 무엇을 바꾸겠다며 망상에 사로잡히지도 않을 것이다.”
“그, 그 말씀이신즉……!”
“너희의 악(惡)을 용서할 것이다. 나아가, 나의 힘으로 더 이상 인간의 추악함을 바꾸려 들지 않을 것이다.”
데일이 말했다.
마치 이 세상의 존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듯.
그 말에, 기사들이 무릎을 꿇고 조아리기 시작했다. 데일의 자비에 감사하고 충성을 맹세하며. 그들을 바라보며, 데일이 덤덤하게 팔을 뻗었다.
정지해 있는 세계가, 이계의 침입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릎 꿇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그들의 포식을 마치기 위해.
“어, 어째서……!”
“요, 용서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야기가, 이야기가 다릅니다!”
“내 땅을 밟았으니까.”
데일이 말했다.
“남의 집에 함부로 침입하고도 무사히 살아갈 것 같나?”
방금까지의 장황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뒤로하고, 데일이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희망 끝에 절망이 내려앉았고, 절망 끝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제국의 북부를 우리의 영지로 귀속시키겠다고?”
그리고 그날 밤, 데일의 말에, 아내 샬롯이 되물었다. 어느덧 두 사람의 아이가 맥동하고 있는 배를 쓰다듬으며.
“다시 이 땅에, 너의 제국을 되돌릴 생각이야?”
샬롯이 짐짓 두려운 듯 물었으나, 데일이 고개를 저었다.
“인간들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아니야.”
“그럼?”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아기를 위해 나라를 세울 거야.”
데일이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거듭해서 다짐하듯.
“그 누구도 아니고, 오직 우리를 위해서야.”
“…….”
“그때처럼, 내 모습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괴물처럼 멀고 두렵게 느껴지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
샬롯이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데일이 말없이 샬롯의 손을 마주잡았다.
“약속할게, 마지막까지 네 앞에서, 네가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 남겠다고.”
“……응.”
그 말에 샬롯이 미소 지었다.
“검을 쥐고, 너와 함께 전장에 나설 수 없어서 아쉬워.”
“나야말로, 우리 아이를 품어줄 보금자리를 갖지 못해서 아쉬워.”
데일의 말에 샬롯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를 낳고 나서, 다시 검을 쥘 거야.”
웃고 나서 샬롯이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전장에 나설 떄, 네가 집에서 우리의 아이를 돌봐야겠지.”
“응, 그래야겠네.”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웃었다.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더 이상 세상을 위해 그 무엇도 짊어지지 않고, 희생하지도 않고, 그저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 * *
결심을 내리고 나서, 데일이 비로소 작센 가의 성에서 그의 가신들을 불러모았다.
일찍이 대 마도 제국의 옥좌, 흑금의 위에 앉아 데일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말하기에 앞서, 그대들에게 하나의 맹세를 받을 겁니다.”
그의 앞에 헤아릴 수 없는 제4제국의 강자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주군의 명령에 따라 이 세상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일기당천의 군세가.
“절대로, 저를 위해 희생하지 마십시오.”
데일이 말했다. 그 뜻밖의 말에 기사들이 숨을 삼켰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바치려 하지 마십시오. 일찍이 제가 그러했듯이, 저와 같은 어리석음을 거듭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흑금의 군주가 몸을 일으켰다. 기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칼자루를 내리꽂았다.
“그 맹세를 기억하고, 검을 쥐십시오.”
작센 황성, 그곳에 모여 있는 기사와 흑마법사 모두를 합쳐도 고작 수백 명 남짓에 불과했다.
“그럼 저와 함께,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긋지긋한 전쟁의 종지부를 찍으러 가죠.”
그럼에도 그들 하나하나가 갖는 무게를 이해하고 있기에,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아무리 도망쳐도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을 희생하고 발버둥 쳐도 세상을 이상의 형태로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렇기에 데일의 새로운 제국에는 결코 거창하고 장황한 무엇도 없었다.
그렇기에 오직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이유로 제10제국의 역사가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