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76화 (276/301)

외전 9화

* * *

혁명군을 일소하고 수라장이 되어 있는 도시에서, 데일은 가게 하나를 샀다.

“때가 될 때까지, 이 가게에서 지내도록 하지요.”

“여, 여기서요……?!”

“그렇습니다.”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유피로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숨을 삼킬 따름이었다.

당장 수라장이 되어 있는 이 도시의 상황을 듣고, 머지않아 혁명군의 후속 부대가 몰려올 것이다.

“그, 그러나 혁명군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데일이 말했다. 필시 도시에서 벌어진 사태를 듣고 뒤늦게 혁명군의 후속 부대가 몰려올 것이고, 그것도 절대 보통 규모가 아니리라.

다소 무식하기는 하나, 어느 의미에서는 가장 빠르게 혁명군의 고위층과 접촉하는 방법이다.

“그, 그래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기습이라거나…….”

“청색의 거미줄을 통해 그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습니다. 여차할 때의 기습이나 공격은 의미가 없을 테지요. 유피 양께서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피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유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정도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남아 있네요.”

“네에…….”

“이곳 말고, 좀 더 값비싼 식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 아니에요!”

그 말에 유피가 당치도 않다며 두 손을 내저었다. 데일이 씁쓸하게 웃고 나서,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 후, 데일이 가게를 뒤지며 비교적 말랑말랑한 감촉의 빵과 소시지, 수프를 차리기 시작했다. 손에서 마법처럼 불꽃이 이글거렸고, 수프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드시지요.”

“고마워요, 데일 아저씨.”

마법을 펼치고 나서는, 자기 몫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흑빵을 베어 물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가게를 중심으로 곳곳에 펼쳐져 있는 것은, 일찍이 청색 마탑주로서 손에 넣은 힘이었다.

비록 리제에게 그 힘을 넘겨주고 나서 이전과 같은 수준의 청색 마법을 펼칠 수는 없었으나, 그럼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곳에 있는 거미줄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직후 청색의 거미줄이 데일에게 그 사실을 속삭였고, 바로 직후였다.

가게의 목재 바닥 위로 소리 없이 발걸음이 내려앉았다. 일찍이 로젠하임 후작을 습격했을 때처럼 2식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철기대의 정예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게에 내려앉아 있는 어둠 속을 둘러보았을 때,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다.

로브 차림의 남자였다.

“아직도 이 싸움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남자가 물었고, 철기대의 갑주병들이 숨을 삼켰다.

“로젠하임 후작령에서 너희와 같은 자들과 조우했지. 그들의 결말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네놈이 설마……!”

“너희가 살아 있는 것은, 내가 너희를 죽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까닭이다.”

마치 자기가 죽음의 신이라도 되듯, 남자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에 철기대 하나가 용기를 내어 되물었다.

“……어째서 이 도시에 있는 혁명의 동지들을 학살했지?”

“그들이 나를 죽이려 했으니까.”

남자가 말했다.

“너희들 역시 나를 죽이려 이곳에 왔나? 아마 그렇겠지.”

그 말과 동시에, 가게 내부에 내려앉아 있는 어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너희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지금 당장, 이곳에 와 있는 너희들의 지휘관을 내 앞에 데려와라.”

“감히……!”

마치 부하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듯, 일말의 망설임이나 주저도 없는 목소리였다.

그 무례하기 그지없는 행동이, 공포 이상으로 철기대의 긍지를 자극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콰직!

어둠 속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림자 속의 촉수가 소리조차 없이, 철기대의 병사 하나를 휘감고 짓이기는 소리였다.

“이것이 마지막 경고다. 이대로 물러나, 너희들의 지휘관을 내 앞에 데려와라.”

털썩, 혁명군이 자랑하는 최신 성능의 갑주조차 고대의 어둠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다. 마치 종잇장처럼 엉망으로 구겨지고 부서져, 그 틈새로 육골과 창자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실내에 가득 차 있는 어둠들이, 비로소 악의를 가지고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 제의를 받아들이겠다.”

이해할 수 있었다. 일찍이 이 도시에서 벌어진 일들을 들었고, 지금 이곳에서 이 남자가 가진 힘을 목격하고 있었으니까.

이 남자를 상대로 저항하는 것은 결코 개죽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으로서는 물러나야 했다.

어둠 속에서, 겁에 질린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로브 차림의 남자는 테이블 위에 걸터앉은 채, 미동조차 없이 사라지는 철기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치 그 자리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옥좌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홀로 고독하게.

* * *

“너, 너무 위험합니다!”

남자를 막아서는 것은 그곳에 있는 혁명군의 참모들이었다. 그곳에 있는 남자가 비록 혁명군 전체를 지휘하는 ‘수장’은 아니었으나, 혁명군을 지휘하고 있는 기둥 중 하나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니까.

“그가 교섭을 바라고 있고, 우리 혁명군의 힘으로서는 그 남자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르봉 대령.”

남자가 말했다. 무척이나 덤덤하고 침착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2식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동지들조차 그를 어쩌지 못하고, 도시 사람들이 말하길 헤아릴 수 없는 시체들을 되살려 움직였다지요.”

“그, 그렇습니다! 그 남자가 일으키는 죽은 자의 군세, 그야말로 마도 황제의 재림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마도 황제라……”

그 말에 남자가 일순 말을 흐렸다.

“말씀드렸듯, 그 정도의 힘을 가진 마법사와 적대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결정이 아닙니다.”

“하, 하오나 그 남자의 마법은 너무나도 사악하고 불길합니다! 설령 피를 흘리는 길이 있더라도 지금으로서는 군대를 소집해 총력전을 펼치는 것이……!”

“고작 남자 하나를 어쩌지 못해 군대를 소집하고, 총력전을 펼치라는 겁니까? 그 남자는 죽은 자들의 군세를 일으켰다고 했지요. 그럼 그와 맞서고 있는 우리의 군대가, 그 남자가 조종하는 사자의 군세가 되지 않으리란 법이 있습니까?”

“…….”

부르봉 대령이 입을 다물었고, 남자가 말했다.

“제가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제가 직접 이야기를 해보지요.”

“……알겠습니다, 유리스 경.”

* * *

이튿날 아침이 밝았고, 데일의 가게 일대를 포위하고 있는 것은 혁명군의 군세였다.

가게의 창가 밑으로 그 풍경을 보고, 유피가 숨을 삼켰다.

“겁내실 것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일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두려울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아침 식사가 아직이었지요.”

“그,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식사를……”

“못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너무나도 태평하게 물었고, 유피가 일순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바로 그때였다.

끼익, 가게를 향해 발소리가 났다. 딱히 기척을 숨길 생각조차 없이.

“실례하겠습니다, 이름 없는 흑마법사여.”

흑마법사, 그 이름에 데일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가 있었다.

적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였다. 그리고 무척이나 익숙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일이 알고 있는 자가 아니었다.

“알베르트 유리스라고 합니다.”

“…….”

요리를 준비하는 곳에서 수프를 데우고 빵을 넘겨주며, 데일이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이 사용하고 있는 갑주에 대해 흥미가 있다.”

침묵 끝에 데일이 입을 열었다. 알베르트 유리스가 미소 지으며 되물었다.

“실례하오나, 마법사님의 이름을 들어도 될까요.”

“여러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이름도 이제는 의미가 없지.”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알베르트가 말했다.

“그대가 그러하듯, 달라진 세상의 그림자 속에서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유리스 가(家)의 역사가 아직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나.”

“우리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겁니까?”

“나는 네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겪고 온갖 것들을 보아왔다, 어린 뱀파이어야.”

“……!”

남자의 말에 비로소 알베르트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 자체는 놀라울 것이 없었다. 적어도 이 정도의 힘을 가진 마법사가 그 사실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으니까.

그러나 그가 자신을 일컬어 일말의 주저도 없이 ‘어린 뱀파이어’라고 일컫는 것은, 그로서도 뜻밖의 것이었다.

“마법이 스러져도, 여전히 너희 일족에게는 힘이 있지. 그래서 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바라고 있나?”

“……!”

“황제를 몰아내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혁명이 태어났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저 바깥의 이들은 여전히 혁명을 위해 황제를 몰아내려 하고 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

누구나 그림자가 있다. 그리고 혁명군의 그림자를 이 남자는 마치 자기 일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어느 것에도 흥미가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저 하나다.”

남자가 말했다.

“너희 혁명군이 발굴하고 있는 제4제국의 유산들. 고작 마도 갑주 하나에서 그칠 리가 없겠지.”

“……!”

“어떻게 그것을 손에 넣었고, 어디서 그것을 손에 넣고 있지?”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그것을 순순히 가르쳐줄 수는……”

“누구나 그림자가 있고, 내 앞에서 그림자를 감출 수는 없다.”

데일이 대답했고,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너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것 따위는 없다. 너의 그림자가 진실을 고했으니.”

그 말을 듣자마자 알베르트 유리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비로소 그 말에 깃들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그림자 군주……?”

“아직도 황금과 그림자의 대립이 사라지지 않았나?”

그 말에 남자가 되물었고, 알베르트 유리스가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그림자 군주, 제국의 황제는 지금도 황도에서……”

그럼에도 ‘그림자 군주’의 이름과 힘을 자처하는 자가, 동시에 두 명이 존재하고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림자가 제국을 지배하고 있고, 이제는 그에 맞서 황금의 군주가 혁명을 이끌고 있나?”

고대부터 이어진 황금과 그림자의 대립. 황금이 승리하고, 그림자가 승리하고, 다시 황금이 승리하고, 그렇게 제국의 역사는 거듭되었다.

여전히,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에게 황금과 그림자는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다. 그저 옛 제국의 유산에 흥미가 있을 따름이지.”

그렇게 말하며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황금과 그림자, 고대의 대립 속에서 힘과 숙명을 부여받는 존재들. 그러나 남자는 그 무엇에도 흥미가 없다는 듯 덤덤히 걸어 나갈 따름이었다.

“가시죠, 유피 양.”

“네, 네에!”

알베르트의 그림자 속에 감추어져 있는 혁명군의 극비 정보들을 모조리 손에 넣고서.

도대체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막후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피의 일족, 알베르트 유리스는 태어나 처음으로 미지의 공포에 전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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