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75화 (275/301)

외전 8화

* * *

비명이 울려 퍼졌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혁명의 적이다!”

“적습, 적습이다!”

혁명의 적, 그렇게 부르짖으며 헤아릴 수 없는 혁명의 전사들이 데일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렬로 늘어서 있는 장창과 머스킷 대형, 나아가 마도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철기대가 하나둘씩 그곳에 합류하고 있었다.

‘제국’의 영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혁명군의 도시답게,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혁명군의 전력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혁명을 알지 못하고 있다.”

“쏴라! 혁명의 적을 죽여라!”

타앙, 탕!

곳곳에서 매치락 머스킷의 흑색 화약이 흩뿌려졌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콰직!

데일의 발밑을 따라 냉기의 벽이 일제히 솟아올랐다. 그 위로 덧없이 흑색 화약이 내리꽂혔고, 데일이 그대로 두 팔을 뻗었다.

쨍그랑!

냉기의 벽이 일제히 부서져 내리며, 헤아릴 수 없는 얼음의 조각칼로 거듭나 흩뿌려졌다. 그 앞에서 혁명군이 자랑하는 대형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다.

비명이 울려 퍼졌고 피가 흩뿌려졌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고결하고 숭고하기에 그토록 혁명을 숭상하고 있지?”

데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묻고 나서, 덤덤히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널브러져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혁명군을 가로지르며.

“자유, 평등, 박애……!”

바로 그때, 혁명군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실소를 흘렸다.

“그것이 너희가 말하고 있는 혁명이란 것이냐.”

“우리가 바, 바라는 것은…… 황제와 귀족들의 아, 압제를 무너뜨리고…… 모두가 펴, 평등하게……”

거기까지 말을 잇다 말고, 혁명군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데일이 덤덤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도시의 입구를 봉쇄하고, 도개교를 올리고, 도시의 성벽 위에서 데일을 향해 활과 머스킷을 겨누고 있는 혁명군이 보였다.

“자유롭지도 않고, 평등하지도 않고, 박애적이지도 않다.”

그렇기에 데일이 싸늘하게 조소했다.

* * *

트루아 시는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혁명군의 주요 거점 도시로서, 결코 내어줄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렇기에 도시에 주둔하고 있는 혁명군의 숫자나 무장의 질 역시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나의 강자가 일백을 압도하는 것은 더 이상 전설 속에서나 나올 무용담이다. 그랬을 터였다.

그러나 남자의 손에 도시 입구를 지키고 있는 혁명군이 몰살당하고 나서, 하나의 도시와 군대가 남자를 상대로 저항을 시작했을 때.

그 싸움이 말 그대로의 ‘전쟁’으로 거듭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자가 팔을 뻗었고, 일대에 널브러져 있는 혁명군의 시체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죽었어야 할 사자(死者)의 군세가, 도시의 해자를 헤엄쳐 넘고 성벽 외곽을 따라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흑색 화약이 쏟아지고 쇳물과 돌덩어리가 쏟아져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아무리 상처를 입고, 뼈가 부러지고 살갗이 찢겨도 망자들은 도무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쇳물에 살점이 녹고 기포가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도시를 수비하고 있는 혁명군으로서는 상식을 벗어나는 공포였으리라.

겁에 질리고 공포에 떨며 비명이 흘러나왔다.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의식을 집중해 재구축할 정도의 망자병조차 아니었다. 그저 되살리고 움직이게 하는 것, 그 이상의 공정(工程)을 거칠 필요조차 없었다.

그것으로 족했으니까.

성벽을 넘고, 성벽 위에서 무기를 겨누고 있는 이들을 집어삼키고, 그들 역시 사자의 군세로 거듭나며 적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황제의 적들을.

망자들이 도시의 성벽을 넘고 올라가 도륙을 시작했고, 그 앞에서 흑색 화약이나 총칼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다.

말 그대로 사지를 갈가리 찢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게 하지 않고서야, 그 존재들은 결코 쉬지도 멈추지도 않았으니까.

“이, 이게 대체!”

“어떻게 이 정도 규모의 사령술을 홀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절망 어린 헛웃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마법, 이 시대에도 여전히 사령술의 개념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흑마법사 하나가 필사적으로 시체 하나를 되살리는 것조차, 이 세계에서는 좀처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이 남자가 손짓 하나로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시체들을 되살렸을 때, 그것은 도저히 이 시대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유피 역시, 죽은 자가 되살아나 옛 전우들을 도살하는 풍경 앞에서는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데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생과 사의 경계가 무너지고 비명이 울려 퍼지는 지옥도 속에서, 홀로 덤덤히 걸음을 옮길 따름이다.

일찌감치 도개교를 올리고, 남자와 도시 사이에 놓여 있는 깊은 해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쩌적, 쩍.

데일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의 발밑에 냉기가 일렁이며 얼어붙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기 무섭게, 그 발밑에 또 하나의 얼음이 생성되었다.

뚜벅, 뚜벅.

어느덧 데일은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층계를 오르고 있었다.

누구도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고, 가로막을 수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그 모습을 보며, 유피 역시 뒤늦게 데일을 따라 ‘냉기의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얼음 위를 걷고 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미끄럽지 않았다. 그것이 얼음 위의 마찰력을 조절해 유피를 배려해준 것임을, 그녀로서는 알 턱이 없었으리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얼음의 층계를 생성하며 데일이 도시의 성벽 위로 올랐고, 그곳에서 더 이상 데일에게 거스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거기까지였다.

데일이 부리고 있는 망자들은 성벽 위의 혁명군을 도륙하고 나서, 그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성벽 아래, 겁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도시의 사람들에게는 흥미조차 주지 않고.

데일이 다시금 손을 휘저었다. 일대의 망자들이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무너져 내렸다.

“……!”

“유피 양.”

바로 그때, 데일이 입을 열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유피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물음 앞에, 어째서 혁명이라고 대답했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물음 속에서, 유피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저, 저는 그저…….”

“저를 배려해주신 겁니까?”

“……마, 맞아요.”

“저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있었다. 이 남자에게는 애초에 유피의 배려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일방적으로 배려를 받는 것은 유피의 쪽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나마 그를 배려해주고 싶었다. 그 사실이 무척이나 우스웠다.

“혁명이냐, 황제냐.”

바로 그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는 황제라고 대답을 하겠습니다.”

“역시 데일 아저씨는 제국의 황제 폐하를 위해서……?”

이어지는 유피의 말에, 그러나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 제국의 황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느 황제를 말씀하시는 거죠?”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제국의 황제입니다.”

그 말을 유피로서는 일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로젠하임 후작의 말을 떠올렸다.

대 마도 제국, 그리고 그 제국의 정점에 군림하는 흑금의 대제에 대해서.

“그 황제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위악자를 자처했고, 인간 모두의 고통을 짊어지는 대속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지요.”

남자가 말했다.

“인간 모두의 고통을 짊어지는 대속자……?”

그 말에 유피가 일순 숨을 삼켰다. 그 말이 갖는 터무니없을 정도의 무게감에.

그러나 이 남자가 말하고 있는 그 무게감은, 결코 허황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해서 짊어지는 일이,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고통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요.”

“…….”

“제가 그러했고, 그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유피로서는 데일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를 위해 고통을 짊어지고 희생하는 행위가,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결국 새로운 고통을 낳는 일에 불과했음을.”

너무나도 일방적이기 그지없는 자기희생.

그렇게 일방적 희생이 낳는 것은 결국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었다.

일찍이 흑금의 대제로서 세상을 위해 희생한 데일의 위악(僞惡)이 그러했듯, 리제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모두가 똑같은 어리석음을 거듭하고 있었다.

“희생은 생각처럼 아름다운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부르짖는 혁명의 대의처럼 말이지요.”

서로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희생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고통에 고통을 낳고 있다.

더 옳은 세상을 위해 부르짖는 혁명이 그러하듯이.

그 아이러니 끝에 데일은 이곳에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리제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거듭하며.

리제 역시 그 사실을 알지 못했으리라. 데일이 그 사실을 알지 못했듯이.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이를 위해 수행하는 희생의 이기(利己)는, 결국 이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리제 역시 마지막까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과거의 데일이 그러했듯이.

리제를 위해, 세상을 위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데일이 수행하는 자기희생이,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 제 어리석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데일이 씁쓸하게 웃었다.

웃고 나서, 데일의 어깨가 희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유피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정도의 힘을 가졌음에도 어째서 이 남자는 이토록 고통스럽고 불행에 가득 차 있는 것일까.

능히 이 세상 전부를 손에 넣을 힘을 갖고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까.

황제냐, 혁명이냐.

다시금 그 물음이 유피의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 물음 앞에서 유피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혁명과 황제, 그 어느 쪽도 결코 진실로 이 세상의 해답이 될 수는 없었으므로.

* * *

딸랑.

목로주점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정적이 내려앉았다. 마치 이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남자와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로주점을 가로질렀다. 주점에 앉아 있는 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도망치듯 급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주점의 점장 역시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홀로 도시에 주둔하고 있는 혁명군을 손짓 하나로 일소할 정도의 마법사.

이 남자에게 거스르고 살아남을 리 없다.

그러나 이 남자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나서, 후에 찾아올 혁명군이 자신을 살려둘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점은 그의 터전이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뇌를 이해하고 있는 듯, 데일이 품속에서 무엇을 꺼내들었다.

가죽주머니였다.

짤랑, 소리가 났다. 주머니를 받아들고 내용물을 보자마자, 주점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천금(千金)이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이것으로 당신의 가게, 그리고 가게에 남아 있는 전부를 사겠습니다.”

남자가 말했고, 그 말에 점장으로서는 무엇 하나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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