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화
* * *
흑금의 대제.
마법이 죽어가는 이 시대에 그치지 않고, 대륙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그 누구보다 강대하다 일컬어지는 황제의 이름이었다.
나아가 황제의 통치 아래,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치세를 이룩한 제4제국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자취도 없이 제국이 모습을 감추기 전까지.
그것은 말 그대로 제국이 사라졌다고밖에 형용할 수 없었다. 일찍이 ‘작센 공작’의 영토였으며, 바로 그 작센 가의 데일이 ‘흑금의 대제’가 되고 나서 황제의 땅으로 거듭나 있는 북부의 동토.
바로 그 대지가 말 그대로 사라졌다. 사라지고 나서 그곳을 가득 메우는 것은 바다였다.
제4제국의 심장 그 자체가 사라지고 나서, 대륙에는 끝없는 전쟁의 소용돌이가 이어졌다.
제5제국, 제6제국,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제국들이 솟아나고 스러지기를 거듭했다.
그 와중 일찍이 대륙의 기둥이라 일컬어지는 마탑들 역시, 점차 그 힘을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유 모를 까닭으로, 세상의 마법이 차츰 죽어가고 있었다.
오러와 마력으로 가공해야 할 마나의 양이 턱없이 적어지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것들을 쥐어짜도 더 이상 예전의 영광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고위 서클의 마법사가 하나둘씩 사라졌고, 오러 아바타를 사용할 수 있는 이들조차 점점 그 수가 줄어갔다.
호사가들이 말하길, 마법이 죽기 시작한 것은 흑금의 대제이자 ‘마도 황제’가 사라진 것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 수군거렸다.
너무나도 강대하기 이를 데 없는 힘을 가진 나머지 신(神)의 자리를 위협했고, 그 천벌을 받았다거나.
금기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 후폭풍에 휩쓸려 멸망했다거나.
그 후 시스티나 여신이 그 힘을 우려하여 세상에서 마나를 거두기 시작했다고.
저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제4제국의 멸망에 대해 수군거렸고, 그러나 더 이상 흑금의 대제와 그의 제국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알 길은 없었다.
그랬을 터였다.
“이들 혁명군이 사용하고 있는 병기는, 바로 그 제국에서 발굴하고 있는 유산입니다.”
데일의 말에, 로젠하임 후작이 숨을 삼키며 말했다.
“혀, 혁명군 놈들의 마도 갑주가…… 대 마도 제국의 유산이란 말씀이십니까?!”
“그 구조나 기동 방식이, 무척이나 익숙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데일이 덤덤하게 말했다. 익숙하다. 그 말의 의미를 멋대로 받아들이며 로젠하임 후작이 말했다.
“역시 보통 마법사가 아니다 싶으셨더니, 제4제국의 시대에 대해서마저 조예가 있으실 줄이야.”
“…….”
“화, 확실히 이 정도의 병기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은 대 마도 제국 정도의 기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테지요.”
로젠하임 후작이 비로소 혁명군의 기술이 갖는 실체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앞에 있는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데, 데일 아저씨!”
바로 그때였다. 후작성에서 벌어진 습격에 앞서 몸을 숨기고 있는 유피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이름에 로젠하임 후작이 일순 고개를 돌렸다.
“데일……?”
제4제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기까지 그 제국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듯, 결코 그 기록 전부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 이름을 듣고, 로젠하임 후작이 숨을 삼켰다. 일순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그의 심장을 억눌렀다.
손짓 하나로 지평을 가득 메울 사자(死者)들의 군세를 일으키고, 세상의 빛을 꺼트리며, 저 너머 이계의 괴물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마도 황제.
적들에게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으며, 그의 앞에서는 차라리 죽음을 애걸할 정도로 잔혹하다 일컬어지는 마왕의 이름.
흑금의 대제, 작센의 데일. 그것이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 존재의 이름이었기에.
그러나 당혹은 잠시였다.
마법이 죽어가는 이 시대에, 그렇게 마법 같은 이야기가 있을 리 없다.
이 남자가 보여준 마법이, 이 시대의 이들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격 외의 것이라고 해도…….
설령 이 남자의 이름이 바로 그 마도 대제의 이름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대 마도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국의 심장, 일찍이 작센 공작령이라 불린 북부의 대지와 함께.
그렇기에 바로 그 역사의 망령이 자기 앞에 서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허황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당장 황제 폐하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 말에 데일은 달리 흥미가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어디로 향하실 작정이십니까?”
“제가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까?”
바로 그때, 데일이 차갑게 되물었다.
그 차가운 목소리에, 다시금 알 수 없는 공포가 스멀스멀 로젠하임 후작의 심장을 옥죄었다. 제아무리 머리가 이성을 부르짖으려 해도 가슴이 굴복하고 있었다.
“……혁명군이 발굴하고 있는 제4제국의 유산에 흥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데일이 이내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들을 찾아내어, 진상을 알아볼 생각입니다.”
“호, 홀로 혁명군이 있는 적진을 향하실 생각입니까?!”
터무니없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 로젠하임이 말을 이으려 했다. 그러나 이으려다 말고 이내 헛웃음이 나왔다.
이 남자가 보여준 마법을 기억하고 있다. 대 마도 제국의 유산이라 일컬어지는 마도 갑주, 그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혁명군을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발기는 그 모습을.
그럼 도대체 이 세상의 누가 감히 그를 막을 수 있을까.
“후작님께는 여러 가지로 신세를 졌습니다.”
데일이 조용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고, 로젠하임 후작이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하나 더,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혁명군의 수장을 찾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어지는 데일의 물음 앞에서, 로젠하임 후작이 망설일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당장 자신들과, 제국과 함께 싸우자고 말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었다.
누구도 이 남자의 길을 가로막을 수 없다. 그러나 혁명군으로서는 결코 이 남자를 가로막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들에게 있어 제4제국의 유산을 발굴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할 극비 중의 극비였고, 그 비밀을 파헤치려 하는 자를 용납할 수 없을 테니.
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그럼 갈까요, 유피 양.”
“네! 데일 아저씨!”
이 남자가 정말 제4제국에 군림하고 있는 흑금의 대제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남자가 보여준 힘, 그것은 그야말로 ‘마도 황제’의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경외 그 자체였다.
제국과 혁명군 사이에서 벌어진 대립의 결말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희극으로 끝을 맺게 되리라.
그리고 그 희극을 가까이서 봤을 때, 그것은 아마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끔찍한 비극이 되겠지.
로젠하임 후작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신과 제국이 그 비극의 당사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 * *
유피의 여정은 로젠하임 후작령에서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데일과 함께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이어지는 데일의 말은 더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혁명군의 영토로 향할 예정입니다.”
“……!”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곁에 있는 이상 무엇도 유피 양을 해치지 못할 테니까요.”
“거, 걱정하지 않아요!”
유피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말대로다. 설령 어느 대귀족의 밑에 있다고 해도, 이 남자와 함께 하는 것보다 마음이 놓일 수는 없을 테니까.
설령 그것이 포화가 휘몰아치는 전쟁터 속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데일이 둘로 찢어진 대륙을 가로질러 ‘혁명군’의 영역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을 때, 도시 입구에서 그를 맞이하는 자들이 있었다.
“멈추어라!”
데일을 향해 그들이 겨누고 있는 무기가 있었다. 옛 제국의 유산도, 그렇다고 칼이나 창처럼 알기 쉬운 냉병기조차 아니었다.
흑색 화약을 작약(炸藥)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 그대로의 신식 병기, 머스킷이었다.
“황제냐, 혁명이냐.”
머스킷을 겨누고 혁명군이 되물었다.
딱히 데일의 정체를 의심하고서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 일대가 혁명군의 영역이며, 그 사실을 주지하는 물음에 불과했다.
오가는 이마다 머스킷의 총구 앞에서 겁에 질린 채 혁명을 부르짖으며 빠져나갔고, 그다음 차례가 데일이었을 따름이니까.
그러나 그 물음 앞에서 유피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날, 그 물음이 유피의 삶을 통째로 바꾸었다. 대답 하나가 그녀라 사랑하는 가족과 마을사람들을 앗아갔다.
“혁명……이요.”
다시 그 실수를 거듭하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러나 데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을 따름이다.
그 말에 유피가 당황하며 숨을 삼켰고, 데일이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혁명군을 향해서.
“무엇을 위한 혁명입니까?”
“……혁명을 의심하려는 것이냐?”
“저는 세상의 일에 밝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세상에 나왔을 때, 세상 사람들 모두가 혁명을 부르짖고 있었지요.”
데일이 덤덤히 말을 이었다.
“나아가 그대들의 혁명을 부르짖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이 소녀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죽었습니다.”
“……!”
“그렇기에 묻는 겁니다. 그것은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까?”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목소리로.
“네놈!”
그 말을 듣자마자 머스킷으로 무장하고 있는 혁명군 역시, 망설이지 않았다.
“죽여라! 혁명의 적이다!”
타앙!
방아쇠를 당겼고, 흑색 화약이 흩뿌려졌다. 머스킷의 초기 형태, 아쿼버스(Arquebus)가 아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전장식 화기, 휠락 방식의 머스킷이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설령 ‘제1제국’의 총기라 할지라도 다를 바 없으리라.
쏟아지는 총알 세례 앞에서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총알보다 빠르게 칠흑의 방패가 흑색 화약을 집어삼켰고, 다시금 데일의 발밑으로 스며들었다.
“의심하고 저항하는 자를 모조리 숙청하는 것이 그대들이 말하는 혁명입니까?”
그림자를 거두고, 경악하고 있는 혁명군을 향해 데일이 말했다.
“그럼 저 역시 혁명을 택하겠습니다.”
“……!”
“나 역시, 내 앞을 가로막고 저항하는 적들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으니까.”
동시에 발밑에서 그림자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솟아났다.
칠흑의 가시 촉수가 흩뿌려졌고,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보며 유피는 그러나 결코 고개를 돌리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복수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이들이 혁명의 이름으로 부르짖고 있는 악행 앞에서, 그들을 동정할 이유 역시 없었다.
그렇기에 끝없이 비명이 울려 퍼지고 육골이 찢어지는 참혹한 풍경 앞에서, 유피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