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73화 (273/301)

외전 6화

* * *

“그러니 오라버니, 더 이상 세상을 위해 자신을 상처 입히지 말아 주세요. 그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주세요.”

거짓의 여제, 겨울과 그림자의 여왕이 말했다.

동시에 냉기가 데일을 집어삼켰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달라진 뒤였다.

마법이 죽어가고 있는 시대.

자기를 가두고 있는 리제의 얼음이 깨진 것 역시, 그 덕이었을까.

─ 오빠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게임을 하자.

그 후로 슈브의 모습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그의 심장에 그림자의 서클을 드리우고 있음에도, 데일의 응답에 옛 어둠의 어머니는 침묵을 지킬 따름이다.

그리고 이 세계에, 더 이상 데일이 사랑하는 것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데일로서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끝없는 방황과 고독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악몽을 꾸었다.

데일이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걱정스러운 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유피가 보였다. 데일이 쓴웃음 지으며 물었다.

“제가 뭐라 말을 했습니까?”

“그, 리제가 누구죠?”

“…….”

데일이 입을 다물었고, 유피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저씨가 너무 애절하게 그 이름을 부르셔서…… 그, 죄송해요.”

“유피 양이 사과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며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창밖을 보니 어느덧 해 질 녘 어스름이 내려앉아 있었다.

“달리 저를 찾아오신 용무가 있습니까.”

“따, 딱히 용무가 있어서는 아니고요……”

유피가 우물쭈물 말을 흐리며 말했다.

“그냥,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요.”

“저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데일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고, 침묵 끝에 유피가 말했다.

“……이곳에서 데일 아저씨와 헤어지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나요?”

“저는 유피 양의 무사를 보증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데일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이곳은 그렇지 않지요.”

“네……?”

“이곳 역시 머지않아 혁명의 전화(戰火)에 휩싸일 겁니다. 유피 양의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그럴 수가…….”

그 뜻밖의 말을 듣고 유피가 숨을 삼켰다.

“그, 그럼 아저씨께서는 어떻게 하실 거죠?”

“찾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데일이 덤덤하게 말했다.

“찾을 수 있을지, 애초에 무사히 살아 있는지조차 기약할 수 없으나…….”

그렇게 말하며 데일이 입을 다물었고, 유피가 조용히 숨을 삼켰다. 데일에게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에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까닭에.

“……찾을 거예요.”

그러나 이내 결의를 굳히고 나서, 유피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저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 * *

“로젠하임 후작을 암살하고 신속하게 영지를 이탈할 것이다.”

그날 밤, 로젠하임 후작령에 침투해 있는 ‘혁명의 전사’들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의 심장 가장 깊숙이 들어가, 일격에 혁명의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혁명의 산실, 마도 공학의 정수가 깃들어 있는 갑주를 갖춘 자들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지금까지 보급되고 있는 철기대의 갑주와 비교를 불허하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쾅!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휘몰아치는 마력이 불꽃으로 화하며 후작성의 일대를 집어삼켰다.

“폭발, 폭발이다!”

“적습이다!”

비로소 성내의 고요가 깨졌고, 그 소요를 틈타 실루엣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규소처럼 매끄러운 흑색의 질감으로 뒤덮여 있는 흑금(黑金)의 실루엣들이었다.

어쨌거나 로젠하임 후작은 그 이름처럼 이 아홉 차례의 제국에서, 가장 힘 있는 귀족 중 하나다. 그렇기에 그의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은 결코 일개 잡병들이 아니었다.

마법이 죽어가고 있는 시대가 곧 마법의 죽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희소하기 그지없는 마법사의 숫자가 더더욱 줄어들었고, 그들의 힘과 솜씨 역시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게 되었을 따름이지.

마법이 죽고, 황제와 귀족들의 위세 역시 예전 같지 않다. 어느 의미에서 그들 역시 죽어가는 셈이리라.

기술과 공화주의, 스러지고 죽어가는 것들의 공백을 메꾸는 것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몫이었다.

“역적 놈들이……!”

필사적으로 오러 하트를 폭발시키며 힘을 끌어내고 있는 기사들이, 혁명의 전사들 앞에서 검을 고쳐 잡았다.

나아가 전위의 기사들을 보조하며 마법사들이 그들의 마나 서클을 가속했다.

서클이 가속하며 마력이 흩뿌려졌고, 그들의 마력에는 색(色)이 없었다.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적색도, 지혜와 교묘함을 갖춘 청색도, 심지어 무채색조차 아니었다.

아마 데일이 기억하는 옛 세계에서는, 정녕 그것을 마법으로 취급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우리라.

그것이 이 세계에 남아 있는 마법의 실체였다.

‘2식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흑금의 실루엣들이 땅을 박찼고, 검이 휘둘러졌다.

칠흑의 칼날이 휘둘러졌고, 그 앞에서 필사적으로 오러를 쥐어 짜내고 있는 기사들이 덧없이 쓰러졌다. 일검을 제대로 받아치지 못하고 맥없이.

하나의 강자가 일백을 상대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2식 철기대야말로, 의심할 여지가 없이 능히 일백의 강자를 압도할 수 있는 강자들이었으니까.

“후작 각하를 지켜라!”

“혁명군 놈들……!”

필사적으로 로젠하임 후작 휘하의 기사와 병사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고작해야 오러 블레이드를 구사하는 수준의 기사들이, 일찍이 오러 마스터의 아바타 이상에 필적하는 마도 갑주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피가 흩뿌려졌다.

칠흑의 검이 춤추듯 기사들 사이를 파고들었고, 앞서 손에 넣은 후작성의 내부도를 따라 2식 철기대가 성내의 통로를 가로질렀다.

바로 그때, 그림자 하나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체내에 마나를 흡수하지 않고, 대기 중의 마나를 자체적으로 갑주 내에서 가공하고 있군.”

그림자가 짐짓 흥미로운 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러 마스터의 아바타에 필적하는 위력을 전개할 수 있나?”

“……!”

그림자가 내뿜고 있는 위압감에, 흑금의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2식 철기병들이 숨을 삼켰다. 그럼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누가 그 정도의 기술을 갖고 그 갑주를 개발했지?”

그림자의 물음이 미처 끝날 틈도 없이, 철기병들이 땅을 박차고 쇄도했다.

직후 남자의 발밑에서 그림자의 촉수들이 솟아났다.

촉수들이 솟아나기 무섭게, 철기병들이 손에 쥐고 있는 검을 휘둘렀다. 마력이 깃들어 있는 칠흑의 검. 그리고 검에 깃들어 있는 흑색이 무척이나 낯이 익었다.

그림자의 촉수를 잘라내고, 이내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빨랐다. 그림자가 다시금 고개를 들어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흑금의 갑주, 그리고 흑검(黑劍).

“…….”

이 세상에서 얼마를 방황했을까. 과거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그것을 헤집어도, 결국 허탕에 허탕을 거듭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 나날들이었다.

그 허무함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이 이상 방황을 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날, 유피의 마을이 혁명의 기수들에게 몰살당하기 전까지.

그들이 다시금 데일을 세상 속으로 불러냈다. 또다시, 그의 앞에 과거의 실마리가 있었다.

실마리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정도로 데일의 방황은 짧지 않았다.

“묻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누가 그 갑옷을 개발했지?”

“감히 그 비밀을 순순히 말해줄 것 같다고 생각하나……!”

“말할 것이다.”

데일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누구도 내게서 진실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림자 군주가 팔을 뻗었다.

동시에 데일의 흑색 로브가 펄럭였다. 로브 밑의 그림자가 호수처럼 퍼져 나가며 일대의 영역을 집어삼켰다.

키에에엑!

직후, 그림자 속에서 귀를 찢을 것 같은 절규가 울려 퍼졌다.

《그림자 잠복자》들이 철기병들을 향해 그들의 가시 촉수를 내뿜는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무엇이 너희의 입으로 비밀을 말하게 할 수 있나?”

살아 있는 어둠의 가시들이, 혁명의 갑주를 향해 쇄도했다.

“고통이 그것을 말하게 할 수 있나?”

콰직!

가시 촉수가 철기병들의 갑주를 향해 끝없이 내리꽂혔고, 갑주의 틈새로 내리꽂혔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대로 그림자 잠복자들의 촉수가 갑주를 벗겨내자, 갑주와 융합해 있는 살가죽이 함께 뜯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고통에 끝없이 절규가 울려 퍼졌다.

절규 속에서 그림자 군주가 덤덤히 걸음을 옮겼다.

“고, 고통 따위로 감히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 있을 것 같나……!”

그러나 살가죽이 벗겨지고 육체가 찢어 발겨지는 고통 앞에서도 혁명의 전사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일순, 대체 혁명이 무엇이기에 이 고통조차 감수하는 것일까 의아함이 들었다.

데일이 그대로 고개를 내렸고, 촉수에 휘감겨 있는 그들의 그림자를 주시했다.

그러자 그림자 속에서 숨길 수 없는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다였다. 누구도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도망칠 수 없듯이, 그림자 군주 앞에서 그들의 진실을 감출 수 없다.

“됐다.”

그 말과 동시에 데일이 팔을 뻗었고, 그림자 잠복자들이 광희하며 그들의 갑주와 육골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일대의 그림자가, 물속에 잉크를 풀듯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 세계에 사랑해야 할 것은 남아 있지 않다. 자비를 베풀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무심코 유피의 얼굴이 떠올랐다.

* * *

데일이 혁명군의 암살자들, 2식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철기대를 쓰러뜨리고 바로 직후의 일이었다.

“덕택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로젠하임 후작이 그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대체 혁명군 놈들이 어느새 이 정도의 신병기를 개발했는지……”

“신병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데일이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림자를 엿보고 들춘 갑주의 진실을 기억하며.

“어디까지나 과거의 유산에 불과하지요.”

“과거의 유산? 설마……”

“제4제국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대, 대륙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대 마도 제국 말씀이시지요. 흑금의 대제가 통치했다고 일컬어지는……”

“…….”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 말대로였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그저 까마득할 정도의 전설로 취급되고 있는 옛 제국.

“저 역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밖에 알지 못합니다.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대륙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그 말을 듣고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혁명군이 사용하고 있는 병기는, 바로 그 제국에서 발굴하고 있는 유산입니다.”

여전히 그것을 해답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데일이 손에 넣은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깝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실마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