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화
* * *
산골 마을의 소녀 유피에게, 그날은 아주 갑작스럽고 냉혹하게 찾아왔다.
“황제냐, 혁명이냐.”
“화, 황제 폐하예요!”
낯설기 그지없는 무장을 갖추고 있는 철기대(鐵騎隊)의 기병이 물었다. 그 물음 앞에, 세상 물정을 무엇 하나 알지 못하는 소녀 유피로서는 그저 더 높고 위대해 보이는 쪽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라고 했나.”
“네, 네! 저희는 그저 황제 폐하를 섬기는 일개……”
그 대답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혁명을 거부하는 자들이다, 모두 죽여라.”
“……!”
“소령님, 이 계집은 어떻게 할까요?”
“마음대로 해라. 그러나 뒤처리는 깔끔하게 하도록.”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부하 하나의 비릿한 물음에, 소령이라 불린 남자가 아무래도 좋다며 고개를 돌렸다. 타앙! 동시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피의 아버지가, 필사적으로 그녀를 지키려다 육골이 산산이 조각나며 흩뿌려지는 소리였다.
“꺄아아악!”
“아버지!”
비명이 울려 퍼졌다. 뒤늦게 목숨을 애걸하며 도망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하나하나 그들의 무기 앞에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정신이 까마득해질 것 같은 절망 속에서, 남자들이 유피를 겁탈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얌전히 따라와, 이 빌어먹을 계집아!”
남자가 유피의 머리채를 잡아끌며 소리쳤고, 그 틈을 이용해 유피가 있는 힘껏 남자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직후, 유피가 젖 먹는 짜내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평소에 좀처럼 다가갈 수 없는, 마을 후미진 구석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남자에 대해 떠올리며.
마을의 사람들이 그 남자를 일컬어 ‘괴물’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동시에, 유피와 마을 사람들이 그 괴물 덕에 목숨을 빚지고 있음을 떠올렸다.
도와주세요, 아저씨. 유피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며 소리를 높였다. 뒤늦게 철기대의 기병들이 유피를 따라잡았고, 일개 소녀가 그들의 갑주와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소요입니까.”
다시금 유피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무섭게, 오두막에서 로브 차림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브 밑으로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가 무척이나 짙었다.
“혁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에게 자비 따위는 없다.”
그 모습을 보며 ‘철기대’의 남자 하나가 싸늘하게 내뱉었다.
“혁명이라고 했습니까?”
로브 차림의 남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탕!
최신식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철기대의 기병이, 그대로 팔을 뻗었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 알 수 없는 이형의 폭발이 이어졌다.
일말의 자비조차 없이 흩뿌려지는 죽음의 포화였다.
흑색 화약이 흩뿌려졌고, 그 끝에 무엇이 펼쳐질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유피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곳에 형체조차 남아 있지 않고 터져나가 있을 남자의 육체를 상상하며.
그랬어야 했다.
“어……?”
로브 차림의 남자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를 향해 쏟아지는 포화가 모두 거짓이었다는 듯이.
“몇 개의 제국이 무너지고, 몇 명의 황제가 죽었습니까?”
남자가 되물었다.
“그대들이 쓰러뜨리고자 하는 제국은 몇 차례째의 제국입니까?”
“뭐, 뭐라고……?”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정신병자가 횡설수설하듯, 도무지 맥락을 잡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저는 일찍이 제3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저의 제국 역시 멸망했지요. 그럼 경들이 무너뜨리고자 하는 제국은 다섯 차례째의 제국입니까? 그 무기가 저의 여동생, 리제와 그녀의 제국을 쓰러뜨릴 비장의 병기입니까?”
“이 새끼가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어떻게 이 남자가 마도 공학의 정수가 깃들어 있는 혁명의 산실, 마도 갑주의 일격을 막아냈을까. 알 수 없었다. 필시 모종의 착오였거나 오폭(誤爆)이었으리라.
“제국의 개를 죽여라!”
그렇게 생각하며 철기대의 기병이 다시금 팔을 뻗었다. 그의 갑주에 깃들어 있는 마력 회로가 기동하며, 재차 흑색 화약이 흩뿌려졌다.
콰앙!
직후, 남자의 육골이 터져나갔다. 로브 차림의 남자가 아니었다. 자랑스러운 혁명군의 일좌, 철기대의 기병이 그대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어……?”
“도, 동지가 당했다!”
직후 철기대의 기병들이 일제히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엇이 일어났나. 알 수 없었다. 그저 저 남자가 혁명군의 동지에게 술수를 부렸음이 명백했다.
“갑주의 전술 태세를 전개하라!”
“전술 태세 이행!”
그렇기에 철기대의 수장, 소령과 부하들이 소리를 높였다. 이윽고 철기대가 무장하고 있는 갑주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그들의 육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강화 외골격처럼 갑주가 기병들의 육체를 덮어씌우고 동화하며, 마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보며, 로브 차림의 남자가 일순 흥미롭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가 보기에, 마치 ‘옛 세계’의 기갑병을 닮아 있는 무장이었다. 그들이 부르짖고 있는 혁명처럼, 필시 새로운 세상에 걸맞은 무엇이겠지.
“혁명의 적에게는 죽음이 기다릴 따름이다!”
“혁명의 적들에게 죽음을!”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이 필사적으로 부르짖고 있는 신념이, 과거의 어리석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남자를 옥죄고 있을 따름이었다.
‘철기대’의 병정들을 휘감고 있는 매끄러운 형태의 강화형 갑주를 뒤로하고, 남자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발밑을 따라 시린 냉기가 흩뿌려지는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혁명의 갑주로 몸을 휘감고 흑색 화약을 흩뿌리는 철기대를 향해, 세상의 이치로 이해할 수 없는 시린 냉기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쩌적, 쩍.
그들로서 그 남자가 흩뿌리고 있는 냉기를 이해할 리 없으리라.
설령 아무리 그들이 발달해 있는 무장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세상의 끝에 다가올 겨울마저 극복할 수는 없음을.
겨울의 군주가 그곳에 있었다.
남자의 발밑을 따라 냉기가 흩뿌려졌고, 철기대의 육체를 집어삼키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 앞에서 철기대의 마도 갑주가 흩뿌리는 불꽃 같은 것은 말 그대로 아이들의 놀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
남자가 품고 있는 우주의 겨울 앞에서, 혁명을 부르짖는 그들의 열정조차 예외일 수 없었다.
“무엇을 위해 수행하고 있는 혁명입니까?”
“아, 아아아…….”
남자가 종말의 냉기를 흩뿌리며 입을 열었다. 전우들이 겨울의 군주 앞에서 스러지는 모습을 보며, 철기대의 병사 하나가 겁에 질려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대의가 얼마나 고결하기에, 일말의 용서나 이해조차 없이 그러한 잔학(殘虐)을 수행하고 있는 겁니까?”
남자가 되물었다.
그 목소리는 결코 조롱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을 따름이었다.
“우, 우리는 황제파의 독재에 맞서 저항하는 혁명군……”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남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이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그대들이 맞서고자 하는 독재자의 사람들로 보이십니까?”
“이, 이 자들은 자기 입으로 황제를 옹호하고 혁명을 거부했다!”
“그것이 죽어 마땅할 정도의 죄였습니까?”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들 철기대를 지휘하는 부대장, 소령이 틈을 노리고 땅을 박찬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일찍이 사상의 갑주를 펼치고 있는 오러 마스터의 움직임, 결코 그에 뒤지지 않을 신속하기 그지없는 일격이 내리꽂혔다.
카앙!
그리고 소령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이, 강철에 맞부딪치듯 소리를 자아내며 튕겨 나갔다. 검으로 맞받아쳤나?
그렇게 생각하며 소령이 고개를 들었고, 이내 경악에 차서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로브 자락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그림자 망토’라 불리는 어둠의 아티팩트였음을, 소령으로서 알 턱이 없었으리라.
“어리석은 대답을 했다는 이유 하나로 이곳에 있는 이들이 죽어 마땅하다고 가정할 경우…….”
칠흑의 로브 자락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고, 발밑을 따라 형용할 수 없이 시린 냉기가 흩뿌려졌다.
“싸울 상대를 헤아리지 못하는 너희들의 결정 역시, 마찬가지로 죽어 마땅할 어리석음이겠지.”
“아, 아아아……!”
키에에엑!
귀를 찢을 것 같은 절규가 울려 퍼졌다. 이 세상의 생물이 부르짖을 수 있는 형태의 절규가 아니었다.
어느덧 남자의 발밑을 중심으로 흩뿌려진 그림자 호수, 그 밑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 피조물들의 외침이였다.
《그림자 잠복자(Shadow Lurker)》들이, 그들의 가시 촉수를 흩뿌리며 철기대의 병정들을 휘감았다.
살아 있는 어둠의 가시들이 혁명의 갑주를 찢어발기고 살점 사이로 파고들었다. 피와 내장이 어지럽게 흩뿌려졌다.
“아악, 아아아아악!”
콰직, 콰직, 콰직!
살과 피와 뼈가 엉망진창으로 찢어지고 흩뿌려졌다. 차라리 종말의 냉기에 휘감겨 얼어버린 이들이 다행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이었다.
수십여 명 남짓의 철기대가 깜작할 사이에 손 하나로 헤아릴 숫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 이상 저항할 의지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사, 살려줘, 아니, 살려주십시오! 이, 이렇게 빌겠습니다!”
“나의 자비를 바라고 있나?”
남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너희들이 부르짖고 있는 혁명의 대의와 냉혹함은 어디로 갔지?”
냉기와 어둠, 겨울과 그림자의 군주가 되물었다.
“너희들이 그토록 잔혹하게 나와 사람들을 대했는데, 어째서 내가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그저 순수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치 대화가 통하지 않는 미지의 생물을 마주하는 것 같은, 미지의 공포가 그들을 엄습했다.
“오해, 오해였습니다!”
“오해라.”
남자가 그 말을 듣고 씁쓸하게 웃었다.
“많은 것들이 아주 사소하기 짝이 없는 오해에서 비롯되고는 하지.”
콰직!
동시에 그림자 속에서 칠흑의 꼬챙이들이 솟아났다. 남자의 말에 철기병들이 뭐라 대답을 돌려줄 틈조차 없이, 꼬챙이가 갑주의 틈새 사이로 내리꽂혔다.
비명을 지를 틈조차 없었다. 그저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질 따름이었다.
겨울과 그림자의 괴물이,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로브 밑으로 드리워져 있는 어둠이 이쪽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자, 유피의 두 다리에서 다시금 힘이 풀렸다.
“아, 저, 저는……”
“겁낼 것 없습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과 달리 다소 부드럽게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아, 아저씨의 정체가 뭐죠……?”
그 목소리를 듣고 유피가 겁에 질려 되물었다. 되묻고 나서, 일순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었다는 후회에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여러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그 물음에 남자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이제는, 저 자신을 뭐라 불러야 할지조차 알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