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69화 (269/301)

외전 2화

* * *

최후의 게임이 시작되었고, 그림자 군주 데일이 고개를 들었다.

또 하나의 그림자 군주, 그림자 여왕이 그곳에 있었다.

“더 이상 이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멈추어 주세요, 오라버니.”

“……리제.”

거짓과 모략의 청색 마탑주를 자처하는 리제는, 역설적이게도 그 무엇보다 그녀의 진실을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 진실, 그것은 오직 하나였다. 사랑하는 오라버니가 세상의 죄를 대속하고 고통받는 세계.

인간들의 왕이자 괴수들의 왕으로서 짊어지고 있는 그 무게가, 너무나도 괴롭고 가여워 보여서 참을 수 없었다.

“흑색과 백색, 그리고 적색 마탑 모두가 이미 저희 ‘소서리스 의회’의 꼭두각시로 거듭나 있어요.”

리제가 말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이제는 새로운 ‘청색의 흑막’에게 충성을 바치는 소서리스들이 그곳에 있었다.

“오라버니의 제국을 떠받치고 있는 사색의 마탑과 마탑주들, 제국의 귀족들, 모두가 저의 청색 거미줄 아래에 놓여 있지요.”

“…….”

“이 제국은 더 이상 오라버니의 제국이 아니에요. 그들 모두 청색의 거미줄에 묶여 있는 꼭두각시들이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참 여러 가지로 준비를 했구나.”

“황제 폐하께서는 늘 저를 신뢰하고 계셨으니까요.”

“그리고 그 신뢰를 이용해 이렇게 나를 배신할 줄이야.”

황금과 그림자의 투쟁 끝에, 이제는 흑금의 군주로 거듭나 있는 데일을 보며 리제가 말없이 웃었다.

“……저는 오라버니의 이해나 용서를 구하고 이러한 일을 수행하는 게 아니에요.”

리제가 말했다. 그녀의 심장을 따라 여덟 개의 서클이 가속했고, 청색의 마력이 다시금 흩뿌려졌다.

“그것이 오라버니와 제국의 방식이었죠. 누구의 이해나 허락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제왕’의 방식.”

“그래, 리제.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조용히 웃었다. 슈브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데일의 부름에 그녀가 응답해주는 일은 없었다.

지금, 산양의 뿔을 가진 소녀는 ‘그림자 여왕’의 곁을 지키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준 힘들, 태고의 어둠과 종말의 냉기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데일의 심장에는 『검은 산양의 서』와 여덟 개의 서클, 그리고 여덟 개의 그림자 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네가 뭘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구나.”

흑금의 군주가 비로소 ‘열여섯 개의 서클’을 가속하며 입을 열었다.

“이 제국을 세운 것은 처음부터 나 하나의 힘이었고, 내가 곧 이 제국 그 자체란 사실을.”

“알고 있답니다, 황제 폐하.”

리제가 조용히 웃었다.

“그렇기에 제가 오라버니를 쓰러뜨리고 저의 힘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그 이름을 계승할 수는 없겠지요.”

“마지막 경고야. 아직 물러나도 늦지 않았어, 리제. 아니, 이렇게 부탁하마.”

데일이 말했다. 태고의 어둠과 종말의 냉기, 세상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힘을 과시하듯 드러내며.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저 역시, 자랑스러운 작센의 마법사예요. 동시에 당신의 여동생이기도 하죠.”

데일의 말에 리제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제국 제일의 천재라 불리는 오라버니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오라버니를 구하기 위해서는 오라버니보다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

“그러니 그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제 쪽이에요.”

동시에 리제의 발밑을 따라 청색의 마력이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저야말로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음을.”

그리고──.

청색의 마력과 더불어, 여덟 개의 서클 아래로 ‘서클의 그림자’들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마치 데일의 거울처럼.

그 모습을 보자마자 데일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대체 어떻게……?”

“제가 당신의 여동생이란 사실을 잊으셨나요?”

그러나 리제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청색이 상징하는 것은 모략과 거짓의 지혜. 그리고 그 지혜가 지금의 저를 있게 했죠.”

“…….”

“이것이 바로 제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사상의 정수예요.”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창조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태고의 어둠이, 그리고 세상의 끝에 다가올 종말의 냉기가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피와 거울의 서(Book of Blood and Mirror)』.”

동시에 딛고 있는 발밑을 중심으로 리제의 세계가 덧씌워졌다.

바로 직전에 리제가 보여준 세계조차 아니었다.

사방이 거울로 가득 차 있는 세계였다.

“제 거울이 비추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오직 하나였답니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데일의 모습이 깃들어 있었다. 리제가 기억하는 데일의 온갖 모습이.

“어릴 적부터 당신을 동경했고, 당신처럼 멋진 마법사가 되기를 바랐지요. 그리고 자, 보세요.”

“…….”

“지금의 저는 당신과 결코 구별될 수 없는 존재임을.”

흑금의 군주로서, 그림자 군주로서, 종말의 냉기를 흩뿌리는 겨울의 사도로서, 데일의 거울이 그곳에 있었다.

“우리의 몸에 흐르고 있는 피, 마도의 재능, 마법사로서의 사상, 무엇 하나 다르지 않아요.”

리제의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거울들 속에서, 그림자 여왕이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데일이 냉기를 흩뿌렸다. 리제의 세계에 가득 차 있는 거울을 깨트리기 위해서.

그러나 리제의 어둠이 데일의 냉기를 집어삼키는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후우웅!

직후, 데일의 세계가 일대를 덮어씌웠다.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풍경이 발밑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고, 동시에 리제의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거울들이 마찬가지로 그 겨울밤의 풍경을 비추고 있었다.

“슈브, 네가 그녀를 도왔나?”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오빠?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오빠?

데일이 되물었고, 슈브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

두 개의 목소리, 두 명의 슈브가 있었다.

데일과 리제의 곁에, 그리고 리제의 거울 속에서 침묵하고 있는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슈브가 존재했다.

“하나 묻지요. 샬롯 양께서는 여전히 예전처럼 오라버니를 사랑하고 있나요?”

“…….”

“여전히 세피아 님께서는 오라버니의 곁을 지키고 계시나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요, 사랑하는 이들 모두가 오라버니를 두려워하거나, 곁을 떠나갔지요. 오라버니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저밖에 없답니다.”

거울의 세계 속에서 리제가 말했다.

어둠과 냉기, 여덟 개의 서클과 그림자 서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리제의 존재는 데일의 거울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애초에 그녀가 이 힘을 손에 넣은 것은, 필시 슈브의 도움 없이 불가능했겠지.

이것이 그녀의 게임이다.

어느 쪽의 진실이 더욱 진실할지 궁금해 참을 수 없다는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리제의 의지이기도 했다.

황금과 그림자의 싸움, 진실과 거짓의 투쟁이 아니었다.

그림자 군주와 그림자 여왕, 진실과 진실의 싸움.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거나, 그깟 알량하기 짝이 없는 마음가짐으로 쓰러뜨릴 정도로 그의 여동생은 적당하게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데일이 맞선 그 어느 상대보다도 강하고 위협적이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말 그대로 자신을 비추고 있는 거울 그 자체였으니까.

“많이 컸구나, 리제.”

“그래요,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망설이지 않아요.”

그림자 군주의 말에, 그림자 여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오라버니가 부디 무거운 짐을 벗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기를 바라요.”

어둠과 냉기가 휘몰아쳤다. 데일의 냉기, 리제의 어둠, 리제의 냉기와 데일의 냉기가.

여덟 개의 서클과 서클의 그림자들이 가속하며 두 마법사의 사상이 격돌했다.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어둠이 가능성을 품고 맞부딪쳤고, 가능성의 끝에 이르러 찾아오게 될 종말의 냉기가 서로의 가능성을 집어삼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둠과 냉기가 사슬처럼 맞물렸다.

그러나 그 격돌 속에서, 거울처럼 일말의 오차도 없이 맞부딪쳐야 할 결투가,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었다.

“어째서…….”

데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하며 숨을 삼켰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셨나요?”

그림자 여왕이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

동시에 그녀의 세계에 펼쳐져 있는 거울 중 하나가, 풍경 하나를 덧씌우고 있었다.

노쇠해진 그의 아버지, 작센의 앨런 앞에서 나약함을 드러내고 있는 아들이었다.

‘저는 그들이 저를 바라보는 표정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세운 제국을 두려워하고, 저를 두려워하고, 가장 가깝다고 믿은 이들조차 경외(敬畏)의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말씀해주십시오, 아버지. 저는 당신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황제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까?’

‘괴물과 싸우며 어느새 또 하나의 괴물이 되는 것, 그것이 저의 결말입니까?’

“……!”

그곳에 있는 데일은 결코 사람들이 경외하는 흑금의 대제가 아니었다.

너무나도 나약해서,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인간이 그곳에 있었다.

‘저는 그저, 그 사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싸워온 것들이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고, 나아가 제가 싸워온 이들과 무엇 하나 다를 바 없는 결말을 맞았다는 것이.’

“오라버니께서는……”

그림자 여왕이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나약해지셨어요.”

“…….”

“그러나 저에게는 결코 그러한 나약함이 없답니다. 아시겠나요, 오라버니?”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진실을.

“지금의 저는, 당신보다 더더욱 당신에 가깝다는 것을.”

일찍이 누구의 허락과 이해를 갈구하지 않는 흑금의 여제가 말했다.

“그러니 오라버니, 더 이상 세상을 위해 자신을 상처 입히지 말아 주세요. 그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주세요.”

힘없이 데일이 무릎을 꿇었고, 그를 내려다보며 여동생 리제가 말했다.

하나의 싸움이 비로소 결말을 맺었다.

“기다려, 리제……!”

동시에 일대에 냉기가 휘몰아치며, 데일의 존재를 집어삼켰다.

존재의 끝을 고하는 종말의 냉기가 아니었다. 그저 말 그대로의 얼음이 데일을 빙벽 속에 가두었고, 그게 다였다.

* * *

하나의 제국이 무너지고, 새로운 제국이 세워졌다.

그로부터 얼마 후, 얼음이 녹아내리고 데일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곳에서 데일을 맞아준 것은 무엇 하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였다.

일찍이 이계의 용사가 그러했듯, 낯설기 그지없는 세상.

그 세계에 더 이상 데일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무엇을 위해 희생할 필요도 없는 평화로운 세계였다.

그러나 여전히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의미 없는 피와 살육이 끊이지 않는 세계였다.

새로운 세계 속에서, 데일이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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