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화
Side Story.
마법으로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마법이 필요했다.
세상을 알지 못하는 치기 어린 소녀가, 청색의 지혜를 손에 넣고 다시금 세상의 진실을 마주했을 때.
거짓과 모략의 마탑을 지배하는 청색 마탑주가 되어서도, 여전히 리제는 모두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다.
제3제국이 무너지고, 데일이 흑금의 군주를 자처하며 새 제국의 정점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오라버니가 세우게 될 제국을 믿어요.”
“나를 믿어주는 것은 리제밖에 없구나.”
무엇 하나 달라질 것은 없었다.
자랑스러운 오라버니의 곁을 보좌하며, 그가 바라고 있는 꿈을 이루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하나의 깨달음이 리제의 심장에 여덟 개째의 서클을 새겨넣었다.
‘깨어나지 않는 환상은 행복과 구별될 수 없다.’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마법의 열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 * *
“리제.”
흑금의 옥좌 위에 그녀의 오라버니가 앉아 있었다. 황금의 제국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쌓아 올린 제4제국.
일찍이 하나의 제국이 무너지고 하나의 제국이 세워졌듯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니.”
“황위를 계승하는 중이에요, 오라버니.”
──거짓의 여제가 입을 열었다.
또다시 하나의 제국이 무너지고, 하나의 제국이 세워지려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농담을 하고 있구나, 리제.”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웃음을 터뜨렸다. 치기 어린 여동생의 모습을 조소하듯이.
인간들의 왕이자 괴수들의 왕. 황금과 그림자, 거짓과 진실의 군주.
대륙의 누구도 감히 거스르지 못할 흑금의 대제로서.
“농담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금의 대제를 마주하고 있는 여동생, 작센의 리제는 웃지 않았다.
“저와 오라버니, 그리고 이 세상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예요.”
“아직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구나.”
후우웅!
리제를 위협하듯, 데일이 걸치고 있는 그림자 망토가 일대를 집어삼켰다. 빛이 스러지고 어둠 속의 망령들이 대회당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들의 왕을 마주하고 있는 청색 마탑주, 리제는 결코 주눅 들지 않았다.
“깨어나지 않는 환상은 행복과 구별될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거짓은 진실과 구별될 수 없는 법이지요.”
딛고 있는 발밑을 중심으로 세계의 풍경이 스러졌다. 그 위에 덧씌워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리제의 세계였다.
일찍이 세상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철없는 소녀가, 세상의 진실을 깨닫고 나서 펼치고 있는 사상의 결계.
그리고 그 세계는 지금까지 데일이 기억하고 있는 리제의 세계와 너무나도 달라진 풍경을 하고 있었다.
“……!”
촤르륵!
동시에 청색의 사슬이 휘감기며, 데일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결의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저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계를,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제국을 세울 거예요.”
그리고 그녀의 결의는, 데일이 일찌감치 그 이상(異常)을 깨닫기 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음을.
“의미 없는 살육을 멈추고, 의미 없이 전쟁을 벌이며 피를 흘리는 일도 없는 세상.”
“나 역시 그것을 바라고 있어.”
“그래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이룩하기로 약속했지요.”
“그럼 어째서 나를 끌어내리려는 거지?”
“…….”
리제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절대 길지 않은 침묵이었다.
“오라버니께서, 너무나도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까닭이에요.”
침묵 끝에 청색의 흑막이 입을 열었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 오라버니께서 짊어지고 있는 불행을 이 이상 지켜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불행하지 않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리제가 조소하듯 되물었다. 데일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이에요. 그리고 저는 오라버니께서 인간 모두를 위해 고통의 대속자(代贖者)가 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그래서 그 고통을 네가 짊어지려는 거니.”
“아니요, 그 누구도 이 고통을 대속할 필요는 없어요.”
리제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제가 가져오게 될, 새로운 제국에서는 그 누구도 불행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
“아니, 설령 누군가 그 고통을 짊어져야 할지라도──저는 오라버니께서 그 고통의 대속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야, 리제.”
“어째서…….”
데일의 말에, 리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째서 늘 오라버니께서는, 그 누군가가 되려고 하시는 거죠?!”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는 평정을 무너뜨리며, 흐느끼듯이.
“저는 당신이 인간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기억하고 있어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오라버니를 두려워하고 손가락질할지라도, 저는 당신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했는지 기억하고 있어요!”
리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저는 더 이상 당신이 우리를 위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오라버니께서는 마땅히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어요. 아니, 그래야 해요. 설령 세상 모두가 당신을 두려워하고 손가락질하더라도 말이에요.”
데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까닭에.
“제가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오라버니의 행복이었어요. 그것이 저의 ‘세계’였죠.”
“…….”
“주위를 둘러보세요, 오라버니. 그리고 황제 폐하.”
리제가 조롱하듯 팔을 뻗었다.
“모두가 당신을 두려워하고 겁내고 있어요. 아무도 오라버니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해요.”
동시에 그녀의 세계가, 일찍이 데일이 기억하는 풍경을 재생하고 있었다.
새로운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굴종하는 이들, 그들의 얼굴에 서려 있는 공포와 두려움. 데일의 가장 가까운 이들조차 예외일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알 수 없었다.
“오라버니의 위악(僞惡)은 여기까지예요.”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고 있니.”
“저는 그저, 오라버니께서 행복해지기를 바랄 따름이에요.”
“지금 네가 행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더더욱 불행으로 몰아넣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구나.”
데일의 말에 리제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늘 그렇게, 오라버니께서는 자신의 책임을 정당화하셨죠.”
“…….”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들조차 당신을 두려워하고, 경외(敬畏)하며 멀어지고 있음에도, 오라버니는 달라지지 않았어요. 마치 그게 자신이 짊어져야 할 고통이자 책임이며, 그 행위를 통해 인간들의 죄악을 대속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리제가 말했다. 더 이상 무엇 하나 숨길 것 없다는 듯이.
“저는 오라버니가, 그저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를 바랄 따름이에요.”
그 말을 끝으로, 리제가 팔을 뻗었다.
헤아릴 수 없는 청색의 사슬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그 누구도 인간들의 왕을 이길 수 없다. 여덟 개의 서클, 그리고 그림자의 서클을 드리우고 있는 ‘군주’와 누가 감히 맞설 수 있을까.
그랬어야 했다.
“어릴 적, 오라버니께서 보여주신 세계를 기억하고 있어요.”
리제가 즐겁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오라버니께서 보여주신 그 세계가, 저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의 전부였어요.”
“…….”
“꿈을 꾸어주세요, 오라버니.”
리제가 말했다.
“그리고 부디, 그 꿈에서 깨어나지 말아 주세요.”
“리제……!”
데일이 무어라 입을 열 틈조차 없이, 그의 세계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 * *
“데일.”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자, 무척이나 낯이 익은 얼굴이 데일을 맞이해 주었다.
“세피아 님……?”
“왜 그러느냐, 데일.”
세피아의 말에 데일이 이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작센 ‘공작성’의 중정이었다.
“청색 마법의 수업을 할 때가 아니더냐.”
“…….”
세피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고, 데일이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꿈을 꾸었어요.”
“꿈?”
“……네.”
침묵 끝에, 데일이 입을 열었다.
“제가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희생을 치르는 꿈이었어요.”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
그 말에 세피아가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었더냐?”
“글쎄요.”
데일이 말을 흐리며 침묵을 지켰다.
“그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침묵 끝에 데일이 대답했다.
“──리제, 설령 네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야.”
쨍그랑!
동시에 일대의 풍경이, 마치 유리창이 깨지듯 무너져 내렸다.
“……어째서.”
산산이 조각나고 있는 풍경을 뒤로하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척이나 익숙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꿈에서 깨어날 때야, 리제.”
그 말을 끝으로, 데일의 발밑에서 칠흑의 어둠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리제는 데일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처음부터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오라버니의 쪽이었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다시금 데일의 세계가 일전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네 짓이었나.”
─ 용서해줘, 오빠.
데일의 그림자 속에서, 흡사 초승달처럼 입꼬리가 찢어지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너에게 나의 용서 따위가 의미가 있나?”
─ 인간이란 참 재미있는 생물이야. 그렇지 않아?
“……내 여동생에게 무슨 짓을 했지?”
데일이 싸늘하게 되물었다. 그 말에, 데일의 그림자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조롱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럼 어쩌다 내 여동생이 저렇게 불량아가 됐지?”
─ 글쎄.
그림자 속에서, 옛 어둠의 어머니이자 슈브가 즐거운 듯 말을 흐렸다.
─ 나는 그저 궁금할 따름이야.
“무엇이?”
─ 그 아이와 오빠, 어느 쪽의 ‘진실’이 더더욱 진실할지.
“……진실이니 거짓이니, 그깟 헛소리에는 이제 진력이 났어.”
데일이 싸늘하게 조소했다. 그러나 어느덧 데일의 곁에서, 드레스 차림의 소녀가 조소를 흘렸다.
─ 그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세상 사람들 전부가 네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나?”
─ 그들은 내 꼭두각시가 아니야, 오빠의 꼭두각시겠지.
슈브가 일말의 주저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씁쓸하게 웃었다.
“하나 묻자, 슈브.”
웃고 나서 데일이 되물었다.
“모두 네 짓이었지?”
일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정적은 길지 않았다.
─ 응.
정적 끝에 슈브가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데일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리제는 네 놀잇감이 아냐. 그 아이를 놓아줘.”
─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래.”
─ 그럼 내기를 하자.
“내 여동생을 배팅할 수는 없어.”
─ 응, 알고 있어.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슈브가 웃음을 터뜨렸다.
─ 나랑 게임을 하자.
웃고 나서, 슈브가 말했다.
“무슨 게임?”
─ 오빠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게임.
일말의 감정조차 없이, 옛 어둠의 어머니가 키득거렸다.
데일은 웃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최후의 게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