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67화 (완결) (267/301)

267화

* * *

「6. 제국」

이제는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까마득한 과거, 아직 청색 마탑주가 세상을 알지 못하는 어린 소녀였을 시절.

인간들의 왕이 괴수들의 왕을 쓰러뜨린 직후, 각국의 군주들이 하나의 자리에 소집되었다.

저마다 지위의 고하에 따라 자리가 엄격하게 배정되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데일이 앉아 있었다.

흑금의 군주.

일찍이 스러진 제3제국을 대신해 잠시나마 헤아릴 수 없는 독립국들이 우후죽순 솟아났고, 그것은 아주 찰나의 백일몽에 불과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는 다시금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제아무리 왕들의 감시자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어도, 아무리 힘으로 그들을 억제하려 해도 벌어지는 전쟁 모두를 막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이 땅에는 피가 흘렀고, 인간들의 왕이 보기에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어리석음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직접 지배하고자 했다.

이 대지의 사람들이 더 이상 어리석음을 거듭하지 않도록. 하나의 국가와 체계 아래서, 청색의 거미줄로 대륙 전체를 엮어 그들을 지켜보기로.

결정을 내리고 나서는 각국의 군주들을 소집했다.

“지금부터 저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제국의 시작을 알리고자 합니다.”

흑금의 군주가 말했고, 곳곳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 자리는, 새로운 제국의 시작을 알리고 나아가 제국의 총의를 결정하는 최초의 제국 의회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 대륙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국가였고, 그곳에 있는 군소 귀족들과 제후들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제 뜻에 동의하지 않는 군주께서는, 이 자리에서 말씀을 해주시지요.”

데일의 말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는 까닭에.

황제의 말에 누구도 감히 이의를 달지 못했다.

제4제국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7. 리제」

“오라버니, 드디어 3서클을 각성했어요!”

여동생 리제가 그렇게 말했을 때, 리제는 더 이상 꼬마 숙녀가 아니었다.

어엿하게 성장한 소녀였고, 데일과 마찬가지로 재능을 가진 핏줄이 비로소 그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훌륭하구나.”

그렇게 말하며 데일이 웃었다.

“너의 세계를 보았니?”

마법사에게는 누구나 저마다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이제 막 자신의 세계를 깨우친 마법사로서, 리제는 망설이지 않고 웃었다.

“제 마법으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세계가 있었어요.”

“아직도 그것을 바라고 있구나.”

“네! 그것을 위해 마법을 배우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리제가 웃었다. 여전히 세상을 알지 못하는 순진하기 그지없는 소녀의 표정이었다.

“오라버니께서 이 세상을 그렇게 바꾸고 계시듯이 말이에요.”

그러나 이어지는 리제의 말에, 데일은 웃을 수 없었다.

“군주들의 다툼이 그치고, 평화로운 세상을 찾아오게 하려고 세운 나라잖아요?”

“응, 그렇지.”

그렇게 말하며 데일이 웃었다.

“저는 오라버니가 세우게 될 제국을 믿어요.”

리제는 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나를 믿어주는 것은 리제밖에 없구나.”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씁쓸하게 웃었다.

데일이 그의 제국을 세우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무척이나 복잡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샬롯도 그러했고, 세피아나 오렐리아도, 그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 모두가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사해 군도에서 진짜 인간들의 왕을 쓰러뜨렸을 때.

데일은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무엇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달라진 그가 보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어긋나 있었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더 이상 데일이 수행하는 일들은 누구의 허락이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무도 데일을 이해해주지 못하더라도 개의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최후의 최후까지, 리제는 데일을 믿어주었다.

“저도 빨리 오라버니의 힘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할게요!”

그녀가 바라는 세상, 그녀의 마법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며.

「8. 통일 전쟁」

세월이 흐르고, 하나의 제국이 대륙을 집어삼켰다. 동시에 몇몇 제후들이 제국에 저항하며 힘을 합쳤고, 기꺼이 전쟁을 불사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전쟁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제국의 황제는 홀로 그에게 저항하는 군주들을 찾았다.

“저는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우, 우리의 요구를…….”

“무릎 꿇으십시오.”

인간들의 왕이 말했다.

“제가 이 성에 사는 이들과 일대의 군대 전부를 집어삼키길 바라십니까?”

“아, 아아……!”

동시에 그곳에 있는 군주들이 보기에, 그 존재는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추악한 생물이 그곳에 있었다.

옛 어머니의 아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그곳에 있는 어린 양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 아아,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야.

옛 어둠의 어머니가 사랑스럽다는 듯 그의 아들을 휘감았고, 겁에 질린 몇몇 이들이 그 존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휘몰아치는 촉수가 그들의 검을 휘감고 육체를 낚아챘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

“저는 의미 없는 살육을 바라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왕이 말했다.

“무릎 꿇으십시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그곳에 있는 존재는 그저 괴수들의 왕에 불과했다.

일찍이 작센 공작이 사해 군도에서 괴수들의 군세를 물리쳤다는 무용담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 있는 저 존재야말로 괴수가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나. 그렇게 생각했으나, 누구도 그 사실을 입에 담지 못했다.

그렇게 새로운 제국을 가로막는 이들이 무릎 꿇었고, 전쟁조차 없이 제국은 승리했다.

「9. 샬롯(2)」

작센 대공령이 황령(皇領)으로 바뀌고, 그곳에 세워진 성이 황성으로 거듭났다.

그 후 랭커스터 여대공 샬롯은 정식으로 황제의 아내가 되었으며,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대륙의 북부, 새로운 제국의 심장에서.

“사랑스러운 아이야.”

“응.”

다행스럽게도, 그 아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인간이었다.

샬롯은 흐느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의 아이를 포옹했다.

“네가 아버지가 되고, 내가 어머니가 되는 날이 오다니.”

실감 없는 표정으로, 그러나 눈물을 글썽거리며 샬롯이 웃었다. 데일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행복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응.”

데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이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어째서 없다고 생각해?”

데일이 되물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 세상이 우리의 발아래 놓여 있어.”

“……그렇네.”

그 말을 듣고 샬롯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 세계는 오롯이 너의 것이니까.”

“너와 우리의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세계야.”

그렇게 말하는 데일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인간들의 왕이었다. 샬롯은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미소 지었다.

무척이나 씁쓸하게.

괴물이 되어 있는 자신을 보는 것 같은 거리감에, 데일에게는 무척이나 가슴이 쓰라렸다.

「10. 청색의 흑막」

제국의 존재가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느껴질 무렵, 하루하루 마법을 갈고닦는 리제의 성취는 놀라울 정도였다.

청색 마탑주로서, 데일을 보좌하고 있는 소서리스들이 그녀의 배움을 보필해주었다.

사람을 속이거나 거짓을 심고, 필요에 따라 진실을 덧씌우는 거짓과 모략의 마탑.

리제는 그들의 진실을 깨닫고 나서, 생각보다 덤덤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경멸하지 않니?”

“어째서요?”

리제에게 청색의 진실을 가르쳐준 데일이 물었고, 리제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행복이란 꿈과 같은 거예요.”

그리고 리제가 대답했다.

“깨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리제에게, 더 이상 순진하고 세상을 알지 못하는 어린 소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성장하는 것은 데일 하나가 아니다. 리제 역시 그녀 나름대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 이치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내렸으리라.

“저는 여전히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그렇기에, 리제는 기꺼이 청색의 힘을 계승하길 거부하지 않았다.

“비로소 제가 해야 할 일을 찾은 느낌이에요.”

“그렇니.”

그녀 역시 작센의 피를 잇는 마법사다. 그리고 그 피에 깃들어 있는 무게를 데일 역시 모르지 않았다.

“의미 없는 살육을 멈추고, 의미 없이 전쟁을 벌이며 피를 흘리는 일도 없는 세상을 보고 싶어요.”

“나 역시 그것을 바라고 있어.”

“제가 오라버니의 제국에 함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리제가 말했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이룩하는 거예요.”

그 말에 청색 마탑의 소서리스들이 비로소 그녀들의 새로운 수장을 찾은 듯,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쉽지 않을 거야.”

“각오하고 있어요.”

그리고 데일의 아버지가 데일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듯, 데일 역시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 때였다.

새로운 청색 마탑주.

일찍이 데일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청색의 흑막이자 또 하나의 아라크네가 그렇게 태어났다.

그녀의 거미줄을 대륙 곳곳에 흩뿌리며, 이 세상을 더 좋게 바꾸기 위해서.

「11. 행복하게 오래오래」

제국의 황제, 황제의 아내, 그리고 황제의 두 부모.

“네가 자랑스럽구나, 데일.”

엘레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느덧 삶의 황혼을 맞이하고 있는 그녀였으나, 여전히 그녀는 아름다운 어머니였다.

“저 역시 어머니가 자랑스러워요.”

“그이도 너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겠지.”

“저 역시 그러길 바라요.”

그렇게 말하며 데일이 씁쓸하게 웃었다. 동시에 데일의 곁에서, 샬롯의 품에 있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나.”

“죄송해요, 어머니.”

“탓할 것 없다. 아기들이란 늘 그런 법이잖니.”

샬롯이 당혹과 함께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주었고,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운 듯 엘레나가 미소 지었다.

“아, 두 사람 모두 어서 와요.”

끝으로 그 자리에 참여한 것은 데일의 아버지, 앨런과 여동생 리제였다.

그들이 함께 자리에 앉았고, 비로소 황실의 궁정 화가가 그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사랑스러운 부부와 그들의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까지.

침묵 속에서 사각사각 화구(畫具) 소리가 아스라하게 울려 퍼졌다.

화가가 담고 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고 위대하며, 동시에 화목하기 그지없는 가정의 그림이었다.

“행복해요.”

엘레나가 감격을 참지 못하고 미소 지었다.

“나 역시 그렇소.”

그렇게 말하는 엘레나를 포옹하며 앨런이 미소 지었다.

「12. 여정의 시작」

치익!

그것은 증기(蒸氣)로 움직이는 열차였다. 몇 차례의 제국이 태어나고 스러지며, 황조가 거듭되며 국가의 형태가 바뀌고, 새로운 혁명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증거였다.

황금과 그림자의 군주, 그들의 투쟁조차 이제는 까마득하기 그지없는 전설 속의 이야기로 치부될 무렵.

열차의 출발이 가까워졌고, 정장 차림의 신사들이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 역시 그곳에 있었다.

무척이나 어린 남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두 눈동자에는 흑색의 붕대를 감았고,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볼 수 없는 저 너머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조차 아니었다.

그저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짚었고, 바로 그때였다.

지팡이 앞을 가로막으며 남자아이를 향해 뻗어주는 손길이 있었다. 무척이나 다정하기 그지없는 손길이었다.

“세피아 님.”

“곧 열차가 출발하겠구나.”

정장 차림의 여성이, 챙이 넓은 모자 사이로 그녀의 귀를 숨기며 속삭였다. 남자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가는 열차예요?”

“글쎄.”

세피아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라도 좋지 않겠느냐.”

“그렇네요.”

그 말을 듣고 남자아이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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