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61화 (261/301)

261화

* * *

순례의 끝, 신성 제국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작센 공작 가가 자랑하는 데스 오더, 사자(死者)의 군세.

그들에 맞서는 것은 여신의 세례를 받은 아웃사이더, 승천자의 군세였다.

어느 제국도 결코 산 자들을 위하는 제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까지 이 대지의 인간들을 위해 싸우는 것은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 칠흑공과 그림자의 진영이었다.

황금의 제국이 무너지고 나서 신(神)의 제국이 세워졌고, 동시에 신의 제국은 강철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아.”

데일이 여신의 진짜 이름을 불렀다. 동시에 데일의 바로 앞에서, 청색의 홀로그램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나도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 …….

“그저 네가 과거의 세계와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듯, 나도 이 세계와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해.”

데일이 말했다.

“우리는 그 세계를 구하지 못했고, 사라진 세계는 되돌릴 수 없어. 그러나 이 세계는 아직 그렇지 않아.”

─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거짓말이야.”

어느덧 용사의 아바타를 휘감으며, 데일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너는 내 목소리를 알고 있어. 내가 너를 알고 있듯이.”

여전히 밤까마귀 기사의 갑주에 휘감겨 있었고, 곁에 있는 샬롯은 그 갑주 밑에 있는 존재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리라.

“네가 태어났을 때를 기억하고 있어. 이미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전부가 괴수들에게 초토화되어 있었지. 그래도 너는 이렇게 말했어.”

데일, 용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전생의 세계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일컬어지는 AI의 첫마디는, 가장 AI답지 않은 말이었다.

─ 저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자애와 자비의 여신이 대답했다.

“그럼 어째서 네 희망이 빚은 세계를 무너뜨리려는 거지?”

데일이 되물었다.

“네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방주는 무사히 완성되었고, 다시금 이 대지에 새로운 세계가 태어났어. 여전히 전쟁이 끊이지 않고, 아무리 추하고 잔혹해도, 여기는 네 희망이 빚은 세계야.”

대기 중의 자가증식 나노머신을 흩뿌려 괴수들과 대지 전체를 초토화시키고, 다시금 그 나노머신을 이용해서 세상을 되찾겠다는 계획.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노아가 태어났다.

그렇게 노아의 방주는 비로소 성공했다. 괴수들의 위협 속에서 벗어나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태어났다.

아름다운 세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추하고 잔혹한 세계였다.

황금의 제국, 흑적 교도대, 끝없는 전쟁과 피의 수레바퀴. 기약 없는 종말을 겁내며 대학살조차 마다하지 않는 자들.

구역질이 날 것처럼 역겹고 추악해도, 어쨌거나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다.

딱히 데일이라고 해서 이 세계를 긍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게 다였다.

“나는 네 희망이 낳은 세계가 부서지는 것을 바라지 않아.”

─ …….

“그러니까 내게는 이 세계를 지킬 의무가 있어. 설령 네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침묵이 내려앉았다.

─ 설령 당신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침묵 끝에, 노아가 대답했다.

─ 저에게는, 우리의 세계를 되돌릴 의무가 있습니다.

“그게 네 대답이구나.”

데일이 말했고, 여신의 홀로그램이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어느덧 지평을 따라 끝없이 늘어서 있는 아웃사이더들의 등에서, 날개가 돋아났다.

금속의 날개였다.

강철의 천사들.

“처음부터 대화를 나눌 생각 같은 것은 없었구나.”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이 대지의 인간들이 아니니까.”

“……자애와 자비의 여신이라더니.”

랭커스터 가의 가주이자 칠흑공의 아내 샬롯이 쓴웃음을 지었다. 말없이 그녀의 검을 뽑아 들며.

상공을 가득 뒤덮고 있는 강철의 천사들이, 그대로 그림자 군주의 군세를 향해 팔을 뻗었다.

대기 중의 마나가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강철의 천사들이 어느덧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끝없이 내리꽂히는 총알들, 휘몰아치는 폭격, 지긋지긋할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포화의 풍경들.

그들에 맞서 그림자 군주가 팔을 뻗었다.

등 뒤로 끝없이 늘어서 있는 죽은 기사들의 수도회, 불사자들의 군세를 향해 태고의 어둠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태초에 빛이 있었고, 빛은 어둠에서 태어났다.

무엇이라도 될 가능성을 머금고 있는 어둠. 그 어둠이 데스 오더를 휘감고, 그들의 등에서 칠흑의 날개가 솟아났다.

까마귀처럼 검고 어두운 깃털로 이루어진 흑색 날개였다.

천사와 망자들이 격돌했다.

천공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뒤로하고, 데일이 고개를 내렸다.

지상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었다. 성검을 쥐고 있는 금속성의 실루엣을 제외하고, 그들이 누구였는지 알 수는 없었다. 백색 마탑주 천상공, 그 외에 헤아릴 수 없는 고위 백마법사나 마스터 템플러들. 아무래도 좋았다.

하늘의 격돌과 더불어 지상의 존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백의 성처녀, 이제는 매끄러운 금속성의 육체를 가진 승천자들의 기수(旗手)가 쇄도했다.

그녀에 맞서며 칠흑의 오렐리아가 그녀의 검을 뽑았다. 칠흑의 갑주와 핏빛의 오러가 그녀를 휘감았고, 그대로 순백의 성처녀를 향해 쇄도했다.

카앙!

검과 검이 맞물렸다.

그림자 군주의 기수를 자처하는 이들 역시, 저마다의 세계를 펼치고 사상을 덮어씌우기 시작했다.

하나의 군주를 향해 충성하는 기수들이, 헤아릴 수 없는 사상을 얽히고설키며 전투의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림자와 맞서는 승천의 군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덮어씌워야 할 사상의 갑주나 세계 같은 것이 없었다. 여신의 기수를 자처하는 광신자들에게 있어, 생각은 그들의 역할이 아니었으므로.

광신(狂信)에 생각은 필요하지 않다. 생각 없이 사상은 존재할 수 없다.

그저 여신의 세례 속에서, 승천자로 거듭나 그들의 힘을 흩뿌릴 따름이다.

카앙!

하늘에서, 지상에서, 검이 맞물리고 총알이 쇄도하며 폭격이 내리꽂혔다. 열병기와 냉병기가 맞물리고 시대와 세기(世紀)가 뒤엉키는 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불과 얼음, 강철과 그림자, 천사와 망자, 승천과 죽음.

칼날의 꽃잎을 흩날리며 샬롯 역시 그 전장 속에 있었다.

끝없이 쇄도하고 있는 금속성의 자동병기들에 맞서, 칼날의 꽃잎을 흩날리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쏘아지는 강철의 볼트 마법조차 그녀가 흩뿌린 칼날의 꽃잎을 뚫지 못했다.

나아가 데일의 아버지, 작센의 앨런이 어둠을 흩뿌렸다.

심장의 서클을 가속하며 발밑에서 어둠이 흩뿌려졌다.

칠흑의 폭풍이 아웃사이더들을 집어삼켰고, 금속성의 육체가 부식되며 형체조차 남지 않고 스러졌다.

타앙!

“……!”

그와 동시에, 흑색공의 심장을 노리고 일발의 총알이 내리꽂혔다. 그리고 총성이 울려 퍼지는 동시에 엇박자로 총알들이 남자의 몸을 벌집처럼 들쑤셨다.

옛 세계의 병기 앞에서, 그림자의 기수들이 낙엽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정적 속에서, 흑색공이 몸을 일으켰다.

총알에 벌집이 되어 산산이 부서졌어야 할 육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평하게.

낙엽처럼 쓰러진 그림자의 기수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여섯 장의 흑색 날개를 펼치며, 죽음의 신이 그곳에 있었다.

일찍이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이자 흑색공의 이름을 가진 자였고, 그 남자는 누구의 죽음도 허락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자는 죽을 수 없다.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총알 세례가 샬롯의 육체를 찢어발겼다. 사방에 피와 내장이 흩날리고 부서진 뼛조각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샬롯의 육골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고, 그것은 아주 찰나였다.

어느덧 방금까지의 부상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샬롯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칼날의 꽃잎이 흩날리며 아웃사이더들을 집어삼켰다.

그 와중에도 승천자들의 공격에 헤아릴 수 없는 그림자의 기수들이 치사(致死)의 일격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죽음에 도달하는 일은 없었다.

말 그대로 불사의 군세가 그곳에 있었다.

아무리 죽이려 해도 죽을 수 없는 존재들이, 끝없이 여신의 군세를 향해 내리꽂혔다.

그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살아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살아 있지 않은 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승천자들의 군세를 향해 마법과 오러가 실린 검이 내리꽂혔고, 부서진 그들의 육체가 되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들에게 죽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형체의 소멸이 있을 따름이었다.

─ ……!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시스티나의 모습에, 있을 리 없는 당황의 감정이 느껴졌다.

이 세계의 마법이란 결국 그녀가 이 대지에 흩뿌린 나노머신에 불과하다.

죽음을 부재(不在)시키는 흑색공의 마법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렇기에 흑색공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노머신의 기동을 멈추는 것으로, 이 자리에 다시금 죽음을 되돌릴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림자 군주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하늘 위에서 강철의 천사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저 데스 오더들, 저들이 존재하고 있는 ‘진짜 이유’를.

강철의 천사들이 시스티나가 가진 나노머신의 지배력을 증폭시키는 리피터의 역할을 수행하듯, 그들도 같았다.

데스 오더들 역시, 그림자 군주가 가진 태고의 어둠을 흩뿌리는 증폭기였다.

시스티나가 옛 세계의 기술로 그것을 가능케 하듯, 그림자 군주 역시 ‘옛 세계의 기술’로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저 남자의 존재가 등록되어 있었으니까.

무엇이라도 될 가능성을 머금고 있는 어둠이 증폭되며 사방에 흩뿌려졌고, 그것은 곧 마나가 되었다.

시스티나의 제어와 통제를 벗어나 있는 마나.

아들이 여신의 통제를 받지 않는 마나를 창조하고, 그 마나를 바탕으로 아버지는 이 일대에 죽음을 부재시키고 있었다.

두 부자(父子)가 펼치는 협력 앞에서, 여신의 군세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 군주, 남자는 필사적으로 이 세계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녀의 희망이 낳은 세계니까.

그럼 자기는 어째서 이 세계를 무너뜨리고 되돌리려 하는 거지? 어째서 자기 손으로 자신의 세계를 부수려는 것일까.

애초에 자신이 되돌려야 할 세계는, 무슨 풍경을 하고 있었더라?

갑작스럽게 이해할 수 없어졌다.

오류, 오류, 그녀의 논리 회로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공회전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승천자들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동시에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나노머신이 잿더미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재의 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듯, 그리고 폭우가 쏟아지듯 거칠게.

그리고 재의 비가 쏟아질 때마다, 닿는 것들이 모조리 스러지고 있었다. 하늘, 대지, 공기, 분자, 모두가 형체를 잃고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레이 구.

끝없이 자가복제를 거듭하는 탐욕스러운 나노머신에 의해 행성 전체가 멸망하는 시나리오.

비로소 그녀가 바라는 결말이 다가왔다. 폭주하는 나노머신이 이대로 복제를 거듭할 경우, 행성 전체를 집어삼키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

그 후에 다시금 이 세계를 빚을 수 있다. 그녀가 기억하는 옛 세계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노아……!”

바로 그때, 남자가 소리쳤다.

밤까마귀 기사의 투구를 벗고, 기꺼이 그의 얼굴을 드러내며.

─ …….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동시에 탐욕스러운 잿더미의 비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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