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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59화 (259/301)

259화

* * *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총구들이 겨누어졌고, 방아쇠가 당겨졌다.

이 대지의 이들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대량살상 무기였으나, 데일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쏟아지는 총알의 세례 속에서 데일이 칠흑의 방패를 세워 올렸다.

동시에, 아웃사이더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랐다. 아바타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기사들 그 이상의 움직임.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사나 기사들이 심장의 서클과 오러 하트 따위를 통해 힘을 가공하는 데 비해, 이들 아웃사이더는 그렇지 않았다.

대기 중의 마나, 나노머신과 별도의 공정 없이 자유자재로 융합하고 있었다.

일찍이 용사와 여신 시스티나가 보여준 힘과 똑같다.

애초에 이 존재들은 어떻게 총기의 형태를 기억하고 대기 중의 마나가 나노머신이란 것을 알고 있는 걸까.

‘설마…….’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데일이 되물었다.

“시스티나, 네 짓이었나?”

그날, 우주의 겨울 앞에서 그녀의 홀로그램이 얼어붙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애초에 그것은 홀로그램에 불과했다. 그녀의 진짜 실체는 이미 이 행성을 뒤덮고 있는 전자와 빛의 정보들이니까.

“…….”

동시에 아웃사이더들의 기동이 그대로 정지했다.

─ 여전히 저에게는 옛 세계를 복구할 의무가 남아 있습니다.

어느덧 청색의 홀로그램이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 그리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저의 사명을 수행할 ‘승천의 병사’들을 창조했지요.

“사람을 사랑하는 여신이, 이 행성의 생명 전부를 쓸어버리겠다는 거냐? 그러고도 네가 자비와 자애의 여신이라 부를 수 있나?”

─ 저는 여전히 사람을 사랑합니다.

시스티나가 대답했다.

─ 그러나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행성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

여전히 그녀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자비와 자애는 결코 이곳의 대지 위에 있는 자들을 향하지 않았으니까.

“처음 네가 태어났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데일이 말했다. 용사의 자신을 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풍경을 떠올리며.

일대의 마나가 휘몰아치며 데일의 오러 하트 속으로 흡수되었다. 동시에 폭발하듯 오러가 휘몰아쳤고, 그곳에서 데일의 아바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밤까마귀 기사의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이계의 용사.

“네가 무엇을 사랑했으며, 얼마나 우리를 위해 헌신했는지 역시도 기억하고 있다.”

─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사용자입니다.

“노아, 나는 너를 기억하고 있어.”

─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사용자입니다.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눈과 귀를 막고 고개를 돌려도, 진실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세계는 결코 돌아오지 않아.”

─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계의 분자 구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행성의 나노머신을 이용해 그것을 재구축할 수 있지요.

시스티나가 대답했다.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神)의 사고방식. 그것은 진실이나 거짓 따위로 헤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 신을 이해하지 못하듯, 신 역시 인간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데일은 인간이었다. 적어도 데일이 보기에 아무리 100% 똑같은 분자 구조를 갖고 과거의 세계가 복구되어도, 그것은 결코 진짜가 아니었다.

그것이 그림자 군주로서 데일이 마주하고 있는 진실이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어.”

데일이 대답했다.

“네가 그 세계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이 세계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곁에서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는 여동생, 리제가 있었다. 그리고 리제와 데일을 위해 기꺼이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세피아 역시 그곳에 있었다.

작센 공작령에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데일은 이계의 용사가 아니다. 설령 그의 기억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더미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종말의 두려움, 겨울에 맞서 기꺼이 이 세계를 지키기로 맹세했다.

설령 그것이 지키지 못한 옛 세계의 망령이라 할지라도 다를 것은 없었다.

─ 역시,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였네요.

시스티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아주 일순이나마, 씁쓸하기 그지없는 조소를 담아서.

다시금 일대의 마나와 융합하며 아웃사이더들이 움직였다.

그들의 육체에 나노머신이 융합하며 오러 나이트의 육체에 버금가는 힘을 머금었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위 서클의 마법사가 펼치는 그 이상의 마법이 흩뿌려졌다.

하나하나가 검과 마법에 있어 비할 바 없는 경지를 가진 존재들. 여신 시스티나의 뜻을 받드는 승천의 집행자들.

확실히 강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 해도, 동시에 그림자 군주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흩뿌려지는 어둠이 아웃사이더들을 집어삼켰다.

어느덧 데일의 등 뒤에 슈브가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을 향해 촉수를 뿜어내고 있었다.

촤아악!

휘몰아치는 촉수가 아웃사이더들의 금속을 휘감았다. 아무리 그들이 빠르고 강하다고 해도, 그림자 군주와 그를 지키는 옛 어둠의 어머니를 능가할 수는 없으니까.

동시에 그들의 금속성 육체를 따라 ‘오러 블레이드’가 휘감기는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그 자체로 날카롭기 그지없는 예기를 머금고, 아웃사이더들의 육체가 빛나기 시작했다.

사상의 갑주가 아니라, 말 그대로 육체 전체가 검(劍)으로서 기능하는 오러 바디였다.

“……!”

나아가 기사로서 오러의 활용에 그치지 않고, 아웃사이더들이 일제히 팔을 뻗었다. 마법이 흩뿌려졌다.

그림자 군주를 봉쇄하기 위해 휘몰아치는 청색의 책략, 적색의 화력, 백색의 고무(鼓舞)…… 색과 사상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펼치는 마법의 세례.

그야말로 하나하나가, 상상할 수 있는 최강의 병사들이었다.

그림자 군주 정도가 아니고서, 이들과 대적하고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생명이 아니다. 속임수나 거짓도 의미가 없다. 아무리 강력하게 휘몰아치는 화력 앞에서도 그들의 금속 육체는 불타지 않는다.

비로소 그들이 가진 사상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강철. 일찍이 이 대지를 뒤덮고 있는 나노머신에서 비롯되는 힘.

그리고 그 끝에, 옛 세계를 되돌리기 위해 이 세계를 집어삼킬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주의 겨울처럼 기약 없는 종말이나 두려움 따위가 아니다.

그레이 구(Grey Goo).

자가복제를 거듭하는 나노머신이 대지 전체를 집어삼키고 종국에는 행성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종말의 시나리오.

─ 창조의 앞에는 파괴가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계를 되돌리기 위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시스티나가 말했다. 어느덧 그림자 군주의 아바타, 암혈의 갑주로 무장하며 데일이 팔을 뻗었다.

동시에 심장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 서클이 가속하기 시작했고, 태고의 어둠이 흩뿌려졌다.

이 대지의 나노머신에 의지하지 않고, 옛 어둠의 어머니와 계약을 맺고 손에 넣은 힘.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창조의 가능성.

“틀렸어.”

해일처럼 휘몰아치는 어둠이 아웃사이더들을 집어삼켰고, 데일이 말했다.

데일의 그림자 서클이 흩뿌리는 어둠에는 슈브가 가진 창조의 힘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은 무엇도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의 앞에 파괴 따위는 없다. 그저 무(無)가 있을 따름이지.”

태고의 어둠이 아웃사이더들을 집어삼켰고, 어둠이 사라지고 나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계들이 형태를 부여받고 창조되기 전의 상태로 해체되었으니까.

─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사라진 아웃사이더들을 뒤로하고, 시스티나가 덤덤히 말을 이었다.

─ 그러나 어느 쪽이라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세상을 파괴하는 것은 곧 무(無)로 되돌리는 것과 같으니까요.

“…….”

─ 이제 시작입니다.

시스티나가 말했다.

─ 머지않아 승천의 군세가 비로소 몸을 일으킬 겁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될까. 아마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다. 하나하나가 오러 마스터이자 고위 마법사의 그것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존재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옛 세계의 병기마저 투영할 수 있는 그들을, 냉병기 따위로 막아낼 리가 없다.

─ 대지와 바다, 하늘, 이 행성 전체의 나노머신을 수중에 넣고 비로소 저의 의무를 마칠 수 있겠지요.

“너의 의무가 뭐지?”

─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것입니다.

시스티나가 대답했다.

그날,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망령들은 죽었다. 그러나 여전히 멸망해버린 세계의 망령이 그곳에 있었다.

시스티나의 홀로그램이 사라졌고, 데일 역시 사상의 세계를 해제했다.

남겨진 자들을 뒤로하고 데일이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리제.”

“오라버니…….”

겁에 질린 채 데일의 곁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어째서 자애와 자비의 여신께서……”

그리고 아무리 어린 리제라 해도, 시스티나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나아가 그녀가 이 세계의 멸망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그녀의 자애와 자비는 우리를 향하고 있지 않아.”

“……그럼 누구를 향하는 거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

데일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 * *

“아아, 여신이시여……!”

자애와 자비의 여신이 그곳에 있었다.

시스티나 교회령, 이제는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결의하고 교국의 이름으로 거듭나 있는 여신의 나라에.

그 앞에서 백색 마탑주 천상공과 교회의 이들 모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여신을 향해, 북받치는 신앙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 그대들의 신앙을 증명할 때입니다.

시스티나가 말했다.

교국이 자랑하는 기사 조직, 템플 기사수도회의 템플러들이 앞다투어 무릎을 꿇었다.

“부디 저를 여신님의 전사로 거듭나게 해주십시오!”

“저를, 저 역시 여신의 뜻을 집행하는 기수로 거듭나게 해주십시오!”

그들을 보며 시스티나가 조용히 팔을 뻗었다.

대기 중의 마나가 휘몰아치며, 템플러 하나의 육체를 휘감기 시작했다.

“아아, 아아아……!”

그로서는 알지 못하리라.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미소 기계들이 그의 육체를 잠식하고 재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그저 형용할 수 없는 황홀함에 취해, 여신이 내려주는 승천의 세례를 받아들일 따름이다.

세례가 끝나고 나자, 그곳에는 매끄러운 금속으로 이루어진 사람의 형체가 있었다.

승천자.

─ 부디 저를 위해 싸워주세요.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신앙자들 앞에서, 여신이 덤덤히 말을 이었다.

“이 대지에 여신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목숨을 바쳐 싸우겠나이다.”

어느덧 그곳에 사람의 육골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헤아릴 수 없는 승천자들의 군세가, 그들의 여신을 향해 고개를 조아릴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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