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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58화 (258/301)

258화

* * *

적색 마탑의 고위 마법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대폭발.

버섯구름이 밤하늘을 뒤덮었고, 말 그대로 소멸의 폭풍이 몰아쳤다.

전술 핵무기의 위력에 버금가는 터무니없을 정도의 파괴력이었고, 폭발 속에서 데일이 재빨리 어둠의 방패를 세워 올렸다.

그림자 군주의 방패조차 요동칠 정도의 압도적 폭발. 방패를 세울 힘이 없는 이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비로소 폭염이 사그라들고 주위를 둘러보자, 그곳은 텅 비어 있는 크레이터 속이었다.

그곳에 남겨진 데일과 리제, 세피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침묵을 지켰다.

“이게 대체…….”

납치범들과 그들의 아지트는 말할 것조차 없이, 도시 일대가 말 그대로 지도에서 지워져 있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이나 알기 쉬운 폐허조차 없었다. 말 그대로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고작 입막음을 위해서……?”

데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덤덤히 중얼거렸다.

아웃사이더, 외부자들. 그들의 존재가 입에 담기기 무섭게 벌어진 일들이었다.

“오라, 버니?”

폭발 속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조차 헤아리지 못하고, 리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뭐가…….”

“걱정할 것 없어, 리제.”

리제가 뭐라 말을 이을 틈도 없이, 데일이 조용히 리제를 포옹하며 속삭였다. 마찬가지로 냉기의 방패를 세운 세피아가 말을 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서 데일이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그들의 이름 하나를 입에 담았다는 이유로 이 정도의 짓을 저지르는 자들입니다. 필시 보통 상대가 아니겠지요.”

“……전쟁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세피아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우주의 종말, 겨울마저 물러나고 황금의 제국이 무너졌다. 전쟁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들의 뒤를 쫓아야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방을 알고 있는 고리가 사라졌다. 어떻게 할 것이냐.”

“여기 있는 자들은 그저 끄나풀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 규모의 일을 저지를 정도의 자들이니, 필시 그 이상의 이들과도 엮여 있을 테지요.”

그렇게 말하며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이곳 발라이나 백국의 군주를 자처하는 자. 왕들의 감시자로서 당초 데일이 수행해야 할 의무.

처음에는 아래부터 차례차례 증거를 모아 움직일 생각이었으나, 상황이 달라졌다.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어디로 가버린 거예요?”

바로 그때, 데일의 품에서 리제가 속삭였다. 코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서도 무엇이 일어났는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

데일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 리제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잠시 말을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폭발이 일어났다.”

침묵 끝에 데일이 말했다.

“도시 전체를 휘감는 규모의 대폭발이고, 우리를 제외하고 이곳에 살아남은 자들은 없어.”

“모두 죽어버린 거예요?”

“그래.”

“어째서……”

리제가 흐느끼듯 웅얼거렸다.

“어째서 그런 잔혹한 짓을 저지르는 거죠?”

“그럴 힘이 있으니까.”

데일이 대답했다.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게 다야.”

* * *

그로부터 얼마 후.

발라이나 백국의 수도, 바로 그곳에 있는 백작성을 향해 데일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누구냐!”

성을 지키는 기사들이 검을 고쳐 잡으며 그의 이름을 물었고, 데일이 로브를 벗으며 덤덤히 대답했다.

“백작을 보러 왔다.”

“뭐라고……?”

“작센 대공국의 수장으로서, 그대들의 군주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

데일이 말했다. 그 이름에 일순 기사들이 숨을 삼켰으나, 뒤이어 의심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되물을 따름이다.

“천하의 작센 대공께서, 이런 야밤중에 의전조차 없이 백국을 찾으셨다고?”

“그래.”

아무리 국가를 자청하고 있다 해도, 결국에는 적당히 힘 있는 일개 백작령이자 그곳의 백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기사들이 북부 작센 대공국의 수장, 칠흑공의 얼굴을 기억할 리 없으리라.

“못 믿겠나?”

데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팔을 뻗었다. 그의 심장에서 일곱 개의 서클과 그림자 서클이 각각 가속했고, 발밑을 따라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가 자랑하는 어둠이 휘몰아쳤다.

“다시 묻겠다. 천하의 작센 대공이 의전조차 없이 백국의 군주를 보러 찾아온 것이, 그렇게나 수상스럽나?”

당장이라도 병사들을 집어삼킬 듯 춤추는 어둠에, 기사들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닙니다! 저, 저희는 그저……”

“길게 말할 생각은 없다. 작센의 데일, 칠흑공이 그대들의 군주를 보러 왔다고 전하라.”

“알겠습니다!”

데일이 말했고, 기사들이 다급히 등을 돌리며 물러났다.

“오라버니…….”

아울러 싸늘하게 말을 잇는 데일을 보며, 리제가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지금까지 알고 있는 오라버니가 아니라, 낯설기 그지없는 존재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내가 두렵니, 리제.”

“그, 그렇지 않아요.”

리제가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저 제 앞에서 보여주시는 모습과 너무나도 달라서, 조금 놀랐을 따름이에요.”

“많이 놀랐겠지.”

“…….”

“그래서 이 여정에 리제가 함께 하기를 바랐어.”

“어째서요?”

“리제가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데일이 말했다.

“나도 아버지도, 작센 공작 가의 수장으로서 힘을 가진 자들이고, 우리 작센 가가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힘…….”

“그리고 내가 가진 힘들은 곧 너의 힘이기도 해.”

데일이 말했다.

“나는 훗날 네가 힘을 가진 자가 되었을 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하길 바라.”

“…….”

리제가 침묵했고, 데일은 그대로 백작성의 대회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머지않아 백국의 군주, 그러나 여전히 백작의 작위를 가진 발라이나 백작이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 의회에서 그 남자는 일찍이 칠흑공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가 설령 호위하는 이들 하나 없이 홀몸이라 해도, 설령 이곳이 그의 왕국이라 해도, 그를 어쩔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으리라.

설령 그가 거느린 기사나 마법사, 무기를 쥘 수 있는 장정 모두를 합친들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저 괴물의 손짓 하나로 그들 모두가 쓸려나갈 테니까.

“자, 작센 대공 각하……!”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오직 하나였다.

“어, 어찌하여 말씀도 없이 이렇게 누추하신 곳에 직접 행차를!”

발라이나 백작이 무릎을 꿇었다.

“너의 영지에서 벌어진 폭발을 기억하고 있나.”

“그, 그렇습니다! 아직 무엇이 일어났는지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

“아웃사이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나?”

데일이 되물었다. 백작의 표정이 싸늘하게 질렸다. 그러나 데일이 말을 내뱉는 동시에 일대의 세계가 역전되었다.

여전히, 희고 어두운 겨울밤이 그곳에 있었다.

“다시 묻겠다. 아웃사이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나?”

“저, 저,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말을 마칠 새도 없이, 데일의 발밑에서 어둠이 휘몰아쳤다. 여전히 그를 지켜보고 있는 리제와 세피아의 존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느 때의 잔혹하기 그지없는 칠흑공이 그곳에 있었다.

휘몰아치는 어둠이 촉수처럼 그의 사지를 포박했고, 데일이 덤덤히 걸음을 옮겼다.

“도시 하나가 지도상에서 사라졌고, 그 도시의 사람들 모두가 잿더미가 되어 스러졌다. 아직도 내가 네 헛소리에 어울려줄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데일이 말을 이었다.

“눈을 감으렴, 리제.”

동시에 그 의미를 헤아린 세피아가 재빨리 리제의 눈을 가려주었다.

콰직!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림자 속에서 꼬챙이가 솟아 그대로 백작의 몸을 향해 내리꽂혔고, 피가 튀었다.

“그들이 이 대륙의 존재들, 특히 그중에서도 엘프에 흥미를 갖고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아웃사이더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낱낱이 밝혀라.”

“그, 그들이 직접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아웃사이더들께서는 처음부터 이곳에 계셨으니까요!”

고통 속에서 발라이나 백작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데일이 펼치고 있는 사상의 세계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고위 마법사가 펼친 사상의 세계에, 비로소 침입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그리고 그 국외자들의 모습을 보고, 데일 역시 숨을 삼켰다.

그곳에 있는 존재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아가 생명조차 아니었다. 그저 몸 전체가 매끄러운 금속성의 질감으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들.

이족보행형 자동기계, 오토마타(Automata)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웃사이더……?”

“■■■■─.”

아웃사이더가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동시에 육체에서 뜨거운 기체가 뿜어져 나왔다. 증기였다.

─ 아, 시시해!

바로 그때, 데일의 곁에서 슈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 인간이 아니잖아! 하나도 재미없는 존재들이야.

“……백작, 어떻게 저 존재들과 대화를 했지?”

“너희들의 비효율적이고 미개하기 그지없는 말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어렵지 않으니까.”

동시에 아웃사이더 하나가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너희가 동쪽의 대륙에서 찾아온 자들이냐?”

“벨 에포크(Belle Epoque). 우리의 대지를 너희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는 모양이구나.”

아웃사이더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그의 육체에서 또다시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대륙의 존재들을 손에 넣어가며 무엇을 꾸미고 있지?”

“오해하지 마라,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필멸자여.”

필멸자. 그 말에 데일이 다시금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너희들을 교화하러 온 것이다.”

“교화라고?”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유기물 구조에 의지하는 너희들에게, 기꺼이 승천의 세례를 베풀어주고자 찾아왔다.”

“…….”

“그리고 승천의 세례는 엘프, 대기 중의 나노머신과 높은 동기율을 가진 종족들부터 시작될 것이다.”

일말의 의심이나 주저도 없이 아웃사이더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그럴 수는 없지.”

“승천의 세례를 포기하고, 교화를 거부하는 미개자들 모두를 존중해줄 수는 없다.”

“그럼 어쩔 셈이지?”

데일이 되물었고, 동시에 아웃사이더가 팔을 뻗었다.

일찍이 옛 지구를 뒤덮은 나노머신, 여신 시스티나가 흩뿌린 마나가 그들의 육체와 동화하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서클을 이용해 마나를 체내로 받아들여 가공하는 방식이 아니다. 거추장스러운 일체의 공정을 배제하고, 대기 중의 마나가 그들의 육체에 융합되었다.

“말살하라.”

휘몰아치고 있는 마나가 그들의 금속성 육체에 덧씌워졌고, 비로소 병기의 형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서 지긋지긋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검이나 창 따위의 냉병기가 아니었다.

열병기(Hot Weapon)……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총구들이 데일 일행을 겨누고 있었다.

동시에 방아쇠가 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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