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56화 (256/301)

256화

* * *

“리제와 함께 여행을 떠나려고 합니다.”

“위험하지 않겠느냐.”

데일의 말에, 아버지 앨런이 덤덤하게 되물었다.

“제가 함께하고 있는데, 걱정할 게 있나요.”

“그것도 그렇구나.”

데일이 태평하게 대답했고, 그 말에 앨런이 조용히 웃었다.

“그러나 리제의 여행과 별개로, 너에게도 달리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

“왕들의 감시자로서, 발라이나 백국의 왕이 가진 자격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그 일에 리제와 함께하겠다는 것이냐?”

“설령 제가 발라이나 백국을 지도상에서 지운다고 할지라도, 그들로서는 리제의 털끝 하나 손대지 못할 겁니다.”

“왕의 감시자라…….”

데일의 말에, 앨런이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네가 왕들의 행위를 감시하고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다.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네 활약이고, 너에게는 마땅히 그러할 자격이 있으니까.”

침묵 끝에 앨런이 말을 잇는다. 여느 때처럼, 데일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아버지로서.

“그러나 누구도 감시자를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를 감시하는 자들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데일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버지께서, 그리고 이 여행에서 리제가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

“리제 앞에서 절대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리라 약속드립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구나.”

작센의 앨런, 이제는 작센 대공의 대리자로 그 임무를 수행하는 데일의 아버지가 웃었다. 등 뒤에서 역광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거기서 드리워지는 음영을 뒤로하고.

* * *

“리제, 위험하지 않겠니?”

“그럴 리가요! 오라버니께서 함께하고 계시는걸요!”

짐짓 걱정스러운 듯 묻는 어머니 엘레나의 말에, 리제가 태평하게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어엿한 작센 가의 꼬마 숙녀로서, 어느 때와 비교할 바 없이 들떠서.

“바깥의 세상은 여전히 위험으로 가득 차 있으니, 신중하게 처신하렴.”

“믿어주세요!”

신중함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즉답이 돌아왔다. 그렇기에 엘레나는 여전히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동시에 걱정 이상으로 그녀의 자랑스러운 아들을 신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세상의 누가 감히 네 오라버니를 해할 수 있겠니.”

“과장이에요, 어머니.”

그 말을 듣고 침묵을 지키는 데일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제 곁에 있는 리제가, 세상의 그 누구보다 안전하다는 사실은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바랄 게 있겠니. 작센 가의 피는 속일 수 없고, 리제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겠지.”

진리를 탐구하며 끝없는 호기심을 가진 피의 업. 그것이 작센 공작 가였다. 비록 지금에 이르러 그들이 추구하는 진리가 더 이상 과거처럼 끔찍하지는 않다고 해도, 여전히 호기심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저는 리제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그녀의 뜻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니까요.”

“부디 리제를 잘 지켜주렴.”

“믿어주세요, 어머니.”

데일이 고개를 숙였다.

동생과 함께하는 여행에 앞서, 걱정하는 부모의 허락을 받는 것. 어느 세계에서나 크게 다를 것도 없는 풍경이었다.

* * *

리제는 아직 능숙하게 말을 탈 수 없다. 그녀의 승마술은 아직 대륙의 거친 땅을 활보하는 데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리제와 데일이 하나의 말에 타는 일은 없었다.

“고마워요, 세피아 님.”

“개의치 말거라. 사랑스러운 제자들을 위하는 일이 아니더냐.”

리제를 태우며 말을 몰고 있는 세피아가 말했고, 데일이 조용히 웃었다.

데일과 리제의 스승, 그리고 스승의 두 제자가 함께 북부의 동토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리제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고 하기에, 무척이나 놀랐었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구나.”

즐거운 듯 말을 잇는 세피아를 보며,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종말의 두려움이 물러나고 나서 세피아는 달라졌다. 더 이상 그녀의 가슴을 옥죄는 시린 냉기가 사라졌고, 늘 그녀의 주위를 감돌고 있는 정체 모를 냉기 역시 사라졌으니까.

“함께 해주셔서 고마워요, 선생님!”

“설령 어디서나 마법의 수행을 게을리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세피아가 다정하게 말했고, 리제가 동감이란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이 무너지고, 전쟁도 끝이 났다.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데일의 몫이었다.

지켜야 할 이들, 리제를 위한 세계.

그것을 위해 기꺼이 왕들의 감시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홀로 능히 일국을 무너뜨릴 힘을 갖고서, 자격 없는 군주들에게 책임의 대가를 묻는 것.

비록 제국 의회에서 그렇게 말을 했어도, 모두가 데일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이 대륙의 평화를 해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리라. 그 말이 그저 알기 쉬운 겁박에 불과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렇기에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이 대륙의 어느 군주조차 청색의 거미줄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들의 어리석은 행위가 가져올 대가는 오직 하나란 것을.

* * *

리제의 부모님이 그토록 걱정해 마지않은 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작센 공작령을 넘어 중부를 가로지를 무렵, 산맥의 비좁은 골짜기를 지나는 와중의 일이었다.

“가진 것들을 다 내놓아라!”

화살 하나가 경고하듯 데일 일행의 앞을 향해 내리꽂혔고, 화살을 보며 리제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머지않아 골짜기의 경사 위에서 도적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도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무장에는, 황금의 제국을 상징하는 금색의 쌍두룡 문장(紋章)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제국군의 패잔병, 전쟁이 끝나고 제3제국이 몰락하고 나서 그대로 도적의 길로 흘러들었으리라.

데일이 흘끗 도적이 되어버린 패잔병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투구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비쩍 말라서, 두개골의 뼈가 그대로 드러날 지경이었다.

전쟁은 늘 상처를 남기고, 커다란 전쟁일수록 예외가 아니다. 대전쟁에서 막대하기 그지없는 이득을 취한 이들이 있었고, 동시에 하루아침에 그들의 전부를 잃고 길거리로 내쫓기는 자들도 있었다.

제국을 위해 충성했고, 제국이 무너지고 나서 하루아침에 패잔병이 되어버린 이들처럼.

“저는 그대들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데일이 대답했다.

“마침 저에게 금화 세 닢이 있고, 이것으로 그대들 모두가 식사를 해결하기에 족할 테지요.”

“오라버니……!”

순순히 가진 것의 일부를 내놓으려는 데일을 보고, 리제가 숨을 삼켰다. 그러나 세피아는 당황하지 않고 리제를 향해 속삭였다.

“조용히 지켜보거라, 리제. 네 오라버니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좋다. 제의를 받아들이지.”

데일이 보란 듯 금화 세 닢을 꺼내자, 앞을 가로막고 있는 도적 하나가 다가섰다.

데일이 그에게 금화를 내밀기 무섭게, 도적이 어느덧 품에서 스틸레토 하나를 뽑아들고 있었다. 칼끝이 어느덧 데일의 목덜미에 닿고 있었다.

“순순히 금화를 세 개나 꺼내주는 게 영 의심스러운데 말이야. 너, 더 갖고 있지?”

“갖고 있지요. 그러나 이 이상은 드릴 수 없습니다.”

데일 역시 순순하게 대답했다.

“저는 그대들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 제가 일손이 부족한 영지를 하나 알고 있지요. 제 금화를 갖고 끼니를 해결하시고, 그곳으로 향해 정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더러 역적 작센 놈들의 땅에 고개를 조아리란 거냐?!”

도적 하나가 위협적으로 스틸레토를 고쳐 잡았다. 데일이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미 제국은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대들의 도적 사업도 썩 수완이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이 새끼가……!”

“기, 기다려!”

도적 하나가 뭐라 소리를 높이려는 찰나, 그를 막아서는 또 하나의 패잔병이 있었다.

“형님!”

풀 플레이트 아머로 전신을 휘감고 있는 기사였다. 그 정도의 갑주를 가졌을 정도니, 적어도 이곳의 어중이떠중이 병사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자이리라.

“이, 이 사람은 우리가 감히 어쩔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쓸데없는 생각 따위는 버려라.”

오러를 다룰 정도의 기사. 그렇기에 데일이 가진 힘을 극히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그 정도의 기사조차 도적질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것이, 제국 패잔병들의 말로다.

가진 자가 있고 잃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제국에 충성하는 자들은 정말로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그들이 충성하는 군주의 잘못이었을 따름이지.

“……금화 다섯 닢을 드리겠습니다.”

데일이 말했다.

“이 금화를 받고 작센 대공국 북부에 있는 발마르 자작령으로 향하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이 서신을 내밀고, 일자리를 요구하십시오. 오러를 쓸 수 있는 기사가 함께 있으니, 발마르 자작 역시 기꺼이 그대들을 받아들일 겁니다.”

작센 대공국을 비롯해 북부 일대는, 전쟁의 승리자로서 그 어느 때와 비할 바 없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비록 하나의 국가를 천명하지는 않으나, 그들이 이 대륙에서 가장 강대하며 힘을 가진 이들이란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기에 데일이 품에서 그의 서신 하나를 꺼냈다.

마법으로 작센 가의 밤까마귀 상징이 새겨져 있는 공증(公證)이었다.

패잔병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오직 하나, 기사는 그 공증이 뜻하는 바를 알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서, 서, 설마……!”

두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주저앉아, 더듬거리듯 말을 잇는다.

지금까지 그들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누구였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까닭에.

“치, 칠흑공께서 어떻게 이곳에……!”

그 이름을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제국을 무너뜨리고 승리를 가져온 작센 가의 정점.

이 대륙에서 가장 강대하고 어두운 힘을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자.

“약속은 약속입니다.”

데일이 주저없이 금화를 꺼내 내밀었다.

“그대와 그대의 부하 전부를 배가 터질 정도로 먹이고도, 많은 것들을 살 수 있는 금액이지요. 이걸로 그대들의 도적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 대공국의 자작령에 몸을 맡기십시오. 그럴 경우, 저는 그대들에게 아무 잘못도 묻지 않겠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도적질이 옳다고 옹호해줄 마음은 없었으나, 세상이 모두 옳은 일로서 굴러가는 것도 아니다. 대다수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다.

“가, 감사합니다……!”

뜻밖에 내밀어준 구제의 손길에, 기사를 비롯해 도적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저는 당신들을 믿고 있습니다. 부디 제 신뢰에 보답해주시길 바랍니다.”

데일이 말했고, 그 목소리에는 처음으로 감정 없는 싸늘함이 깃들어 있었다. 도적들이 다시금 고개를 조아렸고, 데일이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많이 무서웠지, 리제.”

데일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물었다. 리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리제가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아직 제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더 많이 보고 싶어요.”

“그렇게 될 거야.”

리제가 알지 못하는 세계.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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