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46화 (246/301)

246화

* * *

천지를 찢을 듯 커다란 용에 맞서, 그림자 거신(巨身)이 몸을 일으켰다.

신화 속에서나 볼 것 같은 격돌이었고, 그들의 격돌 앞에서 그 이외의 전쟁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황금의 용이 포효했고, 동시에 용의 꼬리가 내리꽂혔다.

칠흑의 촉수가 끝없이 휘감기는 그림자 군주가, 그대로 팔을 뻗었다. 동시에 그의 육체를 휘감고 있는 어둠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데일이 펼친 그 어느 것과도 비할 바 없는 터무니없을 정도의 힘.

그림자 군주로서, 말 그대로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의 강대함이 요동치고 있었다.

동시에 딛고 있는 세계가 끝없는 빛에 휩싸였다.

밤의 어둠을 몰아내는 새벽녘의 여명이었다. 그 끝없는 여명의 빛을 흩뿌리며, 황금의 군주가 펼친 세계가 일대를 끝없이 집어삼켰다.

“네놈 따위가 황금의 무엇을 알고 지껄이는 것이냐.”

금빛의 용이 부르짖었다.

“보아라, 이 찬란하게 빛나는 여명을.”

“여명이라.”

데일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해가 뜨고 어둠이 내려앉고, 다시 해가 뜨는 이치를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 어려웠나?”

“이 세상이 결국 어둠으로 끝나리란 진실을 우리 모두 알지 않나.”

“내가 알 바 아니지.”

데일이 남의 일처럼 싸늘하게 내뱉었다.

“네놈이 필사적으로 이 세계를 지키려고 했듯이, 나 역시 내 세계를 지키려고 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겠지.”

전생의 세계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국의 야망에 희생되고 진리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실험에 희생되어야 했을 죄 없는 이들. 그들 역시 저마다의 세계가 있었다.

이 대륙을 가득 메우는 것은 그들의 세계를 집어삼키며 쌓아 올린 피의 역사다.

“기약조차 없는 세계의 멸망 따위를 전전긍긍하며, 이 세계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세계가 희생되었는지 기억하고 있나?”

“하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계가 희생되어야 하느냐고?”

그 말에 황금의 용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전부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이 세계에 끝나지 않는 황금을 가져오기 위해, 나는 기꺼이 이 우주의 세계 전부를 희생시킬 수도 있다.”

그 말을 듣고 데일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 대륙을 통일하고 나서, 진리의 세계에 도달하고 해답을 얻기 위한 실험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진리의 세계뿐이 아니다.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의 제국은 이 세계의 끝에 찾아올 얼음과 어둠을 막아낼 테니까.”

“유감스럽게 됐네.”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차갑게 조소했다.

“네놈의 거짓은 아름답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처음부터 추하고 이기적이기 그지없는 욕심으로 가득하지.”

거짓과 황금의 군주를 조소하며 그림자 군주가 몸을 움직였다.

휘몰아치는 그림자가 황금을 향해 쇄도했고, 흩뿌려지는 빛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진실이 비로소 악의를 갖고 내리꽂혔다.

일찍이 불사공 프레데릭이 보여준 소멸의 거품을 기억하고 있다. 적어도 그의 말 전부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끝’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찬란하게 빛나는 용의 금빛 비늘을 향해 그림자 군주의 어둠이 휘몰아쳤고, 비늘이 흑금(黑金)처럼 검고 어둡게 빛나며 부식되기 시작했다. 황금의 용이 다시금 포효를 내질렀다.

동시에 용의 앞발이 휘둘러졌고, 아가리가 쇄도했다.

데일을 휘감고 그림자 거신을 이루고 있는 촉수들이 갈가리 찢겨나갔고, 그때마다 다시금 촉수들이 솟아올라 육신의 일부를 자처했다.

황금의 용이 끝없이 도륙에 도륙을 거듭했고, 그때마다 촉수들이 솟아나 용의 일격을 맞받아쳤다.

그리고 데일이 끝없이 그의 어둠을 흩뿌려 황금을 더럽힐 때마다, 검게 부식되는 비늘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금색 비늘이 솟아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과 그림자가 격돌했다.

탐욕과 거짓으로 일그러진 황금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감히 마주할 수 없는 잔혹한 진실로 일그러진 어둠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검고 어둡게 물들기 시작했다.

황금이 그림자에 집어 삼켜지고, 그때마다 황금의 빛이 그림자의 어둠을 몰아냈다.

빛과 어둠이 맞물리며 격돌했고, 황금의 용과 그림자 거신이 끝없이 뒤엉키고 있었다.

신화의 끝에서 나올 것 같은 존재들이 비로소 격돌했다.

“이 아름다운 빛을 보아라, 그림자의 아이야! 이 빛이 가진 찬란함을 보아라! 이 찬란함을 진실과 그림자 따위에게 빼앗기게 놔둘 수는 없다! 누구에게도 황금을 넘겨줄 수 없다!”

황금의 용이 부르짖었고, 그 말에 데일이 조소했다.

이것이었다.

세상의 종말을 막겠다는 거창한 대의도 무엇도 없다. 거짓과 진실 같은 것은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탐욕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황금을 넘겨줄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심지어 세상의 끝에 다가올 그림자와 얼음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너의 제국을, 나아가 이 세계를 지키겠다는 그럴싸한 헛소리를 입에 담았나?”

그렇기에 그림자 군주가 입을 열었다.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비로소 이 지긋지긋한 대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까닭에.

이것은 처음부터, 그 어느 세계에나 존재하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밥그릇 다툼이었다. 자신이 가진 황금을 결코 남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집착.

황금의 진짜 이름은 탐욕이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넘겨줄 수 없다는 집착. 불사를 손에 넣고 제국을 손에 넣고, 그럼에도 여전히 황금의 군주가 가진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림자가 태어났다. 마땅히 가져가야 할 것을 가져가기 위해서.

“내가 너에게 진짜 진실을 알려주지.”

그림자 군주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가진 전부를 앗아가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네놈 따위가 감히……!”

황금의 용이 포효했고, 다시금 그림자 군주를 향해 짓쳐 들었다. 동시에 그림자 군주가 말없이 두 팔을 벌렸다.

마치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그림자의 거신이, 두 팔을 뻗어 황금의 용을 휘감았다. 용의 입에서 끝없이 내뱉어지는 금빛 숨결과 아가리가 끝없이 그림자 군주의 육신을 찢어발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 군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용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 포효 앞에서조차 그림자 군주는 굴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존재를 이루고 있는 어둠이, 끝없이 황금을 집어삼켰다.

그림자 거신의 육체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어둠이 녹아내려 일대를 집어삼키는 홍수처럼 대지를 가득 집어삼켰고, 그림자의 홍수 속에서 황금의 용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림자의 군주로서, 나는 마땅히 네가 가진 전부를 앗아갈 것이다.”

그림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황금의 군주가 펼친 여명의 세계 전부를 집어삼키는 종말이 되어, 덤덤하게 포고할 따름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빛과 여명이 스러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덧없는 빛이었고, 머지않아 최후의 빛이 사그라들었다.

* * *

데일이 고개를 들자, 그곳은 희고 어두운 겨울밤이었다.

끝없는 정적 속에서 데일이 고개를 내렸다.

황금의 갑주를 입고 있는 남자가, 그곳에 쓰러져 있었다.

“이것으로…….”

전투를 끝마치고 나서, 데일이 나직이 고개를 돌렸다.

겨울밤을 가득 메우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시체와 피바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들이었다.

더 이상의 전투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두 군주가 격돌했고, 비로소 그 승부가 끝이 났으니까.

전부 끝이 났다. 이곳에서 제국을 상징하는 황금의 군주는 쓰러졌고, 남은 것은 결국 그들의 기수(旗手)에 불과할 테니까. 잔당을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정도다.

모두 끝이 났다. 이렇게 덧없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며,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얼어붙을 정도의 고요가 내려앉은 그곳에서, 데일이 덤덤히 걸음을 옮겼다.

* * *

마왕령에는 일찍이 그 누가 지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고대의 구조물이 있다.

그리고 그 대미궁을 일컬어 혹자는 고대 마족의 수작이라 말하나, 고대 마족은 결코 그 구조물을 짓지 않았다. 불사공 프레데릭과 작센의 일족들은 그 너머에 있는 그림자 마탑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일은 대미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낯익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계의 용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황금과 그림자의 승부가 이루어진 바로 그때.

이계의 용사 역시 작센의 동토에 발을 딛고 있었다.

대전투에 앞서 도망친 데일의 어머니 엘레나와 동생 리제가 도망쳐 있는 그곳, 작센 자작성이 있는 미궁도시의 가장 깊숙한 곳에.

대미궁의 심부.

가장 깊숙한 그곳에서, 이계의 용사가 팔을 뻗었다.

“고대 유적이라. 그랬었나. ……그래서 그랬었나.”

남의 일처럼 중얼거리고 나서, 조용히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대미궁의 가장 깊숙한 곳, 그곳에 있는 것은 말 그대로 고대의 유적이었다.

무척이나 낯익은 티타늄 재질의 금속, 깨진 유리 조각들, 기능하지 않는 전자기계 따위. 그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조금 더 걸음을 걷자, 그곳에는 사람 하나가 누울 수 있는 크기의 묘비들이 늘어서 있었다.

지하를 가득 메우고 있는 터무니없는 크기의 공동. 그곳에 진실이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웃기지?”

용사의 곁에서, 신검 바델이 되물었다.

과거의 악업을 뒤로하고, 이제는 등을 맞대며 미궁의 밑바닥까지 함께 싸운 전우(戰友)로서.

“혹성탈출이란 영화를 봤나?”

“……그게 뭐지?”

“아니, 됐어. 아마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이계의 용사가 씁쓸하게 웃었다.

─ 시스템 기동을 시작합니다.

낯설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어둠으로 가득 찬 공동에 빛이 돌아온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빛이……”

신검 바델이 중얼거렸고, 이계의 용사가 숨을 삼켰다.

“노아의 방주 시스템…….”

“노아의 방주? 이 미궁에 대해 알고 있나?”

“아주 잘 알고 있지.”

이계의 용사가 대답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서.

“설마 망해도 이렇게 망해버렸을 줄이야.”

“……바깥의 전쟁에는 흥미가 없나?”

“없었지.”

이계의 용사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제는 생겨버렸네.”

그 말에 신검 바델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계의 용사가 말했다.

“……노아, 내 목소리를 알아볼 수 있겠나?”

─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는 명령자입니다.

다시금 무기질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계의 용사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날, 내가 사라지고 나서 무엇이 벌어졌지?”

웃고 나서 물었다.

─ 기록 일지를 열람하시겠습니까?

이계의 용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그들의 앞에 청색의 홀로그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무척이나 그리운 사람을 본 것 같은 목소리로, 홀로그램이 입을 열었다.

─ 기다렸어요, 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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