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 * *
신검 바델과 이계의 용사.
그들의 전투를 끝으로 일찍이 제국의 대륙 통일 전쟁은 끝을 맺었다. 그 후, 그날 함께 숨을 거둔 두 사람의 육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동시에 제국의 누구도, 두 강자의 육체가 황실과 적색 마탑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 후 대륙 제일검이라 일컬어지는 바델 경의 육체는 ‘오러 하트’를 비롯해 그 대다수가 제1황자 랜슬롯에게 이식되었다.
죽어도 죽을 수 없는 그의 망집(妄執)과 함께.
그렇기에 그날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도, 신검 바델 경은 이곳에 있었다.
이제는 황제와 제국의 기수로서, 옛 친우의 영지이자 딸 샬롯이 다스리고 있는 랭커스터 대공령을 향해 진격하며.
그와 함께하고 있는 제2황자 갤러해드가 말의 고삐를 멈춘 것은,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왜 그러느냐.”
신검 바델, 동시에 제1황자 랜슬롯이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듣고 갤러해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역시 이런 역할극은 익숙하지가 않아서.”
동시에 갤러해드가 말했다. 무척이나 이질적이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후우웅!
동시에 두 황자가 딛고 있는 세계가 일전했다. 그들 외의 존재들을 일절 거부하는 사상의 결계였다.
“그날의 겨울밤을 기억하고 있나?”
“……!”
일전하는 세계 속에서 2황자 갤러해드가 물었다. 아니, 아니었다. 그 풍경을 보자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희고 어두운 겨울밤이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밤이었지.”
“이계의 용사…….”
신검 바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네가.”
“말 그대로 죽었다 살아났지.”
이계의 용사가 남의 일처럼 대답했다.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어쩌다 제1황자의 가죽을 둘러쓰고 있지?”
2황자 갤러해드, 이계의 용사가 되물었다.
1황자 랜슬롯, 신검 바델 경에게.
“제국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신검 바델 경이 대답했고, 용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누가 너의 육체를 제1황자의 몸에 이식했지?”
웃고 나서 되물었다. 신검 바델이 일순 침묵을 지켰고, 침묵 끝에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핏빛공의 이름을 가진 남자를.
* * *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뒤로하고, 데일이 고개를 내렸다.
대륙 전체를 그리고 있는 터무니없이 커다란 지도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지도 위를 가득 메우는 것은 각각의 병종을 상징하는,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체스 기물들이었다.
탁.
그와 동시에 하나의 전투가 끝이 났다.
데일이 체스 말 하나를 움직이며 전투의 결과를 덤덤히 지도에 그려냈다. 데일이 있는 작센 공작령에서 족히 천여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전장에서의 일이었으나, 지금의 데일에게 물리적 거리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청색으로 물들어 있는 눈과 귀가, 그 전장에서 벌어지는 결과를 받아적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시시각각 벌어지는 전투 속에서 바뀌고 있는 대전선을.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자.
모략과 거짓의 마탑, 청색 마탑의 정점에 서는 자로서 가진 영향력을 행사할 때였다.
탁.
그렇기에 데일이 다시금 체스 기물 하나를 움직였다.
흑색의 전투마, 작센 가의 자랑이자 전장의 파괴자 ‘검은 기병대’를 상징하는 기물이었다.
그 시각.
사령관의 명령이 내려졌고, 그 명령이 하달되는 데에 전령의 존재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청색의 나비가 날갯짓하며 날아올랐다.
“……칠흑공께서 명령을 내리셨다.”
그 의미를 헤아리고 있는 바스커빌의 베일 경이, 밤까마귀 기사들로 이루어진 기동타격대를 이끌고 말의 고삐를 당겼다.
대륙 각지에 흩어져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독립유격대대. 그러나 이 세계에 알기 쉬운 무전 같은 것은 없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전술이 중세적 사고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적어도 대륙 전체에 그 거미줄을 흩뿌리고 있는 데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이대로 파벨로 남작의 영지를 경유해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남작령의 적 후열을 돌파할 것이다.”
“존명!”
바스커빌의 베일 경이 그대로 말을 몰았고, 검은 기병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작 각하께서 명령을 내리셨다! 모두 움직여라!”
“작센 가를 위하여!”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수십여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곳에서, 헬무트 블랙베어 경이 이끄는 다수의 기병대대 역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륙 각지에 걸쳐 때를 기다리고 포진해 놓은 전장의 파괴자들이, 하나둘씩 기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장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는 작센 가의 군세는, 결코 기사들이 다가 아니었다.
“대장께서 명령을 내리셨다!”
요네스 경이 이끄는 블랙아머 컴퍼니의 중장갑 보병대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전투에서의 활약을 전제로 수행을 갈고닦은 흑마법사 부대와 제병협동 전술을 이루며.
거리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시시각각 명령을 하달할 수 있는 청색의 힘을 바탕으로, 침묵을 깨트린 청색의 힘이 비로소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청색 마탑주 데일’ 하나의 역할이 아니었다.
청색 마탑주를 보좌하는 모략과 거짓의 대가들, 소서리스 의회 역시 예외일 수 없었으니까.
그로부터 얼마 후.
황제파의 기수로서 전장에 참여하는 것은 ‘브란덴부르크 백작’ 필립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자랑하는 성 막달레나 기사들과 함께, 비로소 전투에서의 무용을 증명하고자 진격을 시작했을 때.
그의 앞을 가로막는 제후파 귀족들의 부대를 하나둘씩 격파하는 브란덴부르크 백작의 승전보는, 당초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전과였다.
설령 몰락 일로를 걷는 귀족이라 하더라도 그 위세는 결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이 전쟁이야말로 위기 속에서 백작 가를 다시금 일으킬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돌격하라, 자랑스러운 성 막달레나 기사들이여!”
그렇기에 필립이 필사적으로 소리를 높였다. 적의 전선 일점을 일찌감치 돌파하고, 끝없이 진격을 거듭하며.
“배, 백작 각하! 작센 가의 ‘검은 기병대’가 후방의 퇴로를 가로막았다는 척후병의 보고가……!”
“뭐라고?!”
그리고 필립의 진격을 가로막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늘 하나의 존재였다.
* * *
밤까마귀 기사들로 이루어진 독립유격부대가, 전황을 좌지우지하며 전투의 향방을 바꾸고 있었다.
신출귀몰이란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마치 하늘 위에서 이 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神)이 그들 부대를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지 않고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상대가 움직일 때마다 늘 그에 발맞추어 적의 부대를 요격하는 전장의 파괴자들. 곳곳에서 펼쳐지는 전투들이 하나둘씩 데일의 손에 의해 승리로 돌아갔다.
아울러 청색이 침묵을 깨트렸듯, 적색 마탑이 침묵을 깨트리는 것 역시 그즈음의 일이었다.
규격 외의 강자는 엉덩이가 무겁다.
특히 이 정도 규모의 전투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달리 아무 이유 없이 무거운 게 아니다. 그들의 존재가 그 자체로 전황을 바꿀 수 있는 비대칭 무기라고 가정할 경우, 바로 그 전략 무기를 어디에 ‘투하하느냐’가 결국 전쟁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핵심이 되는 까닭이다.
무턱대고 규격 외 강자들을 앞세워 진격할 경우, 그들의 움직임을 읽고 대처하는 측에서는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공작 각하의 명령이다. 적색 마탑의 적마법사와 교전하지 말고 즉시 퇴각하라는 명령이다!”
“전선을 물려라! 후퇴하라!”
전쟁에 고위 적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즉시, 교전을 거부하며 도망치는 것처럼.
가령 핏빛공의 존재는 그 자체로 전투, 나아가 전쟁 그 자체를 좌지우지할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핏빛공이 황도를 벗어나 적지로 진격할 경우, 그가 적지를 점령하는 데까지 얼마의 시일이 걸릴까?
그 사이, 별도의 부대가 핏빛공이 부재하고 있는 틈을 타 황도를 습격할 경우…… 핏빛공 하나의 승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역으로 핏빛공이 황도의 수비를 위해 틀어박힐 경우, 그가 틀어박혀 있는 사이 황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전체가 쑥대밭이 될 것이다.
그것이 규격 외 강자의 존재와 별개로 보병(步兵)의 존재가 무시될 수 없는 이유다.
전쟁 속에서 아무리 그들의 힘이 강대하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하나의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데일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를 위해 어머니가 흩뿌려준 청색의 거미줄 위에서, 덤덤히 그의 역할을 수행할 따름이었다.
* * *
제국의 황도.
각지에서 날아드는 비보(悲報)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어느 전선에서 어느 귀족이 전사하고 이탈했으며, 누가 도망쳤고 누가 항복을 했느니 따위의 소식들이었다.
그야말로 대륙 전체에 걸쳐 날아들고 있는 패배의 패배였다.
황금의 옥좌 위에 앉아 있는 아서 대제가, 쏟아지는 보고들 속에서 덤덤히 침묵을 지켰다.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군요.”
그의 곁에 있는 핏빛공이 말했다. 아서 대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필시 그림자 군주가, 청색의 거미줄을 사용하고 있는 까닭이겠지요. 규격 외 강자들을 철저하게 고립시키며 보통의 전투에서 확실한 승리를 가져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지혜롭구나.”
비로소 침묵 끝에 황금의 군주가 입을 열었고, 핏빛공이 말없이 미소 지었다.
고위 적마법사와 귀검 세필리아 등, 규격 외 강자와의 전투는 철저하게 회피하고 그들을 고립시키며, 동시에 그렇지 않은 이들과의 전투에서 확실한 승리를 손에 넣는다.
그야말로 이상에서나 나올 것 같은 전투 구도였고, 그림자 군주에게는 그것을 실제로 가능케 할 힘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이상 전황을 구경하고 있는 것은, 썩 좋은 결정 같지 않아 보입니다.”
“무엇을 바라느냐.”
“폐하께서, 직접 전장에 출진(出陣)하시기를 요청합니다.”
핏빛공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이상 손해가 심해지기 전에 흩어져 있는 병력 모두를 규합시키고, 작센 공작 가를 향해 진격해 대규모의 회전(會戰)으로 결착을 내야 합니다.”
“…….”
황금의 군주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침묵은 길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이 대지에 무엇이 남아 있을 것 같으냐.”
“잿더미겠지요.”
핏빛공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어느 쪽이 승리를 손에 넣어도, 패배하는 쪽은 최후의 최후까지 굴복하지 않고 저항할 것입니다. 결국 대지에 남겨지는 것은 전쟁의 상처, 불과 피의 폐허일 겁니다.”
“참으로 덧없는 승리구나.”
핏빛공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마지막까지 그의 가슴속에 숨겨두고 있는 흑심을 드러내지 않고.
* * *
그로부터 얼마 후, 대륙 전체에 걸쳐 흩어진 제국 측의 병력이 하나둘씩 집결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황금의 군주, 아서 대제가 직접 그들을 이끌고 출정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울려 퍼졌다.
그림자 군주, 칠흑공이 기다리고 있는 작센의 동토를 향해서.
그와 동시에 황금의 피를 잇는 두 황자, 랜슬롯과 갤러해드가 모습을 감추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신검 바델과 이계의 용사.
황금의 군주와 그림자 군주.
핏빛공과 칠흑공.
저마다 이 무대의 주역이자 흑막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자들이, 비로소 하나의 자리를 향해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풍경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