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 * *
마왕령 너머에 있는 어둠의 대지, 햇볕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어스름 속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마치 육지 위의 심해(深海)를 보는 것 같은 기이하기 그지없는 땅이었고, 그것은 그 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북부가 자랑하는 전투마조차 지레 겁을 먹고 들어가지 못하는 그 땅을, 두 명의 부자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쇄도하는 괴물들의 무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데일이 팔을 뻗었다. 동시에 손끝을 따라 그림자가 흩뿌려졌고, 일말의 영창조차 없는 어둠의 총알들이 포화를 내리꽂았다.
지금까지와 비할 바 없는 위력을 가진 섀도우 불릿이었고, 쏟아지는 총알들이 마계의 짐승들을 일방적으로 도륙했다.
일격을 내리꽂고 나서 데일이 흘끗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아버지, 작센 공작이 덤덤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쯤에서 밤을 지내도록 하자꾸나.”
“네.”
그 말을 듣고 데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하나 시종조차 대동하지 않고, 심지어 두 사람을 호위해줄 기사조차 없이 저마다 배낭을 가득 짊어진 채였다.
적당히 밤을 지새울 자리를 찾고 나서, 데일이 마계의 대지 위에 불씨를 지펴 올렸다.
“적색 마력을 쓰고 있구나.”
타닥, 타닥.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을 보며 흑색공이 입을 열었다.
“슈브의 힘을 통해, 적색 마탑의 퓨리파이어들을 상대로 손에 넣은 힘입니다.”
“그래, 랭커스터 대공령의 장미 전쟁에서 그들과 맞섰다고 했었지.”
흑색공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모닥불 위에는 일찌감치 데일이 사냥한 짐승의 고기가 익고 있었다.
“고기가 익어가는 것 같구나.”
“슬슬 먹어도 될 것 같네요.”
“흠, 그래.”
아무래도 요리가 익숙하지 않은 듯, 흑색공이 어색하게 팔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쓴웃음 짓고 말했다.
“제가 할게요, 아버지.”
“……그래, 부탁하자꾸나.”
여차할 때를 위해 가지고 온 향신료를 뿌리며, 데일이 고기를 두 사람의 몫의 꼬챙이에 꽂아 넣었다.
“고맙구나.”
‘꼭 아버지와 캠핑이라도 하는 것 같군.’
공작성에서도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었으나, 이렇게 둘이서 모닥불을 쬐며 사냥한 고기를 먹는 것은 무척 새로운 감회가 있었다.
설령 그들이 향하고 있는 목적지가, 이 대륙에서 가장 어둡고 불길한 대지 위라고 해도.
“고마워요, 아버지.”
“무엇이 말이냐.”
“당신이 저에게 주신 전부가.”
데일의 말에 흑색공이 덤덤히 미소 지었다.
“진작에 조금 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걸 그랬구나.”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그래, 그렇겠지.”
흑색공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데일과 엘레나의 진실이 밝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는 결코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자 속에는 늘 아이처럼 울고 있는 흑색공이 있었다. 아버지로서 이 남자가 가진 무게를, 지금의 데일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샬롯 양과의 사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
바로 그때, 흑색공이 되물었다. 그것은 더 이상 예전처럼 가벼운 물음이 아니었다. 이제는 데일의 진실을 알고 있는 흑색공이기에. 그럼에도 여전히 작센의 샬롯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그녀의 아버지를 쓰러뜨린 증오스러운 이계의 용사란 것을.
“그녀를 구해준 것은 너의 과오를 씻기 위함이었느냐.”
“솔직히 말해서, 어느 정도는 그러했습니다.”
데일이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가 가진 재능이 그 무엇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겠지.”
흑색공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잔혹한 사람이 아니다. 엘레나가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교활하지 않은 마법사였듯 말이지.”
“…….”
“그저 필요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주저하지 않고 결정할 수 있는 냉정함이 있을 따름이다. 너와 마찬가지로.”
데일이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저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까닭에.
사람의 진실을 보는 것이 꼭 이형의 능력에 의지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그 점에 있어 흑색공에게는 통찰력이 있었다.
“작센 가의 가주로서, 너에게는 이미 그에 걸맞은 자격이 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데일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아직, 그 자리에 앉기에 아버지께서는 너무 정정하시지요.”
“그림자 마탑에서 우리 모두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바로 그때, 흑색공이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듣고 데일이 나직이 숨을 삼켰다.
“그리고 우리 중 하나가 죽게 될 경우, 나는 그것이 네가 아니라 나의 몫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데일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결코 그렇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 무척 믿음직스럽구나.”
흑색공이 웃었다.
타닥, 타닥.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모닥불이 불씨를 흩날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무심코 그 불씨 속에서, 레이 유리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시린 냉기와 어둠 속에서, 덧없이 타오르다 스러지게 될 덧없는 불꽃이었다.
* * *
얼어붙을 것 같은 냉기 속에서, 모포에 몸을 휘감고 두 사람이 잠들어 있었다.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대로 동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어둠의 대지였으나, 그들 두 사람은 결코 보통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사람의 경계, 그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인간.
모포를 감고 몸을 뒤척이며, 데일이 주위의 정적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대로 불사공 프레데릭이 있는 그림자 마탑으로 향해, 무엇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그를 쓰러뜨리고 그림자 군주를 칭왕함으로써, 이 대륙의 패자(霸者)가 될 자격? 알 수 없었다. 그저 데일에게는 마땅히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고 그렇기에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게 다였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바로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수상쩍기 그지없는 기척들이다.
그리고 이곳 어둠의 대지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키에에에엑!」
괴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일대의 어둠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미친 듯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림자술사……!’
데일이 다급히 몸을 일으켰고, 그러나 그때였다.
그보다 앞서 흑색공이 몸을 일으켜, 꿈틀거리고 있는 그림자를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라, 그림자의 망령들이여.”
발밑을 중심으로 여덟 개의 서클이 가속하며, 어둠이 사방으로 질주하듯 퍼져나갔다. 살아 있는 어둠이 꿈틀거리며 팔을 뻗었고, 어느새 수백 개의 팔들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기척들을 사슬처럼 속박하고 있었다.
마치 사슬에 꽁꽁 묶여 있는 죄수처럼, 로브 차림의 마법사들이 끌려나가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로브 밑으로 짙은 어둠이 깔려 있어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머지않아 로브가 벗겨졌고, 그 너머의 모습에 데일이 나직이 숨을 삼켰다.
육골(肉骨)이 없었다.
말 그대로 그림자로 이루어진 실루엣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곳 어둠의 대지에서 살아가는 마법사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그림자술사들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그들의 진실이 비치고 있었다. 불사공 앞에 충성하고, 나아가 《엘드리치》들의 개가 되어 충성하는 종복들.
흑색공이 감정 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생각을 하고 있나.”
“히히, 그, 그럴 리가요.”
그림자 하나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저, 저희는 어디까지나 작센의 두 아이를 정중히 모셔달라는 탑주님의 명을 받았을 따름입니다.”
그림자 마탑의 탑주, 작센의 시조 불사공 프레데릭.
“…….”
흑색공이 일순 침묵을 지켰다.
침묵 끝에,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콰직!
무엇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실체가 없는 그림자가, 사람의 두개골이 부서지듯 어처구니없이 터져나가는 소리였다.
차례대로 그들의 어둠이 터져나갔고, 그림자술사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마지막 하나.
“작센의 시조, 불사공에게 돌아가 내 말을 전해라.”
그를 향해 흑색공이 감정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대의 규율에 따라 우리는 그림자의 왕을 가릴 것이며, 그 시험은 불사공을 비롯해 모두에게 동등해야 함을.”
“알겠습니다.”
그림자술사 하나가 불길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흑색공이 팔을 휘저었고, 그를 포박하고 있는 어둠의 팔들이 발밑을 향해 도로 녹아들었다.
다시금 그곳에는 데일과 흑색공, 두 부자가 남겨졌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 같구나.”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걱정스러운 듯 아버지가 말했고, 데일이 덤덤히 고개를 저었다.
일찍이 황금의 제국에 패배하고 나서, 몰락하고 스러진 그림자 제국의 폐허.
불사공 프레데릭과 《엘드리치》들은 결국 황금의 군주에게 패배하고 도망친 패잔병의 무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데일은 결코 패잔병이 되어 세상의 끝에 숨어 있을 생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폐허의 제국에 있는 이들 앞에서 증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림자는 다시 일어날 것이고, 다시금 고대의 대립에 따라 황금과 그림자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나아가 그 전쟁에서 그림자를 이끌게 될 군주는 바로 자신임을.
그러나 그것은 결코 고대의 광신이나 신념을 위해 벌이는 싸움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말마따나, 이 이상 그림자의 꼭두각시가 되어 춤출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것은 결코 성전(聖戰)이 아니다.
그저 쓰러뜨려야 할 것들, 나아가 지킬 것들을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평화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전쟁.
그 아이러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데일이 어둠의 땅에서 재차 걸음을 내디뎠다.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아버지와 함께.
* * *
일찍이 황금의 제국에 패하고, 세상의 끝으로 도망친 그림자 제국의 폐허.
그림자 마탑.
바로 그곳에, 일찍이 작센의 옛 가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그림자 마탑의 정점에 서는 자, 불사공 프레데릭 앞에 무릎을 꿇고서.
“나의 딸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구나.”
불사공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딸, 리제가 이 아비에게 가까워지고 있어.”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집착으로 가득 차 있는 목소리였다.
“나의 아이들아, 너희를 위한 시험이 다가오고 있다.”
불사공이 말했다. 그 말에 흑색의 로브를 두르고 있는 《엘드리치》들이, 후드 밑으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뿜었다.
“오라버니.”
바로 그때였다.
불사공의 곁에서, 로브를 두르고 있는 여성이 입을 열었다. 불사공과 마찬가지로 흑색의 붕대를 두르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고대의 전통에 따라, 비겁한 수를 쓰시는 것은 삼가길 바랍니다.”
“…….”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정당당하게 치러져야 할 시험입니다. 그림자 군주를 칭왕하는 이들 모두, 예외일 수 없지요.”
그 말에 불사공이 나직이 침묵을 지켰다. 무척이나 불길하기 그지없는 침묵이었다.
“그것이 설령 오라버니라 할지라도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