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18화 (218/301)

218화

* * *

‘3대 7이라.’

결과적으로는 당초 데일이 상정한 이상의 숫자가 샬롯 랭커스터를 지지하기 위해 마음을 돌렸다. 3할의 숫자는 절대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다.

대회당에 남아 샬롯 랭커스터를 지지하고 작센의 동아줄을 붙잡은 가주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전황이 불리해질 경우, 어느 때라도 데일을 배신하고 저쪽에 들러붙을 박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쥐들에게는 박쥐 나름의 쓰임새가 있는 법이었다.

랭커스터 대공의 성을 점거한 데일이었고, 레이 랭커스터는 전 대공의 남동생 존 랭커스터가 있는 자작령으로 휘하 세력을 집결시켰다.

그 후 이곳 랭커스터 공작성을 점거하고 있는 샬롯 랭커스터를 찬탈자로 규정하고, 대공령 곳곳에서 그들의 정당성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직접 전투에 앞서 벌어지는 정보전이다. 그리고 그 점에 있어, 데일에게는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운 우군(友軍)이 존재했다.

모략과 거짓의 대가들, 청색 마탑이다.

“어려운 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스트리스 티타니아.”

“다시 이렇게 뵙게 되어 기쁠 따름이네요, 그림자 군주시여.”

요크 후작 가의 실질적 흑막, 동시에 청색 마탑의 소서리스 중 하나. 티타니아가 서큐버스의 피를 잇는 요크의 딸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대략으로 이해하고 계시겠지요.”

“후후, 늘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속삭임들을 경청하고 있으니까요.”

미스트리스 티타니아가 웃었고, 데일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그저 적장을 쓰러뜨린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제 아내 살롯이 랭커스터 대공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정당성, 동시에 천심(天心)을 얻는 일이지요.”

데일이 말했다.

“그 천심을 얻기 위해, 그대들 청색 마탑의 힘이 필요합니다.”

“천심이라.”

그렇게 말하며 티타니아가 즐거운 듯이 되물었다.

“우리 청색 마탑이 무슨 힘이 있어, 감히 하늘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늘의 마음을 부채질하는 것은 늘 거짓과 속임수, 그리고 암귀(暗鬼)의 속삭임이니까요. 거짓 정보 하나에도 우왕좌왕하며 갈대처럼 동요하는 것이 천심입니다. 그러니, 그것이야말로 그대들 청색 마탑이 가장 잘하는 일이 아닙니까?”

“아, 참으로 총명하기도 하셔라.”

미스트리스 티타니아가 다시금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염려하실 것 없답니다, 그림자 군주시여. 우리는 이미 청색의 속삭임을 흩뿌리고 계시니까 말이지요.”

“……처음부터 제가 이렇게 나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주군의 의중을 헤아리는 것은 충성스러운 신하의 덕목이니까요.”

“제 의중을 너무 깊이 헤아리는 것은 썩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충심에서 비롯되는 행위라 할지라도 말이지요.”

그림자 군주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적어도 청색 마탑이 데일을 위해 충성하고 암약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결코 자신의 의중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어느 의미에서는 대륙 제일의 스파이 조직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그들의 충성처럼 신뢰하기 어려운 것도 드물 것이다.

“실례했습니다, 그림자 군주시여. 그러나 부디, 그림자를 향하는 우리 청색의 충성을 의심치 말아 주십시오.”

티타니아가 다시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청색의 나비들이 일제히 날갯짓하며 날아올랐다.

* * *

후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랭커스터 공작성을 손에 넣은 샬롯 랭커스터였고, 그 뒤에 있는 것은 작센의 ‘검은 공자’였다.

그리고 미하일 랭커스터의 죽음과 더불어 장미 전쟁에서 ‘검은 공자’가 요크 측에 서서 활약했다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퍼지며, 성내에서 데일을 향하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었다.

그것 역시 천심이다.

성내의 가신과 시종들, 무엇보다도 랭커스터 공작 가가 자랑하는 장미십자 기사들이 그러했다.

특히나 전장에서 ‘검은 공자’를 직접 목격하고, 주군 미하일이 쓰러진 것을 목도한 기사들은 일찌감치 존 랭커스터의 영지로 가서, 레이와 린네 랭커스터를 위해 새로운 신종(臣從)의 맹세를 올렸다.

그러나 몇몇 장미십자 기사들은 기꺼이 ‘랭커스터 대공의 뜻’을 받아들여 성에 남기를 자처했다.

샬롯이 랭커스터 대공령에 들어오고 나서, 사제이자 부녀(父女)로서의 두 사람을 기억하는 기사들.

샬롯은 그들 장미십자 기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그 무엇보다 랭커스터 대공의 검에 어울리는 제자로서 자신을 증명했다. 나아가 랭커스터 대공이 ‘샬롯이 랭커스터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 주군의 맹세를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샬롯 곁에 남기로 했다.

기꺼이 샬롯 랭커스터를 그들의 새 주군으로 받아들이며.

랭커스터 공작성의 최상층.

바로 그곳에서, 샬롯 랭커스터와 데일이 일대 영지의 지도를 펼쳤다. 마지막까지 샬롯을 지지하며 남아 있는 기사들과 가신 귀족들, 방계의 가주 모두를 소집하고서.

동시에 철저하게 데일을 위해 움직이는 암행의 대가들 《그레이브 워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살검 마스터 바로를 비롯한 칠흑의 오렐리아, 그리고 산의 암살자들 역시 ‘그림자 군주’의 수족이 되어 그곳에 있었다. 후드로 정체를 꽁꽁 숨기고 있는 탓에, 비록 그들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으나.

“가장 확실하게 랭커스터의 자리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존 랭커스터 자작을 굴복시키고 그대로 항복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작센의 데일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배후에 있는 것은 적색 마탑이고, 그 증거로 적색의 후계자 ‘레이 유리스’가 그곳에서 랭커스터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요.”

“적색 마탑…….”

“제국이 바라는 것은 랭커스터 대공령을 다시 그들의 손에 넣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국의 시대정신을 집행하는 적색 마탑이 움직이는 것이고요.”

데일이 말을 이었다.

“따라서 존 랭커스터 자작을 굴복시켜도, 결국 꼭두각시를 잘라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확실하게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적색의 집행자…… ‘레이 랭커스터’를 쓰러뜨려야 하지요.”

“그럼 당장 레이 랭커스터를 쓰러뜨리러 출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오?”

마스터 바로가 되물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데일이 대답했다.

“레이 랭커스터는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꼭 힘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그는 저와 힘으로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데일이 말했다.

바로 얼마 전, 그림자 군주의 앞에서 각오를 다지는 레이 랭커스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곧바로 적의 심장을 향해 돌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예 검을 쥘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아니지요.”

“그럼 어쩌겠다는 것이오?”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제 아내, 샬롯 랭커스터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전(全) 랭커스터의 마음’을 돌려놓겠다고.”

“아, 그것참 쉬운 일이구려.”

그 말을 이해하고 마스터 바로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아아, 저는 그 자리에서 보고 말았지요! 피도 눈물도 없는 핏빛공에 의해 무참히 암살당하신 리처드 공자님! 그리고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며 기꺼이 검을 쥐신 랭커스터 대공의 모습을!”

남자가 노래하듯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가 소리를 높일 때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대륙 제일의 검과 마법이 충돌했고, 일주일 밤낮에 걸쳐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고 땅이 요동치는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남자는 이야기꾼, 소위 말하는 호사가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작센의 땅에 발을 들여본 적도 없었고, 그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남자는 마치 그곳의 목격자라도 되는 듯 생생하게 소리를 높였고, 배우처럼 이야기의 흥을 돋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아, 핏빛공의 비열한 암습 마법이 랭커스터 대공을 향해 작렬했고…… 흠흠.”

이야기꾼의 일은 이야기를 파는 일이다. 그가 클라이맥스에서 잠시 뜸을 들일 때마다 사람들이 동전을 꺼내어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아아, 조금의 물러섬도 없는 호각지세의 싸움이, 바로 비열하기 짝이 없는 암습 하나로 뒤바뀌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비명을 내지르거나,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피도 눈물도 없는 핏빛공의 아들이, 이 랭커스터의 전부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지요! 그러나 랭커스터 대공의 가엾은 수양딸 ‘샬롯 랭커스터’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꾼의 장사 풍경이었다. 그리고 청색 마탑은 그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야기꾼이 랭커스터 대공의 싸움에 관해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박수 속에서 비로소 그의 ‘의식’이 돌아왔다.

화들짝 놀란 이야기꾼이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의 발밑에 있는 바구니에는 동전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동전을 보자마자 이야기꾼의 당혹은 길지 않았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청색의 첩자로서 다음 임무를 수행하러 갈 때였다.

적색 마탑과 핏빛공의 악행, 나아가 레이 랭커스터를 증오하고 샬롯 랭커스터를 동정하는 천심(天心)을 쌓아 올리기 위해서.

* * *

백성의 천심을 돌리는 것은 청색의 이야기였고, 그러나 귀족들의 천심이란 이야기 하나로 뒤바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밤이 깊었고, 존 랭커스터와 레이 랭커스터를 지지하는 어느 귀족의 침실.

“허허, 이제부터는 아주 잘 생각하고 대답을 해야 할 것이오.”

살검 마스터 바로가 말했다. 그의 손에 들린 칼날이 서슬 퍼렇게 빛을 뿜었고, 귀족의 표정이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귀족의 마음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깊은 오밤중에, 침실에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족하니까.

“기, 기꺼이 샬롯 랭커스터를 위해 지지하겠노라 약속하겠습니다!”

“그래, 랭커스터의 후계자를 위한 그대의 충성은 내 아주 잘 기억하리다.”

후드를 두르고 있어 그 정체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저택을 지켜야 할 삼엄하기 그지없는 경비조차 그 남자의 침입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그가 마음먹을 경우 이 저택을 피바다로 바꾸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

“부디 댁의 목숨이 댁 하나의 것이 아님을 잘 알아두시오.”

마스터 바로가 속삭이며, 흘끗 귀족의 옆을 바라보았다.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귀족의 아내가 있었고, 또 하나의 일실에는 그의 소중하기 짝이 없는 자식들이 잠들어 있으리라.

그렇기에 그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 * *

천심이란 갈대와 같다. 그리고 백성의 천심과 별개로 귀족의 천심을 움직이기 위해 암약하는 것은, 존과 레이 랭커스터 측의 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암살자가 샬롯을 지지하는 어느 귀족의 침실에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자 찾아왔을 때.

“어이쿠, 이 친구도 참. 이 늦은 시각에 어디를 그리 조심스럽게 찾아오셨나?”

예의 불청객을 맞이하는 것은,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할 귀족이 아니었다.

그림자 군주를 위해 활약하는 충실한 수족, 암행의 대가 《그레이브 워커》들이었으니까.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림자 군주는 이미, 그 전쟁에서 순조롭게 첫 고지를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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