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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13화 (213/301)

213화

* * *

작센 공작성의 그레이트 홀.

바로 그곳의 옥좌에 앉아 있는 작센 공작이, 장남 데일과 그의 아내가 될 숙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샬롯 랭커스터.

마찬가지로 샬롯의 어머니, 마찬가지로 ‘바네사 랭커스터’가 딸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함을 뒤로하고서.

“아, 참으로 보기 좋은 광경입니다.”

적색 마탑의 정점에 서는 자, 핏빛공 유리스 후작이 박수 소리를 높였다. 삼류 배우처럼 과장스러운 제스처다.

“두 사람에게 자매신의 자비와 자애가 함께하기를.”

침묵 속에서 홀로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였고, 그 소리를 뒤로하고 백색 마탑의 정점 ‘천상공(Lord Heaven)’이 두 사람을 축복했다.

흑색 마탑의 정점 ‘흑색공’은 옥좌 위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묵묵히 침묵을 지킬 따름이다.

동시에 성의 사각에서 청색의 나비들이 날아올랐다.

지금도 곳곳에 걸려 있는 청색의 거미줄이 이 풍경을 또렷이 기억하고, 그 풍경을 그들의 흑막에게 비춰주고 있었다.

흑청과 적백.

오색 마탑 중 네 마탑의 정점에 서는 자들이 집결해 있는 자리였고, 그 무게를 이해하지 못할 데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미래를 축복하기 위한 그럴싸한 허례허식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다.

시스티나 여신교의 정점이라 일컬어지는 천상공이, 직접 둘의 주례(主禮)를 보고 있음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자매신의 이름으로 데일과 샬롯의 무사와 행복을 축복했고, 드레스 차림의 샬롯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설령 이 자리가 갖는 무게의 중대함을 알고 있음에도, 샬롯이 가진 마음마저 달라질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결국 그 정도였다. 샬롯 역시 바보가 아니니까.

그 무엇과 비교할 바 없이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였다. 당장이라도 폭발음이 울려 퍼질 것 같은 불길함 속에서, 그러나 데일과 샬롯의 예식은 무사히 끝을 맺었다.

식의 당사자, 두 남녀의 입맞춤을 증표 삼아서.

데일과 샬롯의 입술이 겹쳐졌고, 그것은 아주 찰나였다. 다시금 두 사람의 거리가 벌려졌다.

내막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그저 두 대귀족이 정략적으로 결속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힘의 질서를 다시금 재구성하려는 것으로 비치리라.

그리고 어느 의미에서 그것은 결코 틀린 말도 아니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작센 공작의 집무실.

“랭커스터 대공 각하.”

“작센 공작.”

데일과 샬롯의 아버지, 흑색공과 신검이 서로를 부르며 가볍게 예를 표했다.

“무엇을 바라고 계십니까?”

예를 표하고 나서 흑색공이 되물었다. 일말의 주저도 없는 물음이었다.

“제 딸, 샬롯 랭커스터가 가장 바라는 것을 손에 넣게 해주었을 따름입니다.”

“…….”

랭커스터 대공이 대답했다. 작센 공작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말로 그것이 다입니까?”

“장미 전쟁에서, 작센의 ‘검은 공자’께서는 비밀리에 요크의 기수를 자처하며 제 차남 미하일을 쓰러뜨렸습니다.”

아들의 이명이 입에 나오자, 흑색공이 신중하게 말을 받았다.

“제 장남 데일이 말하길, 장미 전쟁의 불씨를 피운 것은 대공 가의 차남 미하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미하일 랭커스터는 형님 리처드가 청색과 요크의 마법에 정신이 파괴되고 꼭두각시로 전락했다며, 요크 가와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적색 마탑과 협력해 형 리처드의 정신을 파괴하고, 대공 가의 후계자 자리를 손에 넣으려는 미하일의 계략에 지나지 않았다. 그 죄목을 청색과 요크 후작 가에 덮어씌움으로써.

“동시에 적색 마탑에서는 그것이 작센과 ‘검은 공자’의 책략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적색 마탑의 레이디 스칼렛은 그 이야기를 180도 거꾸로 뒤집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는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을 따름이랍니다.”

그렇기에 신검 랭커스터 대공이 말했다.

“제 앞에 있는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를 통해서 말이지요.”

“…….”

그 의미를 헤아리고 흑색공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진실을 알고 나서,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흑색공이 그대로 되물었다. 신검이 흘끗 허리춤의 검을 바라보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랭커스터 가의 잔혹한 고결함에 따라, 그들에게는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겠지요.”

랭커스터 가의 상징, 핏빛과 백색의 장미가 뜻하는 그 의미대로.

그 말 앞에서, 작센 공작은 말없이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작센의 가주로서 의상에 새겨넣은 그들 일족의 상징, 밤까마귀(NIght Raven)의 표식을 뒤로하고.

* * *

제국 제1황자 랜슬롯이 그곳에 있었다.

바네사와 샬롯, 이제는 오르하르트가 아니라 ‘랭커스터’의 이름을 쓰고 있는 두 모녀를 바라보며.

나아가 샬롯 랭커스터는 이제 ‘작센의 샬롯’으로 거듭나게 되리라.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며, 흘끗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옛 이명을 손에 넣은 친우가 그곳에 있었다.

신검 랭커스터 대공.

“…….”

침묵 끝에, 호수의 검이 무어라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이내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그저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까닭에.

* * *

“어머나! 참으로 귀여운 꼬마 아가씨구나.”

적발의 마녀가 생긋 미소 지었고, 그 모습을 보며 어린 리제가 활짝 웃으며 예를 표했다.

“물러나거라, 리제.”

“세, 세피아 선생님?”

그러나 리제를 지키는 마법 스승 세피아는 그렇지 않았다. 나아가 산모처럼 배가 불러 있는 레이디 스칼렛의 모습에서, 지금까지와 비할 바 없는 꺼림칙함이 느껴지는 까닭에.

싸늘하기 그지없는 작센의 냉기가 세피아의 일대로 모여 기류를 형성했다. 직감적으로 그 마법의 무게를 느끼고 리제가 겁을 집어먹었다.

“아, 참으로 차갑기도 하시지.”

그러나 레이디 스칼렛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꼬마 아가씨가 겁내고 있지 않으신가요, 수정의 공주님.”

“……당장 이 자리에서 물러나십시오.”

“어머, 제가 왜 그래야 하지요?”

바로 그때였다.

“그쯤 하려무나, 사랑스러운 동생아.”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세피아의 주위에서 일렁이는 냉기의 기류가, 거짓말처럼 스러졌다.

“……!”

세피아로서는 호흡조차 쉬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어린 리제로서는 무엇이 일어났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따름이다.

남자가 있었다.

적색 마탑의 정점에 서는 대륙 제일의 적마법사, 핏빛공.

“부디 철없는 동생의 실례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지요, 수정의 공주시여.”

“……알겠습니다, 핏빛공.”

바로 그때였다.

“핏빛공……! 그 이름, 저도 들어봤어요!”

아무리 세상을 알지 못하는 리제라고 해도, 그 남자의 이명마저 모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색 마탑의 정점에 서는 다섯 마법사. 오히려 리제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말 그대로 동화 속의 마법사처럼 느껴질 테니까.

“아버님처럼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다섯 마법사잖아요!”

“아, 꼬마 아가씨의 칭찬에 그저 황송할 따름이랍니다.”

핏빛공 유리스 후작이 과장되게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곳에 계셨습니까.”

순백의 성의(聖衣)를 입고 있는 남자가 마찬가지로 공작성의 중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섯 마탑 중 두 마탑의 정점에 서는 두 마탑주, 핏빛공과 천상공.

그리고 이곳 작센 공작령의 영주이자 흑색공이 합류했다.

“달리 제 딸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버지!”

“아, 그저 따님의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이 너무 궁금해서 말이지요.”

핏빛공이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대륙 제일의 적마법사께서, 달리 제 딸아이의 냉기 마법에 흥미를 느끼실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흑색공이 날카롭게 되물었다.

“그러게나 말이예요.”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와 동시였다.

청색의 나비들이 날아올랐고, 나비 무리가 모여 사람의 실루엣을 이루었다.

“……!”

그 모습을 보고 세피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청색 후드를 걸친 인간 여성의 실루엣이었다.

“아, 아무리 허상이라고 하나 설마 청색의 흑막께서 직접 이곳까지 행차하실 줄이야.”

“차라리 이 사랑스러운 소녀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제가 더 적합하지 않을지.”

흑백적청, 네 마탑의 정점에 서는 대륙 제일의 마법사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오롯이 이해하지 못하는 리제로서는, 그저 세피아와 아버지의 곁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따름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되었습니다.”

흑색공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세피아 님, 부디 리제를 데리고 자리를 비켜주시지요.”

“아, 그럴 필요는 없답니다.”

그러나 핏빛공이 흑색공의 말을 가로막고, 그대로 팔을 뻗으려 했다.

“……!”

그 행위와 동시에 흑색공의 발밑에서 칠흑의 어둠이 휘몰아쳤다. 휘몰아치는 어둠이 그림자가 되어 질주하며 핏빛공의 육체에 휘감겼다.

“제 딸아이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대려고 했다가는, 작센의 이름에 맹세코 쉬이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꼭 제가 따님을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를 휘감고 있는 그림자 속에서, 핏빛공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축복해야 할 데일 공자님의 결혼식에서, 의미 없는 피를 흘릴 정도로 저는 무례하지 않답니다.”

“부디 신중하게 처신하십시오, 핏빛공.”

“저는 늘 신중하게 처신하고 있답니다.”

흑색공이 다시금 경고했고 핏빛공이 어깨를 으쓱였다. 비로소 사태의 중대함을 헤아린 리제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겁에 질린 여덟 살 소녀의 그것이 되어서.

“아, 꼬마 숙녀를 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진심으로 사과드리지요, 레이디 리제.”

핏빛공이 유감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제 여동생에게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그제야 비로소 작센의 데일이, 그의 여기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장밋빛 신부의 꿈에 젖은 드레스 차림은 찰나의 백일몽이다.

작센의 밤까마귀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레이디 블랙이 그곳에 있었다.

그림자 군주가, 그의 검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신검 랭커스터 대공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동시에 하객으로 참석한 요크의 티타니아를 비롯해 청색 마탑의 ‘소서리스’들이 그들 흑막의 뒤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아울러 그것은 핏빛공이나 천상공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작센 공작성에 모여 있는 군주들과 그 세력들이, 성의 중정으로 집결해 있었다.

“참, 그러고 보니…….”

침묵이 내려앉았고, 침묵을 깨트린 것은 핏빛공의 몫이었다.

“아까 전, 참으로 비극적이기 그지없는 소식 하나가 들려왔답니다.”

남의 일처럼 덤덤하게, 핏빛공이 말했다.

“이곳 작센 공작성에 머물고 계시는 랭커스터 대공의 첫째 아드님…… 리처드 랭커스터께서, 암살자의 비수(匕首)에 당해 숨을 거두셨지요.”

그 말이 최후의 방아쇠였다.

“참으로 유감을 표하겠습니다, 랭커스터 대공 각하.”

“핏빛공, 네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가, 총알이 되어 격발하는 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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