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03화 (203/301)

203화

* * *

검의 시험, 대륙 최고의 검을 가리기 위한 시험의 장.

검을 쓰는 자들이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검을 맞대어 더 강한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모여 있는 수십 명 중에서 가장 강한 일곱 자루 검을 찾아 순서대로 세우기는 쉽지 않다.

가령 승자 진출전 형식으로 제1라운드에서 살검과 귀검이 맞붙는다고 가정할 경우, 대륙 칠검 중 하나가 시작부터 떨어지게 될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풀리그 형식으로 맞붙었다가는, 체력 소모전이 되어 순수한 검위를 가리는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검의 시험에는 꼭 승패가 탈락의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실력 없는 자들 사이의 승부는 설령 이기는 자라 해도 떨어지고, 강자들 사이의 승부는 패배하는 자 역시 올라갈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솎아내기다.

이 레벨에서는 아직 아바타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외의 능력에 대해서는 별달리 제약이 없고, 검(劍)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솎아내기의 첫 타자로서, 데일이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데일이 알지 못하는 기사가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갑주에 새겨져 있는 문장(紋章)에는 그가 제법 이름 있는 귀족 가의 검객이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게 다였다.

타앗!

데일이 땅을 박차며 검을 휘둘렀고, 체내에서 폭발하는 오러가 상대방의 검을 압도했다. 카앙! 검이 부딪쳤고, 부딪쳤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그의 검이 빙글 돌며 바닥에 세로로 내리꽂혔다.

일검(一劍).

“어, 어떻게……!”

기사의 검이 바닥에 내리꽂혔고, 그 모습을 보며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자, 작센 가의 공자는 마력을 사용하는 마법사가 아닙니까!”

중얼거리고 나서,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필시 심장의 마나 서클을 가속했겠지요! 오러가 아니라 마력(魔力)을 쓰는 자가 ‘검의 시험’에 참여하다니……!”

바로 그때였다.

푸욱!

그림자가 땅을 박찼고, 그대로 검이 내리꽂혔다. 항의하는 기사의 가슴팍을 찢고 등 뒤로 칼날이 튀어나왔다.

“……!”

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쌍두룡의 표식과 위계가 새겨져 있는 브레스트 아머. 그리고 황금색 실로 짠 서코트를 흩날리며, 제1황자 랜슬롯이 칼자루를 뽑았다.

푸욱!

상처 위로 피가 흩뿌려졌고, 쏟아지는 피가 황자의 금색 서코트와 강철 갑주를 혈색으로 물들였다.

“추하고 시시하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루하다.”

칼자루를 빙글 돌리며 제1황자 랜슬롯이 말했다.

“이깟 벌레의 싸움을 일일이 구경하며 기다려야 할 가치가 있나?”

랜슬롯이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검을 쥐고 있는 데일을 향해서.

피에 젖은 강철 투구 사이로, 일순이나마 차갑게 빛나는 동공이 엿보였다. 파충류의 그것, 흡사 뱀처럼 가늘게 찢어진 세로 동공이었다.

“동감입니다, 형님.”

마찬가지로 제7황자 모드레드가 침묵 속에 입을 열었다. 두 황자 뒤에서 귀검 세필리아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얼어붙을 것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황실의 진영, 제국의 두 황자와 귀검.

랭커스터의 진영, 천검과 샬롯.

작센의 진영, 데일과 휘하 세 자루 검, 광검과 살검, 방랑검.

남아 있는 다섯 자루 검에 공석이어야 할 ‘성검’이 더해져, 크게 네 진영의 검들이 흉흉하게 서로를 주시하고 있었다.

사실상 대륙 칠검 중에서 여섯 자루 검의 검위 자체는 정해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리라.

그러나 오직 하나의 자리는 그렇지 않았다.

그날, 이계의 용사에게 패배하고 나서 바델 오르하르트가 쓰러진 후부터 지금까지 비어 있는 최강의 검위.

신검(神劍).

당장 천검 랭커스터 대공과 제1황자 랜슬롯이 그 자리를 노리고 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검은 공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네 진영이 노골적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비로소 나머지 기사들이 이 자리가 갖는 무게를 이해하고 떨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결코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모여 있는 괴물의 수준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당장에 데일의 재능 앞에서 매일같이 벽을 느꼈을 샬롯 오르하르트조차, 바로 그 괴물 중의 하나였으니까.

“랜슬롯 황자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기에 침묵 끝에 조용히 웃었다.

“저 역시 수십 명이나 되는 어중이떠중이들의 시시한 싸움을 지켜보는 것은 썩 달갑지 않네요.”

“그렇겠지.”

그리고 미처 데일의 말이 끝날 틈도 없이, 랜슬롯이 땅을 박차고 쇄도했다.

카앙!

검이 맞부딪쳤다. 랜슬롯의 검이었고, 그러나 데일의 검은 아니었다.

“부디 자중하시지요, 황자님.”

광검 헬무트 블랙베어 경의 대검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족히 이 미터가 될 것 같은 광전사의 대검, 광기(Madness)였다.

“감히 황자님 앞에서 검을 들이미는 것이냐, 작센의 미친개 따위가……!”

동시에 귀검 세필리아가 그녀의 검 ‘소울브링어’를 꺼냈고,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살검 마스터 바로의 몫이었다.

카앙!

“허허, 이 아줌마 성질도 참.”

“바로, 네놈……!”

황실과 작센 진영의 강자들 사이에서 벌써 말 없는 신경전이 펼쳐졌고, 천검과 성검은 묵묵히 침묵을 지킬 따름이다.

순수하게 머릿수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이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작센의 진영이다. 아울러 여차할 때 데일에게는 샬롯을 비롯해 ‘성검’을 움직일 수 있는 청색 거미줄까지 있다. 속되게 말해서 꿀릴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쓸데없이 개죽음을 당할 바에야, 지금 이 자리에서 물러날 기회를 드리지요.”

그렇기에 ‘검은 공자’가 입을 열었다. 이곳 검의 전각에서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검들을 향해서.

“적당히 주제 파악을 하고 물러나시는 게 그대들 모두에게 좋을 겁니다.”

“하, 하하! 이 새끼가 말하는 게 아주 걸작이야, 걸작.”

데일의 말에 제7황자 모드레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일찍이 북부 마왕령에서 ‘검은 공자’와 함께 성전에 참전했고, 불사공에게 부대 전부를 몰살당하고 홀로 살아남아 도망친 패장.

“아, 모드레드 황자님. 그날 전투의 패배와 악몽을 무사히 극복하신 듯 보이네요.”

“……!”

그 말에 다시금 흉흉하기 그지없는 살기가 감돌았다. 바로 그때였다.

“다들 그쯤 해주십시오.”

쿠웅!

침묵 끝에, 비로소 천검이 그의 검을 뽑아 땅에 내리꽂았다. 동시에 산 정상의 지축이 뒤틀리는 것 같은 충격이 울려 퍼졌다.

“브란덴부르크 백작님, 검의 시험을 주관하는 자로서 부디 이 무질서를 통제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대로 천검이 필립을 향해 되물었다. 성 막달레나 기사들 사이에서 필립이 남의 일처럼 차갑게 웃었다.

“우리의 앞에 있는 ‘검은 공자’는 제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웃고 나서 필립이 말했다.

“그리고 천검 랭커스터 대공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미하일 공자님을 죽였지요.”

“…….”

“이 사악한 ‘검은 공자’의 손에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사랑스러운 가족들을 잃었습니다!”

필립이 말했다.

“무엇보다도, 성검의 차기 검주이신 성처녀 오렐리아 님께서는 자신의 목숨마저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어쩔 셈이지요. 필립 백작님?”

데일이 차갑게 되물었다.

“일찌감치 망해버린 튜토니아 기사국의 전통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가 되찾아야 할 것들이 있지!”

필립이 말했다. 비로소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회심의 일수’를.

“──성처녀님, 저는 당신에게 혼약을 제의하고 싶습니다!”

성검의 검주이자, 작센의 동토에서 잿더미가 되어 죽었어야 할 거짓과 순백의 오렐리아를 향해서.

“……?”

이어지는 너무나도 뜻밖의 소리에, 데일이 어이가 없어서 숨을 삼켰다.

“제 아버지는 전(前) 성검사였고, 그렇기에 백작 가와 맺어짐으로써 성처녀님의 지위는 더욱 확고해지겠지요!”

필립이 말했다.

“천검 랭커스터 대공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저 ‘검은 공자’의 손에 빼앗겨야 하는 슬픔을! 하물며 제국의 황실은 말할 것도 없지요. 저 작센이 우리에게 있어 얼마나 위협적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앗아갔는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브란덴부르크의 필립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다 같이 힘을 합쳐 ‘검은 공자’를 제거하는 삼각 동맹을 제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비로소 평화적이고 신사적으로 칠검의 자리를 나누도록 하지요. 작센의 ‘검은 공자’와 그를 따르고 있는 세 자루 검이 사라지는 이상, 칠검의 자리는 우리 모두에게 여유롭게 나누어질 테니까 말이죠!”

“…….”

“그리고 저는 광검(狂劍)의 자리로 족합니다!”

“…….”

“…….”

필립의 말을 듣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세상에서 가장 싸늘한 정적이었다.

“와.”

정적 끝에, 입을 여는 것은 제7황자 모드레드였다.

“내가 살다 살다 별 병신을 다 봤는데, 이 새끼처럼 경이적으로 병신 같은 새끼는 또 처음 보네.”

“모, 모드레드 황자님……?”

“네놈 따위의 쓰레기가, 도대체 뭘 믿고 성검의 아들을 자처하는 거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 참 맞는 말이 따로 없네요.”

데일이 어깨를 으쓱이며 조롱했다. 필립의 화살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정말로 그따위 작전이 먹힐 것 같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데일이 조롱하며 필립을 향해 되물었다.

“뭐, 뭐라고……?”

그 말에 일순 필립의 표정이 굳었다. 천검 랭커스터 대공은 묵묵히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유일하게, 샬롯의 표정에 희미하게 당혹감이 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여차할 때, 샬롯은 기꺼이 주군의 부름을 받아 검을 쥘 것이란 사실을.

“하, 나의 천재적 작전에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되었구나!”

“하나 묻지요.”

데일이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그대의 아버지, 성검이 브리타니아 섬에서 성처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나 알고 있습니까?”

“하, 그것을 말이라고 하느냐. 어디까지나 정정당당한 기사로서 그녀를 쓰러뜨리고 승리하지 않았더냐!”

필립이 일말의 의심도 없이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데일은 할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흘끗 고개를 돌렸다.

그림자 속에 있는 칠흑의 오렐리아는 말할 것조차 없고, 그곳에 있는 순백의 성처녀도 예외가 아니었다.

경악과 어처구니없음을 뒤로하고 싸늘한 증오를 삼키고 있다.

바로 그때였다.

“못할 거라도 있습니까?”

침묵 끝에, 귀검 세필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소울브링어’를 꺼내 들며.

“저 멍청한 수퇘지의 헛소리는 둘째 치더라도, 우리가 이곳에서 ‘검은 공자’를 죽이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 무엇과 비교할 바 없는 싸늘한 귀기(鬼氣)를 담아서.

“작센의 ‘검은 공자’는 위험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를 죽여도, 검의 시험 도중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태로 위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자 저하.”

그 말에 비로소 노골적이기 그지없는 살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천검 랭커스터 대공이 침묵을 지켰고, 샬롯이 데일을 바라보았다. 마치 주군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순백의 성처녀가 성검을 쥐고 고개를 돌렸다.

“어허, 이 아줌마. 우리 쪽수를 보고도 지금 그깟 말이 나오는 것이오?”

마스터 바로가 차갑게 되물었다. 순수하게 칠검을 놓고 보았을 때 세 명 대 두 명이었고, 중립을 지키는 성검이 ‘청색의 거미줄’에 묶여 있다는 것은 그들로서 알지 못하는 치명적 복병이 되리라.

“칠검의 머릿수야 그렇겠지.”

바로 그때, 제7황자 모드레드가 주위를 둘러보며 되물었다.

“그나저나, 여기 있는 ‘시험자들’의 머릿수는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나 칠검의 숫자와 별개로 ‘검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이곳 검의 전각에 모여 있는 기사들의 숫자는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와 형님의 명령에 거역하는 자는 ‘제국의 역적’으로 취급되어 삼대를 멸족할 것이다.”

제7황자 모드레드가 싸늘한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러니 이제 슬슬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좀 오지? 자랑스러운 제국의 검들아.”

아울러 제국 황실의 피를 잇는 황자가 그곳에 있는 이상, 그들이 어느 쪽에 붙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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