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201화 (201/301)

201화

* * *

‘검은 공자’와 휘하의 검들이 옛 튜토니아 기사국의 땅으로 떠날 채비를 막 마쳤을 즈음.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데일이 공작성의 중정으로 나왔다.

“세피아 님, 그리고 리제.”

“오라버니!”

데일이 모습을 비추자마자, 어린 여동생 리제가 활짝 미소 지었다.

“들었어요, 오라버니! 공작성의 사람들이 모두 오라버니가 ‘오러 마스터’가 되었다며 이야기하는 거요!”

“그래, 그렇게 입조심들 하라고 말했는데 기어코 리제 귀까지 들어갔구나.”

데일이 조용히 미소 지었고,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오러 마스터. 세 자루 칠검의 도움 끝에 데일이 손에 넣은 검의 극의. 옛 튜토니아 기사국에서 벌어지는 ‘검의 시험’에 참여하기 위해 지옥을 방불케 하는 수행이었고, 그 끝에 데일은 또다시 자신을 증명했다.

제국 제일의 천재란 것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재능이었고, 데일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씁쓸하게 웃었다.

“서클과 오러 하트(Aura Heart)를 운용하는 법에 대해서도 슬슬 익숙해진 모양이구나.”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섰을 따름이에요.”

이제는 리제의 마법 스승이자 지혜로운 엘프 세피아가 미소 지었고,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라버니께서는 검과 마법을 동시에 쓸 수 있는 거예요?”

“응.”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하는 리제가 천진하게 되물었고, 데일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피아 님께서 말하기를, 곧 1서클의 완성을 앞두고 있다고 하시더라.”

“피를 속일 수는 없는 법이겠지.”

“헤헤.”

데일이 리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고, 세피아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리제는 두 사람의 칭찬에 의기양양하게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여정에서 돌아올 때쯤에는, 우리 리제도 어엿한 마법사가 되어 있겠네.”

데일의 여정, 튜토니아 기사국에서 치러지는 검의 시험. 대륙 각지의 검들이 모여들고 있는 그곳에, 데일 역시 참여할 예정이다. 어디까지나 마법사가 아니라 ‘오러 마스터’의 경지를 손에 넣은 검사로서.

기사(Knight)가 될 필요는 없다. 검을 쥐는 자들 모두가 기사는 아니니까.

어릿광대, 살검 마스터 바로가 데일에게 준 깨달음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데일은 더 이상 제국의 사냥개가 아니었다. 사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데일 자신의 의지였으니까.

“조심해서 돌아오거라.”

“고마워요, 세피아 님.”

“빨리 돌아오세요, 오라버니!”

세피아에 이어 리제가 활짝 웃으며 말했고, 검을 쥐고 있는 ‘사냥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금방 돌아올 테니까 리제도 열심히 마법을…….”

“아, 이런 시펄.”

그리고 그때였다.

“내 짬에 이 나이 처먹고 검의 시험이 어쩌니 좆뺑이나 치는 신세라니. 거 시팔 졸라게 서러워서…….”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데일과 세피아의 표정이 얼어붙었고, 기둥 너머에서 비로소 마스터 바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욕지거리가 그대로 정지했다.

“허미.”

아무리 그래도 아이 교육에 좋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는지, 마스터 바로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어이쿠, 이런 시펄. 아니, 헉…….”

“…….”

당황하며 마스터 바로가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또다시 숨을 삼켰다. 어색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니, 이…….”

정확히는 ‘아니, 이 미친 새끼가 내 여동생 앞에서 뭐라고…….’ 하고 입을 열려다 말고, 데일 역시 황급히 숨을 삼켰다.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살의와 함께.

“시펄, 졸라, 좆뺑이가 뭐예요? 오라버니?”

리제가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어허허, 꼬마 아가씨, 그것이…….”

“음.”

마스터 바로가 말을 흐렸고, 데일 역시 침묵을 지켰다. 침묵 끝에 데일이 대답했다.

“말이란다.”

“무슨 말이요?”

“처맞는 말.”

* * *

‘훗날 네가 다시 나를 부를 때, 나는 주저 없이 너와 작센 가를 위해 달려올 거야.’

그날, 자신의 주군을 위해 바친 맹세를 기억하고 있다. 기사의 맹세를 올린 샬롯은 결코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너무나도 멀어진 두 사람의 거리감 속에서, 둘의 사이가 예전처럼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출신의 고귀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가 멀다고 성장하는 제국 제일의 천재 앞에서, 샬롯 오르하르트의 존재는 그저 일방적으로 지켜져야 할 공주님에 불과했다.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하는 치기 어린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으로 ‘검은 공자’의 곁을 호위하는 레이디 블랙의 칭호를 가진 뒤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데일은 결코 필요가 없어졌다며 샬롯을 내칠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 상냥함이 샬롯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괴로울 따름이었다.

그녀의 검(劍)이, 결코 ‘검은 공자’를 호위하는 기사의 격에 걸맞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샬롯은 자기 의지로 작센 공작령을 나와, 그녀의 여정을 시작했다.

소녀의 몸으로 용병들의 온갖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각종 영지전에서 검을 증명했고, 어느 도시에서는 모험가 중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할 괴물을 토벌하고 그 실력을 증명했다.

데일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홀로 세상의 가혹함과 맞서기 위해서.

그렇게 신검의 딸이 도달한 곳은, 일찍이 아버지의 친우이자 ‘검은 공자’에게 전부를 잃어버린 천검 랭커스터 대공의 성이었다.

남아 있는 대륙 칠검 중 제일검의 칭호를 가진 검객이자, 샬롯의 아버지가 그 누구보다 신뢰한 유일의 친우.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제국이 튜토니아 기사국의 영토를 샅샅이 뒤지며 ‘매화검의 기록’을 남김없이 불태울 때, 설마 제국의 충신이자 ‘천검 랭커스터 대공’이 그 검을 갖고 있다 생각한 자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신검 바델의 예상은 적중했다.

여전히 샬롯의 손에 들린 것은 작센 가의 양손 대검이다. 그러나 그 대검에 깃들어 있는 오러는 더 이상 작센의 흑검(黑劍)이 아니었다. 하물며 랭커스터 대공 가를 상징하는 적백조차 아니었다.

“……역시 피는 속일 수가 없는 모양이구나.”

흐드러진 보랏빛을 보며, 천검 랭커스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 최강의 검술이라 일컬어지는 매화검.

샬롯이 그 검식(劍式)을 소화하는 속도는 천하의 천검조차 상상하지 못한 괴물 같은 속도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검’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화향이 울려 퍼지고 있구나. 아아, 옛 친우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해.”

그녀의 검에 깃들어 있는 자색을 보며, 랭커스터 대공이 황홀하게 미소 지었다.

신검이 천검에게 그의 검을 전수할 때, 기실 천검 랭커스터 대공이 그 검을 이해하는 것은 가히 물과 기름을 융합하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샬롯 오르하르트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물속의 물고기처럼 천검이 가르치는 검식을 흡수하며 나날이 강해졌다.

절망하고 있는 랭커스터 대공에게 있어 ‘제자 샬롯’의 성장은 유일의 낙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리라.

그렇기에 랭커스터 대공이, 침묵 끝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샬롯.”

“네, 스승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말씀하세요.”

샬롯이 보랏빛 검을 고쳐 잡고 미소 지었다.

그 미소 앞에서, 랭커스터 대공이 일순 망설였다. 그러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그저 샬롯에게서 친우 바델의 모습을 겹쳐 보며, 나직이 결의를 다졌다.

“나는 너에게, 나와 조상들이 쌓아 올린 우리 랭커스터 대공 가의 전부를 물려주고 싶다.”

“……!”

뜻밖의 말에 샬롯 오르하르트가 숨을 삼켰다.

“차남 미하일이 전사했고, 장남 리처드는 망가져 제정신이 아니다. 이대로 우리 랭커스터 가는 사라지고, 역사의 패배자로 기록되겠지.”

요크의 티타니아는 장남 리처드가 ‘적색 마탑’에 의해 미쳐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동시에 적색 마탑의 레이디 스칼렛은 그것이 ‘청색 마탑’과 요크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설령 어느 쪽이라도 해도, 지금의 랭커스터 대공에게 있어 그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내가 쌓아올린 랭커스터의 전부가 너의 것이 될 것이다.”

“그, 그러나 저는 오르하르트 가의…….”

“걱정할 것 없다.”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천검이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의 그 무엇과 비교할 바 없는 무게를 담아서.

“검의 시험에서, 너를 우리 랭커스터 가의 양녀(養女)이자 ‘정식 후계자’로 공표할 테니까.”

* * *

이름 없는 무명의 검객 중에서, 그 이름을 떨치기 위해 모이는 자들. 그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나, 냉정하게 말해 그들 대다수는 결국 세상 물정을 모르는 풋내기에 불과했다.

검이란 마법과 같다. 철저한 실력 지상주의를 표방하는 동시에, 그 실력을 얻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유파(流派)에서 어느 스승이 검을 사사했나, 그렇게밖에 정의될 수 없는 잔혹한 세계다.

재능 있는 자가 독학으로 검의 극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꿈속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데일이 가진 청색의 거미줄, 대륙 전체에 뻗어 있는 정보망을 통해 경계해야 할 검의 목록을 헤아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검 중에서, 가장 데일의 신경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일찍이 용사가 쓰러뜨린 대륙 제일검, 신검 바델의 딸.

샬롯 오르하르트.

그녀가 천검 랭커스터의 영지에 의탁하며 검을 배우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서는, 데일 역시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옛 튜토니아 기사국의 땅, 그중에서도 검의 시험이 치러지는 칼날 산맥.

그곳에서 데일은 기꺼이 그의 상대를 쓰러뜨리고 칠검(七劍) 중 하나의 검위를 손에 넣으리라.

설령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이 누구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옛 튜토니아 기사국.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복 전쟁의 영웅이자 ‘브란덴부르크 백작’의 이름 아래 지배되고 있는 영지.

바로 그곳에 비로소 작센 공작 가를 상징하는 마차가 도착했다.

이제는 기사국의 이름조차 칭할 수 없는 제국의 영지, 그마저 몰락한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손에 떨어져 있는 옛 영지를.

데일이 휘하의 검들과 함께 마차에서 내렸고,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뜻밖의 얼굴이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헬무트 경. 그리고 데일 공자님.”

그 말에 헬무트 경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여전히 장례식장을 떠올리게 하는 검정 일색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 여성. 어떻게 그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옛 용사의 손에 쓰러진 신검 바델의 미망자, 동시에 샬롯 오르하르트의 어머니.

바네사 오르하르트였다.

* * *

“작센 가에서 검의 시험을 치르고자 ‘검은 공자’와 대륙 칠검의 세 자루 검이 왔다는 보고입니다.”

일찍이 제국의 전쟁 영웅 성검사가 손에 넣은 옛 튜토니아 기사국의 수도, 말보르크.

그곳에서 보고를 듣고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가주(家主)……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증오스러운 적이, 드디어 나의 영지에 도달했구나.”

그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검을 수행하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말했듯, 결코 작센 가의 ‘검은 공자’는 보통의 노력 따위로 따라잡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정정당당함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아무리 추하고 비겁해도, 쓸 수 있는 카드 전부를 보여줄 때였다.

옛 튜토니아 기사국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에 의해 정복되었고, 그 증거로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와 필립은 바로 이곳 기사국의 심장을 손에 넣었다.

그렇기에 이곳 튜토니아 기사령(騎士領)의 영주로서, 필립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바로 이날을 위해서 벼린 그의 칼날을 보여줄 때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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