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99화 (199/301)

199화

* * *

오러의 그릇이 비로소 데일의 하복부에 생성되었다.

슈브의 촉수가 심장과 하복부를 잇는 ‘마나 회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마나 서클과 오러 하트를 잇는 세맥이 형성되었다. 어느 의미에서는 듀얼 코어(Duel Core)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데일이 비로소 육체를 바로잡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호흡과 함께 대기 중의 마나가 흡수되었다.

마법사의 심장이라 부를 수 있는 다섯 개의 서클에. 그러나 마나의 주천(周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내 슈브가 이어준 ‘마나 회로’를 타고 기사의 심장이라 부를 수 있는 오러 하트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여정을 멈추었다.

오러의 그릇에 소량의 마나가 쌓였고, 데일이 아주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했다.

오러의 그릇에 담겨 있는 마나를 가공하기 위해서.

마법사로서 활용하기 위한 마력이 아니라, 기사들이 철저하게 육체의 강화를 위해 쓰이는 ‘오러’의 형태로.

기실, 데일에게 있어 오러를 다루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비록 ‘작센의 데일’로서 수행하는 사이 힘의 감각이 흐릿해졌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용사로서 전성기였을 시절을 기준으로 했을 때니까.

게다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제국의 사냥개로 사육되는 나날 속에서, 그 감각이 쉽게 잊혀질 리는 없다.

마력이란 세계에 덧씌워지는 초상의 힘이다.

그리고 오러는 세계가 아니라, 철저하게 육체에 덧씌워지는 힘이다.

동시에 작센 가의 밤까마귀 기사들이 흑색의 오러를 머금듯, 살검 마스터 바로가 핏빛 오러를 머금듯, 오러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사상을 투영하는 힘.

그리고 비로소 데일의 오러가, 그림자 군주의 사상을 머금고 육체 속에서 빛을 내뿜었다.

이미 태고의 어둠과 종말의 냉기가 깃들어 있는 육체에, 비로소 오러가 덧씌워진다.

전신의 세맥(細脈)과 혈류를 타고, 신경과 세포 하나하나에 그 힘이 녹아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힘이었다.

시험 삼아 다시금 일정량의 마나를 흡수해, 슈브의 촉수를 타고 오러 하트를 향해 흘려보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작센의 데일로서 하루아침에 전생의 그것과 같은 경지에 다다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신중하게 오러를 가공하고, 육체가 그것에 적응할 수 있도록 조금씩 양과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슬슬 됐으려나.’

동시에 다섯 개의 서클에 축적되어 가공되기를 기다리는 대량의 마나를, 일제히 오러 하트를 향해 쏟아냈다.

마법사로서 5서클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데일이었고, 그마저 보통의 5서클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역량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데일이 체내에 축적하거나 흡수할 수 있는 마나의 양 역시 통상 규격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제 막 오러 하트를 각성한 기사가 흡수할 수 있는 오러의 수십…… 아니, 수백 배에 가까운 양의 마나 덩어리가 다시금 폭발하듯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데일의 오러 하트가 필사적으로 기능하며 그릇에 담겨 있는 마나를 ‘오러’로 가공하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을 아득히 뛰어넘어, 당장이라도 오러 하트가 깨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공자님……!”

아울러 데일의 체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것을 모를 헬무트 경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 세 자루의 검이 그곳에 있는 것이었고, 헬무트 경이 당황하며 몸을 움직이려 할 때였다.

“어허, 거기까지.”

마스터 바로가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댁의 공자님을 툭 하고 쳐서 억하고 뒈지시는 꼴이 그리 보고 싶소?”

“…….”

헬무트 경 역시 알고 있었다. 그저 충성스러운 부하로서 그가 섬겨야 할 작센 가의 장남이, 저토록 위태롭기 그지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게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걱정하실 것 없소.”

그때, 침묵하고 있는 방랑검이 말했다.

“우리의 주군에게 있어, 이것은 걱정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라오.”

일말의 의심조차 없는 확신을 하고서.

그날, 그림자 군주가 보여준 사상의 세계를 경험했기에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저 존재가 품고 있는 그릇, 그것은 고작 이 정도 줄다리기에 고꾸라질 성질의 그것이 아님을.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격통이 데일의 의식을 집어삼켰다. 그러나 데일이 가진 기사로서의 심장이란 그렇게 쉽게 부서질 것이 아니었다.

다섯 개의 서클이 회전을 그치고 침묵하는 사이, 오러 하트가 필사적으로 기동하며 ‘오러’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느덧 그것은 데일의 육골과 신경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고 있는 수준을 넘어, 피부를 뚫고 바깥으로 쏟아지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기사의 경우에는 오러의 구별이 마법사처럼 엄격하지 않다.

체내의 오러를 주천(周天)시켜 신체를 강화하는 것이 오러를 사용하는 첫째 경지, 오러 비기너.

그다음이 오러를 체외로 배출해 검에 두르거나, 방패의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오러 나이트.

그리고 그 마지막이 오러로 검과 갑주, 육체를 덧씌워 ‘아바타’를 구사할 수 있는 오러 마스터다.

다시 말해, 데일의 오러가 육체 바깥으로 방출되었다는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오러 나이트의 경지.

오러 하트의 생성과 더불어 최초의 오러를 가공하고, 재능 있는 자들조차 일평생을 바쳐야 손에 넣을 극의(極意)를 고작 시곗바늘 몇 초 사이에 펼치고 있다.

데일의 손에 들린 칠흑의 마검을 따라, 방출되는 오러가 휘감기기 시작했다.

“오러가……!”

나아가 그 오러에 깃들어 있는 색을 보고, 헬무트 경이 숨을 삼켰다.

“우리 역할은 여기서 일일이 놀라며 추임새나 넣어주는 것이오?”

“아무래도 그래 보이오.”

“오오, 이런 시펄! 졸라 놀랍구려. 역시 데일 공자님이셔.”

마스터 바로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그의 무례에도 헬무트 경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데일이 그의 검에 휘감고 있는 ‘오러 블레이드’를 보며 경이를 감추지 못할 따름이다.

하나의 색이 아니었다.

흑적청(黑赤靑)의 오러, 태고의 어둠과 마그마처럼 이글거리는 불꽃, 끝으로 종말의 냉기가 서린 냉기까지.

세 가지 색의 오러가 데일의 마검에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삼색이 맞물리며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흑색이었다가 적색으로 바뀌고, 어느새 청색으로 바뀌었으며, 다시 적색으로 바뀌었다.

‘필요에 따라 마력처럼 오러의 색을 조종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헬무트 경이 숨을 삼켰다.

그림자 군주가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일체의 마력을 쓰지 않고, 마나 서클을 가속하지 않고, 철저하게 검(劍)을 추구하는 자로서.

체내에서 약동하고 있는 오러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입을 열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칼이나 뽑아라. 마스터 바로.”

“어이쿠, 그 말을 기다렸수다.”

마스터 바로가 비로소 그의 검을 뽑았다.

오러 나이트의 경지. 아직 ‘아바타’를 사용할 수 있는 오러 마스터의 경지가 아니다. 비록 데일이 아바타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력과 『검은 산양의 서』를 통해 덧씌우는 마도의 힘이다.

그렇기에, 검의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데일이 추구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였다.

오러 마스터의 경지.

그림자 군주의 아바타가 아니라 오롯이 ‘데일의 아바타’를 투영하는 것.

‘다행히도 어찌어찌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할 수는 있었으나, 자가 수행으로는 여기까지가 끝이겠지.’

그것을 위해 데일이 그의 오러 블레이드를 고쳐 잡았고, 대륙 칠검의 세 자루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독학(獨學)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오러 나이트의 경지까지.

이 이상의 경지를 열어젖히기 위해서는 강자들과 목숨을 걸고 사경의 줄타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죽일 각오로 덤비도록.”

데일이 말했고, 마스터 바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잠시. 데일 공자님!”

바로 그때, 헬무트 경이 끼어들었다.

“공자님의 첫 수행 상대를 자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저, 헬무트 경이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헬무트 경의 검과 맞부딪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수행 과정이 되겠지요.”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헬무트 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마스터 바로는 살검(殺劍)의 이름을 가진 자, 기사의 고결함과 거리가 멀지요. 상대를 죽이기 위해 온갖 비열하기 그지없는 검을 펼치는 자입니다.”

“어허, 칭찬이라고 받아들이겠소.”

“지금 당장 저에게는, 딱 그 정도의 위협이 알맞습니다.”

“……저의 무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공자님.”

비로소 데일의 의중을 헤아린 헬무트 경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헬무트 경. 여차할 때 저를 지켜주시는 것은 헬무트 경의 역할일 테니까요.”

데일이 미소 지으며 말했고,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마스터 바로가 그곳에 있었다.

기사로서의 데일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검을 쥐는 경험 따위가 아니다. 굳이 이계의 용사 시절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이, 작센 가의 장남으로서 얼마나 지긋지긋할 정도로 검을 쥐고, 헤아릴 수 없는 적과 맞서 싸웠나.

그렇기에 데일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달리 있었다.

오러의 감각을 되살리는 일이다.

과거, 이계의 용사로서 오러를 전개하며 싸울 때의 감각과 기억. 그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에 걸맞은 강자가 필요했다.

수행 같은 듣기 좋은 허식이 아니라, 진짜로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맞서야 할 강자.

그 점에 있어 살검 마스터 바로는 데일의 ‘첫 수행 상대’로서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이 꽉 악무쇼, 졸지에 삼도천 넘어도 나는 모르는 일이라오.”

“바라는 바다.”

흑적청의 오러 블레이드를 고쳐 잡고서 데일이 말했다. 말하기 무섭게, 어느덧 마스터 바로가 사전 동작조차 없이 검을 뽑아 휘두르고 있었다.

후웅!

거리가 제법 멀어져 있었으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데일의 목젖 둘레를 타고 빙글 휘둘러지는 살기(殺氣)를.

재빨리 땅을 박차고 거리를 벌렸다. 육체에 깃들어 있는 오러를 폭발시키며 움직였고,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

오러가 갖는 터무니없는 힘에, 예상을 아득히 넘고 있는 속도에 몸이 일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 틈을 노리고 살검이 다시금 일검을 휘저었다.

“어허, 그렇게 모가지 날아가고 싶으신가. 후딱후딱 좀 움직이는 게 좋을 거요.”

그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이.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의 거리를 넘어 위상이 뒤틀리고, 데일의 코앞에서 마스터 바로의 검이 시퍼렇게 서슬을 빛냈다.

휘청거리는 사이 데일의 육체를 향해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검기(劍氣)들이 폭발하듯 휘몰아쳤다. 무너지는 상태 그대로 추하게 바닥을 뒹굴었고, 추할 대로 추하게 살검의 검풍을 피해 도로 자세를 잡았다.

“후우, 이런 시팔. 죽이라고 정말 모가지를 따려고 그랬나?”

자세를 잡고 데일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허, 하늘 같으신 주군의 명령에 대가리를 박는 것이 기사의 의무 아니겠소.”

마스터 바로가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데일이 다시금 자신의 체내에 의식을 집중하며 생각했다.

‘이제 좀 알겠네.’

어떻게 오러를 사용해야 할지, 슬슬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체내에서 당장이라도 폭발하는 이 힘을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이 악물어라, 이 새끼야.”

그렇기에 데일이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어느덧 마스터 바로와의 거리가 좁혀져 있었다.

“……!”

태고의 어둠이 깃들어 있는 흑검(黑劍)이 휘둘러졌다.

거리를 좁히고 일검을 휘둘렀고, 너무나도 빨랐다. 그러나 그때였다.

휘둘러지는 검이 마스터 바로의 목을 동강 내기 직전, 폭발이 휘몰아쳤다.

일시적으로 오러의 폭발하듯 방출시켰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허허, 것 참. 적당히 하다가는 이쪽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네.”

데일의 흑검을 막고 있는 대륙 칠검의 일좌, 살검 마스터 바로의 아바타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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