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98화 (198/301)

198화

* * *

“천검 랭커스터 대공, 그리고 귀검 세필리아 경이 공식적으로 ‘검의 의식’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제국 전체에 뿌리내린 청색의 거미줄을 타고, 속삭임이 들려왔다. 보고를 듣고 나서 테이블에 앉아 있는 데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해주었습니다.”

보고를 올리고 나서 ‘청색의 속삭임’을 물어오는 자가 물러갔고, 데일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검의 의식. 옛 튜토니아 기사국에서 대대로 대륙 최강의 검을 가리기 위한 전통이자, 기사국이 멸망하고 나서는 그 맥이 끊겨버린 과거의 유산.

다시 말해 지금 대륙 칠검이라 불리는 자들의 경우, 데일이 태어나기도 전 십수 해 전의 마지막 검의 의식에서 그 검위를 쟁취한 자들이다.

역으로 말해, 대륙 전체에서 지금의 칠검 이상 가는 검객이 있을 확률도 배제할 수 없으리라. 당장 성검사로 거듭나 있는 또 하나의 오렐리아가 그러하고, 그림자 군주의 아바타를 가진 ‘검은 공자’가 그러하듯이.

그것은 데일의 그림자 속에 깃들어 있는 칠흑의 오렐리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무심코, 그날 이후 주군의 곁을 떠나 홀로 성장하고 있을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검(劍)을 가리는 강자들의 대결. 하물며 옛 조국에서 벌어지는 그 의식에, 신검의 딸이 참여하리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으므로.

* * *

다행스럽게도 ‘검의 의식’은 하루아침에 치러지지 않는다. 그 사이 데일이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였다.

작센 공작성, 밤까마귀 기사들의 수행을 위해 준비해 놓은 터무니없이 커다란 수행장.

그곳에서 일곱 손가락에 꼽히는 대륙 칠검 중의 세 자루 검이 모여 있었다.

광검 헬무트 블랙베어 경, 살검 마스터 바로, 방랑검의 이름을 가진 무명 검객.

끝으로 그들 검의 충성을 손에 넣은 그림자 군주, 그리고 그의 그림자를 자처하는 레이디 섀도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칠검 셋이 이 자리에 모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요.”

“어허, 감히 데일 공자님의 부르심 앞에서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소이다.”

“이런 시펄.”

마스터 바로가 고개를 저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광검 헬무트 경의 표정이 굳었다.

“기사를 자청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살수(殺手)가, 참으로 낯짝도 두껍기 그지없구나.”

기실, 같은 작센 공작령에서 지내고 있다고 해도 두 사람이 마주칠 접점 같은 것은 좀처럼 없으리라. 서로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광검 헬무트 경은 작센 공작의 검으로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살검 마스터 바로의 경우는 그림자 법정의 검으로 그림자 밑에서 암약하고 있었으니까.

“어허, 시펄. 세상일이 그렇게 돌아가 버린 것을 달리 어쩌겠소?”

“네놈처럼 맹약을 알지 못하는 자의 무엇을 믿고 데일 공자님의 등을 맡겨야 하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헬무트 경. 살검 마스터 바로는 보기보다 믿을 수 있는 자니까요.”

“하오나 공자님……!”

“경들께서는 사사로운 다툼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데일이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부드럽게, 그러나 이의의 여지를 주지 않는 목소리였다.

스릉.

그대로 데일이 허리춤에 걸린 칠흑의 마검, 기아를 뽑아 들었다.

“다가올 검의 의식에서, 이름 없는 신흥 강자들을 제외하고 경계해야 할 자들은 두 명입니다.”

데일이 말을 이었다.

“천검 랭커스터 대공, 그리고 귀검 세필리아 경이지요. 그리고 두 기사 모두 ‘검의 의식’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합니다.”

“천검과 귀검이…….”

예상은 했으나 막상 그 이름을 듣자, 헬무트 경이 조용히 숨을 삼켰다.

“성검의 자리는 오직 성검을 가진 자에게밖에 허락되지 않는 검위이지요. 그러나 공석으로 남아 있는 신검(新劍)의 자리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필시 그들 모두가 신검의 자리를 노리고 도전하겠지요.”

데일이 말했다.

“그리고, 저 역시 경들과 함께 ‘검의 의식’에 참여할 겁니다.”

“……!”

데일의 말에 일순 세 자루 검이 숨을 삼켰다.

“하오나 공자님, 검의 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헬무트 경이 말을 이르려다 말고, 무엇을 깨달았다는 듯 숨을 삼켰다.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생긋 미소 지었다.

“오러를 사용해야 하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옛 검의 의식에는, 검과 마법을 동시에 구사하는 마검사들 역시 적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데일이 말했고, 그 의미를 헤아린 헬무트 경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저는 지금부터, 기사들이 쓰는 것과 같은 오러 하트(Aura Heart)를 체내에 생성할 생각입니다.”

이 세계의 마법사와 기사가 동시에 두 가지를 섭렵하지 못하는 이유 자체는 무척이나 심플했다.

마법사는 마력을 쓰고, 기사는 오러를 사용하니까.

그러나 두 가지 마력과 오러는 어디까지나 마나를 가공하는 방식의 차이이며, 결국 양쪽 모두 대기 중에 존재하는 초상의 힘, 마나에서 비롯되는 힘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과거에는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려는 탐구 역시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이 시대에 기사와 마법사가 철저하게 구별되는 것은 오직 하나의 까닭이다.

효율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꼴이니까.

마력이나 오러는 그 하나를 탐구하는 것조차 보통 사람에게는 일평생의 노력이 요구되며, 그마저 극의에 이를 수 있는 자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지경이다. 염려하지 않는 쪽이 이상할 것이다.

“경들의 걱정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데일이 자기 뜻을 설명하려 할 때였다.

“알겠습니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헬무트 블랙베어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헬무트 경?”

“저는 데일 공자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다. 지금의 데일이 보여주는 것은 결코 마법사로서의 성취가 다가 아니었다. 그림자 군주의 아바타, 나아가 마법사를 자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劍)으로서 결코 대륙 칠검에 뒤지지 않는 무위를 보유하고 있다.

그 상태에서 오롯이 육체의 강화에 집중할 수 있는 오러를 손에 넣게 될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제국 제일의 천재라 불리는 ‘검은 공자’이기에 믿을 수 있었다. 적어도 그가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말할 때, 그것은 결코 허황하기 그지없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므로. 지금까지 데일의 활약을 끝없이 목격하고 경이를 감추지 못한 그들이기에 알 수 있었다.

“어이쿠, 시펄. 거, 그렇지 않아도 가진 것도 많으신데 참 욕심도 졸라게 많구려.”

“데일 공자님의 앞이다, 말을 조심하라.”

“어이쿠, 실례했습니다.”

마스터 바로가 과장스럽게 고개를 숙였고, 데일이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기실, 데일이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은 말마따나 결코 허황하기 그지없는 포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데일의 일평생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익숙한 상태이리라.

과거, 이계의 용사가 가진 비기(祕技)였으니까. 그러나 지금 데일이 펼치려 하는 것은 조금 더 달랐다. 데일의 심장을 휘감고 있는 다섯 개의 서클은 결코 보통의 서클이 아니었으니까.

“슈브.”

데일이 입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이계의 흉물, 동시에 드레스 차림의 어린 소녀가 데일의 곁에 나타났다.

“내가 말해준 대로 부탁할게.”

─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어.

슈브가 생긋 미소 지었고,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각오를 다지고 심장의 서클 다섯 개를 회전했다.

등 뒤에서 저마다 오러의 극의에 이르러 있는 세 자루 검을 뒤로하고, 데일이 입을 열었다.

“시작해줘.”

촤아악!

마법사로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마나 하트, 5개의 서클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림자 군주의 심장과 융합하고 있는 『검은 산양의 서』가, 새 촉수 다발을 생성하며 데일의 체내를 타고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내려가는 위내시경처럼.

슈브의 촉수를 ‘마나 회로(Circuit)’로 삼아, 심장에서 아랫배로 이어지는 마나의 길이 열렸다.

마나 회로를 타고, 심장에서 휘몰아치는 마나의 소용돌이를 육체의 아래로 쏟아 보내기 시작했다.

순수한 마나 덩어리가 아랫배의 배꼽 쪽을 향해 둑이 터지듯 흘러가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마나 하트’는 심장에 있다. 기사들의 오러 하트는 그렇지 않다. 배꼽에서 몇 치 아래의 하복부, 그곳이 바로 기사들이 마나를 축적하고 오러로 가공하는 ‘기사의 심장’이니까.

바로 그 오러 하트가 있는 장소를 향해 슈브의 촉수들이 미끄러지듯 내려왔고, 정교하기 그지없는 마나 회로의 세맥(細脈)을 형성했다.

심장의 서클과 오러 하트 사이를 잇는 마나의 길.

“커헉……!”

오장육부 전체가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데일이 의식을 가다듬었다.

동시에 마나 회로를 타고 둑 터지듯 쏟아지는 마나의 덩어리가, 폭발하듯 데일의 하복부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어엿한 기사로서의 시작은 체내에 ‘오러 하트’를 생성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마법사를 기준으로 최초의 서클을 각성하는 1서클이고, 기사로서 지금의 데일은 아직 1서클조차 생성하지 못한 풋내기다.

그렇기에 물과 기름이 맞물린 경계점을 억지로 뚫으려는 것처럼,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슈브의 촉수가 꿈틀거렸다.

마나 회로를 타고 끝없이 뿜어지는 날것 상태의 마나가, 오러 하트의 외피(外皮)를 형성하고 그 속에 마나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오러의 그릇이 비로소 데일의 하복부에 생성되었고, 마나가 담기고 있었다.

어느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오러의 극의에 이르러 있는 세 자루 검들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데일의 육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마법사가 심장에서 아랫배로 이어지는 ‘마나 회로’를 생성하고, 그 회로를 타고 마나를 흘려보냄으로써 기사의 심장, 오러 하트를 생성했다.

“고, 공자님……!”

“허미, 쉬펄.”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마스터 바로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계의 용사가 달리 괴물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감히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마검사의 효율을 그 정도로 끌어낼 수 있는 자가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데일이 지금껏 오러 하트를 생성하지 않고, 철저하게 마법사로 집중한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였다.

작센 가의 장남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그 시절의 육체에 비할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결국에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치는 결과가 될 테니까.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그림자 군주의 힘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데일이 마법사 하나에 전력을 쏟는 것은, 벼룩 하나를 잡자고 초가집을 불태우는 수준의 낭비가 되리라.

심장에 있는 『검은 산양의 서』가 촉수를 뿜어 오러 하트와 이어지는 마나 회로를 생성했고, 그 회로를 타고 마나가 오가기 시작했다.

마법사와 기사의 심장이 이어졌고, 호흡할 때마다 두 개의 심장에서 각각의 마력과 오러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마법사가 서클의 개수를 늘려 마법사로서의 경지를 늘리듯, 기사 역시 오러 하트를 확장하며 축적할 수 있는 오러의 양을 늘릴 수 있다.

이제 막 오러 하트를 생성한 데일이었고, 이 정도로 멈출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슈브의 촉수가 이어준 마나 회로를 타고, 심장에서 오러 하트를 향해 터무니없는 양의 마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사로서 일평생을 바쳐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일컬어지는 극의(極意)를, 바로 이 자리에서 손에 넣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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