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 * *
조직 밑에 있는 조직 밑에 있는 조직. 점에 점을 물고 끝없이 이어져 있는 거미줄을 착실하게 되짚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제국자유도시 할렘의 뒷골목, 어느 목로주점.
대외적으로 내걸고 있는 것은 목로주점이었으나, 실제로 그 주점에 술이나 숙박을 하러 들어오는 자들은 없다. 어디까지나 도시법을 준수하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으니까.
그 실체는 할렘을 지배하는 범죄 길드 중 하나, 그것도 대륙 제일의 암살자 길드로 악명 높은 그림자 법정의 하부 조직이다.
주점의 바닥에는 살수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흩뿌려지는 암기 세례에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일제히 바닥에 대가리를 박은 채 엎드려 있었다.
“자자, 그럼 지금부터 손가락이 사라지는 마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콰직!
“아아아악!”
그리고 그곳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공식적으로 목로주점의 점장을 자처하는 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도대체 앞에 있는 이 남자의 정체가 무엇일까. 어떻게 감히 소법정의 판사(判事)를 자처하는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일까.
스미스가 지배하는 소법정은 기실 이름도 없는 범죄자 조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위에 있는 자신들은 아니었다.
조직 위의 조직, 이곳이 바로 그림자 법정의 진짜 소법정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조차 ‘진짜 머리’는 아니다.
그것이 바로 그림자 법정의 무서운 점이다. 머리라고 생각한 것이 머리가 아니고, 몸통이라고 생각한 게 몸통이 아니다. 누구도 그들의 실체를 오롯이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커다란 문제 역시 바로 그 점이었다.
정작 그림자 법정의 ‘진짜 수뇌’라 부를 수 있는 이들조차 자기네 조직의 실체를 오롯이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허허, 대가리가 와도 대가리를 알아보지 못하니, 이놈의 대법정이 도대체 뭐에 쓸모가 있나.”
“제, 제발 용서를……!”
“그래, 네놈이 이 도시를 지배하는 게 그림자 법정의 대가리라고 했지.”
“맞다!”
“맞다?”
“마, 맞습니다!”
“그럼 자유 도시동맹을 지배하는 것도 네놈이냐?”
“아, 아닙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소법정! 이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저희 위의 고, 고등 법정입니다!”
“고등 법정(High Court)이라고?”
그 말에 마스터 바로가 조용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허, 시펄. 우리 법정에 그런 게 있었나?”
그림자 법정의 조직 체계는 오직 두 가지다. 소법정과 대법정. 소법정을 자처하는 하부 조직이 저마다 규모가 다르고 힘이 달라도, 아울러 소법정의 살수들이 신명(神命)의 집행자가 아니라 그저 일개 범죄자들의 조직에 불과하다 해도.
“자, 그럼 슬슬 고등 법정에 대해 불어보실까?”
“내, 내가 조직의 정보를 함부로 말해줄 것 같으……십니까!”
“흠, 어디서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그 말에 마스터 바로가 귀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소, 소리?”
“네 손가락이 제발 말해달라고 애걸하는 소리.”
우두둑. 동시에 손가락뼈가 손등에 딱 달라붙을 정도로 끔찍하게 뒤틀렸다.
“아아악! 말할게요! 아아아악! 말하겠습니다! 전부 불 테니까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허허, 이 친구 지조 없는 게 참 맘에 들어.”
점장이 술술 이야기를 불었고, 바로 그때였다.
“아니, 너희들이 뭐 콩가루 법정이라도 되냐?”
마스터 바로의 활약을 뒤로하고, 주점 구석에 앉아 있는 후드 차림의 남자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어허, 너무 그러지 마쇼. 내가 뭐 이 조직을 세우기라도 했소이까? 애초에 나는 좆뺑이 전담이라오.”
마스터 바로의 말에 ‘그림자 군주’가 대답했다.
“대법정의 대법관들이 그들 아래 두고 있는 법정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들었다. 그러나 자유 도시동맹에 그들의 법정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데.”
“소법정 아래의 소법정, 심지어 그 아래의 아래까지 뻗어 있는 게 우리 그림자 법정이라오.”
대륙 제일의 암살자 조직이란 것은 결코 허명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 규모로 비대해져 있는 조직은, 정보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세계에서 필수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잔가지가 뻗는 법이다.
그렇기에 그림자 군주의 첫 목표는, 바로 그 잔가지를 치고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고등 법정이라, 어쨌거나 듣기에 참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름이네.”
데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어, 어디 가쇼?”
“그야 고등 법정으로 가봐야지.”
바로 그때였다.
“아, 뭐 우리가 직접 찾아갈 것도 없을 것 같소.”
바람이 불었다. 무척이나 익숙한 바람이었다.
바람이 불고 나서, 실루엣이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새 부리 마스크에 코트를 걸치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네놈들이 감히 겁도 없이 우리 ‘그림자 법정’에 손을 댔다는 녀석들이냐.”
새 부리 마스크의 남자 하나가 입을 열었다.
하나하나 일찍이 이곳의 조무래기들과 비교를 불허하는 박력이었다. 말 그대로 그림자 법정의 살수, 그 자체다.
“호오, 꼴을 보아하니 아무 데서나 굴러먹은 개뼈다귀는 아니고.”
그들을 보며 마스터 바로가 흥미롭다는 듯 입을 열었다.
“쓸데없이 피를 흘릴 생각은 없다.”
동시에 데일이 말했다.
“그림자 대법정(Grand Court)의 사람으로서 명령하겠다. 그대들 고등 법정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라.”
“대법정이라고 했느냐?”
새 부리 마스크의 암살자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느그들 칼잡이 대빵이다 이 말이여.”
마스터 바로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그때였다.
“하, 하하!”
손가락이 엉망으로 망가진 점장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그림자 법정의 ‘진짜 살수’들이 움직였나! 이제 네놈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다!”
그야말로 두 사람이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없다는 듯이.
“그럼 여기 있는 것들은 죄다 가짜란 소리여?”
“적어도 저들이 네가 말하는 진짜 법정의 암살자들이란 소리겠지.”
데일이 덤덤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쓸데없이 피를 흘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겠지.”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목소리로, 데일이 그림자 법정의 살수들을 향해 말했다.
타앗!
그와 동시에 새 부리 마스크의 암살자들이 땅을 박차며 흩어졌다. 동시에 칼날의 세례가 부채꼴로 흩뿌려졌고, 그 행동에 마스터 바로가 움직이려는 찰나였다.
데일이 말없이 그를 제지했다. 동시에 팔을 뻗었다.
자신의 새 힘을 시험하기 위해서.
다섯 개의 서클이 가속했고, 청색 마력을 통해 그의 체내에 깃들어 있는 ‘종말의 냉기’가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어린 리제가 흩뿌린 마력이, 일대의 시린 냉기를 머금으며 수정처럼 빛냈듯이.
데일 역시 엄밀히 말해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력을 기체 형태로 방출하는 과정에서 체내에 있는 ‘종말의 냉기’를 융합하고, 그 냉기를 무차별적으로 흩뿌릴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 여동생의 그것처럼 아름답지도 예쁘지도 않고, 빛나지도 않았다.
그저 처절할 정도의 잔혹함을 가진 죽음의 냉기였다.
“……!”
마치 보이지 않는 독가스가 그들을 잠식하듯, 종말의 냉기가 흩뿌려져 살수의 육체에 닿기 무섭게…….
그것은 얼음처럼 알기 쉬운 형태의 고통을 제공하지 않았다.
우주의 겨울, 절대영도가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알기 쉬운 동사가 아니다. 물질의 무질서도(Entropy)가 극도로 높아져, 물질 구조의 핵심 입자들이 붕괴하는 존재의 소멸 그 자체를 일컫는다.
질서의 붕괴, 그것이 바로 궁극적으로 종말의 냉기와 우주의 겨울이 의미하는 결말이었다.
종말의 냉기가 그들을 집어삼키기 무섭게, 육골(肉骨)과 피가 입자의 레벨로 해체되며 형체조차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조차 ‘종말의 냉기’가 가진 능력 일부에 불과하다.
‘이 힘을 궁극적으로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을까.’
무질서도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기에, 이계의 지식을 가진 그림자 군주이기에 더더욱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결코 사람 하나를 죽이는 수준에서 그칠 정도의 힘이 아니다.
물질 조작(Matter Manipulation)의 경지에 다다라 있는 능력.
‘지금 당장 생각할 일은 아니겠지.’
새 부리 마스크의 암살자 하나가, 그 존재를 상징하는 일말의 요소들이 입자 레벨에서 흩어져 소멸했다.
잿더미조차 남지 않고.
“……!”
살수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정지했다. 그들 역시 바보가 아니다. 그렇기에 데일의 모습을 보자마자 직감했으리라.
격이 다르다는 것을.
“허허, 이 친구들아. 슬슬 어느 쪽에 대가리를 박아야 할지 슬슬 감이 오지?”
마스터 바로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무섭게, 살수들이 움직였다. 그야말로 신기(神技)에 가까운 움직임.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적의 목을 베기 위함이 아니었다.
““감히 대협(大俠)을 몰라뵈었습니다!””
그림자 법정의 살수들이, 데일과 바로 앞에서 일제히 머리를 박았다.
“허허, 이 친구들 아주 일관성이 있어서 좋아. 아주 그냥 칼 같네.”
그 모습을 보고 마스터 바로가 흐뭇하게 웃었다. 웃고 나서, 고개를 돌렸다.
“자, 어디 그럼…….”
“히, 히익!”
그림자 살수들의 등장과 더불어, 직전까지 데일과 바로를 두고 ‘죽은 목숨’이라 비웃은 점장을 향해서.
“어디 모가지가 사라지는 마술을 보여줄까?”
* * *
그 시각, 고등 법정을 자처하는 할렘의 지하 아지트.
요즘 들어 도시를 소란스럽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그에 따라 살수들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수들이 돌아왔다. 마땅히 그들의 임무를 수행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고등 법정의 판사 ‘맥기’가 몸을 일으켰다.
“그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나.”
“아주 잘 마치고 돌아왔지.”
그리고 새 부리 마스크 속에서, 그가 알지 못하는 낯설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마스크를 벗고, 그림자 군주가 비로소 그의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동시에 맥기를 향해 충성해야 할 그림자 법정의 살수들이, 일제히 그림자 군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네놈들, 감히 법정을 배신하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 법정의 수장을 자처하는 살수, 맥기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이가 없어서 웃음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그림자 법정의 판사, 적어도 그는 지금까지의 어중이떠중이들과 격을 달리 하는 존재였으니까.
어느덧 그가 암기를 역수로 고쳐 잡았고, 암기를 따라 핏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깃들기 시작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고위 살수의 상징이다.
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으리라.
그러나 그때였다.
“야, 이 새끼야.”
마찬가지로 새 부리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남자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낯이 익었다.
“대가리 좀 컸다고 여기서 왕 노릇이나 처하고 있는 꼴을 보니, 이 형님이 참으로 감격스러워서 할 말이 없구나.”
남자 역시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그 얼굴을,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그림자 법정의 고위 살수가 되기 위해서는 ‘핏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핏빛 오러를 전수하는 것은 오직 하나, 그림자 법정의 최강자이자 대법정의 살검(殺劍), 오직 하나였다.
“바, 바로 형님……?”
맥기가 당혹과 함께 숨을 삼켰고, 마스터 바로가 입을 열었다.
“맥기 새끼야, 이 형님이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길게 말하지 않으마.”
“말씀하십시오, 형님!”
“대가리 박아.”
마스터 바로가 말했고, 고등 법정의 판사이자 고위 살수 맥기는 기꺼이 그의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고위 살수 맥기를 비롯해 그곳에 있는 살수들 모두 예외가 아니었다.
자유 도시동맹의 일좌, 할렘의 지배 세력을 자처하는 조직치고는 참으로 맥없는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