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79화 (179/301)

179화

* * *

“어찌하여 저를 의회에 소집하지 않으셨습니까, 폐하.”

수정 여왕의 아들이자 지혜로운 엘프의 동생, 수정 왕자가 말했다.

“왕자님!”

당혹 속에서 몇몇 스노우 엘프 의원들이 숨을 삼켰고, 다크 엘프들은 조용히 침묵을 지킬 따름이다.

“인간 따위를 우리 동족들의 신성한 의회에 출입하게 하다니, 어찌하여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택하셨습니까?”

“…….”

수정 왕자가 위협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울러 그의 등 뒤에 있는 서리 감시자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허락도 없이 의회에 출입한 것은 그대 역시 예외가 아니니라, 아이야.”

“동족의 배신자 하나 제대로 처형하지 못하는 산상노파께서 엮이실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 왕국’의 일이니까요.”

수정 왕자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몇몇 다크 엘프들의 표정이 얼어붙었고, 산상노파는 태평하게 미소 지을 따름이다.

“아니, 애초에 처형하지 못하는 게 아니겠지요. 처형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 그 말대로니라. 우리 요정 의회는 추방자 세피아를 청색 마탑에 이어 ‘검은 공자’의 비호 아래 의탁시키는 것으로 뜻을 모았으니 말이다.”

산상노파가 말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네가 받아들이고 말고의 사항이 아니다.”

“어머니!”

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는 수정 여왕이 입을 열었다. 수정 왕자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그 배신자의 심장에 있는 옛 제국의 유산이, 제국파 엘프들의 손에 떨어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데일이 대답했다.

“그러나 애초에 세피아 님의 마도서가 제국파 엘프들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그렇게 걱정될 경우, 차라리 세피아 님을 고향의 땅에 되돌리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처음부터 내쫓지나 말란 듯 어깨를 으쓱이며.

“인간 따위가 우리 왕국의 무엇을 알고서 지껄이는 것이냐.”

수정 왕자가 얼어붙을 것 같은 냉기를 휘몰아치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행위는 그 자체로 동족의 수치이자, 크리스탈리아 가(家)의 통치를 위태롭게 하는 역모 행위였다.”

“그 역모 덕에 왕자님 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생각은 없습니까?”

데일이 조소하듯 되물었고, 바로 그때였다.

스릉.

수정 왕자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레이피어를 뽑아, 역수(逆手)로 고쳐 잡고 칼자루를 내리꽂았다. 적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을 향해서.

푸욱!

레이피어의 칼끝이 수정 왕자의 가슴을 뚫고 등 뒤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피가 흐르는 일은 없었다.

“존재하는 자체로 섭리를 깨트리고 있는 이 추악한 저주를, 감사하라고 했느냐?”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엘프들에게 있어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자 수치이다.

나아가 죽음보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와 같았으리라.

“아, 마침 잘 되었네요.”

그렇기에 데일이 싸늘하게 조소했다.

“왕자님께서는 그토록 필사적으로 죽음을 바라고 계시고, 마침 저는 ‘죽음’에 있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대가를 알고 있으니까요.”

“……!”

그의 아버지, 어둠과 죽음의 군주를 떠올리며 데일이 말했다. 그 의미를 헤아린 수정 왕자가 숨을 삼켰다.

“어째서 동요하십니까?”

데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아버지께서는 손짓 하나로 왕자님이 그토록 갈구하시는 ‘명예로운 죽음’을 제공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검은 공자’가 조소를 감추지 않고 말을 잇는다.

“사실은 죽고 싶은 게 아니겠지요.”

필사적으로 그가 감추고 있는 그림자 너머의 진실을 입에 담으며. 그것은 진실의 눈을 통해 손에 넣은 정보가 아니었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이 꼭 이형의 능력일 필요는 없으니까.

“왕자님이 살아남은 것은 결코 자기 의지가 아니며,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그 사실을 어필하기 위해 쇼를 하는 거겠지요.”

“감히……!”

동시에 수정 왕자가 레이피어를 그의 가슴에서 뽑아냈다. 뽑아내고 나서, 칼자루를 돌리며 땅을 박찼다. 그러나 그때였다.

촤아악!

“그쯤 하라, 애송아.”

보이지 않는 검풍(劍風)이 휘몰아쳤다. 데일과 수정 왕자의 사이에 경계를 긋듯이. 그러나 휘몰아치는 칼날의 소용돌이 앞에서 ‘검은 공자’는 미동조차 없이 평정을 지켰다.

수정 왕자는 그렇지 않았다.

땅을 박차려는 움직임을 멈추고 재빨리 거리를 벌린다.

“죽고 싶어도 못 죽겠다는 왕자님께서, 참으로 겁도 많으시네요.”

“네놈이……!”

그 모습을 두고 데일이 싸늘하게 조소했다. 그 조롱에 수정 왕자가 다시금 소리를 높이려 할 때였다.

“그쯤 하라고 했다.”

그의 등 뒤에, 기척조차 없이 산상노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는 것은 여기까지란 듯,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목소리를 담아서.

그녀의 검이 수정 왕자의 목덜미에 겨누어져 있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내 친히 네놈이 그토록 바라마지않는 ‘죽음’을 선사해줄 것이니.”

“……보아하니 아버지를 찾아갈 필요조차 없었나 보네요.”

바로 그때, 조롱을 내뱉는 데일의 머리카락 하나가 그대로 잘려나갔다.

“그대도 부디 그 주둥이를 좀 닥쳐주지 않겠느냐.”

“기꺼이 닥쳐드리지요.”

데일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정적 속에서, 산상노파가 말을 이었다.

“수정의 애송아, 네놈의 말마따나 수정의 왕국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내 알 바가 아니니라.”

그녀가 쥐고 있는 칼끝에는, 일찍이 마스터 바로와 같은 핏빛의 오러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수정의 왕국이 아니고, 아울러 ‘나의 왕국’이 이 자리에 합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아, 알겠습니다.”

사막과 모래의 군주가 말했다. 수정 왕자의 표정에 창백하게 질리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그의 목에 칼날을 겨누고 있는 산상노파가, 어느덧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의석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신속(神速)이라고 부를 경지의 그것조차 아니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마스터 바로가 가진 비기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그녀야말로 그 능력의 오리지널이겠지.

“그럼 의제로 돌아가도록 하지요.”

그 속에서, 데일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세피아 님의 무사에 대해서는 청색 마탑 대신, 기꺼이 저희 작센과 흑색 마탑이 보증해드릴 것입니다. 산의 노파시여, 그 사실을 헤아리고 그녀를 향하는 검을 거두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데일이 말했고, 산상노파가 즐겁다는 듯 웃었다.

“그리하마. 수정의 여왕이여, 그대 역시 동의하는가?”

그녀가 곁에 있는 냉기와 수정의 군주에게 물었고,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것으로 우리 종족의 숭고한 전통에 따라 하나의 의제가 가결되었다.”

산상노파가 소리 높여 말했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었고, 데일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걸로 세피아를 노리는 하나의 위협이 사라졌다. 그러나 세피아를 향하는 위협은 결코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세피아의 심장에 깃들어 있는 엘프 제국의 유산.

그녀가 가진 진실을 이해했고, 동시에 그 위협에 대해서는 오히려 데일로서도 마다할 것이 없었다. 세피아의 적은 처음부터 데일의 적이었고, 냉정하게 말해서 그것은 곧 데일의 적을 낚을 수 있는 미끼를 손에 넣는 것과 같았으니까.

적색 마탑과 피의 계승자들.

핏빛공 유리스 후작과 그의 일족들.

그들로부터 세피아를 지키는 것은 이제부터 ‘검은 공자’의 역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다음 의제가 끝나지 않았지.”

바로 그때, 산상노파가 재차 입을 열었다. 세피아의 처분과 더불어 요정 의회가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의제.

“고대의 맹약에 따라 우리는 그림자의 기수(旗手)를 자처하고 있고, 우리 앞에 있는 이 인간의 아이는 자신이 바로 ‘그림자 군주’임을 자처하고 있다.”

산상노파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 요정 의회는, 이 인간의 아이가 정말로 우리의 충성을 바칠 그림자 군주의 자격이 있는지 결정 내릴 것이다.”

세피아의 처우에 대해서는 순순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엘프들의 공기가, 그대로 일전했다. 지금까지와 무게를 비교할 수 없는 적의, 그리고 불신의 공기가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처음부터 순순히 그들 왕국의 충성을 얻을 수는 없으리라.

“하, 그림자 군주라고 하셨습니까!”

그 말에 비로소 침묵하는 수정 왕자가 조소를 터뜨렸다. 너무나도 웃겨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저 애송이가 감히 그 말의 의미를 이해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조소에 산상노파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제법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니라.”

그녀가 말했고, 그 말이 갖는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두 엘프의 왕국, 그중 하나의 왕국을 통솔하는 군주가 자기 입으로 데일의 자격을 긍정했다는 것.

하물며 산상노파는 결코 사무실의 서류를 끄적이며 나라를 지배하는 여왕조차 아니었다.

“존경하는 여왕 폐하,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가 갖는 무게를 이해하고 있기에, 다크 엘프 의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설령 그에게 정말로 군주의 자격이 있다고 하더라도, 충성에 앞서 그는 아무것도 증명한 것이 없습니다.”

“아, 그대의 말 역시 옳다네.”

산상노파가 즐겁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앞에 있는 이 인간의 아이는, 아직 우리에게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지.”

그 말에 적지 않은 엘프들이 동의를 표했다.

바로 그때였다.

청색의 나비들이, 날아올랐다.

“……!”

그 의미를 헤아린 데일이 숨을 삼켰고, 그것은 엘프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오직 두 사람, 열사와 수정의 대지를 다스리는 두 여왕이 평정을 지킬 따름이었다.

“이제야 왔느냐.”

─ 아, 부디 제 게으름을 용서해 주시지요. 산의 노파시여.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모략과 거짓의 마탑을 다스리는 자, 청색의 흑막이다.

─ 고대의 맹약에 따라 그림자의 기수를 자처하는 자로서, 감히 말씀을 올리고 싶었을 따름이랍니다.

“말해보세요.”

그 말에 비로소 수정 여왕이 침묵을 깨트리고 입을 열었다.

‘수정 여왕은 청색 마탑주가 아니었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데일이 냉정하게 헤아렸다. 일말의 가능성을 두고 있는 후보 하나가 목록에서 제거되었다.

─ 그림자 군주께서는 이미 제국과 우리 청색 마탑에, 그의 많은 것들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그대들의 왕국을 밟은 군주님에게, 왕국에서의 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가 아닐지요.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수정 여왕이 되물었다. 청색의 나비가 날갯짓하며 말을 이었다.

─ 종말의 서리.

“……!”

그 말에 곳곳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청색의 흑막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 옛 엘프 제국의 씻을 수 없는 흉터가 새겨져 있는 그곳에서, 우리의 군주께서는 기꺼이 증명하실 겁니다.

서리 감시자들의 목숨을 걸고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는 옛 엘프 제국의 폐허.

“좋습니다.”

그 말에 데일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증명할 수 있는 시험에 대해서는, 늘 환영이니까요.”

그림자 군주가 말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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