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66화 (166/301)

1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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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XX, X월 XX일, 성 산티아고 축일 3일째, 날씨 맑음

실험이 다시 실패했다. 실험에 쓸 아이들을 수급하는 작업에 어려움을 크게 겪고 있다. 공동 실험자 ─ 악마술사 프렐라티는 나의 고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다음 강마(降魔)의 의식이 실패할 경우, 프렐라티는 내가 브리타니아 섬을 떠나 제국에 있는 ‘악마숭배자 결사’에 합류하길 요구하고 있다.

* * *

5서클의 경지를 손에 넣는 것은 에리스와 슈브의 힘을 빌려 치러지는 특별한 시험이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데일이 흑색 마탑주의 후계자로서 모두의 앞에서 증명해야 할 시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탑의 시험, 흑색 마탑의 제21계층.

5서클의 경지를 손에 넣은 흑마법사이자 ‘검은 공자’가 그곳에 있었다.

심장을 따라 다섯 개의 서클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제5의 서클을 이루고 있는 칠흑의 촉수가, 대량의 흑색 마력을 생성하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을 따라 흑색의 피가 체내로 퍼져 나가며, 혈류를 타고 육체 곳곳에 어둠의 마력을 깃들게 했다.

『검은 산양의 서』와 융합을 마친 암혈의 육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어둠과 하나로 거듭나,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뒤틀린 무엇.

여기까지 이르러 자신의 존재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데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데일의 심장을 휘감고 있는 그것을 ‘서클’이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데일은 이 이상 슈브의 ‘일개 숙주’가 아니었다. 지금의 슈브가 데일에게 있어 일개 기생체가 아니듯이.

달라질 것은 없었다.

보다 완전에 가까워진 융합과 공생.

심장 박동에 따라 체내의 혈류가 가속했고, 콜타르처럼 검게 물들어 있는 흑색 피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인간을 결의하고 있는 데일의 육체에, 그림자 군주의 아바타가 덧씌워졌다.

암혈의 육체와 갑주.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하, 하,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

새파랗게 질린 채 무릎 꿇고 있는 어린 흑마법사를 보고, 그림자 군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걸음을 올라 다음 층계로 향할 때마다,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아래층의 흑마법사들, 심지어 흑탑의 장로들이 시험을 위해 제작한 어둠의 피조물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흑색의 후계자가 그의 자리를 계승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고, 아무도 그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시험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프리패스였다.

* * *

흑색 마탑의 층계를 지키는 계층 수호자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리고, 비로소 하층(下層)이라 불리는 곳을 지나 새로운 장소가 데일을 맞았다.

탑의 상층.

이곳부터 치러지는 탑의 시험 상대는, 해당 계층을 공방(工房)으로 삼아 거주하는 5서클 이상의 흑마법사들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매해 자신의 위치를 결정 짓기 위해 시험에 참여하며, 동시에 50계층 이상부터 100계층에 이르기까지 흑색 마탑 전체가 수라장이 되어 뒤엉키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몇 가지 제약들이 있다.

첫째, 승부는 가장 아래에 있는 계층부터 차례대로 위를 향해 치러진다.

둘째, 도전을 받는 쪽에서는 그가 거주하는 공방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

마법사에게 있어 공방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요새이자 영지이며, 그중에서도 흑색 마탑의 경우…… 그들 공방에서 치러지는 전투는 하나의 공성전과 같다.

마법사들이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그들이 공방을 방어 요새로 개조하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일대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이상의 역량 차이가 필요하다.

요새 공략전.

4서클 마법사가 어엿한 마법사 그 이상의 경지이자, 대다수의 범재가 벽에 막혀 좌절하는 종착점이라고 가정할 경우…….

5서클의 마법사는 마탑 내에서 그들의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기득의 세력이다.

계층 하나를 통째로 자신의 거처이자 공방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자금부터 흑마법의 소재에 이르기까지 탑으로부터 제공되는 혜택 역시 어마어마하다.

‘그 혜택으로 자기 계층을 방어 요새로 개조하는 데 모조리 꼴아박고 있으니 문제가 되지.’

50계층, 어느 5서클 흑마법사의 공방.

그 앞에서 데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죽은 자들의 군세였다.

작센 공작령에 해마다 범람하는 오크 등의 마족 시체를 손에 넣고 되살려, 군대로 무장시키고……. 계층 곳곳을 말 그대로 군사 진지의 형태로 개조함으로써, 필사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지키는 것이다.

데일이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도 그의 시험을 지켜보고 있을 흑색 마탑의 장로들을 향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일찍이 몇몇 장로들께서는, 흑색 마탑의 죽어버린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봉기를 일으켰지요.”

그의 앞에 있는 50계층의 흑마법사나 망자들의 군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 의미에서 흑색 마탑의 정신이 정체(停滯)되어 있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일이 말했고, 그 말에 흑색 마탑의 장로들이 숨을 삼켰다.

“전투를 전제로 하지 않는 마법사들이, 이토록 조악하고 필사적으로 자기 공방을 진지화하고……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노력이나 비용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리고 평생에 걸쳐 전장에서 살아온 전사로서, 데일이 다섯 개의 서클을 가속했다.

“진짜 전투를 알지도 못하는 마법사들이, 우물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기들끼리 전쟁 놀이를 해봐야 별 의미가 있겠습니까.”

탑의 시험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목적이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데일의 진짜 목적은 달리 있었다.

일찍이 작센 자작으로서 마왕령을 개척하고 개혁의 바람을 불어 넣었듯이, 흑색 마탑이라고 하는 조직의 구시대적 관습과 정체를 타파하는 것.

자신의 공방을 지키기 위해 헤아릴 수 없는 죽은 자들의 군대가 돌진하기 시작했다. 5서클의 흑마법사가 망자병으로 되살린 오크 무리였고, 그들의 돌격 앞에서 데일이 팔을 뻗었다.

촤아악!

동시에 암혈의 갑주 속에서 칠흑의 촉수들이 솟아나 휘몰아쳤다.

보통의 병정보다 조금 강한 정도의 힘을 가진 오크 망자병 따위로, 지금의 데일을 어찌할 수는 없으리라.

“아, 아아……!”

그것은 이미 전투라고 부를 수조차 없었다.

“적색 마탑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전쟁에서 활약할 것을 전제로 마도를 갈고닦는 조직이 있다지요.”

퓨리파이어의 존재를 떠올리며 데일이 말했다.

“그들 퓨리파이어가 이곳 50계층을 습격했다고 가정할 경우, 이 공방이 무너지는 데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데일이 비로소 망자병 사이에 숨어 있는 5서클의 흑마법사를 향해 물었다.

“이토록 어설프기 짝이 없는 요새를 세워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급급할 경우, 그 여파는 덩달아 아래 계층의 젊은 흑마법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러나 데, 데일 공자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흑색 마탑의 전통에 따라…….”

비로소 5서클의 흑마법사가 침묵 끝에 입을 열었고,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색 마탑의 강경파들이 바꾸어야 할 것은 아버지의 성을 습격해 그들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전통이었습니다.”

“……!”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조직의 기능과 효율을 갉아먹는 구시대의 악습들.

하루아침에 바뀌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데일로서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을 따름이다.

자신이 어엿한 흑마법사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나아가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흑색의 후계자로 지위를 공고히 할 때를.

데일이 다시금 손을 휘저었다.

암혈의 갑주가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암혈의 육체에 있는 힘을 드러내기 위해서.

발밑을 따라 흑색 마력의 폭풍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50계층의 흑마법사가 필사적으로 쌓아 올린 요새 전체에 사멸(死滅)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무기물이 부식되고, 나아가 뼈밖에 없는 망자들의 육체가 잿더미가 되어 스러져 내렸다.

“히, 히익!”

죽음의 공포를 직감하며 5서클의 흑마법사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러나 그림자 군주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덤덤히 걸음을 옮길 따름이다.

이미 초토화되어 있는 50계층을 넘어서, 오롯이 데일 자신의 힘으로 닿을 수 있는 곳까지 나아가기 위해.

* * *

데일이 자기 입으로 흑색 마탑의 조직을 뒤집어 놓겠다고 말해버린 이상, 자기 계층을 소유하고 있는 흑마법사들의 저항에 부딪히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귀결이었다.

그렇기에 50계층 이후부터 ‘검은 공자’에 맞서는 흑마법사들의 저항 역시, 지금까지와 비교를 불허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개 5서클의 마법사들이 데일의 앞을 가로막을 방법 같은 것은 없었다.

51계층, 52계층, 55계층…….

필사적으로 공방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흑마법사들의 요새를 초토화하며, 데일이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감히 거스를 생각조차 하지 못할 힘을 보여주되, 데일의 카드는 압제(壓制)가 다가 아니었다.

오히려 마왕령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회의 땅으로 바꾸었듯이, 비로소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포상을 입에 담았다.

공식적으로 흑색 마탑주가 부재하고 있는 사이, 그 대리자의 자격을 손에 넣고…….

일찍이 마왕령에서 그러했듯, 훗날의 미래를 위해 흑색 마탑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을 차례였다.

* * *

그 시각, 흑색 마탑의 장로들로 이루어져 있는 조직 ‘흑의위(黑衣衛)’가 탑의 일실에 모여 있었다.

50계층부터 벌어지고 있는 데일의 시험을 지켜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경악하는 것은 데일이 내세우고 있는 개혁 따위가 아니었다.

흑색 마탑의 고위 마법사로서, 어둠의 이치를 추구하고 있는 그들이기에 알 수 있었다.

데일의 육체에 일어나 있는 무엇. 그들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어둠이 ‘검은 공자’의 육체와 하나로 거듭나 있었다.

“아무래도 어리고 총명하신 공자님께서, 무척이나 훌륭한 포부를 가지신 듯합니다. 참으로 보기가 좋아요.”

바로 그때, 흑색 마탑의 장로 하나가 입을 열었다.

부재하고 있는 흑색 마탑주의 공석에, 그를 대신해 앉아 있는 흑색의 대행자 에리스가 고개를 돌렸다.

“게다가 무척이나 부끄럽게도, 공자님의 말씀이 옳지요. 참으로 송곳처럼 날카로우신 말씀이 아닙니까?”

“노, 노사님……!”

당혹을 감추지 못하는 몇몇 장로를 뒤로하고, 노사(老師)가 아랑곳하지 않고 웃었다.

“일찍이 옛 친우 에드거가 그리 말했듯, 우리의 사상이 정체되고 녹슬어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에요.”

몇몇 장로들이 숨을 삼켰고, 에리스가 모노클을 빛내며 되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저는 그저 공자님의 행위에 정당성이 있으며, 나아가 능히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답니다.”

“…….”

“그럼 잠시 실례하지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노사가 몸을 일으켰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새로운 시대정신을 영접하러 가는 길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노사가 즐겁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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