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65화 (165/301)

165화

* * *

대대로 작센의 가주들이 그들이 축적한 지혜를 계승했을 때,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군주의 힘을 손에 넣었을 때, 그러나 그들 중 ‘그림자 군주’의 이름을 가진 자는 없었다. 설령 데일의 아버지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검은 산양의 서』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데일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에 초대 그림자 군주 불사공이 데일을 일컬어 ‘찬탈자’라고 말했듯…… 그 말마따나 왕위를 손에 넣어줄 때였다.

* * *

그곳은 어느 흑마법사의 공방이었다.

과거의 작센 가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뿌리 깊은 어둠의 사도들이었다. 나아가 그들의 사상을 계승하는 흑색 마탑조차 예외일 수 없었다. 죽음 너머의 진실에 맹목이 되어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진리의 괴물들.

수술대 위에 사람의 육체가 개복(開腹)되어 있었고, 마치 외과 의사처럼 그의 육체를 휘적거리며 흑마법사가 그의 흑마법을 차례대로 실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가 손에 넣은 지식과 정보가 데일의 머릿속을 향해 흘러들어왔다.

대대로 작센의 가주들이 쌓아 올린 마도의 정수가, 마법사로서의 데일을 성장시켜주고 있었다.

일말의 양심과 가책, 도덕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찍이 흑적 교도대의 어둠이 그러했듯이.

피를 흘림으로써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통해 축적하고 쌓아 올린 작센의 지식이 계승되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일찍이 작센의 옛 가주 중 하나였다.

* * *

피, 피다! 오로지 역사의 수레바퀴는 피를 흘림으로써 굴러가는 것이다!

* * *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심득(心得)이, 말 그대로 데일의 머릿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흑마법의 활용, 그들이 축적한 어둠이 계승될 때마다 마법사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장이 이뤄지고 있었다.

결코 일대에 쌓아 올릴 수 없는 지식의 축적이, 데일이 가진 네 개의 서클 속으로 스며들어 고도화하기 시작했다.

마치 씨앗을 심고 꽃이 피는 과정을 수천 배로 가속하는 것처럼 끝없이 ‘작센의 진리’가 흘러들어왔다.

대에 대를 거듭해, 일평생에 걸쳐 탐구해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마도의 정수가.

진리의 괴물들이 축적하고 쌓아 올린 지식이 마법사로서의 데일을 끝없이 성장시켜주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서클의 가속 효율을 증대시킬 수 있을지, 흑색 마력의 순도를 높이는 가공법, 망자들을 효율적으로 조종하는 수식…….

이것은 이미 5서클이 어쩌고 하는 레벨조차 아니었다.

군주의 힘이다.

이 제국의 지배자로서 존재하는 군주들의 힘.

당장이라도 이 힘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채워지지 않는 갈애(渴愛)를 메우듯 끝없는 힘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데일의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작센 가주들의 악행은 멈추지 않았다.

희생자들이 피를 흘릴 때마다 작센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의 피가, 지금의 데일을 성장시켜주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무심코 생각했다.

──이 희생자들이 흘리는 피는 어느 의미에서 ‘그럴 가치가 있는 희생’이 아닐까?

끝없이 데일의 머릿속으로 흘러들고 있는 마도(魔道)의 정수.

이 힘은 결국 희생자들의 피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작센이 추악한 위선을 부릴 수 있는 것은, 결국 이들의 희생이 토대가 되어 있는 까닭이 아닐까.

턱밑까지 차오르는 피의 강 속에서, 데일이 생각했다.

작센의 가주들은 그야말로 진리의 괴물이었다.

그러나 흑적 교도대의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을 자행한 괴물들 역시, 결국 인간이 아니었나.

인간(人間)이란 뭐지?

바로 그때, 일찍이 데일이 쓰러뜨린 6서클의 흑마법사가 떠올랐다. 흑적 교도대의 부대장으로서, 산모의 다리를 부패시켜 모성애를 실험하고자 하는 그 악행이.

그 남자는 악마였다. 염혈의 월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아니라.

“…….”

데일이 조용히 침묵했다.

“이제 됐어, 슈브.”

침묵 끝에 데일이 말했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슈브가 즐거운 듯 미소 지으며 되물었다.

─ 무엇이?

“나에게 이것들은 필요하지 않아.”

데일이 말했다. 지금도 그의 머릿속으로 끝없이 스며들고 있는 마도의 정수를 부정하며.

─ 작센이 축적한 어둠의 지식을 계승하지 않겠다는 거야?

슈브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군주로 거듭날 수 있는 힘을 포기하겠다는 거야?

일찍이 데일의 아버지, 흑색공이 손에 넣은 군주의 힘.

“설령 그것이 아무리 값지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도의 비경(祕境)이라고 해도…….”

데일이 대답했다.

비로소 그가 얻은 깨달음을 입에 담으며.

“인간을 포기하며 얻을 가치는 없어.”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육체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의 괴물,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악마. 금수(禽獸).

“이 힘을 통해 한없이 군주들에게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결코 황금의 군주를 쓰러뜨릴 수는 없겠지.”

설령 작센의 가주들이 아직 《엘드리치》로 거듭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를 것은 없었다.

그 시점에서 그것은 이미 인간을 포기하고 얻은 힘이니까.

“너와 약속했지, 마지막까지 인간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그 약속의 무게를 데일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딱히 거창한 도덕이나 죄악감 탓이 아니었다.

이 방식으로는 결코 황금의 대제, 금색의 용에게 닿을 수 없다.

─ 그럼 오빠가 생각하는 인간이란 뭐야?

슈브가 물었다.

“인간이란 생물이 아니야.”

그리고 데일이 그가 손에 넣은 깨달음을 입에 담았다.

“물이나 액체처럼, 하나의 현상이지.”

그리고 그 현상은 너무나도 위태롭고 불안정해서, 아주 사소한 계기로 상전이(相轉移)를 일으킬 수 있다.

진리 앞에 맹목이 되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천금의 재화가 갖는 유혹에 넘어가 인간이기를 포기하듯.

흑적 교도대의 마법사들이 학술적 탐구의 달콤한 과실 앞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했듯이.

물이 1백℃ 이상에서 수증기로 기화하는 것과 같다.

아주 사소한 계기 하나로 사람들은 인간을 포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의 정의는, 오로지 자기가 인간임을 관철할 때밖에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이다.

나아가 황금의 대제를 쓰러뜨릴 유일의 방법은 바로 그 인간이란 현상을 관철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나는 인간으로 남겠어.”

그렇기에 데일이 일말의 주저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손에 넣은 작센의 힘이자 군주의 힘을 부정하며.

데일의 대답을 듣고, 슈브가 침묵을 지켰다.

침묵 끝에, 웃음을 터뜨렸다.

─ 아아, 너무나도 사랑스럽구나! 인간이란 어쩜 이리도 어리석고 사랑스러운 존재일까!

어느덧 그곳에 있는 것은 어둠의 모신(母神)이었다.

옛 어둠과 검은 풍요의 어머니가, 참으로 황홀하다는 듯이 미소 짓고 있었다.

─ 참으로 흡족하도다, 인간의 아이야!

바로 그때였다.

“커헉!”

데일의 심장을 휘감고 있는 칠흑의 촉수…… 『검은 산양의 서』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대로 심장을 압박하고 터뜨릴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촉수가 네 개의 서클 사이를 미끄러지며 꿈틀거렸다.

체내에 기생하고 있는 외계 생물이 배를 뚫고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

데일이 필사적으로 입술을 악물었다.

어느새 네 개의 서클 사이로 촉수 하나가 움직였고, 이내 고리의 형태로 휘감기기 시작했다.

마나의 흐름을 통해 고정하고 쌓아 올린 보통의 서클이 아니었다.

어둠의 원천이자 칠흑의 촉수가, 데일의 심장을 움켜쥐고 ‘다섯 개째의 서클’을 자처하고 있었다.

생체(生體)의 서클.

동시에 슈브의 행위는 또 하나의 서클을 구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육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숙주와 기생자의 관계를 넘어서…… 『검은 산양의 서』가 데일의 육체와 하나의 존재로 융합하기 시작했다.

촤아악!

고통 속에서 울컥 피가 쏟아져 나왔다.

핏빛의 혈액이 아니었다. 일찍이 암혈의 갑주를 휘감고 있는 그것처럼, 검고 어둡게 썩어 있는 흑색 피였다.

지금 데일의 체내를 따라 흐르고 있는 것은 인간의 피가 아니었다.

어둠의 원천이 데일의 체내에 흡수되어, 데일의 신체를 내부에서 재구축하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세포 하나하나가 재조합되고, 말 그대로 육체가 뒤틀리는 것 같은 고통에 의식이 흐릿해진다.

슈브가 다정하게 데일의 목덜미를 휘감고 미소 지었다.

─ 이제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어, 오빠.

그것은 결코 일개 마법사가 서클 하나를 쌓아 올리는 것과 비교를 불허하는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겠다는 오빠의 약속을, 나는 믿고 있어. 중요한 것은 겉모습 따위가 아니니까.

심장에서 약동하는 암혈이 데일의 육체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어둠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검은 산양의 서』가, 심장에 기생하는 형태를 벗어나 데일의 육체와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칠흑의 촉수로 이루어져 있는 제5의 서클이, 심장을 비롯해 나머지 서클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살아 있는 생체 서클.

그대로 다섯 개의 서클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나 고리가 아니라 칠흑의 촉수가 심장에서 회전하기 시작했고, 다시금 입에서 흑색의 피가 울컥 쏟아졌다.

후우웅!

바로 그때, 지금까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양의 흑색 마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그나이터를 통해 체내에 열기관을 생성했을 때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작센의 가주들이 쌓아 올린 군주의 힘을 포기했고, 그 행위가 역설적으로 데일에게 준 것은 군주의 힘이었다.

황금의 대제에 맞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의 힘.

바로 그때였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흑색의 마력 속에서, 일대의 세계가 유리처럼 깨져나갔다.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덧 그곳은 흑색 마탑의 최상층이었다.

데일의 앞에는 흑색 마탑주의 옥좌가 놓여 있었다.

“시험을…….”

그 옆에 있는 것은 흑색의 대행자 에리스였고, 또 하나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참으로 무사히 시험을 통과했구나.”

데일의 아버지, 흑색공이 그곳에 있었다. 비록 그 모습은 아직도 열두 살의 남자아이였으나, 그의 표정에 깃들어 있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

“드디어 해답을 손에 넣었구나.”

흑색공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다섯 개의 서클을 생성하고, 나아가 『검은 산양의 서』와 하나로 융합해 있는 그의 아들을 보며.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 의미를, 당시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

흑색공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곁에서 에리스는 말없이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인간을 포기하고 ‘군주의 힘’을 손에 넣었다.”

어둠과 죽음의 군주로서.

“그러나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일찍이 살육의 재능을 가진 그의 아들이, 작센의 어둠과 조우할 때의 결과를 떠올렸다.

그 어둠과 진리의 과실 앞에서 굴복하고 진리의 괴물로 거듭날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러나 설령 그 육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어둠과 융합해 뒤틀려 있다 할지라도.

흑색공의 앞에 있는 그의 아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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