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 * *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작센 가의 ‘검은 공자’가 제국 제일의 천재이며, 그 나이에 있을 수 없는 터무니없는 강함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 데일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 괴물의 영역마저 넘어서는 무엇이었다.
쿵!
템플 기사수도회의 기병들이 일제히 그들의 창끝을 내질렀으나, 불사자의 갑주로 무장한 중장보병들의 대형에 덧없이 고꾸라졌다.
그 외에 양측 전열이 격돌하고 있는 랭커스터나 요크, 나아가 귀족들 사이에서도 저마다 힘의 저울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교회 측이 우세하게 밀고 나가는 곳이 있었고, 역으로 작센 측이 돌파하며 나아가는 곳이 있다. 엉키고 성키며 전열(戰列)마다 시계나 역시계 방향으로 뒤틀리기 시작했고, 이럴 때 핵심이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다.
전열을 지탱하는 축이라 할 수 있는 중앙.
바로 그 중앙을 지키는 것이 그림자 군주와 그의 블랙아머 컴퍼니였으며, 나아가 흑색 발키리와 슈브의 촉수들이 상공에 있는 오러 마스터 급의 마스터 템플러들을 막아서고 있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아무리 데일이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넓게 퍼져 있는 전투열 곳곳의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수를 움직일 수는 없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전황을 바라보는 것과, 전투를 수행하는 당사자로서 바라보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으니까.
바로 그때. 저 멀리서 청장미 기사수도회가 랭커스터의 장미십자 기사들에 밀려 후퇴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 상황 속에서도 다급히 부대 곳곳을 옮겨가며 전령들이 보고를 올렸고, 그 속에서 데일이 결정을 내렸다.
“블랙아머 컴퍼니 모두에게 전해라.”
그림자 군주가 입을 열었다.
촤아악!
그의 코앞에서 쇄도하고 있는 템플러를 향해, 피스메이커의 일검을 휘두르며.
“이대로 쐐기꼴 대형을 유지하며, 우리 중장갑 보병대가 적 부대의 중앙 종심(縱深)을 돌파할 것이다.”
“대장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요네스 경이 소리쳤고, 동시에 그 명령이 지휘 체계를 타고 일천 명의 중장갑 보병대를 향해 퍼지기 시작했다.
“좌익에 있는 밤까마귀 기사, 그리고 《그레이브 가드》들에게 전하라.”
동시에 데일이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전령에게 말했다.
“우리가 중앙을 돌파하고 나서, 내가 신호를 보낼 것이다. 그 신호가 오기 전까지 절대 대형을 무너뜨리거나 앞서 진격하지 말고, 제자리를 지키는 데 집중해라.”
보통 가장 강력한 기병대를 부대의 일익(一翼)에 배치하고, 그들이 적 부대를 돌파하며 포위 기동을 감행하는 것이 대규모 회전의 정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보통의 전투가 아니었다. 당장 저 하늘 위에 비행 능력을 갖춘 마스터 템플러들은 여차할 때 전장에서 자유롭게 기동을 감행할 것이고, 그들이 양익을 향해 질주할 경우 오렐리아 하나로 발을 묶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구태여 데일의 머리 위에서 필사적으로 오렐리아, 슈브와 싸우는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였다.
‘검은 공자’가 그곳에 있었으니까.
데일이 미끼를 자처하며 중앙 제1열에 서 있는 이상, 적들 역시 데일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 역으로 데일이 패배하거나 사로잡힐 경우 그대로 전투가 끝나버릴 수 있다는 리스크가 존재함에도, 데일이 외줄타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적들의 생각을 읽기 쉬워지니까.
적의 수장이 앞으로 나서 있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특히나 이 세계에서 데일과 같은 규격 외 강자의 전력(戰力)이 갖는 의미를 헤아릴 때는 더더욱.
그리고 바로 그 그림자 군주와 제국 제일의 용병대로 명성을 날린 ‘블랙아머 컴퍼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부대가 맞물린 중심에서, 적의 심장을 향해 움직이는 일점 돌파.
말을 타고 있는 기병들이 아니기에, 결코 그 속도나 기동력이 우월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는 전장 속에서 우직하게 나아가는 중장갑 보병대의 존재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무엇보다, 흑갑의 기수(旗手)를 자처하며 나아가고 있는 그림자 군주의 존재가 갖는 무게감. 일찍이 검은 공자로서의 악명과 잔혹함을 과시하듯, 겨울밤의 어둠을 거느린 그림자 군주가 천상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흡사 천상을 향해 진격하는 악마의 군세처럼.
필사적으로 전투열을 지키기 위해 교회 측의 템플러들이 말에서 내려, 역으로 방어 대형을 꾸리기 시작했다.
“「개틀링식」, 「20mm」.”
바로 그때, 그림자 군주의 등 뒤를 따라 십수 개의 흑색 총열들이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전쟁의 향방을 바꾸는 최초의 대량살상무기.
어둠의 포화가 내리꽂혔다.
그러나 상대 역시 결코 일개 잡병이 아니다. 쏟아지는 총알 세례에 전멸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리라.
예상대로 백마법사들의 찬가와 더불어 그들을 지키고 있는 천상의 세계가 수호의 빛을 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상공에서 필사적으로 혈투를 펼치고 있는 피의 천사들이 일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향해 휘몰아치는 슈브의 촉수와 오렐리아의 검을 피해, 암혈의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데일을 향해서.
“주군!”
레이디 섀도우의 외침이 들려왔고, 그러나 데일이 당황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대로 등을 돌렸다.
“위는 내가 맡겠다.”
“대장을 지켜라!”
데일이 짤막하게 중얼거렸고, 불사자의 갑주로 무장한 일백의 블랙아머 컴퍼니가 데일 주위로 신속하게 방어 대형을 구축했다.
동시에 데일의 등 뒤에서 일렁이는 흑색 총열이, 일제히 고각(高角)을 향해 아가리를 치켜들었다.
피의 천사들을 향해 흑색의 총알이 내리꽂혔다.
쏟아지는 총알을 회피하듯 그들이 다급히 날개를 펼쳐 기동했고, 그 틈을 노리고 슈브의 촉수가 휘몰아쳤다.
푸욱!
피의 천사를 향해, 칠흑의 촉수 하나가 그대로 그의 날개를 뚫고 튀어나왔다.
“아, 아아아!”
동시에 핏빛의 천사가, 고통 속에서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림자 군주의 발밑을 향해서.
“──날개를 펼치고 천상을 날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너희들의 목숨을 지켜줄 것 같나?”
추락한 천사를 향해 그림자 군주가 물었다. 그가 무어라 대답할 틈도 없이, 슈브의 촉수 세례가 피의 천사를 향해 내리꽂혔다.
푸욱, 푸욱 푸욱!
피의 죽음, 흑색의 피가 어느덧 혈액의 천사를 잠식하고 그 피를 칠흑처럼 검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천사의 핏빛 날개가, 흡사 수백 마리의 지렁이들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기괴하게 부풀어 있었다.
“차, 차, 찬미하라……!”
암혈의 천사로 거듭나 있는 마스터 템플러가, 나직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자매와 자애의 여신을 향하는 찬미가 아니었다.
그보다 검고 어두우며, 형용할 수 없이 끔찍한 ‘옛 어둠의 어머니’를 향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림자 군주를 휘감고 있는 암혈의 갑주, 검은 죽음의 갑주 속에서 칠흑의 촉수들이 재차 솟아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검은 죽음’이 역병처럼 피의 천사들을 차례차례 잠식하기 시작했다.
마치 날파리를 하나하나 낚아채듯이.
“적장을 노려라! 적장을 향해 전력을 집중해라!”
상공의 오러 마스터를 차례차례 학살하고 있는 데일을 보며, 비로소 교회 측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대장을 지켜라! 절대 대형을 무너뜨리지 마라!”
저 흑색 피의 갑주는 대체 무엇일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교회로서 하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저 갑주가 가진 어둠이 마스터 템플러들의 ‘피의 갑주’와 그야말로 천적의 상성을 갖는 무엇이란 점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조급해졌다. 지금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일점 돌파를 감행하는 저 그림자 군주, 나아가 블랙아머 컴퍼니가 바꾸게 될 전장의 흐름 그 자체에 대해서.
지금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혈투 모두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혈투를 통해 어느 하나 무너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힘의 저울추가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그 상황 속에서 그림자 군주의 존재는, 곧 저울추의 평형을 깨트리는 행위와 같았으니까.
“우익에 있는 랭커스터 가의 오러 마스터 모두를 당장 소집해라!”
“예비대 전부를 중앙에 끌어모아! 어떻게 해서라도 저 블랙아머 컴퍼니를 돌파해라!”
곳곳에서 명령에 명령이 교차했고,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교회 측의 전투열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우리는 죽어도 제자리에서 죽는다!”
“절대로 놈들의 돌파를 허락하지 마라!”
그럼에도 불사자의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블랙아머 컴퍼니의 방어 태세가 깨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데일이, 오렐리아와 슈브와 합세하며 상공에 있는 ‘피의 천사’들을 잠식하기 시작했을 때.
전황(戰況)의 추가 비로소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7서클의 백마법사 보레누스가 펼치고 있는 천상의 세계가, 차츰 겨울밤의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 * *
천상의 빛이 덧없이 스러지고 있었다.
사상의 세계는 곧 마법사의 마음 그 자체를 투영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대륙 전체를 통틀어 수십여 명 남짓의 7서클 마법사로서, 그가 펼치고 있는 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천상’이었다.
불패의 마법사, 그가 천상의 세계를 펼칠 때마다 그곳에 있는 병사들은 결코 패배하는 법이 없었다.
오직 하나, 제국의 괴물…… 이계의 용사를 제외하고서.
그랬어야 할 그의 세계가, 고작 열다섯 살 애송이의 세계에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마법사 대 마법사로서, 나아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전장을 진두지휘하는 수장이자 전사로서 활약하며.
부대의 최후방에서 일곱 개의 서클을 가속하고 있는 보레누스는 직감할 수 있었다.
천상이 겨울밤의 어둠에 집어 삼켜지고, 블랙아머 컴퍼니가 교회 부대의 종심을 향해 착실하게 돌파를 시작할 즈음.
좌익에 있는 작센 가의 밤까마귀 기사들 역시 그에 발맞추어 기동을 시작했다.
중앙과 좌측 날개가 일방적으로 천상의 부대를 향해 적전(敵前) 기동을 감행하고, 그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끼어버린 교회 측 부대의 결말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랭커스터 측 기사들이 작센 측의 날개를 뚫고 포위 기동을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려왔으나, 이제 와서 그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아, 아아아……!”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병력의 숫자나 질에 있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나아가 마법사들 사이의 격차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절망감이 보레누스의 심장을 옥죄었고, 천상의 빛이 저물녘의 어스름처럼 덧없이 스러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곳에 있었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보레누스가 고개를 돌렸고, 그대로 숨을 삼켰다.
어린 남자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아, 아직도 자매신의 자비와 자애가 이 땅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니.”
흑색 붕대로 눈을 가린 남자아이였다.
“정체를 밝혀라!”
그 모습을 보고 보레누스를 지켜야 할 몇몇 기사들이 검을 고쳐 잡았다.
두 고위 마법사가 사상의 세계를 펼치고 있는 이곳에,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자들의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템플러들이 경계하며 되물었고, 남자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시스티나의 개들에게 볼일 따위는 없다.”
웃고 나서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흡사 꼭두각시의 실이 끊어지듯, 기사들의 몸이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즉사였고, 그것은 7서클의 백마법사 보레누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 * *
천상의 빛이 스러졌다.
끝없이 울려 퍼져야 할 찬가의 마법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뭐지……?’
깃털처럼 정적이 내려앉았고, 그 상황 속에서 그림자 군주가 일순 숨을 삼켰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항복이라도 할 생각은 아니겠지.’
7서클의 백마법사가 펼치고 있는 천상의 세계가 소멸했고,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천상의 빛을 집어삼키며 또 하나의 ‘세계’가 그곳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천상의 빛마저 감히 비추지 못할 어둠이 드리워졌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데일의 겨울밤이 아니었다.
“아, 드디어 다시 보게 되었구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데일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템플러들이 홍해를 가르듯 좌우로 갈라졌다.
“나의 딸, 그리고 거짓 작센의 혈육이.”
그들 사이에서, 어린아이의 실루엣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색의 붕대로 눈을 가린 어린 남자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