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56화 (156/301)

156화

* * *

“우리는 죽어도 제자리에서 죽는다!”

블랙아머 컴퍼니가 자랑하는 일천 명의 중장갑 보병대가 부대 중앙의 기둥을 자처하며, 그들 중에서도 최고의 정예를 추리고 추려 ‘아티팩트 갑주’로 무장시켜놓은 데일 직속의 친위대가 제1열에 섰다.

동시에 7서클 백마법사를 보레누스를 필두로, 헤아릴 수 없는 백마법사들의 ‘찬가 마법’이 울려 퍼졌다.

“찬미하라, 찬미하라!”

“여신의 천상이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다!”

용맹의 아리아(Aria).

천상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은 신의 목소리가, 보레누스를 필두로 하는 ‘빛의 세계’에 가득 울려 퍼졌다.

백색 마탑의 백마법사들은 그들 자체가 전투에 특화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울려 퍼지게 하는 찬송에는 다 죽어가는 병사마저 신의 전사로 되살릴 힘이 깃들어 있다.

“아, 아아아, 여신이시여!”

“자매신의 자애와 자비가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찬미하라, 작센의 배교자 놈들을 모조리 지옥으로 보내버리자!”

그리고 그 빛의 울림 속에서, 교회 측의 병사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양감에 북받치기 시작했다.

나아가 데일을 향해 돌격하고 있는 템플러들이,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전투에서 겁을 먹었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북받치는 신앙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자매신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 까닭이었다.

마치 사이비 교회의 통성기도를 보는 것처럼,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신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흐으윽, 으아아아, 아아아아!”

아이처럼 울고불고 흐느낌을 참지 못하며, 손에 검과 창을 쥐고 돌격하고 있는 교회의 검들.

어느 의미에서는 참으로 신의 광기에 걸맞은 풍경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사람에게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물며 목숨이 걸려 있는 전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리라. 자신의 나약함을 뒤로하고 믿을 수 있는 무엇.

그것이 백색 마탑과 교회가 자랑하는 광신의 힘이었고,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제는 우리의 신을 보여줄 차례다.”

그렇기에 그림자 군주는 기꺼이, 그들을 위한 허신(虛神)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Iä Shub-Niggurath(이아 슈브 니구라스).”

데일이 입을 열었다.

─ 바로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어, 오빠.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추악한 존재가 데일의 곁에서 미소 지었다.

촤아악!

칠흑의 드레스 자락 밑으로, 헤아릴 수 없는 촉수들이 일제히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검은 공자’를 지키고 있는 일백 명의 친위대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데일이 고개를 들었다.

상공에서, 혈액으로 이루어져 있는 ‘마스터 템플러’에 홀로 맞서고 있는 흑색의 발키리가 있었다.

백마법사의 찬가 마법을 통해 광신의 검으로 거듭나 있는 교회의 오러 마스터들.

바로 그들을 향해서, 슈브의 흑색 촉수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레이디 섀도우, 오렐리아를 위해 엄호 사격을 자처하며.

고개를 내렸다.

어느덧 그들의 코앞까지 돌격하고 있는 템플 기사수도회의 창날이 데일과 블랙아머 컴퍼니를 향했다.

“지금이다.”

동시에, 데일의 흑색 마력이 일대를 향해 퍼져 나갔다. 결코 그의 적들을 쓸어버리거나 그림자 피조물을 창조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데일을 지키고 있는 블랙아머 컴퍼니의 일백 정예 부대를 향해, 그의 마력이 깃들고 있었다.

어느덧 일천 명의 중장갑 보병대로 불어나 있는 데일 직속의 용병 조직, 그중에서도 최고의 재능을 가진 정예를 꾸려 무장시켜놓은 아티팩트 갑주.

그것은 하나하나가 마왕령의 어둠이 깃들어 있는 아티팩트였다.

그들이 짊어져야 할 대가는 어디까지나 그 아티팩트를 장착하고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이었고, 그러나 그 힘과 악의(惡意)를 통제하는 ‘진짜 소유주’는 달리 있었다.

일백 명의 중장갑 보병대가 무장하고 있는 아티팩트의 악의가, 일제히 그들의 그림자 군주를 향해 내달렸다.

사방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광기 어린 중얼거림. 듣는 것으로 정신이 날아갈 것 같은 악의의 속삭임 속에서, 그림자 군주가 고개를 들었다.

“──그쯤 하라.”

그림자 군주가 입을 열었고, 깃털처럼 침묵이 내려앉았다.

동시에 데일의 흑색 마력이 그들의 아티팩트를 기동시켰고, 그곳에 있는 것은 결코 일백 명의 중장갑 보병대 따위가 아니었다.

중장갑 보병에게 오러를 활용하는 기사와 같은 개개의 무력은 없다. 그러나 그림자 군주를 중심으로 조직화하고 있는 그들의 유기적 체계는 더 이상 ‘규격 내의 전력’이 아니었다.

오러의 힘이 깃들어 있는 템플 기사수도회의 돌격 앞에서도 방어 태세를 무너뜨리지 않을 정도의 강철 대형.

데일이 필사적으로 흑색공의 아티팩트 창고, 나아가 마왕령과 대미궁 전체를 이 잡듯 뒤지며 필사적으로 손에 넣은 100점의 갑옷형 아티팩트.

《불사자의 갑주》.

콰직, 콰직!

흑색의 갑주가 그들 용병대의 육체 속으로 깃들며, 흡사 헬무트 경의 그것처럼 갑주와 육체가 동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티팩트의 힘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힘을 주고 동시에 그 대가를 짊어지는 것은 오직 하나, 그림자 군주의 몫이었으니까.

일백의 중장갑 보병대가 감내해야 할 것은 그저 그 고통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 그것 하나였다.

설령 전투에서 전사해도 작센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예우와 더불어, 그의 가족 전체를 책임지겠다는 약속. 일개 상급자가 아니라 용병들과 전장을 동고동락하며 진심으로 그들의 충성을 손에 넣은 데일이기에.

“작센과 데일 대장을 위하여!”

절대로 깨지지 않는 흑색 대형이 펼쳐졌다.

바로 그 흑색 대형을 향해, 백색의 기병들이 그들의 창끝을 내리꽂았다.

쿵!

딛고 있는 세상이 진동하는 것 같은 충격이 엄습했다.

천상과 겨울밤이 맞물린 경계를 따라 양측의 전선(戰線)이 비로소 격돌했고,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 비명, 적을 향해 퍼붓는 저주와 여신께서 그들과 함께하기를 바라는 신념.

상공을 가득 메우고 있는 피의 천사와 레이디 섀도우, 오렐리아. 지상에서 뒤엉키고 있는 블랙아머 컴퍼니와 템플 기사수도회, 청장미와 장미십자 기사들, 그리고 각자의 세력에 소속되어 있는 귀족과 그들의 병사까지.

그 속에서, 그림자 군주가 있었다.

그의 세계를 집어삼키기 위해 확장하고 있는 7서클 백마법사와 그를 보조하는 장로들의 천상에 맞서, 시리고 어두운 겨울밤의 세계를 유지하는 것도 벅찰 상황에서…….

어둠의 아티팩트 일백 점을 마력으로 기동하고, 나아가 그 악의를 홀로 감당하며, 슈브를 위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흑색 마력을 쏟아붓고 있다.

결코 일개 4서클의 마법사가 감당할 수 있는 마력량이 아니었다. 설령 이곳 마왕의 대지가 그에게 주는 이점을 고려해도 마찬가지였다.

“이그나이터(Igniter).”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의 심장을 휘감고 있는 네 개의 서클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마그마처럼 이글거리는 적색 마력이었다.

열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바꾸어, 동력을 발생시키는 열기관(熱機關).

자기 존재를 하나의 기계 장치로 가정하며, 데일이 그의 심장과 서클에 이계의 메커니즘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이곳 마왕의 대지가 갖는 어둠의 힘에 더해, 일개 4서클의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는 제국 제일의 천재로서.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세계가, 천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 이럴 리가 없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마법 하나에 전력을 집중하는 보레누스와 달리, 데일은 지금 전장의 제1열에서 전투를 수행하고 있지 않나!

피가 흩뿌려지고 살과 육골, 내장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전장의 지옥 속에서 그림자 군주가 고개를 들었다.

암혈의 갑주 속에서 마그마처럼 이글거리는 핏빛을 뒤로하고.

손에 쥐고 있는 용사의 애검 ‘피스메이커’를 고쳐 잡았다.

마법사로서의 활약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데일의 전력이란 결코 그것이 다가 아니었으므로.

기사의 궁극이라 일컬어지는 아바타, 나아가 제국의 용사로서 쌓아 올린 무위를 투영하며.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검(眞劍)을 손에 쥐고, 그림자 군주가 땅을 박찼다.

필사적으로 대형을 유지하는 쪽과 그것을 뚫기 위해 격돌하고 있는 흑백의 전장 속으로.

불사자의 갑주를 휘감고 있는 블랙아머 컴퍼니의 중장보병 사이를 가로지르며, 그림자 군주가 쇄도했다.

동시에 그의 발밑을 따라,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세계가 ‘천상’의 끝자락을 집어삼키며 확장하기 시작했다.

세계가 세계를 잡아먹고 있었다.

일개 공학도, SSS급 괴물 사냥꾼, 이계의 용사, 작센 가의 장남.

데일이 일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지식과 힘의 정수를 융합하며 펼치고 있는 전력.

비로소, 지금의 데일은 진정으로 이 세계가 경외하는 ‘규격 외 강자’로 거듭나 있었다.

* * *

“어째서 너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냐, 용의 아이야.”

광기의 미사가 막을 내렸고, 바로 그곳에서 불사공 프레데릭이 물었다.

그의 앞에 있는 황금의 혈통, 제7황자 모드레드를 향해서.

“고작 이 정도로 정신이 무너져버린 것이냐.”

입에 거품을 부글부글 물며 웃거나 울거나, 그야말로 유아 퇴행을 일으키듯 비참한 몰골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불사공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 이것 참.”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용이 아니었나……. 그것도 나쁠 것 없지.”

잠시 생각하고 나서, 불사공이 모드레드를 향해 고개를 가까이했다.

그대로 입을 벌린다.

“커헉, 컥!”

동시에 불사공 프레데릭의 입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촉수 다발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거머리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역겨운 생물이었고, 그 생물이 이내 모드레드의 입으로 들어가 목구멍 너머로 미끄러졌다.

“그림자의 침묵은 여기까지다.”

불사공 프레데릭이 말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 말에, 일순 모드레드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동공에서 색이 사라졌다. 초점 없이 검고 어두운 눈동자가 앞에 있는 또 하나의 그림자 군주를 향했고, 이내 모드레드가 충성하듯 고개를 조아렸다.

“돌아가라, 그림자의 아이야. 그리고 우리를 위한 때를 기다려라.”

“……군주님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바로 직전까지 광기에 미쳐 정신이 무너진 모드레드는 없었다. 새로운 군주의 명령을 받들고 있는 ‘그림자의 아이’로서, 모드레드가 고개를 숙였다.

“기다리고 있거라, 나의 딸아.”

그대로 불사공 프레데릭이 고개를 돌린다. 그날의 치욕스러운 패배 이후, 심장이 뜯겨나가는 고통 속에 잃어버린 그의 마도서.

“곧 데리러 가마.”

이 땅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검은 산양의 서』의 존재를 깊이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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