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53화 (153/301)

153화

* * *

“마왕령 너머에 있는 어둠의 대지, 마계에 있는 것이 ‘불사공’과 고대 작센의 일족이라 하셨습니까?”

데일이 되물었고, 흑색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것은 벌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까마득한 과거가…….”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데일은 무심코 터져 나오려는 실소를 감추었다.

제국을 지배하는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들. 그들 종족은 여러 가지 형태로 그들의 정체를 바꾸며 제국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당장 적색 마탑의 정점에 서며, 남의 피를 빨아 불사의 생을 유지하는 뱀파이어들이 그러하듯이.

작센이라고 해서 무엇이 다를까.

“고위 마족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불사공과 고대 작센이 마계에 세워 올린 ‘그림자 마탑’의 사상을 잇는 자들이다.”

“그들 역시 사람이란 겁니까.”

“사람도 있고,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자들도 있겠지. 어쨌거나 그곳 어둠의 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법의 힘을 가진 자는 모두가 그림자 마탑의 그림자술사로 거듭나며…… 그들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고위 마족의 진짜 정체다.”

“그럼 호사가들이 이야기하는 ‘고대 마족’이란 것은 설마.”

데일이 말을 잇는다.

“또 하나의 작센입니까? 리치가 되어 불사의 생명을 지속하고 있는?”

“그 이상의 경지에 닿아 있는 존재들이지.”

흑색공이 고개를 저었다.

“──《엘드리치(Eldritch)》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감히 리치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흑색 마탑이 추구하는 궁극의 불사 형태지.”

그 말을 듣고 데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 데일이라고 해서 이 세상의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니니까.

“리치는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자에 불과하다. 라이프베슬을 숨김으로써 죽음이 닿지 않는 곳까지 도망치는 게 고작이니까. 그러나 ‘엘드리치’는 그렇지 않다.”

“그럼 그들은 무엇입니까?”

“죽음을 속이는 자다.”

“…….”

그 말도 데일로서는 당장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하나는, 그들의 존재가 일찍이 흑색 마탑의 강경파 따위는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진짜 진리의 괴물’이란 점이다.

“그럼 마왕 발로르가 고위 마족을 이끌고 마계에서 도망쳤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또 하나의 작센으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일찍이 마족 대이동은 그들의 고향 ‘마계’의 어둠으로부터 도망친 생존의 투쟁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마계의 지배자들에 대해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림자 마탑의 정점에 있는 고대 마족, 불사공 프레데릭과 《엘드리치》들로부터 도망친 것이지.”

흑색공이 말했다. 그 말에 데일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황금의 제국은 의심할 바 없는 데일의 적이다. 그러나 그림자 교회가 그토록 믿어 마지않는 그림자조차 오롯이 데일의 우군(友軍)이 아니었다.

아니, 확신할 수 있었다.

데일이 ‘그림자 군주’를 자처하고 있는 이상, 그림자 마탑과 그 마탑의 지배자들…… 저 마계를 지배하는 고대의 작센이 결코 순순히 무릎 꿇지 않으리란 것을.

아니, 오히려 데일이 앉아 있는 ‘그림자의 옥좌’를 빼앗기 위해 필사적으로 어금니를 감추지 않겠지.

처음부터 데일이 서 있는 곳은 황금과 그림자,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 당장 데일이 싸우게 될 전장은 결코 마계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마계로부터 도망친 마왕의 잔당이, 필사적으로 생존을 지속하고 있는 ‘마왕령’에 불과했으니까.

그럼에도 데일과 제국 십자군이 마왕령의 끝자락에 있는 어둠의 대지에 닿을 경우, 그 너머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또 하나의 작센이 계속해서 그 침묵을 고수할까?

적어도 지금 당장으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부탁에 따라, 리제의 마법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데일이 애써 화제를 돌렸다.

“네가 보기에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작센의 피와 재능을 가진 아이지요.”

데일이 말했고, 흑색공이 무겁게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리제는 자신의 마법이, 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는 말 그대로의 ‘마법’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그렇기에 저는 리제가 걷고자 하는 마도를 존중해주고 싶습니다.”

흑색공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 작센의 어둠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에게 신비와 놀라움을 줄 수 있는 마법사가 되기를요.”

“그럼 훗날, 그 아이가 자신의 의지로 ‘작센의 어둠’을 계승하겠다고 말할 때.”

흑색공이 말을 되물었다.

“그 아이가 우리의 뜻을 잇는 흑마법사로 거듭나게 될 때, 너는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아버지의 물음에 데일이 일순 입을 다물었다.

“이제야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그토록 망설이신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동시에,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럼에도 저는 그저 리제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싶어요.”

데일이 말했다.

“그저 그때까지, 리제가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도와주는 것이 가족의 의무겠지요.”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구나.”

데일의 말을 듣고 흑색공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것은 자식을 생각하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아버지의 미소였고, 동시에 알 수 없는 복잡함이 깃들어 있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작센 자작이 지배하고 있는 마왕령의 영주성.

“요네스 경.”

그곳의 일실에서 데일이 블랙아머 컴퍼니의 부대장을 불렀고, 호출에 따라 요네스가 그곳에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대장.”

“거기 좀 앉아봐라.”

데일이 말했다.

“교회가 성전을 포고하고 2차 십자군이 결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들었을 테지.”

“예, 그에 따라 우리 블랙아머 컴퍼니를 재정비하고 조직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리고 마왕령 일대의 마족들을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동시다발적 전선(前線)에서 싸움이 펼쳐질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점 역시 깊이 유의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블랙아머 컴퍼니를 지휘하는 대장으로서 요네스 경의 배움에는 끝이 없었다. 육체의 수행에 그치지 않고 조직과 부대, 군세를 움직이는 지략까지.

“그럼 슬슬 네 배움의 성과를 평가할 때가 왔네.”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미소 지었다.

“십자군 전쟁에서의 활약에 대해서는 믿어주십시오.”

“아니, 누가 당장 전쟁하러 나가재?”

요네스 경이 당당하게 소리쳤고, 데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대로 데일이 테이블 속에 있는 무엇을 빼 들었다. 각 병종을 상징하는 목각 기물들, 여러 장의 지도, 나아가 백과사전 두께의 룰 북이었다.

“나랑 이거나 뜨자고.”

각 병종과 부대의 모형을 통해, 실제 전쟁 이상의 엄격한 규칙에 따라 펼쳐지는 워 게임(War Game)이었다.

그 후, 요네스의 입에서 ‘게임 X같이 하시네’가 튀어나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 * *

마왕령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제국의 강자들이 차례차례 집결하기 시작했고, 병사들을 수용하기 위해 병영의 확장을 비롯해 마왕령 내의 증축 사업에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 때마다 그들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금(金)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왕령을 비롯해 작센 공작령 일대는 더 이상 북부의 벽지가 아니었다.

북부 특유의 척박하고 가혹한 동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나아가 그들이 영지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그것은 마왕령 내에서의 교역 증대에 그치지 않고 북부 일대에 황금의 바람을 불러왔다.

더 이상 작센 공작령은 북부에 몸을 웅크린 흑곰이 아니었다. 아버지 작센 공작이 쌓아 올린 토대 위로 데일이 뿌린 씨앗이 싹과 열매를 맺었고, 어느덧 작센 공작령은 제국 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부(富)가 움직이는 기회의 땅으로 거듭나 있었다.

길드 시티의 장부를 바탕으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앞서 손에 넣고, 데일이 쌓아 올린 영지 개발 사업의 성과가 비로소 그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북부 일대에 끝없이 쌓이는 축재. 대다수는 작센 공작의 이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나, 그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마왕령 내의 재산’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오롯이 작센 자작, 데일의 재산이었으며.

그 재산 대다수를 쏟아부어 데일이 손에 넣은 것은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파격 쇼핑이었다.

블랙아머 컴퍼니 내에서도 최정예의 중장갑 보병대를 뽑아, 그들의 갑주 전부를 ‘아티팩트’로 무장시켰으니까.

‘검은 공자’ 직속의 친위대로서.

일개 보병 하나하나를 천금의 보구로 무장시키겠다는 터무니없는 발상. 그리고 그 발상이 빛을 발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 * *

그로부터 얼마 후.

하루아침에 시작되지 않는 전쟁이었고, 그렇게 해가 지나고 몇 달이 흘러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왕령 내에 모여 있는 헤아릴 수 없는 제국 각국의 귀족과 그들의 병력, 성전을 수행하기 위한 십자군.

바로 그 십자군의 최고 수뇌부들이 작센 영주성의 일실에 집결해 있었다.

마왕령 내에 있는 마족의 잔당을 몰아내고, 그 너머에 있는 마계와 경계를 그어 ‘작센의 영토’로 바꾸기 위한 개척 사업.

적어도 마계에 있는 ‘또 하나의 작센’이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그들로서도 마왕령에 있는 마족이나 제국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증거이리라.

다시 말해서 마왕령 일대를 몰아내고 마계의 입구에서 진격을 그칠 경우, 또 하나의 작센과 충돌할 가능성은 적다.

“이곳에 모여주신 공들의 열정, 그리고 신앙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거기까지의 정보를 정리하고 나서, 십자군의 대표자 중 하나로서 데일이 입을 열었다.

그곳에 모여 있는 제국의 강자들,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제국 각지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귀족들, 이미 그들의 명성을 증명했음에도 ‘성전’의 대의에 동참하고 있는 강자들까지.

“그리고 우리는 자매신의 보살핌과 그대들의 깊은 열정을 통해, 비로소 이곳에 모여 ‘마왕령의 어둠’을 몰아낼 기회를 다시 손에 넣었지요.”

“여신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바로 그때, 성전을 수행하기 위해 집결해 있는 교회의 검이 소리를 높였다.

또 하나의 마스터 템플러였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마스터 템플러’는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7서클의 백마법사 보레누스를 비롯한 다수의 백색 장로들과 함께.

그들이 다가 아니었다.

“데일 공자님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요크의 요녀, 일찍이 필립의 약혼자가 되어야 했을 ‘요크의 캐서린’이 그들 요크 가(家)를 대표해 입을 열었다. 제2차 장미전쟁 이후,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와의 약혼을 무효로 되돌리고 홀몸이 되어 있는 요크의 영애로서. 성전의 뜻에 동의하며 그들 요크 가가 자랑하는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청장미 기사수도회를 거느린 채.

황실과 적색 마탑, 그 외에 제국 유수의 대제후들…… 랭커스터와 요크를 비롯해 그들에 준하는 대륙 유수의 대제후, 나아가 그들의 대표자가 그곳에 모여 있었다.

이것은 더 이상 일개 동맹 따위가 아니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이 수행하고자 하는 것은 성스러운 전쟁이었고, 마왕령 내에 있는 고위 마족을 비롯한 마족들의 뿌리를 뽑는 것이다.

그곳 마왕령 너머, 마계에 존재하는 고대의 어둠이 갖는 깊이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알지 못하고.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최초의 대 마족 동맹…… 제1차 십자군 출정의 때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제국의 대부대가 집결해 있는 바로 그곳에서.

비로소 여신께서 바라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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