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52화 (152/301)

152화

* * *

“드디어 오라버니에게 마법을 배울 수 있다니, 너무 기뻐요!”

일곱 살의 리제가 기쁨을 숨기지 않고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래도.”

사랑스러운 동생의 모습을 보며, 데일이 흐뭇함을 감추지 않고 미소 지었다.

일찍이 데일은 네 살 때 마나의 편린을 형성했고, 여덟 살이 되어 최초의 마나 서클을 구축했다. 그럴 마음을 먹을 경우 네 살이나 다섯 살 때도 불가능하지 않았으나, 데일이 때를 기다린 것은 그 나름대로 ‘이 세계의 상식’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에 비해 어린 리제가 최초의 마나 편린을 자각한 것은 다섯 살. 역시 흑색 마탑주의 핏줄이란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재능이었다.

그렇기에 해가 지나, 여섯 살 생일을 맞은 리제는 오빠처럼 훌륭한 마법사가 되고 싶다며 울며불며 떼를 썼다.

그러나 마법을 배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데일 같은 극히 예외적 존재가 아니고서야, 마법을 배우는 것은 자칫 파멸의 위협과 직결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그럼에도 리제의 심장에 깃들어 있는 ‘마나 서클의 조각’이 날이 갈수록 확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흑색공과 데일 역시 이 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데일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경지가 아니라, 티 없이 순수한 소녀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잠식하고 있는 재능.

그렇기에 더더욱 위험한 것이다.

여덟 살이 되어서야 마법의 수행을 시작한 데일보다 빨리 마법을 가르치기로 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이럴 때 세피아 선생님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해주셨을까.’

드디어 마법을 배울 수 있다며, 천진하게 기뻐하는 리제를 보고 있는 데일의 마음속은 무척 복잡했다. 무심코 어린 시절의 자신을 이끌어준 세피아의 지혜를 떠올리며.

“오라버니, 또 그걸 보여주실 수 있어요?”

바로 그때, 리제가 데일을 향해 여느 때처럼 그것을 보여달라며 졸랐다. 데일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클을 회전시켜 청색 마력을 생성하고,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와아아!”

데일의 손끝을 따라 얼음의 결정이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흩뿌려진 결정이 리제의 주위에서 별들처럼 빛나며 그녀를 휘감았다. 마치 우주 극장에서 보여주는 플라네타리움(천체 투영기)처럼.

어린 리제가 잠들지 못하고 칭얼거릴 때마다, 오빠로서 여동생의 곁을 지키며 보여준 추억의 마법.

지금도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리제는 아이처럼 미소 지으며 들떴고, 데일의 마법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리제가 보기에 데일의 마법이란 말 그대로 동화 속 마법사의 그것에 가까울 테니까.

철저하게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살육의 수식이나 어둠의 마법 따위가 아니라.

혹시라도 리제가 흑색공의 흑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할 경우, 발칵 뒤집히게 될 작센 가(家)의 모습이 비로소 상상되었다. 그리고 뒤집히는 것은 아버지나 엘레나에서 그치지 않고, 데일조차 예외가 아닐 것이다.

“저도 빨리, 오라버니처럼 멋진 마법사가 되고 싶어요!”

“나처럼 멋진 마법사가 돼서 뭘 하고 싶은데?”

“──오라버니처럼 훌륭하게 될 거예요!”

“……나처럼?”

“네!”

데일이 되물었고, 리제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대답했다. 데일이 일순 숨을 삼켰다.

“오라버니처럼 멋지고 신기한 마법을 마구 사용해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어요!”

“…….”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애티 어린 소녀의 말이, 비수가 되어 데일의 심장을 찔렀다. 그저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일곱 살 아이에게 걸맞은 모습이겠지. 그녀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리라.

“나는 리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훌륭한 마법사가 아니야.”

“그럴 리가요! 오라버니는 제국에서 가장 훌륭하고 멋진 마법사라고 모두가 말하는걸요!”

훗날의 리제가 어떻게 성장하고, 나아가 그녀의 ‘진짜 의지’로 결정을 내릴 때, 리제가 비로소 걷게 될 마도의 길이란 무엇일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흑색 마탑주의 피를 잇는 작센의 일족이다.

“그래, 나도 무척 기대되는구나. 네가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마법사로 거듭나게 될 때를.”

“열심히 할게요!”

그저 리제의 흑발을 쓰다듬으며 데일이 씁쓸하게 웃었다.

내심 리제가 작센의 어둠을 답습하지 않고, 흑색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뒤로하고.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알지 못하는 게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그럼 대기 중의 마나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자.”

리제를 휘감고 있는 수정의 별자리를 뒤로하고, 데일이 입을 열었다.

“그 후, 마나를 심장 주위로 회전시키는 수행을 거듭하게 될 거야.”

“네, 오라버니!”

일찍이 그녀의 스승, 세피아가 가르쳐준 이야기를 입에 담으며.

지혜로운 엘프의 제자는 어느덧 제국 제일의 강자와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성장했다. 그리고 일찍이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새로운 제자 앞에서 그 의지를 계승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의 곁을 떠나버린 옛 스승의 공백을 뒤로하고.

* * *

데일에게 마법을 배우기 무섭게, 리제가 서클을 각성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 * *

“오늘, 오라버니께서 엄청 많이 마법을 가르쳐주셨어요!”

작센 공작성의 대회당, 어머니 엘레나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며 리제가 즐거운 듯 조잘거렸다.

“그래, 데일에게 무슨 마법을 배웠니?”

“그, 아직은 제가 마법을 쓸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대요. 그래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수행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리제가 오늘의 일을 즐겁다는 듯 보고했고, 엘레나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어머니로서 무척이나 복잡해 보이는 미소였다.

“걱정하실 것 없어요, 어머니.”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입을 열었다.

“리제는 저와 달리,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아주 훌륭한 마법사가 될 거예요.”

일순 그 의미를 헤아린 엘레나가 나직이 숨을 삼켰다.

“데일.”

그러나 그의 앞에 있는 데일 역시 그녀의 아들이다. 그렇기에 엘레나는 말없이 데일을 포옹해주었다.

“데일, 너는 이미 우리 작센 가의 자랑스러운 장남이란다. 네가 우리 작센 가를 위해 쌓아 올린 것들, 그리고 작센으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나의 아들이지.”

“어머니…….”

“너의 길은 절대 틀리지 않았으니, 부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라.”

아들을 믿어주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일말의 의심이나 망설임도 없었다. 그렇기에 데일 역시 팔을 뻗어 엘레나를 포옹했다.

* * *

그날 밤, 작센 공작성의 집무실.

“……이상이 십자군 전쟁을 이행하기 위해 마왕령으로 향하고 있는 부대의 목록입니다.”

“성전이라.”

데일의 보고를 듣고 흑색공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일찍이 용사와 제국의 대부대가 우리 작센 가를 향했을 때가 떠오르는구나.”

“그때와 같지는 않을 겁니다.”

데일이 딱 잘라 고개를 저었다.

“이미 북부 마왕령은 제국 무역의 중심지로서, 그때처럼 일방적으로 제국의 전횡(專橫)을 저지르기에는 너무나도 감시자들이 많지요.”

높다란 벽에 꽁꽁 감추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벽을 부수어 모두의 앞에 드러나게 하는 것.

“그것을 위해 북부 마왕령의 개방 정책을 펼친 것이냐?”

“그렇습니다.”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고, 흑색공이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저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침묵 끝에, 데일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는 마왕령의 ‘고위 마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림자술사를 말하는 것이냐.”

“……북부 마왕령에서 저희 대 마족 동맹의 주력 부대가 출정하는 와중, 비밀스럽게 손에 넣은 몇 가지 정보들이 있었습니다.”

“말해보아라.”

“고위 마족이 어째서 ‘제국의 말’을 쓰는 것입니까?”

거짓말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데일이 아니라 이계의 용사였을 시절에 손에 넣은 정보였으니까. 그 누구보다 마왕령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마왕과 휘하 고위 마족들과 맞선 제국 제일의 강자로서.

“그들의 지능이,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지요. 그러나 마왕령에서 온 마족들이 ‘제국의 말’을 사용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고위 마족들은 제국의 말로 이계의 용사를 조롱했고, 그의 목에 묶여 있는 사냥꾼의 목줄을 조롱했다. 적어도 그것은 제국 내부의 사정을, 그것도 제국의 가장 깊숙한 비밀에 닿지 못하는 이상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계라 불리는 어둠의 대지에서 온 자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제국의 말을 쓰는 것일까?

“어떻게 그 정보를 손에 넣었느냐.”

흑색공이 싸늘하게 되물었다. 주위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말씀드려도 믿지 않으실 겁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 몫이다.”

“……고위 마족이 제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무척이나 유창하게 제국의 말을 구사했지요.”

다시금 데일이 거짓말을 했다.

“그자가 무엇이라고 했느냐?”

“저를 일컬어 ‘황금의 개’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끝이었느냐?”

“──이곳은 이미 스러진 옛 그림자 제국의 폐허에 불과하니, 이대로 부대를 돌리고 떠나라고 경고했지요.”

지금의 데일이 아니라, 이계의 용사를 향해 고위 마족들은 그렇게 말했다.

황금과 그림자의 대립, 일찍이 이 대륙에 존재하는 고대의 대립과 비밀을 알지 못하는 그때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는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실 차례입니다.”

그렇기에 데일이 되물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작센 가의 사람으로서 얻은 지식과 퍼즐 조각을 맞추며.

“그림자술사(ShadowCaster)란 무엇입니까? 그들 고위 마족과 우리 작센의 흑색 마탑 사이에는 무슨 접점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그 대답이 절대 가볍지 않으리란 것을 데일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기에 묻는 것이다.

“제2차 십자군이 마왕령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진격할 경우, 적어도 저는 그에 앞서 진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디 대답해 주십시오.”

“…….”

“아버지께서는 필시 그 대답을 알고 계시겠지요.”

데일이 물었고, 침묵이 깃털처럼 내려앉았다.

“고대에 흑색과 백색이 하나의 마탑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느냐.”

흑색공의 물음에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백 마탑, 그리고 불사공 ‘작센의 프레데릭’을 필두로 흑색파(The Black)라 불리는 이들이 봉기를 일으켜 패배했으며, 북부의 벽지로 유배되었다는 사실.

“그들 흑색파가 이곳 북부 작센의 땅에 쫓겨났을 때, 불사공과 그의 일족들에게 손을 내밀어준 자들이 있었다.”

“그 자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며 자신들을 무엇이라 칭했는지는 일체의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작센의 고서(古書)에서 그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몇 구절이 남아 있을 따름이지. 그저 하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마왕령 너머에 있는 어둠의 대지에서 넘어온 ‘최초의 이방자’들이란 사실이다.”

“마계에서…….”

데일이 숨을 삼켰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이곳에 남기로 결의한 불사공의 아들, 나아가 그에게 충성하는 흑색파가 지금의 작센과 흑색 마탑을 있게 했지.”

“그럼 누가 그들을 따라갔습니까?”

“불사공 프레데릭과 그의 일족들.”

“……!”

그 말을 듣고 데일이 비로소 숨을 삼켰다.

고위 마족의 비밀, 그림자술사, 그림자의 탑, 나아가 북부 마왕령 너머에 있는 마계의 실체까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그 말대로다.”

흑색공이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위 마족, 나아가 그림자술사라 일컬어지는 마왕령 너머의 존재들…….”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히 말을 잇는다.

“그곳에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작센이다.”

진리의 괴물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진짜 작센의 일족.

“그리고 불사공(Lord Undead)께서는 지금도, 그 땅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잠들어 계시다.”

유리스의 일족이 그러하듯,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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