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 * *
“에드워드의 덜레스 공자님.”
그림자 법정의 고위 살수들이 사방에서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에드워드를 경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역(逆)이다.
“자, 작센의 ‘검은 공자’……!”
에드워드가 파들파들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데일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조차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듯 무척 위태롭기 그지없다.
“야, 야, 약속이 다, 다르지 않습니까!”
“약속이라고 하셨습니까?”
“교, 교회 놈들을 몰아내고 나, 나의 재산을……!”
데일의 앞에서, 직전까지 미친 듯이 날뛰며 대성당의 사제들을 도륙하는 살귀(殺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실에 저항하듯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꼭두각시’가 있을 따름이었다.
“에드워드 공자님의 재산이라고요?”
데일이 싸늘하게 조소했다.
“길드의 거리에 있는 일부 업자들과 결탁하고, 수수료를 떼먹기 위해 도시 내의 ‘마석 및 아티팩트 세탁 사업’을 주도하셨지요. 그것도 모자라 모험가 파벌의 수장으로 미궁 내의 사냥 지역을 통제하고, 어떻게 이 도시를 집어삼킬 수 있을까 밤낮으로 고심하지 않으셨습니까?”
데일의 말에 에드워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차갑게 웃었다.
“아, 부디 입을 다물어 주십시오. 아직 제 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데일의 손에는 보이지 않는 실이 존재했고, 데일의 앞에 있는 존재는 바로 그 실로 조종하고 있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아티팩트의 폭주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꼭두각시의 검. 처음부터 그 아티팩트에 마력을 주입한 소유주는 ‘작센의 데일’이었고, 그 미끼를 덥석 낚아챈 것은 덜레스의 에드워드였다.
“자기 몸에 흐르는 귀족의 피가, 설령 ‘작센의 규칙’을 깨트리고도 공자님의 목숨을 지켜줄 방패처럼 느껴지셨습니까?”
데일이 말했다. 에드워드가 다시금 발버둥 치며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어느덧 대회당의 발밑 일대가 어둠의 호수 속으로 수몰되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방패도, 작센의 규칙을 깨트린 자를 지켜주지 못할 겁니다.”
홍수처럼 일대를 집어삼키고 있는 그림자의 물결 속에서, 비로소 포식자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섀도우 러커》.
“아, 아아아……!”
꼭두각시의 검을 쥐고 있는 에드워드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에드워드가 흡사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필사적으로 말을 이으려 했다. 그러나 그 모습에도 ‘검은 공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최후의 최후까지 에드워드가 입을 열 기회, 나아가 데일에 맞서 검을 휘두를 기회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게 적당히 욕심을 부렸어야지.”
데일이 남의 일처럼 중얼거리며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키에에에엑!」
어둠 속에서 성체로 거듭나 있는 《섀도우 러커》들이 일제히 가시 촉수를 내뿜었다. 그대로 에드워드의 육체가 갈가리 찢겨 피를 흩뿌렸다. 흩뿌려진 피와 내장이 어둠 속으로 삼켜졌고, 일대의 그림자 호수가 다시금 데일의 망토 속으로 되돌아갔다.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 * *
미궁도시 라비린토스의 소요를 수습하고, 공식적으로 마왕령 일대는 다시금 ‘작센 자작’의 손에 떨어졌다.
불과 바로 직전까지 교회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한 주교좌 대성당이, 이제는 데일의 영주성으로 바뀌어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작센 자작이자 ‘검은 공자’는 바로 그 성의 대회당, 옥좌에 앉아 있었다.
아울러 그림자 속에서 주군을 지키는 흑색의 여기사, 레이디 섀도우 ‘오렐리아’가 데일의 곁을 보좌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저 여느 때처럼 데일의 곁을 지켜야 할 또 하나의 여기사, 샬롯의 부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떠나가는 이들을 뒤로하고, 그럼에도 검은 공자는 여전히 그곳에 군림하고 있었다.
시린 냉기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작센의 동토, 마왕령의 지배자로서.
* * *
그날 새벽.
도시의 폭동이 수습되고, 작센 자작의 이름으로 손에 넣은 성에서 대 마족 동맹의 향방을 재고하기 위한 회동이 열렸다.
모드레드 황자가 제의한 속전속결의 출정과 전투는 결국 순교자 결투에 의해 기각되었고, 그들이 돌아온 것은 여신의 뜻이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퇴각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은 모드레드 황자였고, 그러나 누구도 감히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데일로서도 그 행동이 예상치 못한 호재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덕택에 마왕령을 되찾는 작업이 몇 배는 빨라졌지.’
겸사겸사 에드워드 일당이 축적한 재물 역시 대거 데일의 수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록 체력적 소모가 막심했다고 하나, 병사나 주요 전력의 피해 역시 실질적으로는 전무하다. 순교자 결투를 통해 희생양을 자처한 ‘마스터 템플러’ 하나를 제외하고서.
게다가 수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예상 밖의 성과라고도 할 수 있었다.
마왕령 내에서 무차별적으로 약탈을 감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족들의 무리가, 하나의 지휘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존재를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고위 마족, 그림자술사의 존재겠지.
‘그림자술사라.’
황금과 그림자, 나아가 그림자 군주를 자처하는 데일로서는 그들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의 데일은 더 이상 제국의 사냥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적과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하는 것 역시 오롯이 데일의 의지여야 했다.
“아무래도 마왕령의 위협에 대해서는…….”
대 마족 동맹의 대표자로서, 데일이 입을 열었다.
“저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위협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 같습니다.”
“네놈, 또 무슨 수작을……!”
“이대로 대 마족 동맹이 해산할 경우, 교회에 대해 사람들이 수군거리게 될 이야기를 미리 말씀드릴까요?”
노호를 감추지 않는 보레누스 사제를 향해 데일이 말했다.
“여신의 성스러운 뜻을 내세우며 마왕령으로 출정했다가, 순교자 결투에서 ‘교회 측의 대표자’가 여신의 뜻을 오독(誤讀)하고 패배했으며, 결과적으로 여신의 뜻을 저버린 채 꼬리를 말고 도망친 개가 될 겁니다. 아울러 제가 바친 영지의 주교좌 대성당이 불타고, 여신에게 바쳐야 할 십일조가 몽땅 털린 것은 덤이지요.”
교회의 위신이 그야말로 밑바닥 수렁에 처박힐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하리라.
“이것은 이미 물릴 수 없는 싸움입니다.”
데일이 말했다. 일방적으로 강자들의 뜻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 마족 동맹 전체를 주도하는 상황이 되어서.
“모드레드 황자님 역시 이대로 아무 수확 없이 황실로 돌아갈 셈은 아니시겠지요.”
그대로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모드레드 황자가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듯 핏대를 세웠으나, 그의 칼자루가 뽑히는 일은 없었다.
그날, 순교자 결투에서 보여준 데일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에.
검은 죽음의 갑주, 그곳에 깃들어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생명과 역사의 종착’이었다.
“그쯤 하려무나, 모드레드.”
“누, 누님!”
“데일 공자님의 말이 옳습니다.”
나아가 그를 제지하고 키아라 황녀가 입을 열었다.
“교회와 작센 가, 나아가 황실을 비롯한 우리 모두…… 돌이키기에는 너무나도 멀리 와버렸지요.”
의미심장하기 그지없는 미소와 함께, 데일의 믿음직스러운 동맹을 자처하며.
“대 마족 동맹, 십자군의 성스러운 전쟁은 이제 막 시작했을 따름입니다.”
십자군, 일찍이 데일이 ‘이계의 용사’였을 당시, 마왕 발로르를 토벌하기 위해 집결한 제국군의 이명.
“비록 제1차 십자군의 출정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이 성전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을 테지요.”
키아라가 말했고, 레이디 스칼렛이 즐겁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그래요. 무엇보다 여신의 뜻을 알기 위해 희생을 자처하신 마스터 템플러, 뤼지냥 형제님을 위해서라도 물러설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보레누스 형제님.”
바로 그 뤼지냥의 피를 모조리 빨아버린 당사자가.
“…….”
레이디 스칼렛의 조롱에 보레누스가 나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맞았다. 교회로서 더 이상 물러설 곳 같은 것은 없다. 이 성스러운 전투가 승리로 끝을 맺지 않는 이상, 그렇지 않아도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교회의 위세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을 테니까.
“형제자매님들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결의 끝에, 7서클의 백마법사 보레누스가 입을 열었다.
“즉시 성하에게 이 사실을 알려, 황실과 교회의 이름으로 ‘성전’을 포고할 수 있도록 준비에 착수하겠습니다.”
“아, 여신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우리의 여신께서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바라시지요. 가령 전쟁이라거나, 농노들이 피땀을 흘려 축적한 재산 같은 것들 말이지요.”
레이디 스칼렛이 재차 조롱을 터뜨렸다. 그 조롱 앞에서 보레누스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피가 쏟아질 정도로 입술을 깨무는 것이 고작이었다.
* * *
손실을 입은 시점에서, 손해를 복구하기 위해 더욱 투자를 쏟아붓는 것은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심리다.
그렇기에 보레누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백색 마탑주이자 교황령의 수장, 천상공이 황실의 동의를 얻어 ‘성전’의 개시를 알렸다.
더 이상 데일의 마왕령에 존재하는 것은 일개 ‘대 마족 동맹’ 따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여신이 바라는 전쟁이었고, 그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강자들이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 * *
전쟁은 하루아침에 벌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데일로서는 미궁도시를 복구하고 마왕령의 개척 사업을 재정비할 여유가 필요했으며, 새로 집결하는 십자군을 수용할 물자와 숙소 등을 증축하는 대규모 작업도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십자군을 상대로 벌이게 될 사업이었다.
전쟁 특수(特需). 전쟁 시 군수물자 등의 필수품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발생하는 수요의 증가, 나아가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교역량이 증가하고, 거기서 비롯되는 각종 세금 따위로 이익을 거두는 것.
데일의 개방 정책을 통해 제국에서 결코 무시하지 못할 무역 거점으로 거듭나 있는 마왕령이다. 십자군 전쟁이 가져오게 될 전쟁 특수는 거기에 쐐기를 박는 결과를 가져오리라.
데일이 작센 자작으로서 냉정하게 이득의 저울추를 굴릴 즈음, 비로소 그의 열다섯 살 생일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몇 달이 흘러, 어린 여동생 ‘리제’가 일곱 살 생일을 맞이했다.
* * *
“오라버니! 보고 싶었어요!”
데일이 그의 영지를 뒤로하고, 모처럼 작센 공작성을 찾았을 즈음.
가장 앞서 데일을 마중하기 위해 달려나온 것은 갓 일곱 살 생일을 맞은 여동생 리제였다.
“리제!”
작센 가 특유의 칠흑빛 머리카락에, 수정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소녀. 그 모습을 보고 데일 역시 오빠로서 감출 수 없는 흐뭇함을 드러냈다.
“생일 축하해.”
가볍게 리제의 볼에 입맞춤하며 데일이 미소 지었다.
입맞춤 끝에, 리제가 생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 약속을 잊지는 않았죠?”
“그야 기억하고 있지.”
“와!”
리제가 또래의 아이처럼 생긋 미소 지었고,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리제를 향해 팔을 뻗었다.
여섯 살 생일을 맞은 어린 리제가, 데일처럼 마법사가 되고 싶다며 응석 부리며 엉엉 울음을 터뜨린 그날의 기억을 뒤로하며.
“마법이 배우고 싶다고 했지?”
“네, 오라버니!”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을 거야.”
동시에 데일의 손을 따라 청색의 마력이 휘몰아치며, 냉기의 결정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일찍이 데일에게 ‘최초의 마법’을 가르쳐준 옛 스승, 세피아의 모습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