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 * *
보레누스 사제가 ‘모종의 협박’에 굴복하고, 백색 마탑을 설득해 제2차 십자군 전쟁의 결의를 촉구하기 직전.
순교자 결투에 따라 여신의 뜻을 결정하고, 대 마족 동맹의 십자군이 막 돌아올 무렵의 일이었다.
공식적으로 작센 자작이 교회에 바친 미궁도시 라비린토스에서, 커다란 소요가 일어났다.
아티팩트의 폭주였다.
마왕령의 아티팩트에 깃들어 있는 어둠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의 당사자 ‘에드워드의 덜레스’는 그대로 주교좌 대성당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곳을 지키는 템플 기사수도회의 기사들을, 말 그대로 잡병처럼 도륙하며.
이러니저러니 해도 에드워드는 S랭크의 모험가이자, 나아가 강력한 아티팩트의 폭주까지 더해진 실력자다.
그리고 그가 그곳에 있는 시스티나 여신교의 사제들을 학살하고, 도시 전체가 대공황에 빠져 있는 틈을 타서…….
모험가들의 폭동이 시작되었다. 교회가 그들로부터 빼앗은 십일조, 재물을 되찾기 위해.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도시 일대를 짓밟는 약탈과 범죄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주로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는 것은 교회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주요 교구(敎區) 일대였다.
‘검은 공자’가 순교자 결투 끝에, 부대의 기수를 돌리고 미궁도시로 돌아온 것은 바로 그즈음이었다.
* * *
저 멀리서 불타고 있는 도시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대 마족 동맹의 출정을 통해 대다수의 핵심 전력이 부재하고 있는 틈을 타서, 에드워드의 폭주와 더불어 자행되고 있는 무법의 약탈.
그러나 그 도시는 더 이상 ‘데일의 도시’가 아니었다. 작센 자작은 교회의 요구에 따라 여신의 이름으로 도시를 바쳤으며, 다시 말해 지금 불타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교회의 도시’였으니까.
“주, 주교좌 대성당이……!”
교회의 사치를 위해 증축이 이루어지고 있는 성당이 불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보레누스 사제가 경악과 함께 숨을 삼켰다.
“어머나.”
데일과 더불어 부대의 기수(旗手)에 있는 레이디 스칼렛이, 그 풍경을 보고 즐겁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여신의 나라가 불타고 스러진 것도 모자라, 이제는 여신의 도시가 무너지고 있네요.”
그야말로 조롱을 감추지 않듯이.
“도대체 여신께서는 그토록 그녀를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이들에게, 어째서 이토록 가혹한 침묵을 지키는 걸까요.”
“…….”
그녀의 말에 보레누스 사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검이 되어야 할 템플 기사수도회의 마스터 템플러 ‘뤼지냥의 기’가 죽었고, 하다못해 교회가 손에 넣어야 할 재물마저 약탈자들에 의해 빼앗기고 있다.
그야말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아무래도…….”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이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결국 부대의 기수를 돌리란 여신의 말씀이, 참으로 옳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네요.”
일찍이 순교자 결투를 통해 승리를 손에 넣은 데일이었고, 자신의 승리가 곧 여신의 뜻임을 역설하며.
“그에 비해 교회는 마지막까지 부대의 기수를 돌리기를 거부했으며, 나아가 순교자 결투의 규칙마저 깨트리며 그 고집을 꺾지 않았지요.”
“아, 아아…….”
“여신의 뜻을 멋대로 해석하고자 하는 교회의 독선이 결국 그에 맞는 대가를 불러왔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데일이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저는 작센 공작 각하의 대리자로서, 여신의 이름으로 이곳 영지 일대를 그대들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대들 교회가 ‘여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저로서는 심각하게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네요.”
“감히 작센의 배교자가 교회를 모독하다니!”
“아직도 콧대를 뻣뻣이 세우며 알량하기 짝이 없는 자존심 따위를 지킬 생각입니까?”
데일이 되물었다.
“교회의 영토이기 이전에, 이곳이 작센 공작령의 땅이란 사실을 잊어버렸느냐! 설마 공작 가의 영지가 범해지고 있는 것을 구경이나 하고 있을 셈은 아니겠지!”
“필요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교회의 헛소리는 지긋지긋합니다.”
데일이 말했다.
“제가 직접 이 상황을 수습하지요. 그러나 그에 앞서, 하나를 약속해주셔야겠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제가 바친 이곳 마왕령 일대의 영지를, 다시 저에게 내놓으십시오.”
데일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행위는 철저하게 ‘교회와 여신의 이름’으로 이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처음 교회가 대 마족 동맹을 자처하며 데일의 마왕령을 찾았을 때, 그들의 협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데일이 그들에게 땅을 바치지 않을 경우……. 마왕령의 개척 사업이 성스러운 여신의 사역이 아니라, 철저하게 세속의 이득을 위한 작센 가의 비즈니스로 받아들이겠다는 것. 나아가 교회의 이름으로 ‘마왕령의 개척 사업’은 영육(靈肉)의 죄를 쌓는 행위라 공포할 것이며, 마왕령에 있는 개척 수도회 모두에게 철수 명령을 내릴 거란 협박에 대해서.
“감히 우리 교회를 몰아낼 경우, 이 마왕령 개척 사업이 어떻게 될지 그새 잊어버린 것이냐.”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보레누스 사제가 되물었다.
“아주 잘 알고 있지요.”
그 물음에 데일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순교자 결투에서 ‘마스터 템플러’께서는 패배했고, 결국 제 뜻이 여신의 뜻이란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여신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각각 대비되는 두 주장을 가진 자들이 목숨을 걸고 결투를 펼친다. 그리고 여신께서는 ‘옳은 주장’을 하는 쪽에 손을 들어줄 것이며, 따라서 승리하는 쪽이 곧 ‘여신의 뜻’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순교자 결투의 요지다.
패자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행위가 여신의 뜻이 아님을 증명하고, 거룩한 순교자로 희생됨으로써 방점을 찍는다.
다시 말해──순교자 결투에서 데일이 승리한 이 시점에 이르러, 여신의 뜻을 대행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교회는 그들의 고집을 꺾지 않았으며, 신성해야 할 순교자 결투의 규칙마저 깨트리고 ‘여신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들었습니다. 참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독이지요.”
데일이 말했다.
“이 상황에서 ‘마왕령 개척 사업은 악(惡)이며, 작센의 비즈니스에 불과하다’고 하는 교회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서, 설마!”
그제야 비로소 보레누스 사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그 교활하고 잔학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검은 공자’가, 이토록 순순히 마왕령 일대를 그들에게 넘겼는지에 대해서.
처음부터 이것을 노린 것이다.
“네놈, 모두 네놈의 계책이었나……!”
보레누스 사제가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미 교회는 마왕령의 개척 사업에 너무나 깊이 개입했고, 빠져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까.
“말했듯이, 저는 상황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이 도시의 ‘직무 집행자’로서 존재할 때에 말이지요.”
“……!”
보레누스 사제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악물었다.
“여신과 교회의 이름으로, 맹세하겠다.”
악물고 나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설령 구두(口頭)의 약속이라고 하나, 레이디 스칼렛을 비롯해 대 마족 동맹의 수뇌가 똑똑히 그 말을 기억하게 될 그곳에서.
“우리 교회는 이곳 북부 마왕령의 영지를…… 여신의 이름으로 작센 자작에게 봉토(封土)할 것을 약속하겠다.”
“형제님의 뜻은 잘 이해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데일이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도시의 사태를 보고하고 있는 휘하의 겨울 파수꾼에게 명령을 내렸다.
“때가 되었다. 법정을 움직여라.”
* * *
교회의 도시가 불타고 비명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도 침묵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이 더 이상 교회의 도시가 아니라 ‘검은 공자’이자 작센 자작의 도시가 되었을 때.
그림자 법정은 비로소 그들의 침묵을 깨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섬기는 그림자 군주의 뜻에 따라.
바람이 불었고, 새 부리 마스크에 흑색 코트 차림의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회가 불타고 그곳에 있는 재물을 빼앗기 급급한 모험가들을 앞에 그들이 있었다.
“뭐, 뭐야, 이 새끼들은?”
“당장 꺼져!”
모험가들이 검을 들고 위협했고, 그러나 그림자 법정의 고위 암살자들은 묵묵히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푸욱!
침묵 끝에, 그들의 손에 들린 암기를 따라 핏빛의 오러가 일렁였다.
“어?”
어느덧 모험가 하나의 목이 잘린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잘린 목을 따라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침묵의 집행이 시작되었다.
* * *
도시의 소요를 수습하기 위한 집행이 시작되었고, 데일과 그들의 부대가 도시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이미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바람과 함께 도시 곳곳에서 암약하는 그림자 법정의 고위 암살자들. 그들의 활약 속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가 양이 되는 것은 찰나의 일이었다.
아울러 폭동이 일어나기에 앞서 도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데일은 의도적으로 모험가들의 약탈을 교회 쪽의 시설로 집중시켰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폭동조차 아니었다. 모험가들 속에 심어두고 있는 그림자 법정의 수족이 정교하게 펼치고 있는 작전에 불과했으니까.
그 외에 황실 직속 철십자 기사들이 지키고 있는 제5황녀 키아라의 무사는 말할 것도 없었고, 길드 등의 주요 시설도 무사하다. 겉보기에 이글거리며 불타고 있는 시설 대다수는 철저하게 교회의 것들이었고, 그 사실을 깨달은 보레누스는 다시금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또다시 속았다.
설마 모험가들의 폭동마저 ‘검은 공자’의 조작과 통제 아래에서, 정교하게 짜여 있는 작전이었을 줄이야.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부대가 기수를 돌릴 즈음 데일의 전령(傳令)이 앞서 미궁도시를 향했다는 것을.
심지어 교회가 모험가들에게 합법적으로 빼돌린 ‘십일조’ 대다수가 그대로 약탈당했고…… 그러나 그 약탈물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말할 것도 없는 귀결이었다.
필시 ‘검은 공자’의 손으로 되돌아가겠지.
교회의 손을 빌려 모험가들의 재물을 빼앗고, 다시금 그것을 자기 수중으로 넣은 것이다.
‘이, 이 교활하기 짝이 없는 악마의 자식이……!’
하나부터 열까지 데일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결말이었고, 그럼에도 돌이킬 수 있는 것 따위는 무엇 하나 없었다.
* * *
‘검은 공자’가 도시의 거리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방금까지의 소요가 거짓이었다는 듯, 도시의 거리 일대를 휘감는 것은 정적이었다.
도시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새 부리 마스크의 암살자들이, 그들의 군주를 향해 예를 표했다.
이윽고 도시를 가로지르며 데일이 도착한 곳은 일찍이 그의 ‘영주성’이었다.
더 이상 그곳은 교회의 주교좌 대성당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그의 성을 손에 넣을 차례였다.
고개를 들었다.
작센 자작의 영주성, 바로 그 성의 대회당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자가 있었다.
일찍이 그가 데일의 감시를 피해 불법으로 손에 넣은 아티팩트…… 적어도 덜레스의 에드워드로서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아티팩트, 꼭두각시의 검을 손에 쥐고서.
에드워드는 꼭두각시로서 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나아가 에드워드와 그의 귀족계 모험가 일파가, 지금껏 데일의 감시를 피해 손에 넣은 마왕령의 재물 역시 데일의 수중에 돌아왔다.
적어도 숨겨놓은 재산을 찾아내는 데 있어서, 교회의 십일조 집행자들처럼 믿음직스러운 자들도 없으니까.
데일이 그림자 망토를 펄럭이며 고개를 들었다.
이성을 잃고 검의 광기에 사로잡혀 꼭두각시처럼 춤추는 에드워드가 그곳에 있었다.
교회 사냥이 끝이 났고, 개를 버릴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