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 *
북부의 마왕령, 지금에 와서는 작센 공작 가의 이름으로 시스티나 자매신에게 바쳐진 교회의 땅.
백마법사와 교회의 검을 자처하는 진정한 여신의 기수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 역시 그곳에 있었다.
“신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마스터 템플러, 기 드 뤼지냥.
“찬미하라!”
울려 퍼지는 백마법사들의 찬가 마법 속에서, 그들의 등 뒤를 따라 빛의 날개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왕령의 어둑새벽을 걷어내는 여명의 기수를 자처하며.
그들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구울들의 무리 앞에서, 마스터 템플러가 검을 겨누었다.
“여신이여, 저에게 악에 맞설 힘을 내려주소서.”
바로 직후,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내리꽂혔다. 마스터 템플러의 검이 겨누고 있는 그 지점을 향해서, 공상과학 영화 속의 위성 포격처럼.
새틀라이트 빔.
하늘에서 지상을 향해 쏟아지는 빛의 기둥. 천상의 포격이 구울들의 무리를 휩싸았고, 동시에 그들의 육체가 얼어붙었다. 얼핏 보기에는 얼음처럼 보이는 그것은 그러나 얼음이 아니었다.
소금이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 위해 신이 내린 벌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에 닿는 일체의 것들을 소금 기둥으로 바꾸고 있었다.
“찬미하라, 자매신의 자애와 자비를 알지 못하는 가엾은 자들이여!”
북받치는 신앙심을 참지 못하고 마스터 템플러가 성호를 내리그었다.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여신의 진노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자애와 자비와 다소 거리가 있다는 사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땅의 어둠을 몰아내고 여신의 뜻을 깊이 아로새길 것이다.”
마스터 템플러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이 땅은 결코 마왕령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대로 고개를 돌린다.
일찍이 신을 버린 배교자들의 대지, 북부 작센 공작령을 향해서.
* * *
마왕령을 교회에 바친 뒤에도 데일은 여전히 ‘작센의 대표자’로 그곳에 있었다. 이제는 작센 영주성이 아니라, 시스티나 교회의 주교좌 대성당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옛 작센의 요새에서.
나아가 교회가 공식적으로 미궁도시 라비린토스의 대미궁 사업마저 총괄할 수 있게 되고 나서, 몇 가지 새로운 법령이 제정되었다.
십일조였다.
벌어들이는 소득의 10%를 여신에게 바치는 행위.
마왕령이 시스티나 여신교의 교구(敎區)로 거듭나 있는 이상, 이곳 마왕령에 있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
개척 농부와 수도회, 미궁을 공략하는 모험가들조차 예외일 수 없었다. 심지어 그들이 미궁에서 획득한 아티팩트나 마석의 중개 수수료와 별개로 지불해야 하는 세금이었으며, 중개 수수료가 여신의 이름으로 더더욱 비싸진 것 역시도 별개의 일이었다.
어쨌거나 아티팩트 러시의 광풍은, 지금도 그 위험에 걸맞은 일확천금의 보수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교회로서는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의 방법으로 마왕령의 재화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즈음, 모험가들 사이에서 마왕령의 새로운 지배자를 두고 수군거리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기수에 있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귀족계 모험가 파벌의 수장으로서, 이 미궁도시에서 가장 커다란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는 ‘덜레스의 에드워드’였다.
데일은 처음부터 그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전횡을 침묵하고 있는 것은 결코 그의 뒷배가 무섭다거나, 증거를 잡지 못했다거나 하는 시시한 이유가 아니었다.
때로는 독(毒)도 쓰기에 따라 약이 될 수 있으니까.
독을 다스리기 위한 독으로서, 데일이 에드워드를 찾은 것은 그즈음의 일이었다.
* * *
“빌어먹을 교회 새끼들!”
미궁도시 라비린토스에 있는 에드워드의 저택. 몇 해 전부터 시작된 개척 사업의 결과로서, 성공한 모험가들이 도시 내에 그들의 사저를 갖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몇몇 이들의 사저는 특히나 크고 호화스러웠다. 어디까지나 북부의 벽지, 작센 공작령 내에서의 기준이기는 했으나.
“전능하신 자매신께서도 금전 문제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바로 그 저택에서, 데일이 남의 일처럼 중얼거렸다.
“에드워드 공자님께서도 여러모로 타격이 막대하시겠지요.”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데일의 말에 에드워드가 다시금 고성을 높였다. 데일이 그대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궁도시 내에서 가장 부유한 모험가 중 하나였어야 할 그의 저택 내부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그야말로 폭격을 맞은 집처럼.
불과 몇십 분도 채 되지 않은 일이었다.
교회가 데일이 세운 모험가 길드를 꿀꺽 집어삼키고, 길드의 정보를 통해 고소득 모험가들의 신상명세를 파악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템플 기사수도회의 ‘십일조 집행자’들이 에드워드의 저택에 들이닥친 것은.
그 직후 교회 법령에 따라 십일조를 징수하겠다는 명목 아래, 저택 곳곳을 샅샅이 뒤져서 에드워드의 재산을 샅샅이 털어냈다.
교회는 합법적으로 모험가들이 이곳 미궁도시에서 쌓은 재산의 10%를 가져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로서는 ‘최대한 많은 10%’를 징수하기 위해 에드워드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탈탈 털어대기 시작했다.
덧붙여 그가 그 후로 마왕령에서 매달 벌어들이게 될 소득의 10% 역시 예외가 아니란 말을 남기고.
“그것도 모자라 중개 수수료를 두 배 가까이 올려 받겠다니! 그야말로 자매신이 통곡할 노릇이 아닙니까!”
“아무래도 자매신께서 급전이 궁하신 모양이지요.”
“대체 작센 자작님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그들에게 영지를 넘기신 겁니까!”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강도질 앞에서, 저라고 달리 별수가 있겠습니까.”
데일이 어깨를 으쓱였다.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강도가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강도는 모름지기 신의 이름을 빌린 강도들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미궁도시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에드워드는 흡사 자기가 마왕령의 영주라도 되는 것처럼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대미궁에서 적지 않은 모험가들이 커다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어쨌거나 저의 일차 목표는 이곳 마왕령의 땅을, 사람의 땅으로 개척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교회가 그 사업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이상……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이미 황실의 황자, 황녀님을 비롯해 대륙 각지의 강자들이 ‘대 마족 동맹’을 위해 집결해 있지 않습니까!”
에드워드가 소리를 높였다.
“그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교회가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어불성설입니다!”
“역시 에드워드 공자님이시네요.”
그 말에 데일이 나직이 미소 지었다.
“사실은 저 역시, 에드워드 공자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고 있답니다.”
미소 짓고 나서 말을 잇는다.
“아무래도 우리는 같은 배를 탈 수밖에 없겠네요.”
* * *
에드워드와 모종의 ‘거래’를 마치고, 데일은 곧바로 그가 거느린 그림자 법정의 아지트로 향했다.
이곳 마왕령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교회를 피해, 일시적으로 작센 공작령에 몸을 숨기고 있는 그들의 대법정.
그림자 법정의 실체, 그림자 교회는 시스티나 여신교의 입장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이교(異敎)다.
그리고 데일이 그림자 교회의 충성을 얻고 있는 ‘그림자 군주’로 존재하는 이상, 철저하게 그들의 존재를 숨길 필요가 있었다.
그 점에 있어 그들이 동시에 대륙 제일의 암살자 조직이란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불과 빛의 사도를 쓰러뜨리기 무섭게, 새로운 황금의 사도들이 나타나고 있네요.”
그곳 대법정에서, 흑색 붕대로 눈을 가린 소녀가 입을 열었다.
그림자 성녀, 데일과 옛 어둠의 어머니 슈브를 섬기는 그들 조직의 구심점.
“미하일 랭커스터를 불과 빛의 사도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렇답니다.”
“성녀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도’란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랍니다.”
그림자 성녀가 미소 지으며 말을 잇는다.
“황금과 그림자, 빛과 어둠의 신들께서 이 땅에 그들의 의지를 집행하기 위해 계시를 내리는 사역자들이지요. 일찍이 브리타니아 섬의 성처녀 오렐리아 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말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내려지는 힘을 말하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미하일 랭커스터처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그들의 신념을 자각할 수도 있지요. 나아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 사도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까지. 형태와 방법은 제각각이나, 궁극적으로 사도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랍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이 땅에 그들의 신(神)을 위한 제국을 세우는 것.”
“황금과 그림자를 말하는 겁니까?”
“크게 봤을 때는 그렇지요. 그러나 그림자 속에도 여러 가지의 형태가 있듯이, 황금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좌우 내의 사상에서도, 극이나 중도 따위의 스펙트럼이 나뉘듯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황금의 군주, 그림자의 군주, 그들의 충실한 기수(旗手)를 자처하는 사도가 있으며, 나아가 그들 자신이 직접 황금이나 그림자의 군주가 되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 있는 사도들도 있겠지요. 황금 옥좌를 차지하기 위해 지금도 물밑에서 끝없이 암투를 벌이고 있는 ‘불과 빛의 제국’처럼 말이지요.”
흡사 신탁을 받는 무녀처럼 그림자 성녀의 말은 추상적이고 광신에 취해 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는 나름의 일리가 있었다.
미하일 랭커스터는 일방적으로 황실에 충성하는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말하는 평화는 그 이상의 야심이 깃들어 있으니까.
“애초에 ‘황금과 그림자’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후후, 당장 조급하게 이해하실 것 없습니다. 곧 좋고 싫음을 떠나 알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요.”
그림자 성녀가 다시금 의미심장하게 미소 짓는다. 여전히 흑색 붕대를 가린 채.
“그저 저와 그림자 법정은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그림자 군주를 섬기리라 맹세하며, 당신께서 이 땅에 가져올 제국을 믿고 있답니다.”
“저 이상으로 흑색의 사도에 적합한 자가 나타나, 저 대신 그림자 군주의 이름을 자청해도 말입니까?”
“어느 누가 감히 ‘검은 공자’를 대신해 그 이름을 자청할 수 있을까요?”
그림자 성녀가 되물었다.
“옛 어둠의 어머니와 함께하고 있는 작센과 흑색의 후계자. 그것이 바로 ‘검은 공자’가 아니었나요?”
“…….”
“불과 빛의 사도, 미하일 랭커스터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황금과 그림자의 사도들이 나타나고, 그대의 앞을 가로막겠지요. 지금 당장, 이 땅을 범하고 있는 ‘마스터 템플러’가 그러하듯 말이지요.”
마스터 템플러. 그 이름에 일순 데일이 숨을 삼켰다.
그대로 흘끗 고개를 돌린다. 탁자 위에 두 발을 얹고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마스터 바로가 있었다.
“마스터 바로.”
“왜 부르쇼.”
그리고 비로소 데일은 그가 그림자 법정에 찾아온 진짜 목적을 입에 담았다.
“칼 좀 담그게, 애들 좀 불러라.”
* * *
에드워드와 모종의 거래를 맺었으나, 엄밀히 말해서 데일에게 있어 에드워드의 존재 자체가 독이란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와 귀족계 모험가 파벌이 미궁도시 내에서 품고 있는 전횡을 고려했을 때, 진즉에 그 씨를 잘라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데일에게 있어 ‘덜레스의 에드워드’는 일회용의 사냥개에 불과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사냥개조차 아니었다.
교회를 상대로 사냥을 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데일과 그림자 법정의 몫이 될 테니까.
그러나 사냥이 끝나고 나서 그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은 에드워드와 그 일당의 몫이 되리라.
일찌감치 토사구팽의 사냥개를 준비해 놓고, 교회 사냥을 시작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