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39화 (139/301)

139화

* * *

“저 모습은 대체……!”

그림자 군주의 아바타가 방금까지와 비교를 불허하는 기백을 내뿜기 시작했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 마력을 내뿜으며…… 그야말로 마신(魔神)이 그곳에 있었다.

네 개의 서클이 적색 마력에 휘감겨 폭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뒤가 없는 배수진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데일의 서클은, 이계의 지식을 바탕으로 어느 때보다 정교하게 기동하고 있는 ‘최신식 태엽장치’였으니까.

적색 마력을 이용해 서클을 강화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마력을 생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마력을 암혈의 갑주 위로 쏟아부으며 일체의 능력을 상승시키고 있었다.

슈브의 힘을 통해 손에 넣은 그림자 군주의 아바타, 이 아바타를 기동하는 것은 오러가 아니다. 마력이다.

그렇기에 터무니없을 정도의 마력을 일방적으로 쏟아부어, 암혈의 갑주를 강화하고 있었다.

흑적청(黑赤靑)의 삼색을 이용하는 마법사로서.

칠흑의 괴수, 헬무트 블랙베어 경이 다시금 땅을 박찼다. 그리고 그 일격에 맞서 그림자 군주가 검을 휘둘렀다.

카앙!

이 미터의 대검 ‘광기’에 맞서, 칠흑의 마검 ‘기아’가 맞부딪쳤다. 일말의 미동조차 없이.

‘힘에서 밀리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헬무트 경이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일평생을 검에 바친 북부 최강의 기사를 상대로 맞받아친 그림자 군주의 검. 헬무트 경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일방적으로 압도되고 있는 그 모습이 아니었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동등하게, 기사 대 기사로서 검을 맞대는 것이다.

“하, 하하하하!”

두 자루 검의 힘겨루기 속에서 헬무트 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나도 즐겁고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래요, 바로 이거지요! 이 정도가 되지 않고서야 감히 ‘작센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을 리가 없지요!”

작센 공작의 가장 가까운 검으로서, 칠흑의 광전사가 투기를 불태우며 광소했다. 동시에 그의 육체를 따라서 다시금 오러가 폭발적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제국 제일의 천재, 데일 공자님의 성취가 이 헬무트로서는 너무나도 기쁘고 기뻐서 참을 수가 없답니다!”

오러 그 이상의 힘으로 거듭나 있는, 투쟁의 에너지가 헬무트 경의 아바타를 휘감기 시작했다.

투기(鬪氣).

일찍이 성검사가 그러했듯, 정점의 기사들에게 아바타가 꼭 하나의 형태란 법은 없다.

‘설마 지금 이상의 전력을……!’

그림자 군주가 칠흑의 마검을 고쳐 잡았고, 직후 거리가 좁혀졌다. 달라질 것은 없었다. 지금, 적색 마력으로 열기관을 형성해 육체를 가속하고 있는 데일이다. 이 힘으로 ‘북부 최강의 기사’에 어디까지 맞설 수 있을까.

데일 역시, 헬무트에게 뒤지지 않을 광전사의 호승심에 차서 미소 지었다.

카앙!

일검이 맞부딪쳤다. 방금까지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 기백의 검. 받아내는 것조차 버겁고, 그 이상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스산함이 칼날을 따라 깃들었다.

맞부딪치고 나서 데일이 고개를 들었다.

휘몰아치는 투기 속에서, 헬무트 블랙베어 경의 아바타가 가진 제2의 형태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

죽음의 기사가 그곳에 있었다.

그의 육체가 살점 하나 붙어 있지 않은 해골이 되어서, 작센의 흑색 갑주를 휘감고 있는 데스나이트.

바로 그 데스나이트가, 이 미터의 대검 ‘광기’를 고쳐 잡고 있었다.

“어떠십니까, 데일 공자님.”

헬무트 블랙베어 경의 해골이 입을 열었다. 사람의 목소리라고 부를 수 없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것이 바로 저, 헬무트 블랙베어가 작센 가를 위해 바치고 있는 의지의 증표입니다.”

죽음의 검, 죽어서도 작센 가를 위해 충성하겠다는 사상의 갑주가 그곳에 있었다.

“헬무트 경…….”

그리고 데스나이트로 거듭나 있는 헬무트 경이, 데일 앞에서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싸움을 지속하는 게 아니라.

쿠웅!

“오늘, 이 헬무트에게 데일 공자님이 보여주신 무위를 저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겁니다!”

마왕령의 동토 위로 그의 대검을 세로로 꽂아 넣었다. 마치 데일이 그의 데스나이트를 수족처럼 부리듯이.

그러나 그의 앞에 있는 것은 결코 일개 데스나이트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동시에 작센 가를 위해 평생의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북부 최강의 기사다.

“일어나십시오, 헬무트 경.”

그 모습을 보고 데일 역시 비로소 그림자 군주의 아바타를 해제했다. 심장의 서클을 가속하고 있는 적색 마력이 사그라들었다.

바로 그 직후였다.

“……큭!”

갑작스럽게 데일의 심장이 타오르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그대로 몸이 무너지고 무릎을 꿇었다. 헬무트가 당황하며 데일을 향해 달려왔으나, 이내 데일이 팔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아직 능력의 사용이 익숙하지 않으신 겁니까.”

헬무트 경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정곡이었다. 그가 싸움을 지속하지 않은 것 역시, 막 각성한 능력이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역시 헬무트 경이네요.”

데일이 짐짓 평정을 가장하며 미소 지었다. 심장의 서클을 가속하는 열기관이 기동을 멈추고, 동시에 여열(餘烈)이 남아 데일의 심장을 불태우는 것이다.

다급히 청색 마력을 생성해 체내의 열평형을 이루며, 데일이 냉정하게 새 능력의 리스크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이 헬무트, 이후로도 공자님의 수행을 위해 기꺼이 제 검을 들리라 맹세하겠습니다.”

어느덧 아바타를 해제하고 데일이 알고 있는 헬무트 경이 그곳에 있었다.

“감사합니다, 헬무트 경.”

그 모습을 보고 데일이 나직이 미소 지었다. 그의 말마따나 이제 시작일 따름이었다. 그림자 군주의 아바타를 각성하고 삼색의 속성을 활용하는 마법사로서.

희고 어두운 겨울밤의 성채 속에 있는 화로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미궁도시에 있는 작센 자작의 영주성.

“S랭크의 모험가, 덜레스의 에드워드를 중심으로 하는 귀족계 파벌이 ‘길드의 거리’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의 무위(武威)가 요사이 기형적으로 성장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요 몇 주 사이 미궁 내에서 다수의 모험가가 실종되고 있는 사태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상정하고 있는 미궁 내 실종 및 사망률을 아득하게 넘기는 수치입니다.”

어둠속에서 모험가들을 감시하는 ‘그림자 법정’의 암살자가, 작센 자작에게 보고를 올렸다.

“달리 짐작이 가는 바라도 있습니까?”

“그림자 법정의 암살자들이 미궁에 입장하는 모험가들의 동태를 예의주시하고는 있으나, 저희도 아직 마땅히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그 말을 듣고 나서 작센 자작, 데일이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적색 마탑의 ‘레이디 스칼렛’이 직접 모험가 길드에 그녀의 정보를 등록했다지요.”

“그렇습니다.”

“미궁 내에서 그녀의 수상한 움직임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그것이…….”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림자 법정의 암살자가 말을 흐렸다.

“미궁 내에서 저희의 감시망을 피해 신출귀몰하게 움직이고 있는 탓에, 도무지 행적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일개 마법사가, 제국 제일의 살수들을 피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 적어도 레이디 스칼렛에게 있어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그렇기에 데일이, 마왕령의 지배자로서 수행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였다.

“이후에도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마시고, 임무를 속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데일이 몸을 일으켰다.

* * *

레이디 스칼렛을 필두로 적색 마탑의 적마법사들이, 마왕령의 개척 사업에 보탬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랭커스터 가에서 대 마족 동맹의 약속을 이행하는 장미십자 기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랭커스터 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적색 마탑이 그 속에 품고 있는 흑심에 대해서는 절대로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불과 피의 마탑, 제국의 시대정신을 집행하는 힘의 숭배자들.

게다가 데일이 생각해야 할 것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곳 미궁도시를 중심으로 저마다의 야망을 갖고 움직이는 무리까지.

그렇기에 공식적으로 그 상황을 수습하는 ‘작센 자작’의 몫이 아니었다. 일찍이 미궁도시에서 그 명성을 떨치며 활약하고 있는 S랭크의 모험가 《페이스리스》의 몫이 될 테니까.

* * *

헤아릴 수 없는 파벌과 조직들이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다툼을 거듭하고 있는 아귀도.

그중에서도 덜레스의 에드워드와 그가 거느린 귀족계 모험가 파벌은, 도시 내의 가장 힘 있는 조직 중 하나였다.

제국에서도 이름 높은 덜레스 백작 가 출신으로서, 실력 자체도 나무랄 데가 없는 기사. 에드워드가 모험가들 사이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은 처음부터 보통의 성질이 아니었다.

아울러 작센 자작이 장미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영지를 비웠을 그즈음, 미궁 심층에서 에드워드는 어떤 아티팩트 하나를 획득했다.

그 후 작센 자작의 부재를 틈타 그 아티팩트를 ‘모험가 길드’에 보고하지 않고, 줄이 있는 길드를 통해 세탁함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어느덧, 에드워드는 도시의 모험가들이 범접할 수 없는 거물이자 강자로 거듭나 있었다.

* * *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페이스리스’가 모험가 길드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적발의 미녀가 그곳에 있었다.

마치 모험가들 사이에서 여왕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는 레이디 스칼렛이.

“후후, 참으로 친절하기도 하셔라.”

스칼렛이 요염하게 미소를 머금었고, 후드 밑으로 드리워져 있는 페이스리스의 그림자가 그녀를 향했다. 일순 그녀의 눈빛이 이쪽을 향했다.

“어머나.”

후드 밑에 드리워져 있는 페이스리스의 존재를 뚫어보듯, 스칼렛이 즐겁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페이스리스, 도시 사람들이 말하는 전설적 모험가께서 나타나셨네요!”

“…….”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는 레이디 스칼렛을 보고, 페이스리스가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아아, 차가우셔라.”

“허허, 이런 시펄.”

바로 그때, 비로소 페이스리스의 후드 밑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걸쭉하기 그지없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어……?”

“이 아가씨 꼬리 살랑이는 게 아주 그냥 예술이여.”

예상 밖의 목소리에 레이디 스칼렛조차 당황스레 입을 다물었다. 적어도 적색 마탑의 첩자들이 말해준 ‘페이스리스의 정체’와 너무나도 매치가 되지 않는 목소리였다.

장미 전쟁이 벌어질 사이, 모험가 페이스리스가 자취를 감추었다. 사실 그 정보 하나로 그의 정체를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데일 역시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모험가 페이스리스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검은 공자’의 몫이 아니었다.

“그래, 어디 이 전설적 모험가랑 같이 오붓하게 미궁 구경이나 가실라우?”

어둠 속에서 미궁도시 일대를 감시하는 그림자 법정의 최강자, 마스터 바로였으니까.

“아, 유감스럽게도 진흙탕의 수퇘지와 어울리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마스터 바로의 말에, 레이디 스칼렛이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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