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 * *
성검 브란덴부르크 백작과 휘하의 성 막달레나 기사들로 이루어진 기병대, 그리고 귀검 세필리아 경과 그녀를 향한 충의를 지키고자 자의로 전투에 참여한 철십자 기사들의 기병대.
제국 제일의 두 기사가 저마다 거느린 기동 타격대가, 무자비하게 랭커스터 공작령을 짓밟고 있었다.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섣불리 추격조를 붙이려 해도,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규격 외 강자’들의 존재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함부로 대규모 군세를 움직일 경우, 두 영지가 맞물린 경계에서 대기하고 있는 요크 후작 가의 주력 부대가 눈엣가시다. 적어도 랭커스터 가의 입장으로서는 그러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검은 공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 * *
랭커스터 공작령의 소도시, 폴버넘.
바람이 불어왔고, 새 부리 마스크의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충성하고 있는 ‘그림자 군주’ 앞에서.
“성검과 성 막달레나 기사들이 이끄는 삼백의 기동 타격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몇 차례의 약탈이 자행됐을 때, 데일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랭커스터 가의 수뇌부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칠검 두 자루가 거느린 기병대가 공작령 내부로 침입할 때, 그들의 교란(攪亂)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은 착실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아무리 칠검이라 해도 필요 이상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력 부대와의 소통이 끊어져 그대로 각개 격파를 당할 경우, 게릴라 전술이 갖는 양날의 검이 그들에게 내리꽂힐 테니까.
그렇기에 최소의 거리를 유지하는 내에서 움직이게 될 그들의 기동로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적어도 ‘대륙 제일의 암살자 조직’을 거느리고, 그들을 첩보대로서 활용하고 있는 데일로서는 그러했다.
“…….”
척후병의 임무를 수행하는 고위 암살자의 보고를 듣고, 데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데일의 곁을 지키는 밤까마귀 기사가 입을 열었다.
“도시 사람들의 대피 작업을 모두 끝마쳤습니다.”
이곳 폴버넘은 결코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가 아니다. 그러나 ‘도시’를 자청할 수 있을 정도로 쌓아 올린 석재 구조물과 도시의 성벽, 미로처럼 얽혀 있는 도시 특유의 거리 구조를 갖추고 있다.
시가전(Urban Warfare)을 수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전장.
“이 매복이 먹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회성이겠지.”
그러나 그 일회성의 매복으로, 요크 후작 가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히게 되리라.
적들이 ‘검은 공자’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더라도, 그가 거느린 그림자 법정과 살검의 존재마저 알 수는 없다. 그들이 경계하고 있는 최대의 적은 어디까지나 ‘천검 랭커스터 대공’일 것이며, 요크 가의 첩보대가 주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천검의 움직임일 테니까.
그것이 바로 데일이 노리고 있는 맹점이었다.
처음부터 데일이 거느린 ‘그림자 법정’의 전력은 랭커스터 공작령에 머물지 않았다.
이미 랭커스터 공작령 곳곳에는 요크 가의 척후병들이 그들의 군세와 수상쩍은 동태를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데일 하나였고, 랭커스터 공작령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는 벽지에 살검을 비롯한 ‘그림자 법정’의 최고 전력을 대기시켜 놓았다.
그 후, 랭커스터 공작령이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며 ‘기동 타격대’가 점점 영지 깊숙한 곳을 향해 움직일 즈음.
데일과 ‘그림자 법정’의 고위 암살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크의 감시망이 닿지 않는 외부에서, 대륙 칠검이 지휘하는 기동 타격대를 저격하기 위해.
제아무리 공작령 내에 있는 요크의 첩자라 하더라도, 애초에 영지 바깥에서 움직이는 그들의 동태마저 파악할 수는 없으리라.
살검 마스터 바로가 육성한 고위 암살자들은 결코 일개 도적 따위가 아니었다. 제국 유수의 대제후가 육성하는 기사 조직에 맞먹는 규율과 군기로 무장하되, 동시에 기사의 이치에 얽매이지 않는 철저한 살수의 검들.
그리고 두 조직이 맞붙는 것은 결코 기병들의 홈그라운드가 아니다.
이곳 공작령의 소도시, 폴버넘의 시가(市街)였으니까.
규격 외의 강자를 ‘전략과 전술’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은 결코 요크 후작 가의 특허가 아니다.
남은 것은 데일이 파놓은 덫을 향해, 그의 먹잇감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 * *
전쟁에서는 늘 불가피한 일들이 일어나는 법이다. 가령 성검(聖劍)의 이름을 가진 고결한 기사가, 설령 제아무리 추악한 아바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그 역시 나름의 기사도를 가진 기사였으므로.
그렇기에 일방적으로 저항할 능력이 없는 랭커스터 공작령의 영지를 약탈하는 행위가 썩 달가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별 수 있을까. 그의 아들, 망나니 필립에게 천하의 ‘요크 후작 가’가 청혼을 내걸고 두 가문 사이의 동맹을 제의한 것이다. 대륙 제일의 패배자, 가장 치욕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필립은 아무리 그의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성검의 검주(劍主)라 하더라도 꺼릴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니까.
제국의 누구도 필립이 ‘성검의 계승자’가 될 거란 기대를 품는 자는 없었다. 다시 말해, 자랑스러운 백작 가의 영광도 그의 대에서 끝이란 사실이다. 당장에 성검사마저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 유수의 대제후, 요크 후작 가의 차녀가 손길을 내밀어준 것이다!
그렇기에 성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그들의 믿음에 부응해주는 일뿐이었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더럽고 추악하며, 비열하기 그지없는 행위라 하더라도.
검을 고쳐 잡고서, 성검 브란덴부르크 백작이 고개를 들었다.
랭커스터 공작령의 소도시, 폴트넘.
아마 공작령 일대에서 벌어지는 약탈의 소식을 듣고, 대다수의 도시 사람들은 이미 도망을 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검사는 딱히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급하게 도망치며 그들이 남기고 있는 것들을 손에 넣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 도시를 불태우는 그 자체로 랭커스터 공작령의 사람들에 심어줄 수 있는 공포를 이해하고 있기에.
폴트넘의 도시 입구는 휑하니 뚫린 채였고, 누구도 감히 성검사와 그가 거느린 기병대를 막을 수는 없으리라.
“도시 사람들 모두가 대피를 마친 듯합니다.”
척후병의 보고에, 성검사 브란덴부르크 백작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크 후작 가에서는 랭커스터의 영지와 도시를 남김없이 불태우라고 요청했다.”
끄덕이고 나서, 성검사가 묵묵히 그의 말에 박차를 가했다.
“요크 후작 가의 요청에 따라 도시 일대를 불태우고 잿더미가 되기 전까지, 우리는 돌아가지 않는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성검사의 명에 따라, 부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앞에 있는 도시, 폴트넘에 깃들고 있는 불길한 침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 * *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적막 자체는 어디까지나 예상 이내의 것이었다.
랭커스터 공작령과 요크 후작령이 맞닿은 경계 일대에서, 이미 두 칠검이 거느린 기병대가 약탈과 방화를 거듭하고 있고…… 머지않아 그 다음 목표가 어디로 향할지는 말할 것도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성검 브란덴부르크 백작이 이끄는 기병대는 의심 없이 랭커스터 공작령의 소도시 ‘폴트넘’의 거리를 가로질렀다.
그들이 도시의 오밀조밀하게 쌓여 있는 석재 구조물을 가로질러, 좁은 거리 사이에서 횡대 진형을 구축할 수 없는 병목의 함정에 빠질 때까지.
그러나 그들 역시 함정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설령 그들이 함정에 빠질지라도, 대륙 칠검의 강자를 비롯한 성 막달레나 기사들의 강자가 그곳에 있었으니까.
‘천검 랭커스터 대공’이 직접 움직이지 않는 이상에야, 하물며 그의 동태를 요크 후작 가의 첩보대가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달라질 것은 없다. 모두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것이 바로 ‘규격 외 강자’가 전략과 전술 속에 녹아들며 활약할 때의 진정한 가치였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공작령의 소도시 ‘폴트넘’의 쇄석으로 쌓은 거리를 가로지르고 있을 때였다.
──타앙!
느닷없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로서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총성(銃聲)이었다.
“적습, 적습이다……!”
갑작스럽게, 성검의 뒤를 따르고 있는 기사 하나가 그대로 낙마했다. 두개골을 지켜야 할 투구 위로 터무니없이 커다란 구멍이 뚫려서, 그대로 뼈가 부서지고 뇌수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타앙!
재차 총성이 울려 퍼졌고, 또 하나의 기사가 그대로 말에서 쓰러졌다.
당황 속에서 신속하게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음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갑주와 갑주, 방패와 방패, 사람과 사람의 사이로…… 말 그대로의 ‘죽음’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사, 상대는 일개 볼트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 겁먹을 것 없다! 방어 태세를 갖추어라!”
다급하게 성 막달레나 기사 하나가 소리를 높였고, 그의 지적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지금, 그들을 향해 내리꽂히고 있는 것이 ‘일개 볼트 마법’의 그것을 아득하게 뛰어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서.
타앙!
총성이 끝없이 울려 퍼졌다. 말들이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날뛰었고, 그때마다 기사들의 투구와 두개골, 뇌수가 터지며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오러 나이트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기사들조차 감히 그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는 볼트 마법.
‘가능할 리가 없다……!’
게다가 그 ‘볼트 마법의 구사자’가 노리는 것은, 결코 성검을 비롯한 오러 마스터 경지의 기사들이 아니었다. 아무리 상궤를 벗어나 있는 볼트 마법이라 할지라도, 아바타를 구사할 수 있을 정도의 기사들을 순살(瞬殺)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그렇기에 철저하게 오러 나이트 이하의 경지를 가진 기사들을 노리고, 기병대 전체의 사기를 꺾기 위한 공포의 역병으로서 ‘죽음의 총알’을 날리고 있었다.
저격, 스나이퍼 라이플.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저격수가, 도시의 거리를 가로지르는 기사들을 향해 ‘살상의 정수’를 내리꽂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적이 ‘알 수 없는 죽음’을 내리꽂고 있었고, 그 까닭에 상식을 가진 지휘관이 내릴 결정이란 오직 하나였다.
“퇴각하라! 당장 기수를 돌려 도시를 빠져나가라!”
타앙!
그가 말을 미처 끝낼 틈도 없이, 또 하나의 총알이 내리꽂혔다. 오러 나이트 하나가 그대로 낙마하며 쓰러졌다.
동시에 성검의 명령을 받은 부하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기수를 돌려, 도시 바깥으로 대피를 시작했다.
아니, 시작하려고 했다.
─지금이다.
앞서 도시 ‘폴버넘’의 성벽과 거리 전체에 걸쳐, 그들을 사냥하고 있는 저격수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콰앙!
폭발이 일어났다. 처음부터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헤아리고, 도시의 구조물 일대를 무너뜨리는 폭발이었다.
도시의 출입구, 도시의 거리와 거리를 잇고 있는 지점의 석재 구조물들이 일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타앙!
그리고 그들이 도망칠 수 없는 덫에 갇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저격수의 움직임에 달라질 것은 없었다.
방아쇠를 당기고, 생명을 빼앗고, 다시금 방아쇠를 당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