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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18화 (118/301)

118화

* * *

그로부터 얼마 후, 미하일 랭커스터의 활약과 더불어 북부 마왕령의 개척 사업이 궤도에 접어들 즈음.

비밀스럽게 미하일 랭커스터를 찾아 북부 마왕령으로 사람이 찾아왔다. 두말할 필요 없이 랭커스터 대공 가의 밀사였다.

북부 마왕령의 개척 작업은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해에 해를 거듭하고, 마족들을 토벌하고 농작을 거듭함으로써 땅을 일구고 새로운 요새를 쌓아 올리는 대작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데일 역시 그의 일평생을 이곳 마왕령에 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센 자작이기 이전에 데일은 그의 진짜 목적을 조금도 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랭커스터 가의 밀사가 찾아오고, 데일과 미하일이 맺은 약속을 이행할 때가 다가왔다.

랭커스터 대공 가와 요크 후작 가, 두 대제후 사이의 후계자 다툼이 비로소 막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에 데일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그의 자작령에 남겨놓고, 아버지 작센 공작의 영주성을 찾아왔다.

훗날의 적으로 거듭날 불과 빛의 사도, 미하일 랭커스터를 ‘대공 가의 후계자’로 지지하기 위해.

* * *

“……대 마족 동맹이라.”

작센 공작의 집무실.

여느 때처럼 데일과 아버지 작센 공작이 있었고, 동시에 또 하나의 손님이 있었다. 랭커스터 대공 가의 차남, 미하일 랭커스터였다.

랭커스터 가의 자초지종과 더불어 그의 제의를 헤아린 작센 공작이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하필 요크의 요녀(妖女)들이 상대라니,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구나.”

요크의 요녀. 제국 제일의 대제후이자 흑마법사로서, 작센 공작은 이 세계와 제국이란 나라의 적지 않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천검 랭커스터 대공이라고 하나, 귀검과 성검이 함께하는 이상…… 쉬운 싸움은 아니겠지.”

대륙 칠검 중에서 세 자루의 검이 격돌하는 치열한 싸움이었고, 그 격돌이 가져올 여파는 절대로 가볍지 않으리라. 결코 데일 홀로 활약할 수 있는 독무대가 아니다.

그렇기에 랭커스터 대공 가는 작센 가에 그 힘을 빌리고자 하는 것이다. 대륙 칠검의 일좌, 나아가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가 다스리고 있는 북부 제일의 대제후.

“저희 랭커스터 대공 가는 결코 작센의 호의를 잊지 않을 겁니다.”

미하일 랭커스터가 말했다. 그의 흉갑 위로 새겨져 있는 랭커스터 가의 상징, 백적색의 장미를 과시하듯 드러내며.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저는 랭커스터 대공 가의 후계자로서…… 대 마족 동맹과 더불어 이후로도 작센과 ‘의심할 여지가 없는 동맹’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주는 것과 받는 것에 대해 작센 공작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와 헬무트 경이 직접 랭커스터 대공령까지 움직일 수는 없다.”

강자는 엉덩이가 무겁다. 특히나 북부 작센 공작령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당장 데일이 자리를 비우고 있는 사이, 마왕령의 개척 사업을 대행하는 것은 아버지 흑색공의 몫이 될 테니까.

“그러나 데일, 이미 너의 뜻은 확고하게 굳어진 모양이구나.”

“…….”

“랭커스터와 요크의 후계 다툼은 결코 너의 손바닥 아래에서 좌지우지될 정도로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십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각오할 가치가 있는 일이지요.”

“무엇을 말이냐?”

“미하일 공자님께서는 훗날 이 제국의 강자이자, 우리 공작 가에 부족함이 없는 대제후로 거듭날 것입니다.”

“…….”

“그리고 그 공자님이 어려운 바로 이 시기에 힘이 되어드리는 것 이상으로, 미래를 위한 훌륭한 투자는 없겠지요.”

데일이 일말의 주저도 없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미하일 랭커스터가 일순 숨을 삼켰다.

“제법 공자님을 향한 신뢰가 확고한 모양이구나.”

비록 띠동갑에 가까운 나이 차라고 하나, 미하일 랭커스터는 제법 데일과 죽이 맞는 상대였다. 데일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유일하게 친분(親分)을 쌓은 귀족 가의 자제이기도 했고, 그 가문이 랭커스터 대공 가란 사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불과 빛의 사도. 미하일이 생각하는 평화는 명백하게 뒤틀려 있었다. 훗날 그가 적이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그의 마음을 손에 넣고 동맹을 맺을 경우, 그러한 사태를 예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노릴 수 있으리라.

“데일 공자님…….”

미하일이 멋쩍은 듯이 웃었고, 데일이 아버지 작센 공작을 바라보았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저에게 공작 가의 밤까마귀 기사, 그리고 흑색 마탑의 장로들을 빌려주십시오.”

“요크 후작 가, 세필리아 경과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가 동맹을 맺고 있다. 게다가 황실이 공식적으로 그들의 다툼에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하나, 철십자 기사의 부수장이 참여했다는 것은…….”

“적색 마탑이 움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지요.”

“랭커스터 가 역시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상대는 아니겠지. 그러나 네가 말하는 정도의 전력으로는 그 싸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전쟁의 꽃이라 불리는 기사와 흑색 마탑의 장로들. 일개 중소 영주들의 싸움에 있어서는 쐐기를 박는 수준의 결정적 전력이다. 그러나 제국 유수의 대제후들이 격돌하는 싸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규격 외의 강자’가 없었으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공식적으로 ‘제국의 눈’을 피해, 그러나 확실하게 그들의 싸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강자가 있으니까요.”

“……?”

마침내 데일이 손에 넣은 것들이 빛을 발할 때였다.

* * *

천검 랭커스터 대공에 맞서 요크 가의 방계로서 귀검 세필리아 경이 참여했고, 요크 가의 차녀 캐서린과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장남 필립이 혼약을 맺음으로써 ‘성검’을 손에 넣었다.

두 자루 칠검이 랭커스터 대공 가를 향하고 있는 이상, 저울추를 맞추는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아울러 작센 공작 가의 상황을 고려할 때, 칠검 헬무트 경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울러 흑색공의 참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데일에게는 그들 외에 손에 넣고 있는 또 하나의 ‘칠검’이 있었다.

그 시각, 작센 자작의 마왕령에 있는 그림자 대법정. 제국 제일의 암살자 조직이라 일컬어지는 ‘그림자 법정’의 심장.

“푸흐읍! 컥, 컥컥, 아이고 씨펄!”

탁자 위에 두 다리를 꼬고 있는 남자가, 마시고 있는 맥주를 역류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도무지 기사로서의 품위나 격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대륙 칠검의 일좌, 살검(殺劍)의 이름을 가진 기사이자 암살자.

대법정을 데일을 앞에 두고, 마스터 바로가 재차 맥주를 홀짝였다.

“방금 씨펄, 요크와 랭커스터의 후계 다툼이라고 했소?”

“랭커스터 가의 장남 리차드와 혼약을 맺은 요크 가에서는, 차남 미하일 공자님을 대공 가의 후계로 삼겠다는 랭커스터 대공의 결정에 항의하며 영지전도 불사하겠다는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그 싸움이 ‘제국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대의로 포장되고 있는 이상, 황실 입장에서도 달리 마다할 이유가 없는 다툼이지.”

마스터 바로를 향해 데일이 묵묵히 입을 열었다. 무척이나 스스럼없는 말투였다.

“그래, 그럼 요크 가의 방계에 있는 ‘귀검’ 아가씨께서도 참여하겠네.”

귀검 세필리아. 마스터 바로가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그 이름에, 데일의 표정에 일순 동요가 어렸다.

황실 직속 친위대, 제국 제일의 기사 조직이라 일컬어지는 ‘철십자 기사’들의 부수장. 일찍이 제국의 사냥개로서 데일 역시 그녀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으므로.

“귀검, 성검, 천검. 그 괴물 같은 새끼들이 말리지는 못할망정 애새끼들 싸움에 끼어들고 있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역시 그 ‘애새끼들 싸움’에 끼어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니, 그 새끼들은 그리도 할 짓이 없나?”

살검 마스터 바로가 투덜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림자 성녀가 입을 열었다. 흑색의 붕대로 눈을 가린 채.

“미하일 랭커스터…… 그 자의 아바타를 보셨습니까?”

흑색 붕대로 눈을 가린 그림자 성녀가 되물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성녀의 힘. 그녀의 말에 데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빛의 사도.”

그리고 그가 보여준 아바타를 떠올리며, 데일이 대답했다.

“그자는 위험합니다. 훗날 ‘그림자 군주’의 어둠을 위협할 가장 강력한 존재 중 하나지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저 역시 유의하고 있습니다.”

데일이 말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으로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작센 공작 가와 랭커스터 대공 가의 동맹은 그 이상의 가치를 주겠지요.”

“……그것은 ‘흑색의 사도’로서 내리신 결정입니까?”

흑색의 사도, 불과 빛의 제국을 몰아내고 그림자의 제국을 가져올 자. 이곳 그림자 법정은 바로 그것을 위해 작센 가의 장남에게 충성하고 있다. 그들의 믿음을 배신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결정이 되지 못하겠지.

“그렇습니다.”

데일이 일말의 주저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는 지금, 흑색의 사도로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그림자 법정’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말과 동시에 데일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데일의 애장, 그림자 망토가 아니었다.

그림자 속에서 사람의 실루엣이 그 모습을 이루었다.

신에게 버림받고, 신이 없는 세상에서 데일의 꼭두각시를 자처한 여기사. 오러 마스터의 기사이자 《그레이브 가드》의 하나로서 침묵의 서약을 올린 기사.

철저하게 데일의 그림자가 되어 그녀를 지키는 ‘검은 성처녀’가, 그곳에 있었다.

“아울러 오렐리아 님의 수행을 비로소 시험할 때가 되었지요.”

데일의 말에, 검은 성처녀 오렐리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내가 그 아가씨 교육 하나는 좆빠지게 잘…… 아니, 기가 막히게 잘 시켰지. 까딱했다가는 내 모가지가 날아갈 지경이라니까?”

살검의 수행 아래, 데일의 명령에 따라 ‘기사의 검’을 버리고 철저하게 ‘암살자의 검’으로 거듭나 있는 여살수. 그것이 지금의 성처녀 오렐리아였고, 그때마다 새롭게 덧씌워지는 사상은 그녀의 아바타를 새로운 형태로 거듭나게 해주었다.

대륙 칠검에 맞서 결코 밀리지 않을 수준의 강자.

“그림자 법정의 고위 암살자들과 함께, 우리는 랭커스터 대공 가의 전력으로서 활약할 것이다.”

제국의 평화 속에서, 최초로 두 대제후와 규격 외 강자들이 전력을 다해 대거 격돌하는 싸움의 장.

“그러나 우리의 존재와 활약은 철저하게 그림자 속에서 이루어지겠지.”

어느덧 그 전투의 당사자 중 하나로서, 데일이 입을 열었다. 그림자 법정의 수장 ‘그림자 군주’로서. 그의 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대륙 제일의 암살자 조직을 거느린 채.

“허허, 내가 이 팔자에 또 좆빠지게 모가지나 따고 다녀야 하나.”

데일의 비장한 목소리 앞에서, 마스터 바로가 중얼거렸다.

“아, 나는 참고로 빠질 좆은 있소.”

“……좆 같은 소리 좀 하지 마라.”

데일이 어이가 없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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