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17화 (117/301)

117화

* * *

미궁 심층. 두 공작 가의 후계자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을 향해 악의를 드러내고 있는 괴물을 마주하며.

전장(全長) 십수 미터의 터무니없이 거대한 거미였다.

그러나 그 존재가 갖는 기이함은 그저 크기 하나가 아니었다.

거미의 다리를 이루고 있는 것은 몇 미터 가까이 되는 ‘사람의 팔다리’였고, 나아가 거미의 눈알에 달린 것은 ‘사람의 얼굴(人面)’이었다. 저마다 희로애락의 표정을 짓고 있는 기이하기 그지없는 표정, 그러나 그들이 짓고 있는 표정과 별개로 모두가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피눈물이었다.

마치 십수 명가량 되는 사람의 육체를 조각조각 해부해서 거미의 형태로 재조합한 듯한 이형의 괴물. 그 존재는 결코 오크 같은 알기 쉬운 형태의 괴물이 아니었다. 이 세계의 기준에서도 명백하게 느낄 수 있는 이형의 존재였다.

“흥미롭네요.”

그 모습을 보고, 미하일 랭커스터가 입을 열었다.

“마왕령의 대미궁에 대해 호사가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대 마족의 이야기겠지요.”

“저 괴물을 이루고 있는 사람의 육체는, 그들의 실험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일까요?”

“글쎄요.”

“호사가들이 말하길, 고대 마족은 아직도 이곳 대미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지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주워들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네요.”

데일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이곳 마왕령의 전부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까닭 없이 사람의 육체가 미궁에서 솟아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저 괴물을 이루고 있는 육체는 사람의 그것이 명백했다. 비록 그 육신들이 어디서 비롯됐고 어디서 이렇게 끔찍하게 융합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네 쌍의 거미 눈, 그 눈을 이루고 있는 사람의 얼굴들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저마다 울고, 웃고, 화내고, 슬퍼하는 표정 속에서 하나같이 피눈물을 흘리며.

“……요크 가에 맞서 후계 다툼이 정리되고 나서, 저희 랭커스터 대공 가는 작센 가의 맺은 동맹을 이행하기 위해 ‘마왕령의 개척’에 힘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피스메이커의 칼자루를 고쳐 쥐고서, 미하일 랭커스터가 말했다.

랭커스터 가와 작센 가가 손을 잡게 될 ‘대 마족 동맹’의 대의를 입에 담으며.

“다시 말해, 이 대미궁과 마왕령의 가장 깊은 어둠을 파헤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요.”

“미하일 공자님의 제의는 긍정적으로 검토될 것입니다.”

데일로서도 나무랄 것이 없는 제의였다.

“그러나…….”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일순 뜸을 들였다. 거래를 수락하는 것과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 실무의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으니까.

“제가 당장 ‘작센 자작’의 이름으로 마왕령의 개척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 이상, 곧바로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계시겠지요.”

“아,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미하일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일사천리와 거리가 멀다. 전쟁을 준비하는 데에는 몇 달 이상의 시일이 소요되며, 당장 대륙에서 대륙을 가로지르는 것조차 21세기의 교통 수준으로 보기에 그야말로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작센 자작님께 대 마족 동맹의 이름으로 손을 잡은 이상, 앞서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은 응당 제 쪽이니까요.”

“그 말씀은?”

“요크 후작 가가 그들의 동맹을 소집하는 사이, 아버지 역시 랭커스터 대공 가의 동맹을 규합하고 그에 맞서 준비를 할 것입니다. 그에는 필시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되겠지요.”

전쟁은 결코 하루아침에 벌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그것이 랭커스터 대공 가, 요크 후작 가 정도의 대제후들이 맞붙는 충돌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리라.

“때가 될 때, 아버지께서는 이곳 마왕령에 사자(使者)를 보내기로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미하일이 말했다.

“그때까지 저는 이곳에서 ‘작센 자작’께서 바라시는 북부 마왕령의 개척에 힘을 쓸 겁니다.”

미궁 속에서 얻게 될 일확천금의 아티팩트 따위는 아무 흥미도 없다는 듯이.

“미궁에서의 활약과 더불어 개척 농부들의 땅을 지키고, 이 땅을 위협하는 마족들과 맞서 제 검을 휘두르겠다고 맹세하지요.”

“……그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입니다.”

미하일 랭커스터가 웃었다. 우리 모두의 평화. 데일이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동시에 사람의 육체로 이루어져 있는 ‘괴물 거미’가 두 사람을 향해 쇄도했다. 흡사 깡충거미를 보듯 터무니없는 쇄도였다. 빨랐다.

그러나 거미의 쇄도와 동시에, 미하일 랭커스터의 몸에 적백의 오러가 휘감겼다.

미하일 랭커스터의 아바타, 불과 빛의 사도를 상징하는 ‘사상의 갑주’.

태양처럼 이 세계에 빛을 밝히고, 동시에 태양의 열기에 버금가는 파괴의 불꽃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어둑새벽을 밝히는 여명의 빛이 피스메이커의 칼날에 휘감겼다. 바로 그 ‘평화의 중재자’를 고쳐 잡고서 미하일 랭커스터가 쇄도했다.

‘아바타는 저게 참 편리하지.’

갑주의 형태로 쌓아 올리는 사상.

마법사가 사상의 세계를 전개할 때, 그것은 곧 이 세계와의 괴리를 뜻한다. 나아가 그의 심상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세계와 달리, 기사는 비교적 그 제약이 덜하다. 성검사처럼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를 제하고서.

쉽게 말해, 마법사에 비해 비교적 부담 없이 전력을 개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불과 빛의 사도가 ‘평화의 중재자’를 휘둘렀고, 괴물 거미를 이루고 있는 사람의 육체가 갈가리 찢겨 나갔다.

네 쌍의 거미 눈을 대신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들이, 각자의 표정에서 벗어나 일제히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

이윽고 순백의 불꽃이 휘몰아쳤다.

태양의 코로나(Corona)를 보는 것 같은 빛의 폭발. 그 터무니없는 열기의 정체를, 데일은 직감할 수 있었다.

태양 일대를 휘감는 코로나는, 태양을 비롯한 천구체 주위로 뿜어져 나가는 플라스마 대기층이다.

‘플라스마…….’

기체 상태의 물질에 열을 가함으로써 생성되는, 이온핵과 자유전자로 이루어진 입자들의 집합체.

불과 빛의 사도로서, 그 이름에 일말의 부족함이 없는 압도적 파괴력.

플라스마의 검풍(劍風)이 휘몰아쳤고,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흩날려야 할 몇 줌의 잿더미조차 없었다. 그 열기 앞에서는, 응당 괴물이 떨어뜨려야 할 ‘마석’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아, 이것참.”

이내 아바타를 해제하고, 미하일 랭커스터가 당혹스러운 듯이 미소 지었다.

그러나 미하일이 뿜어내는 청색의 불꽃조차, 《페이스리스》의 후드 밑으로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를 밝히지는 못했다.

“…….”

그저 밑바닥을 알 수 없는 그림자 속에서, 데일은 묵묵히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훗날, 저 플라스마의 검풍이 자신을 향해 휘몰아칠 때의 풍경을 헤아리며.

미하일 랭커스터는 강하다. 그리고 그 정도의 강자조차, 대륙 칠검(七劍)이라 불리는 일곱 자루 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륙 칠검에 가장 가깝다고 일컬어지는 자. 다시 말해 저 미하일조차 대륙 칠검에는 닿지 못한다.

세상은 넓고 강자들은 많다.

제국 제일의 천재라 불리는 데일조차 아직은 넘을 수 없는 거산들. 그러나 그 존재들이 데일에게 주는 감정은 결코 좌절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데일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동력이었으니까.

* * *

랭커스터 가와 작센 가의 대(對) 마족 동맹.

그러나 그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 사실이 알려지는 즉시, 요크 후작 가가 위협을 느끼고 움직임을 취하려 들 테니까.

그렇기에 미하일 랭커스터는 어디까지나 ‘일개 모험가’로서 마왕령의 평화를 위해 검을 휘둘렀다.

비밀리에 작센 자작의 뜻에 따라 마왕령을 수호하고 개척하기 위한 ‘평화의 사자’가 되어서.

오러 마스터, 다시 말해 아바타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군단에 맞먹는 힘을 가진다.

일인군단(One Man Army).

바로 그 일인군단이 마왕령의 평화를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은, 데일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바 없는 믿음직한 전력이었다.

특히나 작센 가의 군세와 대결을 피하고, 게릴라 위주의 전술로 개척 농부를 습격하는 마족들에게 있어 ‘미하일 랭커스터’의 존재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으리라.

마족이라고 해서 달리 이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겠다는 거창한 사상은 없다. 그들이 농가를 습격하고 약탈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 불과하다. 그러나 데일이 마왕령 개척 사업을 진행하는 것 역시, 작센의 동토(凍土)에서 하나라도 더 많은 작물을 일구고 공작령의 사람들에게 터전을 주기 위한 ‘생존의 투쟁’이다.

마족과 인간. 공존할 수 없는 두 세력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다툼.

그것이 마왕령 개척의 진실이었고, 그러나 이 순간에도 마왕령의 적지 않은 자들은 자신들이 악에 맞서 여신의 땅을 일구겠다는 신념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당장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적지 않은 개척 수도사들이 마족들의 위협에 맞서 마왕령의 동토를 일구고 있었고, 데일로서도 굳이 그들의 믿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신념(信念)은 사람의 시야를 어둡게 하고, 동시에 흔들림 없는 결의를 불어넣는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비틀리고 비틀린 신념이라 할지라도.

* * *

“아아, 캐서린! 나의 캐서린!”

“후후, 필립 공자님도 참…….”

마치 사랑스러운 여자 앞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호색한 필립이 미소 지었다.

백작 가의 망나니, 패배의 천재, 대륙 전체를 통틀어 가장 치욕스러운 이름을 가진 성검사의 아들.

그러나 필립을 향하는 ‘요크의 캐서린’이 짓고 있는 미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미소였다.

“설령 세상 사람들이 필립 공자님을 손가락질해도…….”

캐서린의 손길이 다정하게 필립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대로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하며, 캐서린이 속삭였다.

“저는 알고 있어요. 필립 공자님께서 이 제국의 영웅으로 우뚝 서게 되리란 것을.”

“아아, 그대의 말이 맞소!”

캐서린의 목소리는 성모의 속삭임처럼 달콤했고, 그녀의 자애 앞에서 필립은 북받치는 감정의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저에게는 보이고 있는걸요. 남들이 보지 못하는 필립 공자님의 ‘진정한 가치’를.”

그녀의 미소는 일찍이 필립이 수도 없이 겪은 창부들의 값싼 미소가 아니었다. 그녀의 속삭임 역시, 창부들의 입에 발린 아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속삭이는, 달콤한 진심의 목소리였다.

“아아, 캐서린! 나의 사랑, 나의 피앙세여!”

필립이 사랑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캐서린을 포옹했다. 그러나 그것은 욕망에 이끌린 행동이 아니었다. 호색한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흡사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다루는 것 같은 섬세함.

“그러니 사랑스러운 낭군님, 부디 저의 기대를 배신하지 말아 주세요.”

필립의 품에 안겨 있는 캐서린이,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방금까지의 미소가 거짓말이었다는 듯,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얼음장 같은 표정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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