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16화 (116/301)

116화

* * *

“성의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데일의 물음에, 미하일 랭커스터가 덤덤하게 미소 지었다.

“이곳, 다크 랜드로 이어지는 북부 마왕령은 ‘작센 공작 가’의 오랜 골칫거리였지요.”

“…….”

“그렇기에 데일 공자님께서는, 이곳 마왕령을 ‘기회의 땅’으로 바꾸어 제국의 실력자들을 불러모으는 게 아닙니까.”

북부 개척시대. 작센 자작으로서 데일이 노리고 있는 ‘아티팩트 러시’의 광풍을 정확하게 헤아리며.

“미하일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주는 것이 있고 받는 것이 있는 법이지요.”

그러나 데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하게 미소 지었다. 모험가들은 이곳 마왕령에서 일확천금의 기회를 손에 넣고, 동시에 이 어둠의 땅에서 비롯되는 위협을 저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이 작센 자작과 모험가들 사이에 체결된 암묵의 거래였으니까.

“저희 작센 공작 가가 미하일 공자님과 랭커스터 가의 동맹이 되어드릴 경우.”

데일이 말을 잇는다.

“랭커스터 대공 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데일의 동맹에 미하일 랭커스터가 보여주고자 하는 성의.

짤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작센 자작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드리지요.”

미하일 랭커스터가 대답했다. 작센 자작, 데일이 바라는 것.

“──대(對) 마족 동맹.”

“……!”

“그것이 공식적으로 저희 랭커스터 가와 작센 공작 가 사이에 맺어질 ‘동맹의 형태’입니다.”

미하일 랭커스터가 말했다.

“북부 마왕령, 그 너머에 있는 ‘다크 랜드’의 위협에 맞서 제국을 수호하기 위한 제후 동맹이지요.”

“참으로 그럴싸한 명분이네요.”

데일이 짐짓 흥미롭다는 듯이 대답했다.

마왕령의 위협에 맞서는 대 마족 동맹. 공공의 적에 맞서 ‘제국을 수호하겠다’는 대의가 있는 이상, 황실도 대놓고 두 공작 가의 동맹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데일의 입장에서는, 마왕령의 개척 사업에 그 무엇과 비할 바 없는 전력을 얻게 되리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랭커스터 대공 가는 제국 제일의 대제후 중 하나였으니까.

데일이나 미하일의 말마따나 주는 것이 있고, 받는 것이 있는 거래였으며,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랭커스터 가의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좋지 않은 모양이네요.”

상황을 헤아린 데일이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눈앞의 이득에 맹목이 되어 도장을 찍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은 까닭에.

“북부의 작센 가…… 어둠의 일족과 손을 잡는다는 것이 제국과 황실에 있어 어떻게 비칠지, 랭커스터 대공께서 모를 리가 없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작센의 손을 빌리겠다는 것.

“얼마나 심각한 상황입니까?”

“…….”

일말의 주저도 없이 꽂아넣는 직구였다. 그러나 미하일 랭커스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덤덤히 쓴웃음 지을 따름이다.

“형님께서는 요크 후작 가와 약혼을 맺고 나서, 공식적으로 그들의 데릴사위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요크 후작 가의 방계에 있는 ‘귀검 세필리아 경’이 직접 아버지를 압박하고 계시지요.”

귀검 세필리아 경. 그 이름에, 일순 데일의 표정에 동요가 어렸다.

“철십자 기사단의 부단장이…….”

작센 공작 가의 밤까마귀 기사단,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성 막달레나 기사단, 그리고 랭커스터 대공 가의 장미십자 기사단.

제국의 제후들은 저마다 그들의 검(劍)을 계승하는 조직을 거느리고 있고, 그것은 제국의 정점에 있는 황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철십자 기사단(Order of Iron Cross).

황실 직속 친위대이자, 적색 마탑과 더불어 ‘제국의 시대정신’을 집행하는 최강의 기사 조직.

“황실에서는 어디까지나 ‘귀검 세필리아 경 개인의 뜻’이라며 선을 긋고 있으나, 암묵적으로 요크 후작 가의 쪽에 손을 들어주는 상황이지요.”

그 말을 듣고 나서, 데일이 대답했다.

“그렇담 성검(聖劍)도 요크 후작 가의 손을 들었겠군요.”

“……!”

그것은 미하일 랭커스터조차 상상하지 못한 정곡이었다.

귀검 세필리아 경, 성검 브란덴부르크 백작. 대륙 칠검 중의 두 명이 ‘요크 후작 가’를 지지하며 랭커스터 대공 가를 압박하고 있다. 장자 상속의 규칙, 다시 말해 ‘제국의 전통’을 지키겠다는 명분 아래에서.

대륙 칠검이 저마다의 명분을 갖고 요크 후작 가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상황. 그것은 제아무리 랭커스터 대공 가라 할지라도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리라. 설령 랭커스터 가의 가주, 천검(天劍) 랭커스터 대공이 제국 제일검의 칭호를 가진 강자라 할지라도.

“그렇기에 성검과 척을 지고 있는 작센 공작 가와 동맹을 맺으시려는 게 아닙니까?”

“……역시 데일 공자님의 통찰력에는 당해낼 수가 없군요.”

미하일 랭커스터가 대답했다.

“공자님의 말대로입니다. 요크 후작 가의 차녀 ‘캐서린’이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장남과 약혼을 맺는 대가로 동맹을 맺었지요.”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장남이라고 하셨습니까?”

일순, 뜻밖의 이름이 들려왔다.

“그렇습니다.”

“그럼 후계 다툼이 전란으로 확장될 경우, 백작 가의 장남이 전장에 참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네요.”

“성검이 함께하는 이상, 아마 높은 확률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데일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한 미하일이 일순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크 가와 랭커스터 가의 전란이 확대되고, 거기에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부자(父子)가 참여한다는 것. 그것은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귀결이었으므로.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순간, 데일이 일말의 주저도 없이 미소 지었다.

“콜.”

“콜……?”

“아, 미하일 공자님의 제의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데일이 대답했다.

천하의 데일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패배의 천재’가 적의 진영에서 활약하는 이상…… 나아가 성검사 브란덴부르크 백작과 ‘합법적으로’ 맞설 수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망설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성검사의 심장에 새겨져 있을 신명의 맹세를 떠올린다.

브리타니아 왕국에서 샤를 7세와 맺은 ‘무기한의 휴전 협정’ 문서는 아직 파기되지 않고 데일의 손에 있으며, 엄밀히 말해 ‘법적으로 브리타니아 왕국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상, 브란덴부르크 백작은 데일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제국군의 총사령관에게 복종하겠다는 기아스의 내용이었으니까.

“평화를 바라는 자, 전쟁을 준비하라.”

머릿속으로 셈을 마치고 나서, 데일이 미소 지었다.

그야말로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들어온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바로 그때였다.

쿠웅!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곳을 향해, 싸늘한 기척이 다가왔다.

미궁 심층에 서식하는 괴물.

살검 마스터 바로를 비롯한 ‘그림자 법정’의 암살자들이 고개를 돌렸고, 그러나 데일이 팔을 뻗었다. 마왕령의 지배자, 작센 자작으로서.

“모두 물러나라.”

“존명(尊命).”

그 말과 동시에 새 부리 마스크의 암살자들이 일제히 모습을 감추었다. 미궁 곳곳의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며.

경지에 이르러 있는 기사나 마법사처럼, 살수(殺手)들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럼 두 공작 가의 동맹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그림자 법정의 암살자들이 물러나고, 미하일과 데일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노리고 다가오는 괴물을 보며, S랭크의 모험가 《페이스리스》가 입을 열었다.

흑색 로브로 의태하고 있는 그림자 망토를 펄럭이며, 동시에 미하일의 손에 들린 ‘피스메이커’를 뒤로하고.

“함께 ‘아티팩트 러시’의 일확천금을 손에 넣어보지 않겠습니까?”

“저야말로 바라는 바지요.”

데일이 말했고, 미하일이 말없이 미소 지었다.

불과 빛의 사도. 미하일 랭커스터의 사상(思想)은 위험하다. 그리고 그가 훗날 데일의 앞을 가로막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영원한 적이나 친구도 없는 법이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 당장으로서, 미하일 랭커스터는 쓰러뜨려야 할 적이 아니다.

서로가 일치하는 이해관계 속에서, 각자가 바라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한 동지였으니까.

* * *

청백의 장미,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지혜로운 고결함.

제국의 대제후 중 하나, 요크 후작 가를 상징하는 문장(紋章).

요크 후작 가에는 대륙 칠검이나 오색 마탑주 같은 ‘규격 외의 강자’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제국의 대제후로서 그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것은, 청백의 장미가 상징하는 ‘지혜로움’ 덕이었다.

요크 후작의 영주성.

바로 그곳에, 대륙 칠검이라 일컬어지는 두 명의 강자들이 있었다.

황실 직속 친위대, 철십자 기사단의 부단장 귀검 세필리아. 그리고 제국의 전쟁 영웅이자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가주(家主), 성검사.

끝으로 성검사의 아들, 어느 의미에서는 ‘제국 제일의 천재’란 이름이 아깝지 않은 망나니 필립까지.

“다들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습니다.”

심상치 않은 공기가 감돌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요크 후작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요크 후작 가의 영애들이, 그곳에 모여 있는 강자들의 곁을 지키며 미소 지었다.

브란덴부르크 백작 가의 장남과 약혼을 맺은 요크 후작 가의 차녀, 캐서린. 그녀의 순수한 미소를 두고 ‘호색한 필립’은 그야말로 입이 찢어질 것 같은 기쁨을 억누르고 있었다.

나아가 랭커스터 대공 가의 장남, 리처드 랭커스터 역시 그곳에 있었다.

요크 후작 가의 장녀, 마가릿을 향해 사랑스러운 듯이 미소 지으며.

그야말로 몽마의 홀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같은 풍경이,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

그 모습을 보며, 귀검 세필리아가 역겨운 듯이 고개를 돌렸다.

요크 후작 가에는 다른 제국의 대제후들과 같은 규격 외의 강자들이 없다.

그러나 요크 가의 일족들에게는 그들이 갖지 못한 ‘지혜’가 있었다.

요크 가의 영애들은 태어날 때부터 철저하게 요크 가의 ‘지혜’를 배우고, 그녀들의 지혜를 통해 대륙의 강자들을 아우르는 흔들림 없는 입지를 구축했다.

당장 이곳에 있는 요크 후작의 곁에서, 다정하게 귓속말을 속삭이는 ‘요크 후작 부인’이 그러하듯이.

“그대들께서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입니다.”

요크 후작이 입을 열었다.

“차남에게 가문을 상속하겠다는 랭커스터 대공의 결정은, 명백하게 ‘제국의 전통’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천검(天劍)을 너무 얕보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침묵 끝에, 철십자 기사단의 부단장이자 ‘귀검 세필리아’가 입을 열었다.

여성의 몸을 갖고 있기에, 이곳 요크 일족들의 미혹(迷惑)으로부터 벗어나 유일하게 냉정함을 지키며.

그러나 일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 ‘요크 후작’에게, 그녀의 경고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철십자 기사단의 명예로운 부단장께서, 제국의 전통을 부정하시려는 겁니까?”

“…….”

귀검 세필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 제국이란 나라의 실체를 떠올리며 묵묵히 입술을 깨물었다.

적색 마탑의 유리스 후작 가, 그리고 요크 가의 여성들, 그리고 황실의 일족들. 그 외에도 물밑에 숨어 침묵을 지키는 헤아릴 수 없는 가문들의 진정한 모습을 떠올리며.

뱀파이어, 몽마, 제국이란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이 아닌 자들’의 존재.

그들의 체제 앞에서, 기사 가문 출신의 일개 여기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이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 그러했듯,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따르는 수밖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