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15화 (115/301)

115화

* * *

그즈음, 미하일 랭커스터의 등장은 미궁도시 라비린토스에 적지 않은 소요를 불러왔다.

대륙 칠검과 가장 가깝다고 일컬어지는 검의 천재, 미하일 랭커스터.

일개 모험가나 용병들이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고 ‘아티팩트 러시’에 휘말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는 바로 그 제국의 3대 공작 가, 그것도 랭커스터 대공 가의 차남이 아니었나!

작센 자작이 지배하는 마왕령 내에서, 그의 존재가 가지고 오는 무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하일 랭커스터의 등장이 가지고 오는 충격은 그저 마왕령 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천하의 랭커스터 대공 가, 그중에서도 유력한 차기 가주(家主)로 지목받는 미하일이 몸소 북부 너머의 마왕령을 찾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북부 개척지를 찾은 최초의 거물이었고, 그 행위가 제국에 가져올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덧 북부 개척시대, 아티팩트 러시가 가져오는 바람은 ‘열풍’조차 아니었다. 그야말로 광풍(狂風)이었다.

다시 말해 ‘미궁도시’가 주는 일확천금의 기회에 일개 모험가나 용병들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제국의 귀족들조차 비로소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황금에는 늘 파리가 꼬이는 법이다. 적어도 미하일 랭커스터가 ‘파리’는 아닐지라도, 그의 등장이 파리 떼에게 있어 기폭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 * *

그즈음, 미궁도시에 있는 S랭크의 모험가 ‘덜레스의 에드워드’는 무척이나 초조했다.

작센 자작의 지배에 고개를 숙이며 암암리에 몇몇 길드와 손을 잡고 ‘암거래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으며, 모험가들을 규합하고 도시 내에서 그의 세력을 확장하는 작업은 무척 순조로웠다.

어쨌거나 덜레스 백작 가는 제국에서도 이름 있는 명가였고, 그렇기에 제아무리 작센 자작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으리라.

작센 자작이 구상하고 있는 북부 개척시대, 아티팩트 러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귀족들의 협조가 필수 불가결할 테니까. 아무리 덜레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일개 범법자를 취급하듯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령 그게 천하의 ‘검은 공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당장 그 흑백 회전에서 성검사의 아들 ‘필립’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듯이.

그게 바로 귀족이다. 이 세계에서 목숨의 가치는 동등하지 않고, 에드워드의 덜레스는 바로 그 고귀한 핏줄을 갖고 있었다. 적어도 덜레스 스스로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로 그때, 그곳에 뜻밖의 거물이 미궁도시를 찾았다는 소식이 울려 퍼졌다.

랭커스터 공작 가의 차남, 미하일 랭커스터.

그 즉시 덜레스의 에드워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꾸리고 있는 ‘귀족 모험가 동맹’으로서 함께 손을 잡자는 제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곳 미궁도시는 미스릴 광산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이득을 모조리 작센 가에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에드워드가 이끄는 귀족 모험가 동맹의 궁극적 목표는 그저 ‘일개 광부’에서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이 도시의 지분(持分)을 작센 자작으로부터 빼앗는 것이었다.

“어떠십니까, 미하일 공자님! 우리 같은 귀족들이 저깟 천한 피의 모험가들과 섞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귀족, 천한 피. 그것이 대다수 귀족이 그렇지 않은 자들을 향해 갖는 생각이었고, 그 제의에 미하일 랭커스터가 나직이 미소 지었다. 무척이나 부드러운 미소. 그의 제의에 동의하려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이곳에서 저는 어디까지나 ‘일개 모험가’일 뿐입니다.”

미하일 랭커스터가 대답했다.

“아울러 미궁의 밑바닥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것은 피의 고결함이 아니지요.”

그렇게 말하며 랭커스터가 부드럽게 웃었다. 제국 제일의 대귀족 중 하나라고 믿을 수 없는 말.

랭커스터의 겸허함 앞에서, 에드워드의 덜레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미궁의 심층.

“이곳에 계셨네요, 데일 공자님.”

등 뒤에서, 기척조차 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하일 랭커스터의 목소리였다.

“…….”

그 목소리에 S랭크의 모험가 《페이스리스》가 고개를 돌렸다. 후드 밑으로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림자가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침묵은 길지 않았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페이스리스’의 그림자 밑에서, 다소 애티를 머금고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으로 그의 목소리를 위장하는 일조차 없이.

“어느 누가 감히 ‘검은 공자’의 존재를 몰라볼 수가 있겠습니까.”

미하일 랭커스터가 웃었다. 손에 쥐고 있는 ‘피스메이커’를 따라 적백의 오러를 휘감으며.

페이스리스, 데일 역시 놀랄 것 없다는 듯 평정을 지켰다. 그의 칼날에 휘감겨 있는 ‘잔혹한 고결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째서 제 뒤를 밟으셨습니까.”

“그저 궁금했을 따름입니다.”

미하일 랭커스터가 대답했다.

“천하의 ‘검은 공자’이자 마왕령의 지배자께서, 친히 자기 정체를 숨기고 미궁으로 행차하는 까닭이.”

“그저 수행일 따름입니다.”

“작센 공작성의 기사들로는 적합한 수행의 상대가 되지 못하셨습니까?”

미하일이 피스메이커의 칼자루를 고쳐 잡고 되물었다.

“그렇담 공자님의 수행 상대로, 저는 어떠십니까.”

“미하일 공자님께서도 모르실 리가 없겠지요.”

그 말에 데일이 후드 밑의 그림자를 꿈틀거리며 말을 이었다.

“미궁 내에서 모험가들 사이에 검을 맞대는 자는, 마왕령에서 추방되고 다시 발을 디딜 수 없다는 규칙을.”

어디까지나 작센 자작이 미궁도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쌓아 올린 규칙.

“이 미궁의 어둠 속에서, 그 규칙을 감시해줄 자가 있습니까?”

미하일 랭커스터가 짐짓 즐겁다는 듯이 되물었다.

바로 그때였다.

“……!”

어둠 속에서, 기척이 움직였다.

스산하기 그지없는 바람이 휘몰아쳤고, 어느덧 데일과 미하일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실루엣들이 있었다.

새 부리 마스크에 흑색 코트를 걸치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데일의 수족으로 거듭나 있는 ‘그림자 법정’의 고위 암살자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고위 암살자라 할지라도, 대륙 칠검에 가까운 미하일을 속일 수는 없으리라. 그렇기에 미하일이 놀란 것은 그들의 존재 자체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들 사이에 있는 ‘하나의 암살자’였다.

천하의 미하일 랭커스터조차, 그 검이 목덜미에 닿을 때까지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다.

대륙 칠검에 가장 가깝다 일컬어지는 그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의 검(劍).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대륙 제일의 암살자, 대륙 칠검.

“살검(殺劍)…….”

“거, 악의는 없으니 너무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는 마쇼.”

살검 마스터 바로가 남의 일처럼 대답했다.

“나라고 좋아서 천검 나리의 아드님 모가지에 칼끝을 대고 있는 게 아니니까.”

천검, 죽은 신검의 뒤를 이어 ‘제국 제일검’의 칭호를 가진 미하일의 아버지.

“이들 ‘그림자 법정’이 미궁 내에서 모험가들을 감시하고 있는 겁니까?”

“적어도 그들이 감시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그렇지요.”

마왕령의 지배자로서 작센 자작이 거느린 조직들. 밤까마귀 기사, 겨울 파수꾼, 블랙아머 컴퍼니, 그리고 그림자 법정. 저마다 그들의 영역에서 데일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수족들.

“처음부터 제가 뒤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네요.”

“미하일 공자님도 그 사실을 알고 뒤를 밟으셨겠지요.”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대화가 이어졌다. 미하일이 데일의 뒤를 밟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데일이 그의 수족을 이용해 뒤를 밟게 했으며, 미하일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서 도발을 걸어온 것이다.

비록 살검이 직접 그 뒤를 밟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조차 예상 밖의 것이었으나.

“그날, 길드 시티의 블랙마켓에서…… 시티 마스터는 데일 공자님이 ‘그림자 법정’을 손에 넣었다고 하셨지요.”

적어도 미하일 랭커스터의 앞에서는 달리 숨길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데일 공자님께서 보여주시는 행보에 대해서는,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차남(次男)의 서열로 ‘랭커스터 대공 가의 유력한 후계자’로 거듭나 있는 미하일 공자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요.”

이 세계에서 가를 잇는 것은 어디까지나 장자 상속을 기초로 하고 있고, 귀족 사이에서 그 규칙이 갖는 무게란 절대 가볍지 않다.

가령 가주가 장남에게 작위 상속을 거부할 경우, 장남이 순순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까?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주위에 있는 귀족들이 모여 쿠데타를 종용할 경우, 자칫 후계 내전(內戰)으로 거듭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그 규모가 공작 가쯤 될 때는, 자칫 제국 전체를 아우르는 불꽃이 될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랭커스터 대공의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차남 미하일을 공식적으로 후계로 지목하고, 그의 후계 작업을 공고화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고 있었으니까.

“고작 저와 검 하나를 맞대고자, 이곳 북부 마왕령까지 행차하실 리는 없겠지요.”

그 사실을 헤아리며 데일이 입을 열었다.

“무엇을 목적으로 저의 영지를 찾아오셨습니까?”

비로소 두 사람이 속내에 감추고 있는 화제를 꺼내며, 그곳에서 협상 테이블이 자리를 잡았다.

“랭커스터 가의 장남, 리처드 랭커스터 형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미하일 랭커스터가 되물었다.

“차남이 랭커스터 가의 가주가 되도록, 순순히 보고 있지 않을 거란 정도는 알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미하일 랭커스터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전…… 요크 후작 가(家)의 장녀 레이디 마가릿 양이, 형님과 약혼을 맺었습니다.”

요크 후작 가. 3대 공작 가의 바로 아래에 해당하는 대귀족 중의 하나다. 그리고 그가 랭커스터 가의 장남과 약혼을 맺었다는 것은 오직 하나의 의미였다.

“저의 아버지께서 이 이상 장자 상속의 규칙을 깨트리고 후계 작업에 착수할 경우, 요크 가는 ‘제국의 전통’을 수호하겠다는 대의 아래 형님의 세력을 자처하겠지요.”

무심코 데일은 요크 후작 가를 상징하는 문장을 떠올렸다.

랭커스터 대공 가를 상징하는 것은 적백의 장미, 잔혹한 고결함.

그리고 요크 후작 가를 상징하는 것은 청백의 장미, 지혜로운 고결함.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

무심코 데일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미하일의 랭커스터가 씁쓸하게 미소 짓는다.

“어떠십니까, 데일 공자님.”

미소 지으며 미하일이 입을 열었다.

“부디 우리 랭커스터 대공 가를 위해 ‘작센의 힘’을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랭커스터 가의 평화를 위해서입니까?”

데일이 되물었다. 그의 말, 평화는 오로지 전쟁으로써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란 말을 떠올리며.

“그렇습니다.”

“두 공작 가가 동맹을 맺는 것은 자칫 대륙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데일이 되물었다.

“아울러 제국과 미하일 공자님께서는 그날 ‘블랙마켓’에서 제가 손에 넣은 상품을 알고 있지요.”

제국의 3대 공작 가, 익사공 바르바로사의 심장. 그 심장을 쥐고 있는 작센 공작 가가, 또다시 ‘랭커스터 대공 가의 후계’가 될 자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오직 하나의 의미였다.

“작센을 중심으로 3대 공작 가의 세력이 묶이는 것이, 제국의 입장에서는 썩 달갑지 않을 겁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미하일은 데일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 모순에 데일이 조소를 흘렸다.

“그리고 미하일 공자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제국의 평화’를 생각하는 애국자가 아니셨나요.”

“아, 저는 무엇보다 제국의 평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미하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제가 바라는 ‘완벽한 평화’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파괴는 감수해야 할 희생이겠지요.”

마치 창조에 앞서 파괴가 있다고 말하듯이.

“아울러 이 세상에는 주는 것이 있고, 받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미하일 랭커스터가 말을 이었다.

“작센 공작 가와 동맹을 맺는 대가로, 저는 기꺼이 그에 맞는 ‘성의’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