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역대급 신동-109화 (109/301)

109화

* * *

트리플 S랭크의 괴수 사냥꾼.

전생의 데일이 이계의 용사이자, 제국의 사냥개가 되기 전에 손에 넣은 이름. 이제는 기억조차 흐릿한 까마득할 정도의 과거였고, 지금 그 과거의 감각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카앙, 캉!

데일의 앞에 있는 괴물…… 아수라의 여섯 팔에 달린 무기가 휘둘러질 때마다, 그 일격을 맞받아칠 때마다.

‘괴물(Monster)’.

이 세계는 검과 마법의 세계고, 그렇기에 대륙 각지에 널려 있는 괴물의 존재도 그리 드물지 않다.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괴물을 사냥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괴물 사냥꾼’이 하나의 직업으로 통하는 것처럼.

사방에서 엇박자로 휘둘러지는 여섯 자루의 일격을, 피스메이커와 더불어 그림자 망토의 흑검으로 튕겨냈다.

의도적으로 마법의 사용을 억제하고, 오직 검 하나로 대미궁 심층의 괴물을 사냥하는 수행. 그 수행을 통해서 데일이 얻고자 하는 것은 하나였다.

이곳에서, 괴물들과 맞부딪칠 때마다 되살아나는 알 수 없는 기억.

괴수 사냥꾼으로서의 감각.

이계의 용사가 되어 상상조차 하지 못할 힘을 손에 넣고, 동시에 적색 마탑의 무자비한 육체 개조 끝에 전생의 데일은 ‘최초의 힘’을 잃어버렸다.

《괴수(Creature)》라 불리는 이형의 존재들에 맞서 ‘각성자’로서 손에 넣은 최초의 힘이자…… 기사의 오러나 마법사들의 마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초상의 힘.

그 잃어버린 힘이, 이곳에 있는 괴물들과 검을 맞부딪칠 때마다 조금씩 약동하고 있다.

‘여기 있는 대미궁의 괴물들은 대체 뭐지?’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알기 쉬운 형태의 괴물이 아니다.

비록 전생에 싸운 고위 괴수들의 강함 앞에서는, 그야말로 애들 수준에 불과했으나.

휘둘러지는 여섯 자루의 무기를 그림자 망토의 검으로 튕겨내며, 물 흐르듯 피스메이커의 검이 파고들었다.

아수라의 심장을 향해서.

푸욱!

검이 아수라의 가슴팍을 찢고, 그대로 등을 뚫고 튀어나왔다. 움직임이 멈추었다. 멈추고 나서는, 괴물의 육체가 잿더미로 화하며 흩날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핏빛의 보석을 남기고서.

마석(魔石).

그 자체로 강력한 마법의 힘이 담겨 있는 고가의 보석이다.

강력한 괴물을 쓰러뜨릴수록 고순도의 결정을 얻을 수 있으며, 심층 수준의 괴물이 떨어뜨리는 마석은 최하급 아티팩트 이상의 값어치를 가질 정도다.

두말할 것 없이, 미궁을 공략하는 모험가들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주 수입 중 하나다.

그렇기에 대미궁을 비롯해 마왕령에 넘쳐나고 있는 미궁의 존재는 ‘마석 광산’이란 말에 부족함이 없다. 아티팩트의 일확천금에 비할 바는 아니나, 속되게 말해 또 하나의 ‘노다지’가 있는 셈이니까.

──미궁을 방황하는 괴물들은 죽을 때 육체를 남기지 않는다. 하다못해 오크 따위의 마족도 죽을 때는 시체를 남기고 죽는데, 이것들은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 이곳에 있는 존재들은 섭리 속에 존재하는 생물이 아니다. 모종의 의도를 갖고 창조되어…… 창조자의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피조물이다.

마석에 담겨 있는 강력한 마법의 힘이 그 증거였다.

코어(Core)를 남기고 소멸하는 괴수처럼.

“…….”

그럼 도대체 누가 이 미궁을 설계하고, 이 정체불명의 존재를 창조하고 풀어놓았으며, 어째서 미궁 속에 아티팩트를 숨겨놓았나. 적어도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기술력 같은 것은 없다.

그럼 호사가들의 말처럼 ‘고대 마족’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정말로 실존하는 걸까?

이 세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사실이, 데일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당장 해답을 찾을 수는 없으리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고순도의 마석을 쥐고 나서, 데일이 덤덤히 걸음을 옮겼다.

작센 자작이자 ‘검은 공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S랭크의 모험가 《페이스리스》로서.

* * *

데일이 미궁 심층을 나와 위쪽으로 향할 즈음에는, 어느덧 새벽녘 어스름이 트기 시작할 때였다.

하룻밤 사이 직행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심층의 첫 자락이며, 그마저 마주치는 족족 상층의 괴물들을 순살할 정도의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대미궁을 이루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개의 계층이다.

상층, 하층, 심층.

그러나 심층의 아래, 보통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계층이 있다. 일찍이 과거의 용사가 심층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도달했고, 그 너머에 있는 또 하나의 계층.

나락(Abyss).

지금 데일의 실력으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 애초에 데일이 터를 잡은 심층 첫 자락, 그 이상까지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궁 내에서 야영을 각오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의 데일은 모험가이기 이전에 마왕령 일대를 다스리는 ‘작센 자작’이고, 해가 뜨고 나서는 영주로서 이곳 마왕령을 개척하기 위한 업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페, 페이스리스다……!”

“이봐! 페이스리스가 돌아오고 있어!”

“벌써 아티팩트를 손에 넣었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심층에서 지상으로 가까워질수록, 미궁을 탐험하고 있는 모험가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같은 떨거지들이 심층에 갔다가는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

“저놈은 괴물이야, 괴물.”

아티팩트 러시에 이끌려 북부 개척시대의 광풍에 휩쓸린 자들.

실제로 데일이 그들에게 제공하는 일확천금의 기회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은 동화가 아니고,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설령 기회가 주어져도 그것을 잡는 것은 또 별개의 이야기다.

S랭크의 모험가 《페이스리스》는 바로 그 ‘아티팩트 러시’가 주는 기회를 손에 넣은 자였고, 동시에 보통의 모험가들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경외(敬畏)의 대상이었다.

후드 밑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를 마주하기 무섭게, 지레 겁을 먹고 압도되는 것이다.

작센 가의 ‘검은 공자’가 그러하듯이.

* * *

그 시각, 랭커스터 공작령.

새벽녘 어스름이 떠오를 무렵부터 수행에 열중하는 남자가 있었다.

랭커스터 가의 차남, 미하일 랭커스터. 일찍이 검에 있어 대륙 제일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촉망받는 기사.

그리고 그에 맞서 수행 상대를 자처하는 자가 있었다.

‘대륙 칠검’에 가장 가까운 자라 일컬어지는 강자, 미하일의 검에 조금도 밀리지 않고…… 오히려 시종 압도하는 듯한 여유를 보여줄 정도의 실력자였다.

천검(天劍) 가브리엘 랭커스터 대공.

제국의 대제후, 그 정점이라 일컬어지는 3대 공작 가…… 랭커스터 대공 가의 가주.

동시에 천검의 별호를 갖고, 신검 바델 경의 뒤를 이어 칠검 중에서도 ‘제국 제일검’의 칭호를 손에 넣은 최강의 기사.

제국의 3대 공작 가, 어둠의 일족이라 일컬어지는 북부의 작센 가와 일개 해적 출신의 바르바로사 가. 엄밀히 말해 두 공작 가의 이미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귀족의 그것’과 거리가 멀다.

그에 비해 랭커스터 대공 가는, 그들의 문장이 말해주듯 정통파 귀족의 모범 그 자체였다.

백적(White-and-Red)의 장미, 그 상징이 의미하는 것은 잔혹한 고결함.

공작 가의 이름에 걸맞은 비옥하고 풍요로운 영지, 일말의 천함을 허락하지 않는 고결한 핏줄. 동시에 그들이 귀족으로서 짊어지는 의무를 이해하고, 기꺼이 그 무게를 감당할 각오가 있는 자들.

후웅!

천검 랭커스터 대공이, 미하일의 기사 검을 비껴내고 거리를 벌린다.

“여정을 떠나는 새벽 당일부터 수행이라니, 피로하지 않겠느냐.”

“제가 자리를 비우는 사이, 아버지의 검을 일합이라도 더 맞대지 못하는 것이 서러울 따름입니다.”

검을 고쳐 잡고, 미하일 랭커스터가 웃었다.

“역시 나의 아들이다.”

랭커스터 대공이 아버지의 흐뭇함을 숨기지 못하고 웃었다.

어릴 적부터 제국 제일의 검재(劍才)를 갖고, 새벽녘 어스름이 뜰 때부터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범생.

가장 유력한 차기 대륙 칠검의 후보.

그러나 당시, 미하일을 바라보는 랭커스터 대공의 속마음에는 내심 커다란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아들의 검에 깃들어 있는 끝을 모를 공허함이었다.

랭커스터 가의 차남으로서 주어진 천부의 재능과 최고의 핏줄. 그야말로 세상 전부를 손에 넣고, 태어날 때부터 발밑에 놓여 있는 성공 가도를 밟아가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마법사의 마법이 사상의 투영이듯, 기사의 오러 역시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미하일의 사상을 투영하는 오러는, 그 모습을 알 수 없는 ‘무색무형(無色無形)’의 오러였다. 마치 미하일의 공허함 그 자체를 비추듯이.

그러나 그날, 길드 시티의 파이트 클럽에서 작센 공작 가의 장남에게 패배했을 때. 띠동갑 차이의 어린아이에게, 그마저도 기사가 아니라 마법사에게 ‘검’으로 패배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비로소 미하일의 검에 깃들어 있는 공허함이 사라졌다.

그날의 뼈저린 패배 이후, 미하일의 오러에 비로소 색이 깃들었다. 제 손으로 검을 부러뜨린 아들에게, 아버지가 하사해준 새로운 검과 함께.

일말의 특징조차 없는 기사 검이었다.

그로부터 두 해가 지나, 북부 마왕령에서 ‘아티팩트 러시’의 광풍이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북부 개척시대의 서막.

작센 자작, 바로 그 ‘검은 공자’가 북부의 마왕령을 개방하고 대륙 각지의 모험가들을 불러모았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 미하일 랭커스터 역시 망설이지 않았다.

직후 아들 미하일이 작센 자작이 지배하는 ‘마왕령’으로 수행을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 랭커스터 대공은 기꺼이 아들의 의지를 존중해주었다.

* * *

“모, 모험가님!”

데일이 ‘길드 하우스’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접수계 하나가 낯빛을 창백하게 바꾸며 소리쳤다.

“어, 어서 오세요! 미궁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이시죠?!”

동시에 길드 하우스 곳곳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데일…… 아니, S랭크의 모험가 ‘페이스리스’는 말없이 길드 하우스를 가로질렀다.

테이블 위에, 괴물을 사냥하고 손에 넣은 고순도의 마석들을 일제히 내밀었다. 마석이 흩뿌리는 핏빛에 재차 웅성거림이 감돌았다.

“가, 감정 작업을 마치는 즉시 매매 허가증을 발급해 드리겠습니다!”

──미궁도시 라비린토스에는, 작센 자작의 이름으로 규정하고 있는 몇 가지 내용이 있다.

하나, 미궁에 들어가는 모험가는 모두 작센 자작이 세운 ‘모험가 길드’에 그 정보를 등록해야 할 것.

둘, 그곳에서 손에 넣은 아티팩트와 마석 일체는 길드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하며, 매매 허가증을 얻기 전까지 함부로 취급할 수 없다.

그러나 정작 규칙을 어기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는 그리 상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상품을 몰수하고 작센 자작령에서 추방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적혀 있기는 하다. 문제는 그렇게 규칙을 깨트린 자들이 모습을 감추고, 그 뒤로 아무도 그들의 모습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영구실종.

기실, 데일의 목적은 그저 북부 마왕령을 개척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자기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는 대륙의 실력자가 모이고,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모험가 길드’를 직접 설립한 진짜 목적.

모험가들이 미궁의 전리품을 매매하며 손에 넣는 중개 수수료 역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대륙에 있는 실력자들의 상세를 손에 넣고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데일이 직접 S랭크의 모험가 ‘페이스리스’로 활약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바로 그때. 마침 ‘작센 자작’이 흥미 깊게 살피고 있는 모험가 하나가, 길드 하우스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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